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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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영화관 옆 상갓집 라디오를 들으며 외울 지경이 된 광고가 있다.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신’이 있습니다. 코로나 최전선 의료진의 영웅신, 발코니로 떠나는 우리가족 여행신, (…) 이제 모두가 기다려 온 백신으로 해피엔딩 신을 보여줄 차례. 우리가 함께 만든 최고의 신들이 있어 대한민국은 반드시 코로나19를 이겨낼 것입니다.” 연초에 들을 때는 신박한 라임에 감탄했다. 하지만 재난 상황이 달라지는데도 똑같은 말이 반복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된 후로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의료진의 절규도 집단시설의 아비규환도 자영업자의 절망과 분노도 끼어들 틈 없는 매끄러운 신은 백신만 주입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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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말을 칼로 만들어준 더불어민주당 “반대론자들은 혐오세력인 듯 매도당해온 기분이 드는데요 저는.” 토론회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이유를 또랑또랑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이 대목에서 살짝 흐트러졌다. 불쾌했거나, 억울했거나, 어쨌든 혐오를 지적당해온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그래서 반동성애 집단은 혐오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해 왔다. 나는 언젠가부터 혐오라는 말을 쓰는 것을 꺼려왔다. ‘혐오가 문제’라는 말이 쉬운 만큼 ‘혐오의 문제’에 대한 이해는 낮아졌기 때문이다. 지목당한 사람은 발끈하고 구경하는 사람은 눈만 끔뻑거린다.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의견을 말하지도 못하냐’ 같은 대화가 헛돈다. <말이 칼이 될 때>와 같은 친절한 책이 있지만 사람들은 ‘칼이 되는 말’을 가려내는 데 더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혐오는 말이 향하는 자리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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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깃발처럼 오시라 점심을 먹는데 식당 주인이 대뜸 물었다. “그 깃발 동성애 그런 거예요?” 말이 좀 그렇거니와 말투도 서걱서걱했다. 살짝 긴장을 했다. “네. 저희는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고 있어요.” 일부러 또박또박 대답했다. “저 예전에 호주에서 그 깃발 본 적 있어요.” 아… 긴장이 무색해졌다. 길 건너편에서 큰소리로 묻는 분도 있었다. “타이완? 타이완에서 왔어요?” 대만의 동성혼 합법화 뉴스를 기억했던 걸까. 무지개 깃발을 보며 먼 나라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 혐오의 가장 큰 효과는, 눈앞에 보이는 누군가를 반대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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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평등길1110 지자체가 재난긴급생활비를 다문화가정에 지급하면서, 자녀가 있으면 이주민 배우자에게도 주고 자녀가 없으면 배우자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이 있었다. 자녀가 없으면 이주여성도 없는 사람 취급이다. 차별로 지목되자 지자체는 규정에 따랐을 뿐이라는 궁색한 핑계를 댔다. “손발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 같은 말은 차별로 쉽게 지적된다. 그러나 실언을 낳는 차별의 실재는 그대로 남는다. 서울의 많은 지자체에서 이주여성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출산다문화팀’이다. 이주여성 하면 결혼과 출산, 외국인노동자 하면 육체노동을 떠올리게끔 제도가 특정한 정체성을 특정한 위치로 배치한다. 세계가 이러하므로, 차별은 일부러 하기가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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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위드 코로나, 누구와 함께? 코로나19 시대, 인권운동도 어렵다. 사람들이 모여서 말하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 본령인데, 모이지 말라는 시간이 길어지니 말이다. 집회는 쉽게 금지되었다. 과학적 근거는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하면 실외 집회는 당연히 실내 행사보다 위험이 적다. 법과 물리력이 정부에 있으니 금지당할 뿐이다. 실내 행사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돈이다. 거리 두기를 하려면 훨씬 넓은 장소를 빌려야 한다. 온라인 영상 중계나 접근권을 높이는 것도 다 돈이다. 주주총회는 인원제한 없이 허용되지만 동네 식당들은 집합금지 명령으로 휑하다. 무엇이 멈추고 무엇이 이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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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어떤 박탈감 “검진을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금연 결심을 환영합니다.” 애틋할 뻔했다. 1577-1000. 건강보험료 체납 안내 메시지도 와서, 애틋하지는 않았다. 전화도 걸어봤다. 금연프로그램 이수 인센티브를 신청했고, 건강보험료가 갑자기 올라 항의도 했다. 번호를 누르며 내가 메타넷엠플랫폼이나 효성아이티엑스와 같은 회사로 전화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건강보험공단으로 전화를 했는데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받은 게 아니었다니…. 전화를 누가 받든 안내가 충실하면 그만일까. 그런데 회사는 안내가 충실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통화는 짧게, ‘콜 수’는 많이.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상담사들을 묶어놓고 경쟁을 시켰다. 상담사들은 ‘콜 수’ 압박 때문에 화장실도 편히 다녀오지 못하고, 동료들에게 미안해 조퇴나 휴가도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회사는 오래 일한 숙련된 상담사를 원하면서도 쌓인 경력만큼 기본급을 쌓아주지는 않았다. 어디에 항의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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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학력이 능력이라는 오해 편을 가를 때 내가 살던 지역은 이렇게 했다. 하늘과 땅이다~ 기울어도 모르기~ 이번엔 진짜~ 못 먹어도 소용없기~. 어느 한편으로 실력이 기울어 편을 잘못 먹어도 볼멘소리 없기다. 조금 다르게, 두 사람을 먼저 뽑아놓고 가위바위보를 하는 방법도 있다. 이긴 쪽부터 선수를 지목해 데려간다. 먼저 선발되면 우쭐하고 늦게까지 남겨지면 머쓱하다. 그래도 잠깐이다. 어울려 놀다 보면 저마다 제 역할을 찾아서 힘을 모은다. 그런데 기껏 가위바위보를 이긴 사람이 시험성적에 따라 편을 짜면 어떻게 될까? 비난받을 것이다. 성적과 놀이 실력은 전혀 상관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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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준석은 남성도, 청년도 아니다 “발표자 중에 여성이 없어서요.” 토론회 발표 요청을 받으며 이런 말을 들었다.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아니라 여성이 필요하다는 거야? 의문의 1패다. 그러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와 동료들도 토론회나 기자회견을 기획할 때 성비를 고려한다. 대표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피며 조건을 바꿀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사회가 성비 불균형을 문제로 인식하게 된 것은 분명 진보의 증거다. 그러나 성비를 맞추는 것 자체가 진보는 아니다. 적임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성별일 수는 없으며 사회에 성차별만 있지도 않다. 할당제에 늘 불공정 시비가 따라다니는 이유다. 대상 집단도 할당제가 달갑지만은 않다. 할당제의 구도에서는 차별의 피해집단으로 배려 대상이 되어버리거나 실력도 부족한데 기회를 꿰찬 수혜자로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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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러시면 안 되죠 몇 년 전, 다른 지역에서 혐오와 차별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호의를 덥석 받아 발표자들과 함께 식당으로 갔다. 주최 측에서 기차역 인근으로 예약해주셨다. 유명한 곳이라 사람이 바글바글했고 우리는 깊숙한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토론회를 같이 준비하셨던 분들이 더 온다고 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뒤늦게 오신 분들이 못 들어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분이 아이를 데리고 오셔서 식당 주인이 막는다는 얘기였다. 몇 분이 나가보셨는데 이내 식당 주인의 고성이 들렸다. “아이들은 안 된다고 다 써붙였는데 왜 예약해서 바쁜 사람 피곤하게 하는 거야?” 그제야 식당 벽에도 붙어있는 아이 동반 출입금지 안내문이 보였다. 주최 측도 일행이 아이를 데리고 올지는 몰랐나 보다. 일행을 다른 곳으로 보내려는 듯했다. 난감했다. ‘노키즈존’이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 결정도 있은 후였다. 눈앞에서 명백한 차별행위가 발생하고 있었다. 내가 따라 나가서 항의해야 하나? 그런데 내가 나서서 차별이라고 따지면 다른 분들이 무안하지 않으려나? 그러다가 모두 다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 내가 책임질 수 있나? 항의해서 아이가 들어오면 눈치 보지 않고 밥을 편안하게 먹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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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새봄은 어떻게 오는가 아이가 좋아하던 반찬을 말하며 웃던 엄마가 아이가 좋아하던 샴푸 냄새를 말하며 울기 시작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2014년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맡은 동안 나는 마음을 단단히 여미리라 다짐했다. 공감과 이해가 섣부를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실용적이었다. 같이 슬퍼할 겨를이 없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손과 머리를 보태자. 국회 농성 중 유가족 몇 분이 삭발이라도 해야겠다고 할 때 말린 것도 같은 이유다. 2015년 4월의 첫날에는 말릴 수 없었다. 정부의 보도자료와 함께 ‘희생자 1인당 평균 얼마’류의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었다. 내가 이미 모욕감과 분노를 참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청와대까지 행진해야겠다는 집념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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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의료 공백, 권리의 공백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호흡곤란 증상을 보였다. 병원은 신생아 집중 치료를 위한 장비가 없다며 두 시간 거리의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밤길을 달려가 닿은 병원은 미리 확인도 없이 찾아왔느냐며 입원을 거부했다. 또 다른 병원을 찾아갔지만 자리가 없었다. 두 번째 병원으로 돌아가 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확인서가 필요하다며 돌려보냈다. 자리가 없다는 확인을 받으러 세 번째 병원을 갔지만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하라는 말만 했다. 그사이 아기의 심장은 멎었다. 태어나 하루도 채우지 못하고, 구급차 안에서. 2005년 터키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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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진숙만 빼고, 세월호만 빼고 부산에서 걷기 시작한 여성노동자 김진숙이 청와대에 닿는 날이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로 삭발을 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보였다. 세월호 활동에서 멀어진 지 좀 됐지만 2014년 같이 살다시피 하며 함께 싸운 동지들이라 늘 애틋하다. 인사를 나누며 안식년이 끝난다고 했더니 한 아빠가 넌지시 웃으며 말했다. “다시 활동해야지.” 나도 능청을 떨며 답했다. “그래야죠! 세월호만 빼고.” 입 밖으로 나온 말에 아차 싶었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도로를 막아선 경찰을 보며 두 날의 기억이 엇갈리던 참이었다. 2014년 5월8일 대통령을 만나야겠다며 청와대를 향해 걷던 유가족이 밤을 지새운 자리였다. 국정조사와 감사, 수사가 권력 앞에서 멈출 때마다 그 자리에 벽이 세워졌다. 2016년 12월3일, 그 벽을 무너뜨렸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과 함께 유가족이 앞장서 걸었다. 벽을 기억하며 흘리는 눈물이 슬프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다시 그 자리였다. 함께 시대를 넘어섰다는 착각은 달지도 않았는데, 뱉으려니 쓰렸다. “36년째 해고자”라는 김진숙의 시간이 아득해지며 또 다른날이 떠올랐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는 파면됐으나 ‘세월호만 빼고’였다. 농담으로 할 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