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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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내 편의 감각 지금 나는 여행 가는 비행기에서 이 글을 쓴다. ‘힘든 여행’을 좋아한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서, 다음 끼니가 무엇이 될지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안전망 없이 내던져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 아닌가. 그러나 결국 그 ‘힘들었던’ 여행에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 묻는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 편의 감각’이라 말할 테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낯선 나를 집으로 초대해 같이 월드컵 한국 경기를 보자는 베트남의 어느 할아버지, 행여 길이나 잘못 들진 않을까 험하고 외진 산길을 동행해 준 중국 호도협의 산골 아저씨, 길도 잃고 체력도 떨어져 길바닥에 주저앉기 직전 조금만 더 가면 버스정류장이라고 말해준 그리스의 한 시골 소녀까지. 낯선 땅의 외지인에게서 가족 같은 따뜻함을 발견하는 순간 세상에 나는 혼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낯선 거리를 겁먹지 않고 거닐 수 있는 이유다. 이 연대의 감각을 느끼고 싶어 낯선 곳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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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무엇이 빈곤을 만드는가 “같이 살면 굶어 죽진 않을 것 같았어.” 고작해야 24살, 단칸방에 살면서 변변한 기반 없는 아빠랑 왜 결혼했냐는 물음에 나온 엄마의 답이다. “사랑했으니까” 같은 낯부끄러운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멋없는 대답일지는 몰랐다. 사실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는 없다. 가장 작은 경제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인 ‘가족’을 남과 꾸리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더군다나 여성 가구주의 빈곤율이 남성 가구주의 빈곤율보다 월등히 높은 이 나라에서, 엄마의 경제적 선택으로서의 결혼 이유는 더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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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다른 시선이 보고 싶다 두고두고 후회하는 발언이 있다. 대학 고학년 때 처음으로 본인상 부고를 받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학과 후배였다. ‘본인상’이라는 단어가 생소해 주변에 물었다. “이거, 그 말 맞지?” 한 질문에 여러 답이 따라왔다. 그 친구는 군에 복무 중이었다고 했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휴가를 나왔으나 결국 다시 군으로 돌아가지 않을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뒤 학과 밖의 누군가가 이에 대해 물었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문장은 “원래 성격이 좀 그랬대. 적응을 못했다나 봐”라는 말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내 발언을 지적해 준 친구에게 아직도 감사한다. 억압적인 군 조직 문화는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사건을 설명하는 말로 가장 먼저 피해자의 ‘내성적인 성격’을 들어선 안 됐다. 설사 그런 성격을 가졌더라도 적응이 쉽도록 포용적이어야 하는 곳이 맞다. 모두가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군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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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진짜’ 디스토피아 디스토피아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빽빽이 들어찬 높은 건물 사이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시의 모습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내게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블레이드 러너>는 이미 망가져 버린 지구의 전경을 비춘다. 망가진 기후로 인해 해가 들지 않는 도시에는 언제나 산성비가 내린다. 빗물과 도시 오물이 뒤섞여 흐르는 질척한 땅바닥. 도시 하층민은 그런 질척한 땅 위에서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산성비를 맞으며 살아간다. 이 글을 써내려가는 지금, 창밖에도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맑다가도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신발과 바지가 젖은 채 들어온 게 여러 번, 통상의 날씨를 피해 비를 뿌리는 범인은 ‘기후위기’다. 1980년대의 상상력이 그린 망가진 기후 속 하층민이 질척한 땅바닥 위의 부랑자라면, 2022년에 마주하는 도시 빈가는 가장 높거나 낮은 곳에 있다. 차가 닿을 수도 없이 가파른 오르막 위나 햇빛도 잘 닿지 않는 반지하. 속수무책으로 바뀌는 기후에 더 연약할 수밖에 없는 곳들이다. 재난은 더 취약한 곳에 더 큰 상처를 남기기에,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불평등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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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회복탄력성과 불평등 힘든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친구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회복탄력성은 심리학 용어라는데, 정확한 학술적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감정적으로나 심리적 좌절감, 실패감을 느꼈을 때 그 좌절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고 금방 회복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회복탄력성이 좋을수록 일상으로 돌아가는 타이밍도 빨라진다. 좌절을 금방 떨쳐내는 것도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은 게 언제였을까. 실패하고도 다시 일어날 힘은 믿고 의지할 만한 기반에서 나온다는 걸 알았을 때였다. 사회에도 회복탄력성이 있다면 어떨까.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재난을 2년 넘게 앓고 있으며, 치솟는 물가와 금리 인상으로 일해도 빈곤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시시때때로 닥쳐오는 자연재해도 일상을 위협한다. 지난달 폭우로는 17명이 사망했고, 이재민은 2만5444가구에 이른다. 이 중 하나만 경험해도 벅찬데, 재난은 쉬이 우리를 피해 가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덮쳐오는 재난 앞에 사회의 회복탄력성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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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서민의 실존 위협, 국가는 알까 친구들에게 요즘 고민이 뭐냐 물어보면 대부분 주거와 관련한 답을 들었다. 늘 누군가는 이사를 준비하고, 독립을 예정하고 있거나, 이미 ‘방’을 얻은 상태라면 집주인과 자잘하게 싸우고 있다고 한다. 뜻밖의 대답도 있었다. “나는 기후위기가 고민이 돼.” 친구의 나이는 30대, 나와는 ‘제로웨이스트’보다 ‘투자’라는 단어를 더 많이 주고받은 사이다. 지금 당장의 경제적 고민이 아니라 환경문제라니. 조금 새삼스러웠다. 그에게 기후위기는 무엇이냐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머리에 떠오른 ‘새삼’이란 단어를 지워버렸다. 친구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갑자기 지구가 자연재해로 파괴된다거나, 어느 날 온난화로 인한 열사병으로 죽을 것 같아서 무섭다는 말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같은 크기의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저소득 취약계층에 더 큰 피해를 준다. 친구는 30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만큼의 소득이 없을 수도 있고, 나아가 모아둔 자산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에너지 불평등 구조에서, 얼마나 갖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다. 결국 우리 세대에게 기후위기는 경제적 불안과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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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공존의 조건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천국이 펼쳐졌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맺히고 짜증이 나는 요즘 날씨에 절대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한기였다. 입술이 파랗게 변할 정도로 물이 찼다. 한 5분쯤 발을 담그고 있었을까. 천국을 느끼는 것도 잠시, 지인들과 나는 다시 차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데려온 강아지 때문이었다. 동반한 반려견을 보고 황급히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온 산림청 직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반려견 출입이 금지된 곳이니, 나가 달라고. 아니, 강아지보다 사람이 자연에는 더 해가 될 텐데! 순간적으로 화가 났지만, 이미 정해진 자연휴양림의 정책에 반기를 들 정도는 아니었다.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사람의 불편함을 이해한다. 수많은 반려동물 관련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강아지를 키운 지 2년, 가족 같은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너무 없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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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진짜 보고 싶다, 일상의 정치 요즘 엄마의 최대 관심사는 같이 사는 강아지다. 그의 일과는 강아지에 맞춰져 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실내에서 용변을 보지 않는 강아지를 위해 짧게 산책하러 나가고, 산책 후에는 강아지를 위해 닭가슴살을 삶는다. 풀밭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강아지에게 조금이라도 더 ‘목줄로부터의 자유’를 주려고 인적이 드문 새벽 1시가 되어서야 그날의 ‘메인 산책’을 나간다. 내가 어렸을 때도 날 저렇게 애지중지 키웠나 싶을 정도의 과보호가 이어지고 있다. 어느 날 엄마가 상기된 얼굴로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당연히 강아지 사진일 줄 알았는데, 휴대폰 화면에는 뜬금없이 흙밭 사진이 떠 있었다. 듬성듬성 난 잡초와 커다란 쓰레기봉투 몇 개. 이게 뭐냐는 눈빛에, 엄마는 “내가 치웠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강아지가 좋아하는 기찻길 옆 화단 사진이었다. 흙길 밟기를 좋아하는 강아지는 늘 인도가 아닌 화단의 흙을 밟는데, 몇 달째 방치되어 강아지가 핥을까 무섭던 그곳의 담배꽁초, 플라스틱 술병, 술 컵 등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치웠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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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묻는다, 집이란 무엇인가 가끔 꿈에 집이 나온다. 옆에는 초등학교가 있고 뒤에는 논이 펼쳐진 층 낮은 아파트. 15년을 조금 안 되게 살았다. 떠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꿈만 꿨다 하면 그 집이다. 그 후로 3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녔다. 다니던 학교가 멀어서, 가족이 서울에 살아야 해서, 그리고 계약이 끝나서. 지금 가족과 함께 사는 집도 1년 뒤면 계약이 끝난다. 점점 밀려나는 기분이다. 1년 뒤면 또다른 주소지를 갖게 되겠지. 이사 기한이 가까워질수록 독립에 대한 욕구도 커진다. 사실 턱도 없다. 내가 가진 돈의 4배는 있어야 서울에 5평짜리 방 하나를 빌릴 수 있다. 온갖 부동산 애플리케이션, 인터넷 카페를 다 봐도 결과는 같다. 그래서 나에게 집이란 뜬구름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고개를 들면 다닥다닥 붙은 주택용 건물만 눈에 들어차는데, 내 것 하나 없다. 여력을 총동원해도 5평짜리 방 하나가 지금 내가 겨우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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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아빠들도 뿔났다 또 ‘자녀 입시 비리 의혹’이라는 단어가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 중이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지명부터 논란을 불렀다. 의료인이라는 경력 말고는 복지와 관련한 이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윤석열 당선인의 40년 지기라는 별칭이 먼저 떠올랐으니 전문성이 의심되는 것도 당연하다. 이 시점까지만 해도 “장관으로서는 좀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대세였다면, 자녀 관련 뉴스가 뜬 후론 “정말 낙마할지도”라는 반응이 더 많다. 지난 일요일 후보자 측에서 해명 기자회견까지 진행한 것을 보면 거센 반응이 있던 게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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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이 5년’도 우리 손에 달렸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침인데 아빠가 날 깨웠다. 쉬는 날엔 나보다 더 늦게 일어나는 아빠였는데, 그날은 이상했다. 초등학생인 나보다 더 아이 같은 얼굴로 함께 갈 데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졸린 눈으로 아빠 손에 붙들려 간 곳은 투표장이었다. 살던 아파트 옆에 붙어있던 경로당에 그날 처음 들어가봤다. 정숙한 분위기에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아빠의 발걸음은 가벼워보였다. 그날 밤, TV를 보던 아빠가 환호를 질렀다. 축구 경기를 보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게 대통령 선거에 대한 내 첫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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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제발 ‘공정’ 말고 영어단어 퀴어(queer)의 뜻을 그대로 번역하면 ‘이상한’ ‘기묘한’이라는 뜻이다. 성정체성, 성적 취향이 ‘다른’ 사람, 주로 동성애자를 경멸적으로 지칭했던 단어다. 지금 누군가를 ‘퀴어’라고 한다면 혐오발언이 될까. 그건 아니다.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퀴어’라 불렀고, 이는 성소수자 권리운동에서도 적극적으로 쓰이기 시작해 이제는 성소수자를 포괄적으로 어우르는 단어가 됐다. 성소수자가 자신의 권리를 소리 높여 말하는 ‘퀴어문화축제’라는 이름을 누가 붙였겠는가.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는 단어의 유래를 늘어놓는 것은, 혐오표현에 맞서는 대항표현만 생각해왔지, 그 반대의 상황에 처할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긍정의 가치, 정의와 진보의 가치가 담긴 단어를 되도록이면 언급하지 않으려는 이 상황이 우습다. 다시는 이 지면에, 혹은 나의 발화가 기록될 수 있는 곳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정치의 언어가 되어버린 ‘공정’에는 뜻이 없고, 그 어떤 대안도 마련되지 않은 채 청년 삶에 독이 되는 방향으로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