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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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나에게 노동이란 누구는 노래를 했고 누구는 악기를 연주했다.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하는 사람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생 그래프를 그리느라 진지한 사람, 혓바닥을 이용해 컴퓨터에 스토리를 입력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진집 제목은 <이것도 노동이다>. 말하고 싶은 바가 선명하다. 그것도 노동이라고 맞장구치기는 어렵지 않다. 무언가 해내는 인간의 보편적 활동을 우리는 노동이라 불러왔다. 가수, 연주자, 감독, 작가와 같은 직업의 이름으로 그런 활동을 분류하듯 우리가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에 노동은 꽤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도 사진 속 인물들에서 자꾸 ‘장애인’이 보이는 것은, ‘장애’와 ‘노동’을 이질적으로 느끼게 하는 오랜 습속 탓이다. 일-‘할 수 없는(dis-abled)’ 몸으로 간주되어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되어 온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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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의 대안을 조직하자 봄이 오고 있을까? 반도체 시장에 봄이 온다는 기사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윤석열 대통령 말마따나 반도체는 “우리의 생활이고, 안보고, 산업경제 그 자체”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그렇다 보니 불확실성도 점점 커진다. 누구도 봄을 자신 있게 전망하기 어렵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질문은 다음에 있다. 반도체 시장에 봄이 오면 우리 삶에도 봄이 오나. 연말 윤 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고용률이 높고 실업률이 낮다”는 성과를 내세웠다. 하지만 늘어난 취업자 수 분포를 보면 이런 모습이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청년, 돌봄일을 하는 여성, 여기저기 60세 이상 노인. 이들 중 자신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고 마음 놓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임금은 낮고 일은 고된데 갑질도 빈번하다. 그래서 구직 포기 청년이 늘어나니 실업률이 낮다. 다른 한편으로는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앱을 쳐다보느라 봄을 기다릴 시간조차 없다. 일해서 빚 갚을 기회는 점점 사라지는데 빚을 갚아야 하니 닥치는 대로 일해야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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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누가 인권위를 이렇게 만들었나 하필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 12월10일이라 인권활동가는 연말이면 괴롭다. 저마다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일에 인권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일이 뒤섞이니 이런 식이다. 나 열심히 살았는데 세상 왜 이래? 올해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한다. 12월8일 인권단체들은 ‘경로이탈 국가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을 발족했다. 말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것을 넘어 피해자가 진정하거나 긴급구제를 신청할 때 손쉽게 기각하려는 운영규칙 개악이 인권위에서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임명된 이충상, 김용원 두 상임위원이 경로이탈을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와 양상이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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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 존재선언 한 남성이 한 여성의 목을 졸라 제압한다. 사람의 세계에서는 수긍될 리 없는 상황이, 그 남성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고 그 여성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조건에서는 ‘적법 절차’가 되어버린다. 가혹행위를 금지하고 여성을 단속할 때는 여성 직원이 포함되도록 하는 규칙이 있어도 ‘불법’을 단속한다는 명분이 모든 상황을 정당화한다. 20년 전 만들어진 고용허가제 아래 이어진 일이다. 고용허가제는 인력이 부족한 업종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보내는 나라가 한국어시험과 기능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의 명단을 한국에 주면, 고용 허가를 받은 사업주가 명단을 보고 사람을 고른다. 선택된 사람은 한국으로 들어와 이주노동자가 된다. 단 체류 기간이 제한되어 있다. 첫 계약은 3년, 최장 9년8개월까지 일할 수 있다. 정주는 금지된다. 반드시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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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정의가 시작될 자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 언제나 비슷한 구도다. 이스라엘 정부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또는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군사작전과 방화로 집을 빼앗기고 쫓겨난다. 도시에서 한두 사람이 총격을 당하는 일은 일상이다.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물과 전기는 언제나 부족하다. 조직되거나 조직되지 않은 저항이 이어진다. 돌을 던지거나 행진을 하거나 무장하여 일어난다. 이스라엘 군대의 집중 공격이 시작된다. 병원과 학교가 포격을 당하고 가족과 이웃이 죽임을 당한다. 유엔이 제지하기 위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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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인권운동가는 위장되지 않는다 뒤끝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이후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인권운동가로 위장한다는데, 웃어넘기려니 숱한 조작 사건이 떠올라 섬뜩했고, 진지하게 반응하려니 도무지 진지한 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딘가 암약하고 있을 공산전체주의 세력보다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윤 대통령의 세계관을 불안해한다. 정부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한들 역사가 철거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서준식을 떠올렸다. 그는 ‘인권운동사랑방’을 만든 활동가 중 한 명이다. 박근혜 퇴진 촛불이 한창이던 2017년 1월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이 “사복을 입은 채로 조사를 받고, 난방이 가능한 구치소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서준식씨를 비롯한 인권운동가들의 노력” 덕분임을 환기하며 ‘민주주의의 품격’을 말하고 있었다. 많은 인권활동가들이 감옥인권운동을 키우고 이어왔지만 그 출발선에 있던 서준식은 따로 언급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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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가 우리를 믿을 수 있을 때 대학로에서 흉기를 들고 배회, 괴성을 지른다는 신고, 60대 남성 체포. 홈리스 야학 학생이 피의자로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는 소식에 놀라 동영상을 찾아봤다. 홈리스행동과의 인연으로 가끔 만났던 그를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었다.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를 때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난감했던 기억도 스쳤다. 그의 행동이 오인됐을 것을 속상해하다가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거리에 칼을 들고나오는 행위만으로도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타인의 안전이 위협당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을 통제할 방법을 누구나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러나 그를 특수협박죄로 구속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타인을 협박할 의도로 흉기를 들었다고 몰아세우면,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알게 될까? 길을 걷다가 공포를 느꼈던 이들에게 당신이 협박을 당했다고 말해주면 회복에 이르게 될까? 국가가 공권력을 과시하는 것 외에 다른 효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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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정전체제 70년, 평화를 다르게 상상하기 전쟁은 멈췄으나 끝나지는 않은, 70년이 되도록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경험은 한반도가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전체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다.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경보가 불쑥 울릴 때 전쟁을 떠올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전쟁이 멈춘 지도 오래라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추상적인 수준을 맴돈다. 그런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전쟁을 끝내자고 주장하면 반국가세력이라 말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전쟁을 하자는 나라인가. 말이 안 될 말을 대놓고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이 있다면 싸울 힘을 길러야 한다는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미국의 핵자산을 공개적으로 한국 영토에 끌어들이는 일까지 벌어진다. 문재인 정부는 최소한 북을 ‘적’으로 명시하진 않았다. 그러나 ‘자주국방’을 대안으로 여기며 역대 규모로 군사비를 증강했다. 미국에 의존하는 안보로부터 벗어나자는 취지였더라도 북에는 똑같은 위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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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잠들어 있는 생명권을 깨우라 27일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기일이다. 나는 파면 결정만큼 기대하는 것이 또 있다. 헌법재판소가 생명권을 살려내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안전을 권리로 인식하게 됐다. 국가라면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감각. 촛불 이후 국회 개헌특위와 대통령 개헌안 모두가 생명권을 명시한 배경이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없던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를 통해 생명권이 기본권임을 밝혀왔다. 권리가 추상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움직이게 하는 일이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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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전세라는 사기 몇년 전 지인이 전세사기를 당했다. 마주칠 때마다 타들어가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고생스러웠지만 소송으로 전세금을 찾아 다행, 하필 이상한 사람한테 걸려 운도 없다고만 생각했다. 전세사기 피해 사례가 쏟아져나오는 요즘, 거꾸로였음을 깨달았다. 이사 나오는 날이면 꼬박꼬박 전세금이 통장에 들어왔던 내가 지독히 운이 좋았다. 전세는 돈을 빌려주고 집을 빌리는 계약이다. 임대인은 이자 없이 돈을 빌리고 세입자는 임대료 없이 거주하니 그럴싸하다. 그러나 채무자가 언제나 갑이다. 집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못 하나 박는 것까지 참견할 수 있었고, 전세금을 올리든 월세로 바꾸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어렵다 하면 내보내면 그만이었다. 세입자는 내보내도 문제인데 못 나가도 문제였다. 다음 세입자를 구해놓고 나가라거나 법대로 하라거나, 채무자가 오히려 큰소리쳤다. 집에 발이 묶이거나, 복잡한 절차를 밟아 이사를 나가거나, 까딱 전세금을 잃게 되면 집을 잘못 구한 자기를 책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입자는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아니라 존엄을 저당 잡힌 세입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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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기후부정의에 대한 청구서 정부가 2분기 공공요금 인상을 유보했다. 한숨 돌렸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한전과 가스공사 적자를 들먹이며 이내 인상된 고지서를 보낼 것이다. 적자 구조에 대한 근본적 분석과 대안은 없고, 범국민 에너지 절약 운동 같은 걸 또 내놓을 것이다. 많이 쓰고 덜 내는 게 문제라는 듯 말이다. 그런데 이게 기후위기와 맞물려있는 문제라 마음이 또 편치 않다. 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경로는 화석연료를 태우는 에너지 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 에너지가 무한한 듯 쓰고 버리기를 반복하던 삶의 양식도 바꿔야 한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매우 싼 편이다. 한 국가의 전기사용량을 인구수로 나눈 1인당 전기사용량을 비교하면 한국은 세계 3위다. 익숙한 시장 논리로 두 가지 사실을 연결하면 ‘싸니까 많이 쓴다’는 결론이 굳어지고 ‘덜 쓰려면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고지서에 찍힌 요금만 걱정하는 게 무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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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불똥에 대하여 “불똥은 면하겠습니다. ㅎㅎㅎ” 경찰청 경비국에서 일하는 A는 기분이 좋았다. 이틀 전 이태원 압사 사고의 불똥이 경비국으로 튀면 어쩌나 걱정하던 중이었다. 어제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어 오늘 대통령실까지 경찰이 선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기자들에게 말해줬다. 이게 다 자기가 “공직과 장관실에 전달한 결과”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던 서울청 정보부장 B도 흐뭇했다. 어제부터 대응 논리를 만들어 경찰청 정보국으로 전달한 효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력배치가 미흡했다는 시각으로 흐르면 대통령실 이전까지 문제가 번질 텐데 자치단체 책임이 부각되도록 수사 드라이브를 걸어야지. 오늘은 경비국 후배들에게 “경찰은 안전확보의 1차 책임자가 아니”라며 “행사에 경찰이 안전유지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관행을 깨”야 한다는 메시지도 보내뒀다. 그 시각에도 이태원 참사 부상자가 사망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머릿속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