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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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스포츠계 다회용기 사용을 역사상 최대 규모라는 월드컵 시즌이다. 나는 승패보다 재사용 가능한 물병 소지를 금지했다는 소식에 귀가 쫑긋했다. 거센 반발에 국제축구연맹(FIFA)은 모든 물병의 반입 금지 대신 1개의 일회용 생수병 소지를 허용하기로 했다. 지금 멕시코 경기장에서는 원래 900원인 600㎖ 생수 한 병을 7000원에 판다. 공식 스폰서인 코카콜라사의 ‘봉이 김선달’식 생수가 FIFA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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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재활용 전에 ‘재사용’을 재활용 목재를 구입해 집을 수리한 적이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손가락 몇번 까딱하면 새 목재를 살 수 있었지만 굳이 헌 목재를 사겠다며 없던 트럭까지 구해 찾아갔다. 당시 서울 상암동 ‘문화비축기지’ 공원에는 ‘문화로놀이짱’이라는 곳이 있었다. 대형폐기물에서 쓸 만한 가구를 골라 리폼하거나 수리해 판매하던 곳이다. 마침 버려진 합판과 가벽에서 못을 빼내고 다듬어 자재로 쓸 만한 목재가 있다고 했다. 새 목재보다 싸지도 않고 상태도 제각각이었지만, 괜찮다면 오라고 했다. 그곳에서 폐목재를 구입해 가벽도 세우고 신발장도 짰다. 아쉽게도 지금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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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세상을 수리하자 내 룸메이트는 아이폰을 쓰고 나는 삼성폰을 쓴다. 두 휴대전화는 같은 영장류에 속하지만 침팬지와 보노보가 다르듯 충전기가 달랐다. 고로 우리는 집에서도, 같이 여행을 가서도 각각의 충전기를 챙겨야 했다. 그런데 최근 룸메이트가 7년간 쓰던 구형 아이폰을 최신 아이폰으로 교체하면서 거실에 충전기를 하나만 두고 같이 쓰게 됐다. 아이폰이 아이폰만의 고유한 충전 단자를 포기하고 다른 기계와 호환되도록 디자인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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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생산 감축체제 전환 정규직 월급쟁이 일을 그만둔 후 여러 가지 일을 하는 ‘n잡러’로 살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가게도 하고 리페어 카페도 하고 환경단체에서도 일하고, 가끔은 글도 쓴다. n개의 일이 모두 같은 맥락에 있는데, 바로 화석연료의 역량이 낳은 낭비와 유해성에 반대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이다. 하지만 화석연료가 세상을 떠받치는 방식의 존재감을, 이렇게 실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 에너지 위기는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가스 공급 충격을 합친 수준이라고 한다. 자동차 5부제 시행이나 에너지 절약 정도는 약과다. 주식 창을 들여다보는 금융권부터, 드럼통으로 받던 원료를 말통으로 받아야 하는 공장까지 흔들리고 있다.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는 물론 파이프, 전선, 페인트, 접착제까지 죄다 위태롭다.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풍경은 쓰레기 봉투 사재기다. 물자가 없어도 쓰레기는 반드시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는, 한국인의 의지가 느껴진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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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주식을 사보았다 “문과 100%로서 박봉은 삶의 조건이라 생각했어요. 그렇기에 나는 무조건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소셜미디어 엑스에서 본 말이다. 나 역시 문과에 비영리 종사자로서 좋아하는 거나 실컷 하자며 살았다. 운명적으로다가 내 사주에는 ‘금’이 없는데, 그 말인즉슨 입에 풀칠하기 힘든 팔자라는 뜻이다. 그런 내가 얼마 전 생애 처음으로 주식 계좌를 열었다.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넘기 직전이었다. 주식시장 정상화를 위한 상법 개정과 굳건한 정책 기조가 감지되자 나만 ‘벼락거지’가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해졌다. 또 주식과 연금 투자로 불평등한 세상에서 경제적 독립을 추구하는 2030 여성 커뮤니티 ‘블루레이디’의 말에도 귀가 팔랑였다. 그들은 <자기만의 방>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 투표권과 돈 중에서 고백하건대 돈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던 말을 실제 삶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그 나이대의 나는 주식 동아리에 든 친구들을 멀리하며 돈을 불평등과 환경 파괴의 근원으로만 여겼다. 이제는 <진보를 위한 주식 투자> 같은 책도 읽지만, 타고난 팔자인지 도통 흥미가 안 생겨, 내 주식은 적금처럼 쌓여만 간다. 남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주가를 들여다본다는데 나는 만보기만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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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흑백요리사’를 보며 뒤늦은 새해 모임을 빙자해 ‘쓰레기’ 활동가들이 만났다. 누군가 얼마 전 인기리에 종방된 <흑백요리사>라는 요리 대결 방송 이야기를 꺼냈는데, 우리에게는 역시 ‘쓰레기’만 보였다. “고기를 랩으로 싸더니 뜨거운 물에 퐁당 넣더라. 세상에나. 우리 때는 육수를 플라스틱 바가지로 푸기만 해도 난리 났었어. 플라스틱에 뜨거운 음식 닿으면 환경호르몬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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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인구 감소와 작은 도시 새해 벽두부터 미안하지만 우리는 망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0.78명이라는 세계 최저 합계출생률을 들은 한 외국인 교수는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했는데, 이후 출생률은 더 떨어져 2023년 0.72명을 찍었다. 2050년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약 절반인 105곳이 소멸 위험지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죽하면 한 시의원은 출생률을 높이자며 케겔 운동을 ‘조이고 댄스’라고 선보였는데, 이로써 나는 우리가 진짜 망했구나, 실감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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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폐비닐계의 ‘빌런’, PVC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책 제목처럼 내게도 금지된 소망이 있다. 바로 항공 여행이다. 이 지면에서 최소 5년은 비행기를 안 타겠다고 선언했었다. 다른 친환경 실천은 사심으로 좋아서 하는데 오직 이것만은 예외다.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부러워 가끔 배알이 꼬일 지경이니까. 그런데 희소식이 들려왔다.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유럽 공항에서 급유하는 모든 항공기에 지속 가능 항공유(SAF) 사용을 의무화했다. 2025년 최소 2%를 사용해야 하며, 2030년까지 6%, 2050년까지 70%로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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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새벽배송 논란 새벽배송을 제한하자는 제안에 새벽 댓바람부터 ‘쌈박질’하듯 논란이 거세다. 고백하자면 외국인이 자정에 배달 온 음식에 놀랄 때 하릴없이 ‘K자부심’이 차올랐다. 지난겨울 트랙터를 타고 탄핵 집회에 올라온 농부들이 남태령에서 막히자, 단숨에 은박 방한재를 공수해 영하의 밤을 버텼던 연대에 감동한다. 그러다 새벽배송 논란을 보고 깨달았다. 우리는 뭘 해도 24시간 밤샘을 하고, 무엇이든 빛의 속도로 배송받고, 그리하여 과로와 과잉이 아니면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K컬처’의 몸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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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더 많이, 다르게 욕망하라 우리 때는 여행 갈 때 백과사전처럼 두툼한 여행책을 샀다. 요즘 2030 나이대의 내 친구들은 낯선 도시로 떠나기 전 숙소 근처의 요가원이나 수영장, 러닝하기 좋은 곳을 찾는다. 우리 때는 술 마시고 해장국을 먹은 후 아침 첫 전철로 귀가했다면, 내 젊은 친구들은 저속노화 식단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비건 식당을 찾아다니고 ‘텍스트 힙’이라며 도서박람회에서 산 책을 에코백에 넣어 다닌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도저히 으스댈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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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절박하게, 절수 몇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다녀온 친구가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단수 중이라고 공항 화장실에서 물이 안 나오더라.” 당시 케이프타운 공항에서는 전 세계 오줌들이 쌓이는 글로벌 복합 융합이 일어났던 거다. “진짜?”라고 물으니 “우리랑 좀 달라. 변기가 깊어서 디테일은 잘 안 보여”라고 답하길래 인간의 자기 합리화의 효용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2019년 남아프리카 가뭄이 극심하던 때였다. 건물마다 날마다 측정한 물 사용량이 붙었고, 고속도로 전광판에는 물 공급이 끊기는 날을 뜻하는 ‘데이 제로’의 카운트다운이 반짝거렸고, 시 당국은 물 소비량 지도를 제작해 평균보다 많은 물을 쓰는 집을 알 수 있게 했다. 백미는 ‘더티 셔츠 챌린지’로, 누가 셔츠를 가장 오래 빨지 않고 버티는지 겨루는 직장 캠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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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민생도 지구도 살리는 소비쿠폰 15만원이 이렇게 큰돈인 줄 몰랐다. 보통 이맘때쯤 월급은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 빈 통장이 되는데, 이번달 통장에는 잔액이 남아 있었다. 매달 구독료를 납부해야 살아지던 인생에 갑자기 실비보험금이 들어온 기분이랄까.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외식을 하고 책을 사고 망원시장에서 장을 보았다. 해녀들이 물질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숨을 어디까지 참을지 아는 일이다. 수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동안 버틸 수 있는 기본 산소를 남겨놓아야 무사히 올라올 수 있다. 나는 민생회복 쿠폰이 사는 게 어려운 사람들이나 동네 작은 가게들에 기본 산소 같은 존재라고 느꼈다. 이번 민생 쿠폰은 선불카드 형식으로 지급해 4개월 이내에 사용하도록 했고 사용처를 제한했다. 해외여행이나 해외직구, 대형매장, 온라인몰 등에서 사용할 수 없고 거주지 근처 연 매출 30억원 이하 상점에서만 쓸 수 있다. 실제 민생회복 쿠폰으로 먹거리를 산다는 비율이 83%였고, 그중 복숭아나 한우를 구입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