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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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버섯 수의 입고 다시 흙으로 매년 새해가 되면 새 결심을 하는 마음으로 유언장을 업데이트한다. 가끔 사전 장례식에 틀 노래라든가, 장례를 맡길 사람이 수정되곤 하지만 수목장이 바뀐 적은 없다. 내 살들로 나무를 먹일 수 있다니 내 살이 이처럼 좋아 보인 적은 정녕 없었다. 몽골에서는 ‘하늘 장례’라고 죽은 사람의 몸을 독수리 먹이로 내주는 장례도 있었다. 반대로 머리카락 한 올조차 소중히 여기는 유교 문화권에서는 화장도 꺼린다. 하지만 본래 한국의 전통 장례는 출상 후 1~3년 동안 나무판자 위에 관을 올려놓고 이엉을 덮어두고서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 매장하는 복장제(復葬制)였다. 미생물이 살코기를 발라내도록 시간을 준 것이다. ‘뼈대 있는 집안’이나 ‘뼈도 못 추린다’는 유구한 표현은 뼈만 묻는 전통 장례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미세 플라스틱이 박혀 있는 몸일망정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행위는 전통 장례의 계승이자 궁극의 자원순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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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인공지능님께 환경 공약 묻자 원래는 코앞에 닥친 대선을 맞이해 대선 후보들의 환경 공약을 쓰려 했다. 그러나 내가 고쟁이 속바지에서 쌈짓돈 꺼내는 모양새로 정보를 취합하려는 순간 생성형 인공지능은 휴대폰 간편결제 속도로 이미 환경 공약을 비교하고 순위까지 매겨놓았다. 인공지능님 가라사대, 가장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한 후보는 5번 권영국 후보다. 권 후보는 t당 11만원의 탄소세 도입처럼 탈원전·탈석탄·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명확하다. 1번 이재명 후보는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인프라, 생태계 복원, 석탄발전소 폐지 등 중간 정도의 구체성과 목표를 제시했다. 반면 2번 김문수 후보는 원전 확대와 재난 대응 정책만 있을 뿐, 탈탄소·탄소중립 언급이 없다. 김 후보는 환경기후 공약이 전무한 4번 이준석 후보가 깔아준 덕분에 꼴등을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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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국내선 비행기와 수라갯벌 나는 헤어드라이어를 안 쓴다. 친환경 실천보다 드라이어로 머리 말리기가 더 귀찮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텀블러와 접이식 용기를 들고 다니고 8층까지 계단을 오른다. 텀블러는 보온·보랭에 탁월하고, 계단은 공짜 헬스장인 셈이고. 용기에 리필하면 탄소중립 포인트로 2000원을 환급받으니 좋다. 그리고 허벅지에 바늘 꽂는 심정으로 참아내는 환경 실천이 있으니, 바로 비행기 안 타기다. 이 지면에 ‘최소 3년은 비행기 안 타!’라고 두 번이나 선언했는데, 온 동네 소문내서 안 타보려는 안간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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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무해한 마라톤’ 대회 나는 달리기를 죽도록 싫어했다. 죽을 만치 힘들다가 궁극의 절정감에 이른다는 ‘러너스 하이’를 들었을 때는 ‘미치도록 힘들어서 착란 증상까지 생겼네’라고 여겼다. 하지만 계절감을 느끼며 전기와 도구 없이 온전히 내 몸으로 나아가는 달리기의 매력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나처럼 달리기 싫어하는 사람도 다시 보게 하는 러닝의 인기가 계속되면서 마라톤 대회도 늘고 있다. 대회 참가자는 보통 1만명 정도, 유명한 대회는 3만명이 넘는다. 1명이 물 한 잔만 마셔도 일회용 컵 1만~3만개가 버려지는 꼴이다. 1명이 한 컵만 쓰는 것도 아니다. 하프 코스만 해도 급수대가 7개 정도 설치된다. 국내 마라톤 대회당 버려지는 컵이 최소 20만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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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긴쓰기와 소각장 ‘긴쓰기’를 들어보거나 해본 적 있는 분? 긴쓰기는 깨지거나 이가 나간 도자기를 옻으로 이어 붙이고 그 이음매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일본의 전통 그릇 수리 기법이다. 본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을 넘어 깨지고 다친 상처의 흔적에 금가루를 뿌려 눈부시게 장식한다. 요즘은 깨진 그릇을 스스로 수리해보는 긴쓰기 워크숍도 종종 열린다. 보통 워크숍 참가비가 새 도자기 구입비보다 비싸지만, 깨진 그릇을 고쳐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망원동 ‘리페어 카페’도 매달 긴쓰기 워크숍을 여는데 금세 마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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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차 없는 사람을 위한 도시정책 길고 긴 설날 연휴에 고향에 다녀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가족들 사이에 정치 이야기가 튀어나왔고, 직업이 직업인지라 평범한 ‘운전’ 이야기도 정치만큼이나 껄끄러운 주제가 돼버렸다. 보자 보자 하니 아주 ‘뚜벅이’를 보자기로 보길래 정색하고야 말았다. 나는 자동차 있는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교적 대중교통이 잘 갖춰진 서울에 살아 자가용 없이 잘 산다. 그런데 정작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불편해한다. 이번 설에도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한다며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나는 25명이 탄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갔는데, 가성비 높은 민족 대이동이었다. 각자 이동했다면 자가용 25대의 에너지와 공간을 썼을 것이다. 365일 뚜벅이로 교통체증도, 공해도 일으키지 않은 내게 세상은 칭찬은커녕 지하철과 버스 요금 인상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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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입틀막 된 K-에코디자인 실제 겪어봐야 아는 진실이 있다. ‘보수’가 딴 건 몰라도 경제랑 안보만큼은 잘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이윤과 효율이 우선인 경제는 아무래도 ‘보수’가 더 잘할 것이라고 믿어왔다. 이번 계엄령 사태에 장점이 있다면 이런 근거 없는 생각을 사정없이 내리쳤다는 점이다. 보수적 경제지인 ‘포브스’는 계엄의 대가는 한국인 5100만명이 장기적으로 갚아야 할 할부금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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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쓰레기 줄이는 집회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비상계엄령 뉴스를 접하는 와중에 충격적인 일이 터졌다. 얼마나 황당한 가짜뉴스가, 얼마나 삽시간에 퍼지는지 <체험 삶의 현장>처럼 겪는 중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날 우리 상점은 일찍 문을 닫고 국회로 출동했다. 재사용 용기에 리필하는 리필숍뿐 아니라 민주주의에도 용기가 필요하니까. 한 명이라도 더 모여 민주주의를 위한 용기를 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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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11월23일 부산에 가자! 쓰레기 없는 생활을 뜻하는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의외로 많은 분들이 미니멀라이프를 말한다.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한 후 최소한의 물건으로 심플하게 사는 미니멀라이프에 빠지다 보니 기승전 ‘제로웨이스트’가 됐다는 간증이다. 이렇게 많은 물건을 사재낀 후 있는 줄도 몰랐던 내가 정녕 쓰레기로구나 ‘현타’가 왔다나. 반대로 물건을 쓰레기처럼 쌓아두는 저장강박증도 있다. 물건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넘어 집 자체가 쓰레기 매립장이 되기 때문에 심한 악취는 물론 호흡기 감염, 피부질환 등을 일으킨다. 지금 지구가 바로 플라스틱 저장강박증에 갇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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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내 모든 것들의 탄소발자국 비닐봉지를 한 장 덜 쓰거나 텀블러를 사용한다고 환경적인 효과가 있을까. 기후가 이상한데 뭐라도 해야지, 시도한 순간 주변의 회의주의자들이 이렇게 묻는다. 비슷하게 “재사용한다고 쓰는 물이랑 세제 따지면 그게 오히려 환경에 더 나쁘대”라는 실용주의 버전이 있다. 몸무게를 빼려면 현재 내 몸무게는 물론 섭취 음식이나 운동별 열량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배출량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숫자는 힘이 세다. 1㎏ 차이가 엄연히 다르다. 고로 몸무게 다이어트에 체중계가 필요하듯 탄소 다이어트엔 저울이 필요하다. 나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비닐봉지 무게도 잴 수 있는 미세 저울을 하나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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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일본의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 한국이 싫어서 ‘탈조선’ 하고 싶은 이유는 줄줄 읊을 수 있지만 반대로 좋은 점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음식을 가위로 썰어 먹는 편리함이나 밖에서 휴대폰을 테이블에 두고 화장실에 가는 안전한 치안 외에 뭐가 있을까. 그중 하나가 한국의 분리배출 제도다. 쓰레기를 돈 주고 배출하는 제도를 이토록 빨리 성공시킬 수 있는 국가는 전 세계 두 곳뿐이다. 전 국토의 요새화가 가능한 북한 그리고 남한이다. 영국 작가가 전 세계 폐기물 처리장을 발로 뛰어 기록한 <웨이스트랜드>라는 책엔 음식물 쓰레기의 지상 낙원이 한국이라고 나온다. 이 대목에서 나는 책을 집어 던져버렸다. 내가 바로 쓰레기 덕후의 성지에 살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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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올해는 ‘907’ 기후정의행진 덥다. 참 덥다. 에어컨을 켤까 말까 번뇌할 때마다 두통이 심하면 발가락을 세게 찍어버리라는 식으로 서사하라 사막 근처의 마라케시를 떠올린다. 그곳의 40도 온도에서는 숨만 쉬어도 폐가 화상을 입듯 고통스러웠다. 너무 더워서 체내 열을 땀으로도 빼내지 못하면 6시간 내에 사람이 죽을 수 있는데 이를 습구온도라고 한다. 아마 그때 나는 감으로 습구온도를 느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