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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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저랑 동료 하실래요 새해에는 새 다짐과 새 목표를 세워야 한다던가. 운동하기, 독서하기, 친구 만들기.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다짐을 한 줄씩 써 내려가다, 어차피 매주 월요일이면 새로 쓰고 그주 목요일이면 없어질 다짐들이었던 걸 떠올리고 그만뒀다. 그래도 한 해를 시작하는 새로운 기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곰곰 생각하다 지난 연말 만난 친구, 친척, 부모님 친구의 질문을 상기한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한다고?” 활동가의 삶을 산 지 몇 해, 내 대답은 언제나 비슷했다. “그냥…글 쓰고 사람 만나고 뭐.” 얼버무렸다. 사실 답하기 좀 부끄러웠다. 활동가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것처럼 헌신적이지도, 세상 모든 것에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사안에 정치적 의견을 내며 세상의 진보를 바라는 타입도 아니다. “왜 결혼 안 해?” “왜 이렇게 삐딱해?” 같은 질문이 없는 안전한 일상을 꾸리고 싶었다. 그저 내 주변을 좋은 사람으로 채우고 싶었고, 그 ‘좋은 사람’의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에 활동가가 많았을 뿐이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질문의 갈림길에서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었다. 변화를 고민하는 동료를 만날 수 있는 곳. 더 좋은 세상을 고민했던 사람들을 선배, 동료로서 볼 수 있는 곳. 나의 신념과 가치를 선택의 기준으로 둘 수 있는 곳. 그곳이 공익 영역이었고, 그런 사람이 활동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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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세상엔 보통의 영웅이 많다 슈퍼히어로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린다. 좋은 이야기의 조건이야 천차만별이지만, 좋은 이야기와 상관없이 눈물을 참지 못하는 특정 장면이 있다. 누군가의 대의에 수많은 사람이 손을 잡고, 평범하고 작은 선의가 거대한 정의가 되는 순간에 전율한다. 몇 주 전 관람했던 영화 <태일이>에서도 내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평화시장으로 다시 돌아온 재단사 전태일이 삼동친목회의 회장이 되는 장면. 화면은 평화시장의 노동운동 선봉에 선 전태일과 함께, 그의 옆에 선 수많은 동료 재단사의 등을 비춘다. 동생 같던 ‘시다’(미싱보조원)들의 일상에서 부당함을 느끼고, 나와 내 주변이 더 나은 오늘을 보내기를 바랐던 전태일의 다정함은 분명 노동권 인식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다정함에서 노동운동이 시작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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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당신이 보는 청년은 누구죠 청년 활동가의 이름으로 살지만 모든 청년의 삶을 알지는 못한다. 내 이야기다. 나이는 30대 초반, 수도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스무 살 이후로는 서울에 살지만, 내 집은 가져본 적 없는 캥거루족이다. 4년제 대학을 나와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뭐 잘난 신상이라고 줄줄이 말하고 있나 싶지만, 겨우 몇 개의 객관적 지표가 말해주는 정형이 있다. 서울에 사는 것만으로 나는 평균 이상이다. 또래 청년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4년제 대학 졸업자, 정규직 노동자 위주의 삶을 떠올린다. 그러면서도 저소득 노동자, 여성, 세입자로 살아가는 내 약자의 경험을 교차시킨다. 끊임없이 여러 당사자 상을 떠올려야만 청년의 복잡한 세대 정체성을 되새길 수 있다. 30대 청년인 나조차도 청년의 삶을 쉽게 정의하지 못하는데, 정치가 정의하고 호명하는 ‘청년‘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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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잘 먹고, 잘 치웠습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 500원만 더 내면 환경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은 덜 수 있게 됐다. 물론 서울 강남 일대에서만 가능하다. 지난 12일부터 요기요가 시범 운영하는 ‘다회용기 배달’ 카테고리를 선택해서 주문하면 가능하다. 직접 해보니 먹고 치우기가 훨씬 깔끔했다. 수거도 편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먹은 뒤 산처럼 쌓이는 일회용기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배달산업은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급격히 몸을 불려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온라인, 그중에서도 특히 모바일 음식 거래액은 15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1, 2분기 모바일 음식 거래액은 11조5000억원에 달한다. 작년 전체 거래액이 16조5000억원인 것을 생각하면 2분기 누적 거래액까지만 해도 벌써 작년의 70%에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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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관리비, 그것이 궁금해 독립해 사는 월세 청년에게 고정 주거비란 월세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관리비까지 포함해야 한 달에 집을 위해 내는 비용의 크기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원룸, 오피스텔은 관리비를 정액제 납부 방식으로 받는다. 지출의 이름은 다르지만, 임차인에게는 어차피 한 달에 집을 위해 내야 하는 ‘범월세’다. 올 6월부터 월세 30만원 이상의 임대소득이 전·월세 신고 의무 대상이 되면서 관리비가 이슈가 됐다. 월세를 30만원 이하로 내리고, 차감되는 비용은 신고 대상이 아닌 관리비에서 올려 임대사업자의 수익을 보전하는 방식이 언론의 눈에 띈 것이다. 전·월세신고제로 인한 관리비 불리기의 임차인 피해 규모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원룸 관리비는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다. 적게는 0원, 많게는 25만원까지 천차만별인 관리비가 우리를 반기는데, 그 기준과 상세 내역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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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쉰다고 쉬어지나요 최근 ‘쉼’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일하는 단체는 근속 3년을 채운 상근자에게 한 달의 안식월을 부여한다. 어느덧 나도 근속 3년을 넘겼고, 드디어 안식월을 쓸 수 있게 됐다. 그 덕분에 지난 7월 한 달을 꽉 채워 쉬었다. 휴가 내내 생각했다. 과연 좋은 쉼이란 무엇인가? 10년 전 유행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이제는 “쉬어야 보인다” “휴식도 자기계발의 한 방식”이라는 말이 번아웃 시대의 처방처럼 들려온다. 어떻게 해야 잘 쉬는 것일까. 제주도 한 달 살기? 속세를 떠나 자연에서 아무런 요구도 일정도 없이 지내다 보면 나와 일에 대해 뭔가 깨닫게 되려나. 그러기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다. 역시 ‘멋들어지는’ 휴식은 쉽지 않다. 한편 궁금하기도 했다. 쉬면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정말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는 건지. 이 답을 찾기 위해 쉼을 주제로 한 드라마도 봤다. 여자 주인공은 퇴사 후 주체적인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공했지만, 나의 휴식은 그걸 보며 “와 재밌다”라는 감상을 남긴 시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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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광화문의 ‘기억’ 엄마는 광화문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서점이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엄마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보았다. 지식과 이야기가 가득하고 머리 위 거울로 타인의 가르마를 볼 수 있는 신기한 곳. 광화문에 대한 내 첫 기억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광화문에 대한 낯선 기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광화문 사거리를 지날 때면 왠지 어른의 세계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처음 광화문에 왔을 때와 똑같이 그곳엔 유명한 언론사들과 청사, 대사관이 서 있었다. 일부러 광화문을 들르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기도 했다. 언젠간 나도 저 세계 사람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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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함께’ 제로웨이스트 3년 전 처음 들은 ‘제로웨이스트’한 삶을 살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는 중이다. 사실 내가 하는 것이라곤 빨대나 비닐봉지 받지 않기, 물 끓여 먹기, 텀블러 사용하기 등 작고 사소한 것들뿐이다. 솔직히 말해 환경보다 나의 편리함을 선택할 때도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더 설득하기 어렵다. 나조차도 완벽하지 않은데, 내 옆 타인의 손에서 무신경하게 버려지는 쓰레기를 내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청년참여연대에서 진행하는 제로웨이스트 워크숍에 찾아온 청년들의 고민도 비슷하다. 자족적 실천으로 그치는 게 아쉬워 뭐라도 함께해보고 싶다는 참가자가 대부분이었다. 몇 명은 타 단체의 젊은 활동가였는데, 제로웨이스트 등 환경을 생각하는 활동을 본인의 단체 활동에 적용하고, 기후위기에 무신경한 동료(선배) 활동가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알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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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다시, 청년 정치 모임의 시작은 언제나 ‘일상나눔’이다. “요즘 뭐해요?” “주변은 어때요?”라며 서로의 일상을 묻는다. 회의나 모임 시작 전 가볍게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질문의 답을 들으며 ‘청년’에 대한 감을 잡기도 한다. 나에게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동료 활동가밖에 없다. 게다가 대부분 30대 안팎의 직장인이다. 일상나눔이 없었다면 청년들이 정말 코인에 빠져 있는지, 알바 자리가 얼마나 찾기 어려운지도 피부로 느낄 수 없었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이라는 구분은 너무 넓다. 법적으로는 19~34세를 가리키지만, 이 안에는 대학생·비대학생·취준생도, 계약직·정규직도, 비혼자·기혼자도, 임대인·임차인도, 남성·여성·성소수자도 포함된다.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개인의 집합일 뿐, 청년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그저 나이대가 비슷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묶어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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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공정’이란 단어에 감춰진 무한경쟁 “직장인 친구들과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유튜브’다. 퇴사와 유튜브 데뷔가 직장인의 2대 허언이라는 사진이 웃긴 자료로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어떤 친구들을 만나건 유튜브 하면 삶이 좀 재밌어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다 헤어진다.” 1년 반 전 이 지면에 썼던 문장이다. 단어를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주식’이다. 주식, 코인 투자에 성공해 큰돈을 벌어들인 사람들이나, 투자 행위를 주 소득원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노동시장에서 정의에 대한 기대를 잃어버린 듯한 태도다. 노동시장 진입에 기회의 불평등이 만연하고, 노동시장 진입 후에도 자신의 가치를 노동에서 찾을 수 없자 투자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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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내가 원하는 세상 10대의 나에게 서울은 소속되고 싶은 ‘더 넓은 세상’이었다. 20세가 되던 해 첫 서울살이를 해봤다. 옥탑방이었다. 방 한가운데 누우면 벽 너머의 빗소리와 바람 소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래층에서 옥상으로 연결된 간이 계단은 겨울이면 얼기 일쑤였고, 헛다리라도 짚을까 봐 계단을 오를 땐 언제나 눈을 부릅떠야 했다. 낮은 수압 때문에 가끔 집이 아닌 지하철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곳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그곳은 법적으로는 내 집도 아니었고, 내 돈으로 빌린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 혼자 사는 첫 보금자리였다. 주민등록증 뒤편에 찍힌 새 주소, ‘서울특별시’라는 도장이 나를 넓고 낯선 서울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나에게 배당된 첫 선거 공보물도 그 방에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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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눈감고 침묵하는 정치, 죽음을 낳는다 대학에서 학생 기자로 일할 때의 일이다. 학교 본관 앞에선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이 40일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학교 측에 10번도 넘는 통화 시도를 한 건, 꼭 모든 이해 당사자의 입장이 드러나도록 기사를 쓰라고 알려준 다른 선배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뜸 “파업과 관련해서 해줄 말이 없다”는 말만으로 학내 갈등이 없는 척하려는 그 뻔뻔함이 싫었기 때문이다. 포털에 관련 사건을 검색하면 기사는 5개도 채 뜨지 않았다. 의도된 침묵이었다. 침묵도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채 열흘도 되지 않는 기간 두 죽음이 있었다. 트랜스젠더로 사람들 앞에 나선 김기홍 활동가, 변희수 하사. 모두 스스로를 밝혀 더 많은 사람이 숨지 않도록 용기를 준 사람들이었다. 쉽지 않은 길의 가장 앞에 섰던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 죽음의 이유를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세계 인권의날, 장애인차별 철폐의날, 여성의날이 있듯 국제 트랜스젠더 추모의날이 있다. 얼마나 많은 트랜스젠더가 우리 곁에서 숨죽이고 살고 있는지, 그러다 조용히 생을 달리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앞서 성소수자 동료 시민을 응원했던 이들마저도 죽음의 경계를 넘는 이 ‘정상’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만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