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이 보고 싶다

조희원 참여연대 활동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발언이 있다. 대학 고학년 때 처음으로 본인상 부고를 받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학과 후배였다. ‘본인상’이라는 단어가 생소해 주변에 물었다. “이거, 그 말 맞지?” 한 질문에 여러 답이 따라왔다. 그 친구는 군에 복무 중이었다고 했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휴가를 나왔으나 결국 다시 군으로 돌아가지 않을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뒤 학과 밖의 누군가가 이에 대해 물었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문장은 “원래 성격이 좀 그랬대. 적응을 못했다나 봐”라는 말이었다.

조희원 참여연대 활동가

조희원 참여연대 활동가

바로 그 자리에서 내 발언을 지적해 준 친구에게 아직도 감사한다. 억압적인 군 조직 문화는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사건을 설명하는 말로 가장 먼저 피해자의 ‘내성적인 성격’을 들어선 안 됐다. 설사 그런 성격을 가졌더라도 적응이 쉽도록 포용적이어야 하는 곳이 맞다. 모두가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군이라면 말이다.

친구의 지적을 듣자마자 사과하고 발언을 정정했지만, 여전히 부끄러움은 남아 있다. 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만을 드러내는 방식은 사건의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특히나 구조적 문제가 존재할 때 일어난 사건은 그저 현상이다. 피해자는 우연히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일 뿐이다. 왜 그 사건이 발생했는가를 근본적으로 묻지 않고 피해자의 개인적 특성, 극적인 서사만 부각한다면 근본 원인은 고쳐지지 않는다. 사건은 이렇게 재발한다.

이번 SPC 제빵공장 노동자의 사망사건 보도에 눈살을 찌푸린 이유도 그래서다. 내가 처음 읽은 뉴스엔 ‘소녀가장’이라는 타이틀이 박혀 있었다. 안타까운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하느라 많이 힘들었겠다느니, 생활고 때문에 야간 근무를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냐며. 의아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이라면 모두 생활고에 시달리는 건가? 생활고에 시달린다면 위험한 야간 근무를 선택하는 게 괜찮은가? 애초에 야간 근무가 노동의 옵션에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 ‘소녀가장’과 ‘젊은’ ‘여성’ ‘공장’ ‘노동자’. 철저한 타자화의 세계에 사건이 갇힌 것 같았다.

극적인 이야기 뒤에는 늘 ‘다른 세상’을 그리려는 마음이 있다.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나와 관계가 없다.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는 마음보다는 그저 불쌍한 일, 안타까운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후속 보도가 잇따랐다. 소녀가장이라는 설명은 오보이며, 피해자는 언젠가 본인의 매장을 내고 싶은 23세 여성이라는 설명이었다. 주변인과의 메신저도 공개되었다. 그제야 다른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냥 내 옆의 사람일 뿐이었다는 공감과 연대의 마음이다.

왜 피해자는 더 힘들고 어려운 개인적 고난에 처해 있어야만 하는가. 평범한 개인은 늘 구조적 문제의 피해자다. 이를 밝히려면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왜 야간 근무가 강제됐는지, 2인 1조 규정은 어째서 지켜지지 않았는지. 반복되는 사건을 겪고도 제도는 왜 바뀌지 않았는지. 사건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보고 싶다. 피해자 개인의 극적 서사보다 사건을 둘러싼 집단의 경험이 듣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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