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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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기억은 동사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기억할 말들을 만날 때 단단해진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다가올수록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내가 몇년째 엇비슷한 말들에 멈춰 있음을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이 앞장서고 수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밀어가며 만들어온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 조금 낯설고 많이 속상하다. 지나온 시간을 복기하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기억하는 변곡점 중 하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식 사과다. 2017년 8월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사과했다. 많은 이들이 촛불 이후 달라진 시대를 보여주는 징표로 읽었다. 하지만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었다. “지난 정부가 선체 침몰을 지켜보면서도 승객 한 명 구조하지 못했을 정도로 무능하고 무책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지난 정부’의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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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우리, 정치할래요? 친척 어른들이 “나중에 정치할 거냐”고 묻곤 했다. 예상되던 직업과 동떨어진, 인권운동이라는 것을 한다길래 궁금하셨을 게다. ‘운동권’이 ‘정치권’에 들어가는 일이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던 시절이다. 나는 변명이라도 하듯 손사래를 쳤다. 정치가 아니라 운동을 계속할 거라고. 시간이 흘러 나는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작년 가을부터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서로 헐뜯으며 진영 대립을 반복할 것은 뻔했다. 냉소가 아니다. 한국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대선만 봐도,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극한의 대치는 판박이다.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하고 돈 벌고 집 구하고 가족을 꾸리고 등등, 살아가는 방식이라 여겼던 구조가 세계 어디에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곳곳에 불만이 쌓이니 정치인들도 해법을 찾는다. 하지만 위기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사는 일이 고된 사람들에게 적을 만들어주기 바쁘다. 상대 정당이든, 이주민이든, 다른 국가든, 세상이 엉망인 이유를 엉뚱한 데로 돌린다. 신자유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정치의 위기를 심화시킨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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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나에게 노동이란 누구는 노래를 했고 누구는 악기를 연주했다.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하는 사람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생 그래프를 그리느라 진지한 사람, 혓바닥을 이용해 컴퓨터에 스토리를 입력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진집 제목은 <이것도 노동이다>. 말하고 싶은 바가 선명하다. 그것도 노동이라고 맞장구치기는 어렵지 않다. 무언가 해내는 인간의 보편적 활동을 우리는 노동이라 불러왔다. 가수, 연주자, 감독, 작가와 같은 직업의 이름으로 그런 활동을 분류하듯 우리가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에 노동은 꽤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도 사진 속 인물들에서 자꾸 ‘장애인’이 보이는 것은, ‘장애’와 ‘노동’을 이질적으로 느끼게 하는 오랜 습속 탓이다. 일-‘할 수 없는(dis-abled)’ 몸으로 간주되어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되어 온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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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의 대안을 조직하자 봄이 오고 있을까? 반도체 시장에 봄이 온다는 기사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윤석열 대통령 말마따나 반도체는 “우리의 생활이고, 안보고, 산업경제 그 자체”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그렇다 보니 불확실성도 점점 커진다. 누구도 봄을 자신 있게 전망하기 어렵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질문은 다음에 있다. 반도체 시장에 봄이 오면 우리 삶에도 봄이 오나. 연말 윤 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고용률이 높고 실업률이 낮다”는 성과를 내세웠다. 하지만 늘어난 취업자 수 분포를 보면 이런 모습이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청년, 돌봄일을 하는 여성, 여기저기 60세 이상 노인. 이들 중 자신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고 마음 놓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임금은 낮고 일은 고된데 갑질도 빈번하다. 그래서 구직 포기 청년이 늘어나니 실업률이 낮다. 다른 한편으로는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앱을 쳐다보느라 봄을 기다릴 시간조차 없다. 일해서 빚 갚을 기회는 점점 사라지는데 빚을 갚아야 하니 닥치는 대로 일해야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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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누가 인권위를 이렇게 만들었나 하필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 12월10일이라 인권활동가는 연말이면 괴롭다. 저마다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일에 인권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일이 뒤섞이니 이런 식이다. 나 열심히 살았는데 세상 왜 이래? 올해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한다. 12월8일 인권단체들은 ‘경로이탈 국가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을 발족했다. 말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것을 넘어 피해자가 진정하거나 긴급구제를 신청할 때 손쉽게 기각하려는 운영규칙 개악이 인권위에서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임명된 이충상, 김용원 두 상임위원이 경로이탈을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와 양상이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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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 존재선언 한 남성이 한 여성의 목을 졸라 제압한다. 사람의 세계에서는 수긍될 리 없는 상황이, 그 남성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고 그 여성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조건에서는 ‘적법 절차’가 되어버린다. 가혹행위를 금지하고 여성을 단속할 때는 여성 직원이 포함되도록 하는 규칙이 있어도 ‘불법’을 단속한다는 명분이 모든 상황을 정당화한다. 20년 전 만들어진 고용허가제 아래 이어진 일이다. 고용허가제는 인력이 부족한 업종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보내는 나라가 한국어시험과 기능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의 명단을 한국에 주면, 고용 허가를 받은 사업주가 명단을 보고 사람을 고른다. 선택된 사람은 한국으로 들어와 이주노동자가 된다. 단 체류 기간이 제한되어 있다. 첫 계약은 3년, 최장 9년8개월까지 일할 수 있다. 정주는 금지된다. 반드시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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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정의가 시작될 자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 언제나 비슷한 구도다. 이스라엘 정부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또는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군사작전과 방화로 집을 빼앗기고 쫓겨난다. 도시에서 한두 사람이 총격을 당하는 일은 일상이다.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물과 전기는 언제나 부족하다. 조직되거나 조직되지 않은 저항이 이어진다. 돌을 던지거나 행진을 하거나 무장하여 일어난다. 이스라엘 군대의 집중 공격이 시작된다. 병원과 학교가 포격을 당하고 가족과 이웃이 죽임을 당한다. 유엔이 제지하기 위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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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인권운동가는 위장되지 않는다 뒤끝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이후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인권운동가로 위장한다는데, 웃어넘기려니 숱한 조작 사건이 떠올라 섬뜩했고, 진지하게 반응하려니 도무지 진지한 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딘가 암약하고 있을 공산전체주의 세력보다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윤 대통령의 세계관을 불안해한다. 정부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한들 역사가 철거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서준식을 떠올렸다. 그는 ‘인권운동사랑방’을 만든 활동가 중 한 명이다. 박근혜 퇴진 촛불이 한창이던 2017년 1월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이 “사복을 입은 채로 조사를 받고, 난방이 가능한 구치소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서준식씨를 비롯한 인권운동가들의 노력” 덕분임을 환기하며 ‘민주주의의 품격’을 말하고 있었다. 많은 인권활동가들이 감옥인권운동을 키우고 이어왔지만 그 출발선에 있던 서준식은 따로 언급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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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가 우리를 믿을 수 있을 때 대학로에서 흉기를 들고 배회, 괴성을 지른다는 신고, 60대 남성 체포. 홈리스 야학 학생이 피의자로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는 소식에 놀라 동영상을 찾아봤다. 홈리스행동과의 인연으로 가끔 만났던 그를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었다.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를 때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난감했던 기억도 스쳤다. 그의 행동이 오인됐을 것을 속상해하다가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거리에 칼을 들고나오는 행위만으로도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타인의 안전이 위협당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을 통제할 방법을 누구나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러나 그를 특수협박죄로 구속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타인을 협박할 의도로 흉기를 들었다고 몰아세우면,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알게 될까? 길을 걷다가 공포를 느꼈던 이들에게 당신이 협박을 당했다고 말해주면 회복에 이르게 될까? 국가가 공권력을 과시하는 것 외에 다른 효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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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정전체제 70년, 평화를 다르게 상상하기 전쟁은 멈췄으나 끝나지는 않은, 70년이 되도록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경험은 한반도가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전체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다.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경보가 불쑥 울릴 때 전쟁을 떠올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전쟁이 멈춘 지도 오래라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추상적인 수준을 맴돈다. 그런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전쟁을 끝내자고 주장하면 반국가세력이라 말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전쟁을 하자는 나라인가. 말이 안 될 말을 대놓고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이 있다면 싸울 힘을 길러야 한다는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미국의 핵자산을 공개적으로 한국 영토에 끌어들이는 일까지 벌어진다. 문재인 정부는 최소한 북을 ‘적’으로 명시하진 않았다. 그러나 ‘자주국방’을 대안으로 여기며 역대 규모로 군사비를 증강했다. 미국에 의존하는 안보로부터 벗어나자는 취지였더라도 북에는 똑같은 위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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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잠들어 있는 생명권을 깨우라 27일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기일이다. 나는 파면 결정만큼 기대하는 것이 또 있다. 헌법재판소가 생명권을 살려내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안전을 권리로 인식하게 됐다. 국가라면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감각. 촛불 이후 국회 개헌특위와 대통령 개헌안 모두가 생명권을 명시한 배경이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없던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를 통해 생명권이 기본권임을 밝혀왔다. 권리가 추상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움직이게 하는 일이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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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전세라는 사기 몇년 전 지인이 전세사기를 당했다. 마주칠 때마다 타들어가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고생스러웠지만 소송으로 전세금을 찾아 다행, 하필 이상한 사람한테 걸려 운도 없다고만 생각했다. 전세사기 피해 사례가 쏟아져나오는 요즘, 거꾸로였음을 깨달았다. 이사 나오는 날이면 꼬박꼬박 전세금이 통장에 들어왔던 내가 지독히 운이 좋았다. 전세는 돈을 빌려주고 집을 빌리는 계약이다. 임대인은 이자 없이 돈을 빌리고 세입자는 임대료 없이 거주하니 그럴싸하다. 그러나 채무자가 언제나 갑이다. 집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못 하나 박는 것까지 참견할 수 있었고, 전세금을 올리든 월세로 바꾸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어렵다 하면 내보내면 그만이었다. 세입자는 내보내도 문제인데 못 나가도 문제였다. 다음 세입자를 구해놓고 나가라거나 법대로 하라거나, 채무자가 오히려 큰소리쳤다. 집에 발이 묶이거나, 복잡한 절차를 밟아 이사를 나가거나, 까딱 전세금을 잃게 되면 집을 잘못 구한 자기를 책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입자는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아니라 존엄을 저당 잡힌 세입자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