이총희
회계사
최신기사
-
직설 돈이 없어 안 낳는 것은 아니다 곧 아버지가 된다. 처음 그 소식을 듣고 내가 부모 될 자격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선뜻 답하기 어려워 한동안 멘붕이었다. 경쟁사회를 이겨내느라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도 없었을 뿐 아니라, 입버릇처럼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보겠다고 말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고려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일이란 원래 준비되지 않은 채로 시작하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에 수긍하게 됐지만, 이 지점이 저출생 문제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준비 없이 도전하던 예전 세대와 달리 요즘 세대는 예측을 통해 계획적으로 준비하는데 출산에 대해서는 예측하기도 어렵고, 예측할 만큼 알려주지도 않으니 말이다.
-
직설 도둑맞은 청년 올해도 다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을 볼 때마다 ‘청년은 이런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일터에서는 여전히 내가 막내인 경우도 많고 그래서인지 “너는 아직 젊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때로는 청년들의 의견을 내게 묻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젊다고 해서 내가 청년인 것은 아니다. 사회가 청년들에게 자리를 충분히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내가 막내인 것일 뿐이다. 내가 청년회계사회를 조직했을 때, 청년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어떤 분들은 나도 마음만은 청년인데 받아주느냐고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비아냥거림을 담아서 물어왔다. 그때는 내가 청년의 나이였기 때문에,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이 올바른가를 고민했었고 그래서 그런 질문들을 그냥 허허 웃어넘겼었다. 하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청년들의 발화 창구가 없어 만들어진 청년회계사회마저 어른들이 차지하려 했다니, 청년마저 도둑맞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청년을 도둑질하는 세태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
직설 플랫폼에도 리뷰를 허하라 얼마 전 배달앱으로 치킨을 시켰다. 배달원은 문 앞에 두고 갔다고 알람을 보냈지만 우리집 문 앞에는 치킨이 없었다. 앱의 사진도 우리집 문이 아니었다. 바쁘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에 배달되었다면 직접 가져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배달원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치킨집에 전화하니 자신들도 배달원의 연락처를 알 수 없단다. 실시간 채팅 고객센터는 AI가 계속 영혼 없는 죄송을 외칠 뿐,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쯤 되니 화가 나기 시작한다. 별점에라도 반영하려고 배달의 별점을 누르니, 이건 치킨집의 별점이다. 치킨집은 아무 죄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이건 배달원의 죄이고, 배달원에 대한 관리책임이 있는, 연락처를 독점하고 있는 회사의 죄다. 하지만 배달앱에 대해서는 내가 리뷰를 남길 수 없다. 무수히 많은 플랫폼들이 리뷰를 활성화하여 이익을 내지만, 정작 자신들에 대한 리뷰는 남길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갈 곳을 찾지 못한 불만은 결국 고객센터의 상담원들에게 향할 것이다.
-
직설 국가의 입증책임 매년 19세가 되는 남성은 병역판정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병역판정검사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참 이상하다.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따르면 신장, 체중과 같은 기본검사는 전원에게 이루어지지만, 정밀검사는 ‘질환을 호소하는’ 사람에게만 이루어진다. 질환을 호소하기 위해서는 적절히 진단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내가 신체검사를 받을 때도 나처럼 빈손으로 온 사람은 대체로 현역 판정을 받았고, 자신의 질환을 주장하기 위해 서류를 한 뭉치 들고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사회 지도층의 병역 면제율이 더 높은 것은 질환을 스스로 입증하도록 설계된 제도 때문일 것이다.
-
직설 ‘대리사회’ 유감 지난주에 나는 사회복지법인의 이사회에 참석했다.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와중에 이사이신 스님은 연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예산안만 가지고 한참의 시간을 끌었던 이사회는 예정된 안건의 절반도 처리하지 못하고 다음 날짜를 잡았다. 기초적인 예산에 대한 이해가 없는 자는 이사의 적격성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스님이 진짜 내용을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간을 지연해야 하는 누군가의 뜻이 있었고 그에 충실했을 것이다. 이사는 ‘법인’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지만, 현실에서는 법인이 아닌 누군가의 이익에 충실한 것이 진짜 문제다.
-
직설 나눔의집을 왜곡하는 이들에게 고함 유력 대선 주자들의 신경전에 애꿎은 나눔의집이 피해를 보고 있다. 정치란 몰라도 아는 척하는 것이 일상이겠지만, 사안을 가까이서 보는 입장에서 무지한 이들의 말이 사실처럼 알려지는 것이 썩 달갑지 않다. 나눔의집 임시이사를 맡아 1년간 이 사안을 곁에서 보고 있는 입장에서 짧게라도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시작은 모두 선의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눔의집을 일구어온 종교계의 노력을, 입적하신 스님의 공헌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종교계의 공헌이 과오의 씨앗이 된 것도 사실이다. 나는 10여년 전에도, 선의로 봉사하던 목사님이 후원금 문제로 구속되는 수모를 겪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서 본 그분은 인품이 뛰어난 분이었다. 다만 영세했던 단체는 법률과 규정에 무지했고, 대표의 오류에 대해 지적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눔의집도 비슷한 상황이다. 100억원 이상의 후원금이 모였음에도 관리가 소홀했고 이로 인해 할머니들의 삶에 영향이 있었지만 문제가 지적되고 개선되기보다는, 회피하고만 있었다.
-
직설 원칙이 있는 패배를 보고 싶다 돌이켜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매우 계획적이었다. 물론 계획적이라는 것이 계획을 지켰다는 뜻은 아니고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했다는 뜻이다. 수능, 회계사 시험과 같이 D데이가 정해지면 거꾸로 역산을 해서 계획을 세우고 공부를 했다. 당연히 계획대로 되진 않았고, 실패에 대해서는 계획을 지키지 못한 노력 부족을 탓해왔다. 하지만 계획대로 사는 인생도 딱 거기까지였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다음부터는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이제는 계획을 세우지도 않는다. 노력을 해도 넘을 수 없는 선들이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다니던 회사에서 높은 분들의 자제들이 인턴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회사의 영업에 도움이 되는 일에 불공정함을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공정함을 찾는다고 해도 그들의 좋은 스펙은 채용을 합리화했을 것이다. 사회는 공정한 곳이 아니라 이윤에 따라 냉혹하게 움직이는 곳이었고, 때로는 이윤도 무엇도 아닌 알 수 없는 기준이 적용되기도 하는 곳이었다.
-
직설 우리는 누구에게 분노하는가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 임용 공고를 찾아보고 있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신규 채용 자체가 많이 줄기도 했지만, 전공에 맞는 분야가 있는데도 지원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채용 분야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국립대 교원은 특정성별이 4분의 3을 초과하지 않도록 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특정성별의 쏠림을 막고자 하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전체’를 기준으로 한 할당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물론 빠른 해결을 위해서는 전체를 기준으로 할당하는 것이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이 세대 간의 공정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일정비율을 맞추기 위해 여성만 뽑으면 현세대의 여성은 수월하게 진출할 수 있지만, 다음세대의 여성들은 불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현재 10명이 모두 남성인 상황에서 3명의 퇴직에 따라 신규 인력을 전부 여성으로만 뽑으면 7 대 3의 성비가 된다. 이 경우 3명을 연달아 여성으로 채용했으니 그 직후에는 다시 남성을 뽑을 가능성이 높다. 여성의 임용 비율을 점차 높인다고 해도, 할당제 도입 초기에 뽑은 3명의 정년까지는 여성의 비율이 높다. 그러면 이들이 퇴직할 때는 다시 성비를 맞추기 위해 남성만 뽑게 될 것이다.
-
직설 삼성, 상속세, 어그로 ‘어그로 끌다’라는 말이 있다. 온라인상에서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를 지칭하는 말이다. 최근 공론의 장에서 가장 어그로를 끄는 것은 삼성과 상속세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이건희 회장의 상속인들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와 기부의 규모 등을 생각할 때 이 회장에 대한 미담 기사는 나올 수 있다. 그 역시 한 회사의 경영자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이웃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모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사후에 그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미담을 상속세에 대한 비난으로 바꾸는 언론과 경제단체다. 망자의 뜻은 누구도 알 수 없는데 언론과 재계는 마치 이 회장이 상속세를 줄이고 싶어 기부를 한 것처럼, 현재의 상속세법에 불만이 있는 것처럼 기부와 상속세 납부에 맞추어 상속세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왜 하필 미담이 될 내용에 재를 뿌리는지 모르겠다. 정치나 경제나 문제는 망자의 뜻을 왜곡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사람들이다.
-
직설 20대에 대한 비난의 기시감 내가 20대일 때 ‘20대 개××론’이라는 게 있었다. 보수정권에 저항하지 않는 20대를 비판하는 내용과 함께 20대의 저조한 투표율에 대한 비판이 컸다. 20대를 향한 김용민씨의 기고문 제목은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였다. 다시 찾아 읽어본 기고문의 마지막은 ‘너희는 안 된다.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다’로 끝난다. 담론의 제목부터 비속어가 들어갔으니 20대에 대한 원망을 알 만하다. 그때의 20대는 이제 30~40대가 되었을 것이다. 투표율도 올랐고 촛불을 들고 광장에도 나갔고 정권도 바뀌었으니 그때의 20대가 그렇게 구제불능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보궐선거에서 다시 20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지금의 20대는, 10년 전에 그들이 희망을 걸던 촛불 소년, 소녀였다. 그 10대들이 20대가 되어 변해 버렸다. 이쯤 되면 질문이 틀려서 답이 틀린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어떻게 20대가 저들을 찍는지 한탄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했길래 20대가 저들을 찍는지 반성해야 한다.
-
직설 직업의 무게 학교폭력이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학폭에 연루된 이들은 선수활동이나 연예활동을 중단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과거의 실수로 직업활동을 막는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학폭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없었기에 뒤늦게 대중에 의한 처벌이 이뤄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진작에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졌다면 피해자들이 고통받을 이유도 없고 뒤늦게 대중의 힘을 빌릴 이유도 없기 때문에 제도적인 정비가 미비한 현실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처벌을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수준이 합리적 처벌인지 정하기가 참 어렵다. 사회의 시각 역시 사안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
직설 다직업자 규제를 신설하라 상법은 사외이사가 상장회사 2곳을 초과하여 겸직하는 것을 못하게 한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여러 사외이사를 겸직하며 기업 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보면 이 규정은 불필요한 규제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능력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자신의 본업과 함께 여러 회사의 사외이사를 맡는다면, 시간의 한계로 인해 사외이사 업무에 소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한 점은 사외이사는 겸직을 제한하지만 사내이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법으로 제한할 수는 없고 과도한 겸직이 있는 경우 시장의 기능이 작동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회장’이라는 이름의 초인이 있어 시장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이들은 여러 회사의 이사를 겸직하며 업무도 완벽히 해낸다고 주장한다, 롯데그룹의 회장님은 2019년 상장회사 4곳에서 ‘상근’을 하시고 1곳에서 비상근으로 재직하셨다. 5곳의 회사에서만 100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