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 안 낳는 것은 아니다

이총희 회계사

곧 아버지가 된다. 처음 그 소식을 듣고 내가 부모 될 자격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선뜻 답하기 어려워 한동안 멘붕이었다. 경쟁사회를 이겨내느라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도 없었을 뿐 아니라, 입버릇처럼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보겠다고 말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고려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일이란 원래 준비되지 않은 채로 시작하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에 수긍하게 됐지만, 이 지점이 저출생 문제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준비 없이 도전하던 예전 세대와 달리 요즘 세대는 예측을 통해 계획적으로 준비하는데 출산에 대해서는 예측하기도 어렵고, 예측할 만큼 알려주지도 않으니 말이다.

이총희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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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당위로 접근하는 기성세대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만 해도 어른들에게 그래도 일단 낳아보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예전에 비하면 할 만하지 않겠냐며 말이다. 하지만 요즘 군대가 군대냐는 이야기가 나와도 군대의 부적응 문제는 결코 줄지 않는 것처럼, 출산과 육아가 예전에 비해 편해진 것은 저출생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쪽이 좋아지는 것에 비해 세상은 더 많이 좋아졌고, 그만큼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질문이 구리니까 답도 구린 것이 저출생 문제의 현주소다. 우리는 여전히 저출생 문제를 국가적인 위기로 접근한다. 인구가 감소하고,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니 많이 낳아서 경쟁력을 키우자! 이렇게 출생조차 경쟁적인 사회에서 부양할 사람이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은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다. 국가의 경쟁력을 걱정하기 이전에 눈앞에 있는 나의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누가 낳으려 할까.

국회 예산정책처의 ‘저출산 대응 사업 분석·평가’에 따르면 2021년에 42조9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었고, 2006년 이후 15년간 쓰인 예산만 150조원이 넘는다. 일단 이 예산, 저 예산 다 끌어다 저출생 예산이라는 정부의 허풍부터 고쳐야 신뢰가 조금 더 올라가겠지만, 돈이 없어서 안 낳는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에겐 출산과 육아로 인한 기회비용이 그보다 더 크고, 경쟁에서 낙오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당위로 접근하거나 막연히 신성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다보니 저출생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이상적인 제도로 포장하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제도를 무시하는 현실은 제도를 불신하게 하고 예측 가능성을 떨어트려 젊은이들의 선택을 방해할 것이다.

어머니께서 임신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임신부가 버스에서 서 있는데도 누구 하나 양보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40년 가까이 된 이야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임신부인 아내와 다니며 느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공항에 있는 노약자 배려존은 노약자가 아닌 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자리뺏기 싸움과 같은 경쟁사회에서 그 누구도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누가 자리를 빼앗겨 가며 아이를 낳으려 할까. 포털의 댓글에서 누군가가 임신은 벼슬이 아니라고 쓴 것을 보았다.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인데 벼슬자리도 아닌 것을 강요하진 말자. 허풍과 과장으로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것이 어쩌면 저출생 문제의 해법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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