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최신기사
-
세상읽기 이상민은 꺼져주세요 10·29 이태원 참사는 핼러윈데이를 맞아 이태원을 찾은 시민들이 인파에 떠밀리다 압사당한 사건이 아니다. 압사의 위험을 대비하지 못한 국가가 구조 신호마저 무시하다가 수습에 실패한 사건이다. 생명권 보호에 실패한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국가 책임’은 너무 추상적인 말이라 누구더러 어쩌라는 것인지 모호하다. 책임지는 국가를 아직 만나보지 못한 우리의 현재다.
-
세상읽기 돼지머리와 무정차 대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을 짓는 골목에 놓인 돼지머리 사진을 봤다. 때를 놓쳐 쓰지 못했지만 말을 잃어 쓰지 못하기도 했다. 사원 증축을 둘러싼 갈등은 꾸준히 접하고 있었다. 경북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무슬림 유학생들이 십시일반 모금으로 비좁은 기도실의 증축을 계획했고 2020년 9월 건축허가를 받았다. 2021년 2월 인근 주민들이 민원을 넣으러 구청에 찾아간 날, 구청은 즉시 공사를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
세상읽기 신묘한 말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소망이 재난인가.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이 ‘사회적 재난’이라며 중대본을 꾸렸다. 정부의 사고회로를 도통 알 수가 없다. 화주업체 재산의 안전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를 포함한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정부가 먼저 확대해야 할 제도다. 화물노동자가 화물을 실어나르는 덕분에 돈을 버는 화주업체가 마땅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모든 게 거꾸로다.
-
세상읽기 사과가 사과인 세계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에 관해 공개 사과를 했다고 한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사과받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8년 전 기억이 떠오를 뿐이다. 당시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했다. 사과와 책임은 면책의 동의어였고 탄압의 계고장이었다.
-
세상읽기 기어이 동행하자시면 동행을 제안할 때는 보통 어디로 어떻게 갈 계획인지를 설명한다. 함께 가기를 기대하는 이유도 붙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은 동행 제안은 꽤나 무례하고 때론 폭력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약자와의 동행’은 어떤가. 그의 말에는 ‘약자’가 자주 등장한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일관된 모습이다. “공정과 상식의 이름으로 진짜 약자를 도와야 합니다.”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 그는 국민의힘 선대위 산하 ‘약자와의 동행 위원회’ 위원장을 직접 맡기도 했다. 취임 후 뜸하다 싶더니 취임 100일 전후로 ‘약자’가 다시 불려 나오기 시작했다. 발달장애인 복지관, 다문화가족 지원센터, 독거노인 가정, 자립준비청년 생활시설 등을 방문하는 행보가 이어졌다.
-
세상읽기 기후정의행진, 그들이 온다 괜찮지 않은 것들은 예전부터 괜찮지 않았다. 폭우로 침수되기 전에도 반지하는 거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했다. 폭염이 아니더라도 홈리스에게 여름은 혹독하게 더웠고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식량 위기를 거론하기 전에도 먹을거리 구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었고, 흉작이라 걱정, 풍작이라도 걱정인 농민들 사정도 오래됐다. 사람답게 살 권리보다 시장답게 처분할 당위가 앞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누군가는 이미 괜찮지 않았다.
-
세상읽기 아래쪽의 재난 아래쪽 집들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는 걸 보며 대통령은 퇴근했다. 재난은 아래쪽의 문제였을 뿐이다. 침수로 사람이 목숨을 잃은 집 앞에서 반지하 방을 내려다보던 사진만큼 솔직한 고백이 있을까. 그는 아래쪽의 재난을 구경하는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폭우와 함께 재난불평등이 드러나고 있다. 가난할수록 재해에 더 잦게 노출되고 더 크게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은 새롭지 않다.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재난에서 더 취약한 집단이 있다는 사실도 재난 대응 정책의 서두에 곧잘 언급된다. 이번에는 반지하가 주목을 받았다. 그 도시의 시장은 반지하 주택을 없애나가겠다고 했다. 그 나라의 장관은 “그분들은 어디로 가나” 물으며 반지하 거주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아무도 아래쪽 사람들에게 묻지 않았고 듣지 않았다.
-
세상읽기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좁은 철창을 간신히 삐져나온 목소리가 숨막히게 더운 공기를 뚫고 전해졌다. 이대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인 듯 이대로 살지 말자는 제안인 듯 육중하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파업 중인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부지회장 유최안이 22년 경력의 용접기술로 자신을 가두고, 여섯 명의 노동자가 탱크 탑 구조물에 올라 고공농성을 한 지도 한 달이 되어간다. 14일부터는 산업은행 앞에서 세 명의 노동자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어떤 선언이고 어떤 제안이길래.
-
세상읽기 아프면 쉴, 권리가 되려면 단식투쟁을 마치고 쉬는 중이다. 때 되면 먹고, 낮에는 걷고 밤에는 잔다. 휴가제도라면 남부럽지 않았는데, 이렇게 잘 쉬는 기분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일상을 거들어주는 누군가가 있고, 주위 모두가 회복을 응원한다는 점이 쉼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쉬고 나면 복귀할 자리가 있고 쉬는 동안 소득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은 쉼의 시작일 뿐이었다.
-
세상읽기 이제 문제를 일으킵시다 단식투쟁 중입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봄을 맞겠다고, 이제 16일째네요. 얼마 전 한 단체채팅방에 제 단식 소식이 올라왔어요. 오래전 인연으로 걸쳐만 있던 방이었습니다. 반가워하기도 놀라워하기도 하는 댓글이 이어지다가 대화가 끊겼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좋지 않은 법”이고, 채팅방에서 얘기하기에는 “너무 정치적 내용”이라는 댓글이 올라오면서입니다.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누구나 차별은 좋지 않은 거라 배우고, 차별하지 말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차별하지 말자는 법이 ‘좋지 않은 법’이 돼버렸을까요? 정치인들이 차별금지법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피해온 탓입니다.
-
세상읽기 여가부 폐지의 반대말 성평등을 위해서는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윤석열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고집은 한때 유행했던 광고 문구를 떠올리게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여가부가 파견한 공무원은 받지 않았고 업무보고는 30분 만에 끝냈다. 이미 없는 부처로 취급하는 수준이다. 성평등 실현을 위해 전담 부처가 필요하다는 점은 국제사회에서 상식이다. ‘역사적 소명’을 다해 축하받으며 전담 기구가 사라졌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이제 겨우 20년을 넘긴 여가부가 소명을 다했을 리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심경이 복잡했다. 막무가내로 몰아가는 이 정부와 싸워야겠는데, 여가부를 지키고 싶냐면 마음이 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세상읽기 사소한 희망 대선과 사회운동에 관한 고민을 나누는 집담회가 있었다. 서른 명 남짓 활동가들이 모여 토론을 했다. “운동이 망했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말해놓고 내가 놀랐다. 나는 지금껏 운동이 망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활동가들이 머리로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 내뱉는 말이 ‘운동이 망했다’는 평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깨달았다. 나는 지금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아서 막막하고 때로는 화가 나고, 조금 자주 지치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