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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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흑백요리사’를 보며 뒤늦은 새해 모임을 빙자해 ‘쓰레기’ 활동가들이 만났다. 누군가 얼마 전 인기리에 종방된 <흑백요리사>라는 요리 대결 방송 이야기를 꺼냈는데, 우리에게는 역시 ‘쓰레기’만 보였다. “고기를 랩으로 싸더니 뜨거운 물에 퐁당 넣더라. 세상에나. 우리 때는 육수를 플라스틱 바가지로 푸기만 해도 난리 났었어. 플라스틱에 뜨거운 음식 닿으면 환경호르몬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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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인구 감소와 작은 도시 새해 벽두부터 미안하지만 우리는 망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0.78명이라는 세계 최저 합계출생률을 들은 한 외국인 교수는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했는데, 이후 출생률은 더 떨어져 2023년 0.72명을 찍었다. 2050년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약 절반인 105곳이 소멸 위험지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죽하면 한 시의원은 출생률을 높이자며 케겔 운동을 ‘조이고 댄스’라고 선보였는데, 이로써 나는 우리가 진짜 망했구나, 실감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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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폐비닐계의 ‘빌런’, PVC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책 제목처럼 내게도 금지된 소망이 있다. 바로 항공 여행이다. 이 지면에서 최소 5년은 비행기를 안 타겠다고 선언했었다. 다른 친환경 실천은 사심으로 좋아서 하는데 오직 이것만은 예외다.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부러워 가끔 배알이 꼬일 지경이니까. 그런데 희소식이 들려왔다.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유럽 공항에서 급유하는 모든 항공기에 지속 가능 항공유(SAF) 사용을 의무화했다. 2025년 최소 2%를 사용해야 하며, 2030년까지 6%, 2050년까지 70%로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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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새벽배송 논란 새벽배송을 제한하자는 제안에 새벽 댓바람부터 ‘쌈박질’하듯 논란이 거세다. 고백하자면 외국인이 자정에 배달 온 음식에 놀랄 때 하릴없이 ‘K자부심’이 차올랐다. 지난겨울 트랙터를 타고 탄핵 집회에 올라온 농부들이 남태령에서 막히자, 단숨에 은박 방한재를 공수해 영하의 밤을 버텼던 연대에 감동한다. 그러다 새벽배송 논란을 보고 깨달았다. 우리는 뭘 해도 24시간 밤샘을 하고, 무엇이든 빛의 속도로 배송받고, 그리하여 과로와 과잉이 아니면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K컬처’의 몸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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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더 많이, 다르게 욕망하라 우리 때는 여행 갈 때 백과사전처럼 두툼한 여행책을 샀다. 요즘 2030 나이대의 내 친구들은 낯선 도시로 떠나기 전 숙소 근처의 요가원이나 수영장, 러닝하기 좋은 곳을 찾는다. 우리 때는 술 마시고 해장국을 먹은 후 아침 첫 전철로 귀가했다면, 내 젊은 친구들은 저속노화 식단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비건 식당을 찾아다니고 ‘텍스트 힙’이라며 도서박람회에서 산 책을 에코백에 넣어 다닌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도저히 으스댈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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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절박하게, 절수 몇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다녀온 친구가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단수 중이라고 공항 화장실에서 물이 안 나오더라.” 당시 케이프타운 공항에서는 전 세계 오줌들이 쌓이는 글로벌 복합 융합이 일어났던 거다. “진짜?”라고 물으니 “우리랑 좀 달라. 변기가 깊어서 디테일은 잘 안 보여”라고 답하길래 인간의 자기 합리화의 효용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2019년 남아프리카 가뭄이 극심하던 때였다. 건물마다 날마다 측정한 물 사용량이 붙었고, 고속도로 전광판에는 물 공급이 끊기는 날을 뜻하는 ‘데이 제로’의 카운트다운이 반짝거렸고, 시 당국은 물 소비량 지도를 제작해 평균보다 많은 물을 쓰는 집을 알 수 있게 했다. 백미는 ‘더티 셔츠 챌린지’로, 누가 셔츠를 가장 오래 빨지 않고 버티는지 겨루는 직장 캠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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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민생도 지구도 살리는 소비쿠폰 15만원이 이렇게 큰돈인 줄 몰랐다. 보통 이맘때쯤 월급은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 빈 통장이 되는데, 이번달 통장에는 잔액이 남아 있었다. 매달 구독료를 납부해야 살아지던 인생에 갑자기 실비보험금이 들어온 기분이랄까.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외식을 하고 책을 사고 망원시장에서 장을 보았다. 해녀들이 물질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숨을 어디까지 참을지 아는 일이다. 수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동안 버틸 수 있는 기본 산소를 남겨놓아야 무사히 올라올 수 있다. 나는 민생회복 쿠폰이 사는 게 어려운 사람들이나 동네 작은 가게들에 기본 산소 같은 존재라고 느꼈다. 이번 민생 쿠폰은 선불카드 형식으로 지급해 4개월 이내에 사용하도록 했고 사용처를 제한했다. 해외여행이나 해외직구, 대형매장, 온라인몰 등에서 사용할 수 없고 거주지 근처 연 매출 30억원 이하 상점에서만 쓸 수 있다. 실제 민생회복 쿠폰으로 먹거리를 산다는 비율이 83%였고, 그중 복숭아나 한우를 구입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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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컵 보증금제를 해야 하는 이유 게임의 규칙과 기준을 바꾸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까지 장애인 몇분이나 목숨을 잃었던가. 정작 그 엘리베이터에는 장애인보다 어르신, 유아차나 카트를 끄는 분들이 더 많이 탄다. 게임의 규칙을 정의롭게 바꾸면 그 혜택이 골고루 가닿는다. 하지만 규칙을 바꾸는 일은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이해되고 칭찬은커녕 욕만 들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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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버섯 수의 입고 다시 흙으로 매년 새해가 되면 새 결심을 하는 마음으로 유언장을 업데이트한다. 가끔 사전 장례식에 틀 노래라든가, 장례를 맡길 사람이 수정되곤 하지만 수목장이 바뀐 적은 없다. 내 살들로 나무를 먹일 수 있다니 내 살이 이처럼 좋아 보인 적은 정녕 없었다. 몽골에서는 ‘하늘 장례’라고 죽은 사람의 몸을 독수리 먹이로 내주는 장례도 있었다. 반대로 머리카락 한 올조차 소중히 여기는 유교 문화권에서는 화장도 꺼린다. 하지만 본래 한국의 전통 장례는 출상 후 1~3년 동안 나무판자 위에 관을 올려놓고 이엉을 덮어두고서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 매장하는 복장제(復葬制)였다. 미생물이 살코기를 발라내도록 시간을 준 것이다. ‘뼈대 있는 집안’이나 ‘뼈도 못 추린다’는 유구한 표현은 뼈만 묻는 전통 장례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미세 플라스틱이 박혀 있는 몸일망정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행위는 전통 장례의 계승이자 궁극의 자원순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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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인공지능님께 환경 공약 묻자 원래는 코앞에 닥친 대선을 맞이해 대선 후보들의 환경 공약을 쓰려 했다. 그러나 내가 고쟁이 속바지에서 쌈짓돈 꺼내는 모양새로 정보를 취합하려는 순간 생성형 인공지능은 휴대폰 간편결제 속도로 이미 환경 공약을 비교하고 순위까지 매겨놓았다. 인공지능님 가라사대, 가장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한 후보는 5번 권영국 후보다. 권 후보는 t당 11만원의 탄소세 도입처럼 탈원전·탈석탄·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명확하다. 1번 이재명 후보는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인프라, 생태계 복원, 석탄발전소 폐지 등 중간 정도의 구체성과 목표를 제시했다. 반면 2번 김문수 후보는 원전 확대와 재난 대응 정책만 있을 뿐, 탈탄소·탄소중립 언급이 없다. 김 후보는 환경기후 공약이 전무한 4번 이준석 후보가 깔아준 덕분에 꼴등을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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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국내선 비행기와 수라갯벌 나는 헤어드라이어를 안 쓴다. 친환경 실천보다 드라이어로 머리 말리기가 더 귀찮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텀블러와 접이식 용기를 들고 다니고 8층까지 계단을 오른다. 텀블러는 보온·보랭에 탁월하고, 계단은 공짜 헬스장인 셈이고. 용기에 리필하면 탄소중립 포인트로 2000원을 환급받으니 좋다. 그리고 허벅지에 바늘 꽂는 심정으로 참아내는 환경 실천이 있으니, 바로 비행기 안 타기다. 이 지면에 ‘최소 3년은 비행기 안 타!’라고 두 번이나 선언했는데, 온 동네 소문내서 안 타보려는 안간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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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무해한 마라톤’ 대회 나는 달리기를 죽도록 싫어했다. 죽을 만치 힘들다가 궁극의 절정감에 이른다는 ‘러너스 하이’를 들었을 때는 ‘미치도록 힘들어서 착란 증상까지 생겼네’라고 여겼다. 하지만 계절감을 느끼며 전기와 도구 없이 온전히 내 몸으로 나아가는 달리기의 매력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나처럼 달리기 싫어하는 사람도 다시 보게 하는 러닝의 인기가 계속되면서 마라톤 대회도 늘고 있다. 대회 참가자는 보통 1만명 정도, 유명한 대회는 3만명이 넘는다. 1명이 물 한 잔만 마셔도 일회용 컵 1만~3만개가 버려지는 꼴이다. 1명이 한 컵만 쓰는 것도 아니다. 하프 코스만 해도 급수대가 7개 정도 설치된다. 국내 마라톤 대회당 버려지는 컵이 최소 20만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