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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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윤석열 파면과 민주주의 사이 윤석열 구속은 취소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기일은 확인되지 않는 일주일을 보냈다. 다수가 예상하던 탄핵 인용이 뒤집혀 기각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추론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체감상으로는 가장 길고 불안한 일주일이었다. 구속 취소 결정이 없었다면 그저 조금 긴 일주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책임한 법원과 노골적 편들기에 나선 검찰의 합작품으로 윤석열이 석방되자 또 무슨 기괴한 논리가 등장할까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상황이 탄핵 반대 세력에는 승리를 향해 가는 서사를 안겼다. 구속 취소 결정이 마치 무죄를 예비한 것처럼, 계엄 이후 부당하게 탄압당한 대통령의 정당성이 확인된 것처럼 주장하며 탄핵심판 결론도 뒤집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퍼뜨렸다. 국민의힘은 탄핵 각하 주장을 들고나왔다. 절차적 시비로 실체적 진실을 흔들어보겠다는 심산이다. 윤석열 석방으로 탄핵 반대 세력이 ‘희망’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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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든든한 연대, 단단한 민주주의 지난주 재난인권교육을 주제로 하는 토론회가 있었다. ‘재난’은 오래 쌓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시간이다. 어쩔 수 없었다거나 몇몇 문제만 교정하면 된다는 말들은 결국 ‘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탄식을 반복하게 만든다. 토론이 가벼울 수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게도 영혼이 맑아진 기분이 들었다. 윤석열을 생각하지 않는 두 시간, 탄핵 가결 이후 두 달 남짓 누려보지 못한 호사였다. 탄핵심판이 사회를 더 혼탁하게 만드는 시간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전례를 깨고 출석한 윤석열은 끝없는 궤변과 거짓말을 늘어놓고, 여당 정치인들은 헌법재판소에 흠집을 내려는 어지러운 말들을 쏟아냈다. 윤석열이 대통령일 수 없다는 상식을 뒤집을 만한 사실과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머지않아 반가운 소식은 들려올 텐데 기분이 개운할 수 없었다. 선거도, 의회도, 사법부도 부정하는 사람들. 인권의 기초를 허무는 극단주의를 설파하고 물리적 폭력도 서슴지 않는 이 사람들의 세력화는 또 다른 성격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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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내란성 불면의 밤을 지나며 잡혀갔나?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눈 뜨고 못 볼 일은 늘어났다. 윤석열 체포를 막겠다며 ‘방탄의원단’이 관저로 모이고 경호처는 철조망, 쇠사슬로 저지선을 만들었다. ‘반공청년단’과 ‘백골단’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윤석열 방어권 보장 촉구’를 긴급 안건으로 상정했다. 내란범 체포가 지지부진하자 내전이 번지는 모양새다. 내란의 수괴는 윤석열이라면 내전의 야전사령관은 전광훈이라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갑자기 등장하지 않았다. 광화문 사거리 ‘윤석열 대통령 지키기 국민대회’는 계엄 사태 전 10월부터 열렸다. 2000년대 중반부터 ‘뉴라이트’ ‘태극기 부대’ 등으로 불리며 이어진 세력은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를 거치며 더욱 성장했다. ‘보수 개신교’는 이들의 진지다. ‘종북세력 척결’을 주장하는 이들과 ‘동성애 반대’ ‘학생인권조례 폐지’ ‘성평등 도서 퇴출’을 외치는 이들 사이엔 아무 장벽이 없다. 한국에만 있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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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강태완과 윤석열 강태완의 추모제에 가려 했다. 11월8일 특장차와 중장비 사이에 끼어 숨진 32세 노동자. 그는 몽골 태생이지만 한국에서 자라 몽골어를 못하는, 한국말을 너무 잘했으나 한국인은 아닌 사람이었다. ‘미등록’인 그의 꿈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꿈을 위해 그는 제도가 부과한 도전을 수행했다. 말이 안 통하는 몽골로 자진출국했고, 입시를 준비해 한국의 대학에 입학했고, 인구소멸 지역에 살면 거주 비자가 나온다길래 김제의 한 회사에 취직했다. 올해 6월 거주는 허락받았으나, 생명까지는 허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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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대통령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나의 대통령 퇴진 구호는 ‘김영삼’에서 시작됐다.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정리해고 반대 투쟁 폭력 진압, 이라크전쟁 파병과 비정규악법 통과,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 사망… 이유도 방향도 분명했다. 대통령을 바꾸자는 구호이기보다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였으므로 그것은 급진적 민주주의의 요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익숙했던 퇴진 구호에 이물감이 들기 시작했다. 대통령 퇴진이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요구는 아니다. ‘문재인 퇴진’에 앞장선 이들이 최저임금 인상이나 난민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것처럼, 방향은 제각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탄핵소추를 당했으나 그것을 민주주의의 역사로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박근혜 퇴진 촛불의 경험은 대통령 파면을 민주주의의 증거로 기억하게 한다. 그러나 국민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서야 하는 상황은 민주주의가 실패한 증거이기도 하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정치 시스템의 붕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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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우리, 팔레스타인 “미국이 원자폭탄 터뜨려서 해방시켜줬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은 해방됐을지 몰라도 우리 원폭 피해자는 해방이 됐습니까.” 몇달 전 경향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 말이 잊히지 않았다. 내게 해방은 1945년에 있었던, 지나간 사건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아직 닿지 못한 역사였다. 해방을 너무 쉽게 말해왔음을 반성했다. 가자지구 집단학살 1년을 앞두고 열린 집회 제목은 ‘우리는 팔레스타인 해방의 연대자’였다.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해방을 모르고 해방의 연대자가 될 수 있을까? 일본이 조선을 점령해 조선인을 착취했다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점령해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했다. 점령당하지 않으려면 절멸당해야 했다. 1948년 시작된 일이다. 그러니까, 부모 잃은 아이들이, 피란 끝에 닿은 땅에 다시 집을 짓고, 자신의 운명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었으나, 다시 마을과 함께 불에 타고 부서져, 유언도 듣지 못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평생소원으로 물려받고, 다시, 물려줄 것은 똑같은 소원밖에 없는 부모가 되어, 눈앞에서 쓰러지는 아이를 보아야 하는 시간이, 역사라 이름 붙여도 된다면, 팔레스타인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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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딥페이크, 깊은 속임수 찍히는 사람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작고 성능이 좋은 캠코더나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이미지로 사람을 속이는 프로그램이 개발된 사실은 대체로 여성의 권리가 침해되는 사건을 통해 알려졌다. 법은 기술의 ‘악용’을 막으려 했지만 늘 한발 늦었다. 이제 누구나 손쉽게 성착취물을 만들 수 있게 된 현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직면해야 할 것이 기술을 훌쩍 넘어선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동의했든 하지 않았든 스스로 찍었든 남이 찍었든, 여성의 이미지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수단이 되는, 사회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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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에어컨으로 시험에 든 기분이라면 에어컨으로 시험에 드는 기분, 나만 느끼는 건 아닐 듯하다. 틀어놓으면 죄짓는 기분, 틀지 않으면 자학하는 기분. 기후위기로 여름은 더 무더워지고 냉방은 더욱 필수적인 것이 되는데 그렇게 전기를 쓸수록 기후위기는 더 심각해진다니 고약한 시험이다. 그런데 이건 시험의 일부일 뿐이다. 지난주, 에어컨 설치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가 작업한 공간은 중학교 급식실이었다. 누군가에게 밥을 먹이려 일하던 누군가는 더위를 견디며 밥을 짓고, 누군가를 시원하게 해주려고 일하던 누군가는 더위에 쓰러졌다. 그날, 13일은 전력수요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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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참사는 리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불은 리튬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참사는 리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위험물을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대피할 통로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작업장이 있었고,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라는 듯 사람을 ‘쓰면서’ 정작 위험할 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은 기업이 있었다. 리튬에는 책임이 없다. 그런데 아리셀 참사 이후 정부의 재발방지대책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로운 소방기술 개발”을 주문했다. 어느 때나 할 수 있는 ‘아무말’에 가깝다. 리튬전지 화재 진화가 어렵다는 사실은 정부도 아리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리튬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위험물로, 지정된 수량만 정해진 기준에 따라 저장하거나 취급해야 한다. 아리셀은 주의를 기울이기는커녕 과도하게 많은 전지를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에 쌓아두고 있었다. 국가의 안전 규제가 실패한 결과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오히려 “규제와 처벌만으로 산업안전을 지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소방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노동자들더러 위험을 감수하라는 말이다. 이처럼 원인을 왜곡하는 재발방지대책은 참사를 지속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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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판단하지 않는 자들이 만드는 재난 작년 7월은 비가 무섭고도 질기게 쏟아졌다. 월 강수량은 기상청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많았다. 7월15일은, 충북 오송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14명, 경북 예천 산사태로 12명이 사망하는 등 희생자가 30명이 넘었다. 이런 기억은 기후위기 시대에 재난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하지만 재해가 늘어난다고 사람이 다치고 죽는 일이 따라 늘지는 않는다. 올해 4월 대만을 강타한 지진의 결과에서 볼 수 있듯 재난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국가의 역량이 재난의 양상을 결정한다. 올해 5월 행정안전부는 ‘2024년 여름철 자연재난(풍수해 폭염) 종합대책’을, 충청북도는 ‘재난안전관리 강화전략’을 발표했다. 대책이 기대하는 그림은 이렇다. 홍수 위험이 생기면 인공지능 예측을 활용해 예보하고 인근 운전자의 내비게이션으로 안내되게 한다. 지하차도마다 진입차단시설을 설치하고 4인 담당자를 지정해 둔다. 국민에겐 동영상 홍보를 반복해 행동요령을 익히게 한다. 분명 정부와 지자체는 뭔가 하고 있다. 예측은 기술에, 대응은 일선 공무원과 국민에게 미루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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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밀양, 고마운 초대장 “무조건 밀어!” 경찰 간부의 명령이 들려왔다. 방패를 든 경찰들이 산 중턱에서 주민을 밀어내며 순식간에 길을 냈다. 한전 직원들이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들어갔다. 산길이 되었던 경찰들은 다시 공사 현장의 울타리가 되었다.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현장에 있던 내가 경찰에 채인 것도 찰나였다. 2013년 10월이었다. 겹겹이 선 경찰들 사이로 끌려간, 불과 10m도 되지 않는 거리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었다. 울창하고 고즈넉한 숲길이 있었고 터무니없는 고요가 있었다. 다가올 위험에 불안해하며 흔들리는 눈동자도, 내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며 꼭 다문 입술도, 누구도 다치지 않길 바라며 쓸어내리는 손길도, 온기를 나누며 서로 기대는 어깨도, 그곳엔 없었다. 평화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게, 연행보다 당혹스럽고 분통했다. 소름 끼치게 서늘한, 내 것은 아닌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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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이 폐허를 응시하자 숫자만 남았다. 거슬러가면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으로 드러난 필수의료·지역의료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사회적 관심사였다. 언젠가부터 의사 수가 얼마나 부족한지, 어떻게 늘릴 것인지로 관심이 옮겨가다가 이제는 내년도 의대 입학 정원이 몇명일지만 남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풀기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의사가 부족하다는 근거로 곧잘 인용되는 OECD 비교를 보면 한국은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객관적 건강 지표는 우수한데 주관적 건강 인식이 매우 낮다. 의사는 적은 편인데 병원과 병상과 장비는 매우 많다.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나 입원일수는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한국 사람들이 두 배나 더 아플 리 없는데 말이다. 동시에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각한 불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