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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41) 이별의 눈물 모르는 척 모르는 척겉으론 무심해 보일 테지요 비에 젖은 꽃잎처럼울고 있는 내 마음은늘 숨기고 싶어요 누구와도 헤어질 일이참 많은 세상에서나는 살아갈수록헤어짐이 두렵습니다 낯선 이와잠시 만나 인사하고헤어질 때도눈물이 준비되어 있네요 이별의 눈물은 기도입니다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라는순결한 약속입니다 - 시집 <작은 위로에서> 중에서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되었어도 수많은 독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며 그리움의 별로 떠오르는 박완서 선생님, 선생님의 10주기를 맞아 여기저기서 선생님의 문학작품을 재조명하는 기사와 출간 소식이 들려옵니다. 코로나19로 다들 힘겹게 살아가는 요즘 선생님이 계셨으면 몇 번이고 통쾌하게 공감 가는 글들도 써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몹시 춥고 눈이 많이 온 2011년 1월22일 선생님의 장례식날. 여간해선 잘 울지 않는 제가 어찌나 많이 울었던지 옆에서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 엄마의 미소처럼 포근한 눈꽃 속에/ 눈사람 되어 떠나신 우리 선생님/ 고향을 그리워한 선생님을/ 그토록 좋아하시는 부드러운 흙 속에/ 한 송이 꽃으로 묻고 와서/ 우리도 꽃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문학을 더 깊이 사랑하는 꽃/ 선생님의 인품을 더 곱게 닮고 싶은/ 그리움의 꽃이 되었습니다…”라는 추모시를 적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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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40)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역겨운 냄새가 아닌향기로운 말로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우리의 모든 말들이 이웃의 가슴에 꽂히는기쁨의 꽃이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세상이 조금씩 더 밝아지게 하소서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실어 나르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늘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마음으로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남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매일 정성껏 물을 주어 한 포기의 난을 가꾸듯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 올린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를 가다듬게 하소서겸손의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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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39) 12월은 12월은우리 모두사랑을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잠시 잊고 있던서로의 존재를새롭게 확인하며고마운 일 챙겨보고잘못한 일 용서 청하는가족 이웃 친지들 12월은 우리 모두은총의 시간에 물든겸손하고따뜻하고소박한 마음으로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며세상 사람 누구에게나벗으로 가족으로 다가가는사랑의 계절입니다. -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 중에서 일년이 빠르다는 말을 늘 습관처럼 하고 살지만 왠지 올 한 해는 더 빨리 지나는 것 같습니다. 12월이 되면 수녀원에서도 대청소, 김장, 과자굽기, 홀몸어르신 방문, 성탄편지쓰기 등등으로 매일을 조금 더 바삐 보내는 편입니다. 힘들어서 날카로워진 마음을 순하게 길들이라며 우리 모두를 겸손한 배려와 사랑으로 초대하는 12월! 12월엔 그동안 감사를 다 표현하지 못했던 친지들에게 미루지 말고 편지를 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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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38) 해질녘의 바다에서 해질녘의 바다에 홀로 서서 마지막 기도처럼 어머니를 부르면 나도 어머니가 된다, 세월과 함께 깊어가는 사랑을 어쩌지 못해 그저 출렁이고 또 출렁이는 것밖엔 달리 할 말이 없는 파도치는 가슴의 어머니가 된다. 바다에 나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 지금껏 나만을 생각했던 일을 바다에게 그만 들켜버린 것 같아 매우 부끄럽다. 이 세상 모든 이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한 마디의 기도라도 남을 위해 바치고 싶다. 내가 할 일도 조금씩 줄이면서 좁은 마음을 넓은 마음으로 바꾸어오고 싶다. 내가 사랑한 것보다 몇 배나 많이 받아서 더 무거운 살아있음의 무게, 사랑의 빚을 진 사랑의 무게, 이 무게를 바다에 내려놓고 오늘은 남빛 옷을 걸치고 있는, 끝없는 수평선 위에 내 마음을 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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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37) 침묵 맑고 깊으면차가워도 아름답네침묵이란 우물 앞에혼자 서 보자 자꾸 자꾸 안을 들여다보면먼 길 돌아 집으로 온나의 웃음소리도 들리고이끼 낀 돌층계에서오래 오래 나를 기다려 온하느님의 기쁨도 찰랑이고 ‘잘못 쓴 시간들은사랑으로 고치면 돼요.’속삭이는 이웃들이 내게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고고마움에 할 말을 잊은나의 눈물도 동그랗게 반짝이네 말을 많이 해서죄를 많이 지었던 날들잠시 잊어버리고맑음으로 맑음으로깊어지고 싶으면오늘도 고요히침묵이란 우물 앞에 서자 -시집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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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36) 아름다운 모습 친구의 이야기를아주 유심히 들어주며까르르 웃는 이의 모습동그랗게 둘러앉아서로 더 먹으라고 권하면서열심히 밥을 먹는 가족들의 모습 어떤 모임에서 필요한 것 챙겨놓고슬그머니 사라지는 이의겸허한 뒷모습좋은 책을 읽다가열심히 메모하고 밑줄을 그으며뜻깊은 미소를 짓는 이의 모습 조용히 고개 숙여손님이 벗어놓은 신발들을가지런히 정리하는 이의 모습‘저기요. 사진 하나 찍어주세요!’갑자기 부탁을 하였을 때도귀찮아하지 않는 웃음으로정성 다해 사진을 찍어주는 이의 모습 이웃이 슬픈 일을 당했을 때제일 먼저 달려와서말 없이 손잡고 눈물 글썽이며기도부터 해주는 이의 모습누가 몸이 아프다고 하면큰 일 난 것처럼 한걸음에 달려와자기 일처럼 내내 걱정하며그의 곁을 지켜주는 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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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35) 비 온 뒤 어느 날 비 온 뒤 어느 날은행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가오늘은 세상에서가장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비에 쓰러졌던 꽃나무들이열심히 일어서며살아갈 궁리를 합니다 흙의 향기 피어오르는따뜻한 밭에서는감자가 익어가는 소리 엄마는 부엌에서간장을 달이시고나는 쓰린 눈을 비비며파를 다듬습니다 비 온 뒤의 햇살이 찾아 준밝은 웃음을 나누고 싶어아아 아아감탄사만 되풀이해도행복합니다 마음이여 일어서라꽃처럼 일어서라기도처럼 외워보는비 온 뒤의 고마운 날 나의 삶도 이젠피아노소리 가득한음악으로 일어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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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34)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7월은 나에게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질 때는 고요히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은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은 아무도 모르게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내가 모든 사람들을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그가 지닌 향기를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어쩌면 마지막으로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우리의 삶 자체가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하얀 치자꽃 한 송이당신께 보내는 오늘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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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33)매일의 삶에서 맛보는 기쁨 하늘이 바다인지바다가 하늘인지 기쁨이 슬픔인지슬픔이 기쁨인지 삶이 죽음인지죽음이 삶인지 꿈이 생시인지생시가 꿈인지 밤이 낮인지낮이 밤인지 문득문득 분간을못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분간을 잘 못하는이런 것들이별로 문제가 되지 않네요그냥 행복하네요 이런 행복을무어라고 해야 할지그냥이름없는 행복이라고 말할래요 - 시집 <작은 기도> 중에서 내 사랑하는 이들의외딴 무덤가에풀들이 자라는 동안나는더 많이 사랑해야겠다고마음을 모읍니다 그들이 못다 한 사랑까지다 하고 가려면한순간도미움을 허락해선 안 됩니다눈만 뜨면 할 수 있는조그만 사랑을 더 많이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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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32)다산의 말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편지 속의 이 말을하루에 한 번씩 되새김하면다산 초당의 청정한 바람 소리도가까이 들려오는 기쁨 기껏 좋은 일 선한 일 하고도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여향기를 달아나게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바로 나라고 고백하는 사이어디선가 들려오는 푸른 기침 소리 -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 중에서 요즘은 그냥 단순한 소풍보다는 특별한 장소를 정해 공부도 하고 자연도 즐기는 문화답사나 성지순례가 더 기억에 남고 뜻깊은 나들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몇년 전 우리 수녀님들과 같이 강진에 있는 다산초당에 다녀온 후엔 유배지에서 수많은 글을 남긴 정약용에게 더욱 관심을 갖고 그의 저서들을 구해 읽었는데 특히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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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31)어느 날의 단상 1, 2 저는 평소 마스크 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할 수 없이 마스크를 쓰고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과 면담하는데 전과 달리 의자를 멀리 떼어놓고 했습니다. 요즘은 힘들고 우울한 상황 때문인지 생시에도 꿈길에도 자주 죽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수녀원 마당에는 이제 라일락과 자목련까지 피고 부활시기도 시작돼 흰옷 입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들리는 소식은 계속 아프고 슬픈 것들뿐이니 마음이 무겁고 답답합니다. 우리에겐 유난히 슬픈 사건이 더 많이 기억되는 4월입니다. 2002년 온 국민이 월드컵의 열기에 취해 있을 때 김해 돗대산에서 4월15일에 추락해 129명의 희생자를 낸 중국민항기사건이 일어났을 땐 마음으로나마 작은 위로를 전하고자 추모사이트에 들어가 글을 남기고 1주기에는 추모행사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는데 그때 종종 연락을 주고받던 유족들의 근황도 문득 궁금합니다. 2014년 4월16일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이나 추모장소엔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가진 못했으나 우연히 연결된 몇몇 유족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있으며 기도의 추모시로 제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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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30)3월의 바람 속에 1, 2 경칩이 지나고 나니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이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습니다. 살구꽃나무 위로 새들이 즐겁게 날아다니고 꽃들 주변으로 흰 나비들이 찾아오는데 꽃과 나비를 보는 제 마음도 요즘은 웃음기 없이 울적하기만 합니다. 평소에 나물 캐기 좋아하는 어느 선배수녀님이 수녀원 밭에서 뜯어 온 냉이로 국을 끓여 먹고 쑥으로 튀김을 해서 먹으며 “식탁에도 이렇게 봄이 올라와 있는데 계절의 봄과 달리 우리의 진정한 봄은 언제나 올까요?” “요즘은 신문 보기도 겁이 나요.”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할 건데 걱정만 앞서고 일이 손에 안 잡히네요.”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 때문에 마음까지 멀어지면 곤란한데?” “너무도 당연히 누려왔던 평범한 일상을 이젠 기적처럼 그리워하게 되는군요.”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국민이 좀 더 성숙하고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수녀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건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