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은
저술가·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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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왜 우린 기계 앞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됐을까 얼마 전 식당들이 모두 닫은 시간에 주변을 둘러보다가 샌드위치 무인 판매점을 발견했다. 들어서니 삼면으로 식품이 진열돼 있고, 카운터 자리에는 사람 대신 키오스크가 있었다. 전에 나보다 연배가 위인 여성과 이 프랜차이즈에 대한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났다. 그는 집 앞에 이 가게가 생겼기에 들어가 보았지만 한참 둘러보다가 그냥 나왔다고 했다. 사람이 있어야 이것저것 물어보고 좋은 상품을 고르는데, 물어볼 수가 없는 게 답답했고 그래서 다신 가지 않았다고 했다. 과연 상품 이름으로 무엇이 들어간 샌드위치인 줄 대강은 알 수 있었지만, 불투명한 포장지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매장만 오프라인에 있지, 온라인 쇼핑과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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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오늘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에 출연한 댄서 아이키를 처음 알게 된 건 한 트윗 타래를 읽으면서였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나자마자 방송에서 아이키를 ‘유부녀’, ‘엄마’로만 호출하는 게 무척 아쉽다는 내용이었다. 아이키가 누군지 몰랐지만 방송의 접근 방식이 훤히 그려지는 듯했다. 비혼 인터뷰이로 방송에 나갔을 때였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다른 말을 유도하는 것에 당황했다. 보아하니 돈도 없고 집도 없어 결혼을 못한다는 내용의 코멘트를 원했지만, 끝까지 기싸움을 하면서 원하는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촬영이 끝나고 함께 있던 동세대의 여성이 사실은, 하고 운을 떼며 ‘윗선’에서 비혼을 너무 ‘미화’하지 말라고 정해 뒀다고 말해 줬다. 그때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전형적인 이미지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깨달았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불쌍하게 그려지고, 제도적으로 지원해서 결혼에 안착시켜야 하는 존재로 취급받은 게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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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횡설수설 이 지면에 글을 쓰는 한 해 남짓 동안에도 신변상 변화가 있었다. 직장 계약종료 후 직업훈련을 받으며 실업급여를 타다가 다시 학교에 들어갔다. 어제자(2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부모의 재력과 학력, 사회적 지위는 자녀의 학벌, 학력, 이후의 소득에 영향을 줘 ‘불평등의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피부로 느껴온 현실이 공론화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나의 소외감, 맞지 않는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불편감을 사회적으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빈곤 가구에서 나고 자라 우여곡절 끝에 서울의 명문대 수업 시간에 앉아 있다. 덕분에 내게는 이동해온 자리들을 비교할 능력이 있다. 고등교육의 장이 계급화되어 있다는 것은 같이 앉아있는 사람들이 나와 다른 언어를 쓴다는 의미다. 학생들이 대개 전문직 또는 대기업에 종사하는 부모를 뒀고, 교수는 이들의 배경을 당연시하며 강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마음 밑바닥부터 약간의 불안함이 차오르며 긴장상태가 된다. ‘가능한 한 똑바로 말해야지.’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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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돌멩이로 국 끓이는 법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서울비전 2030’을 발표했다. 발표를 들으며 정치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사다리’ 타령이, 그중에서도 ‘주거 사다리’ 타령이 특히나 답답했다. ‘일부’ 30대 중반 또래들은 요즘 한창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딱히 집을 사고 싶지 않은 나도 그런 정보에 노출된다. 그걸 보며 내가 정말 의아한 건, 한국 사회가 신축 아파트 ‘투자’에 한 번만 성공하면 몇 억원의 차익을 거두는 건 일도 아니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돈벌이를 시작하고 돈의 가치를 가늠해 본 적이 있다. 그해 월급이 약 70만원이었는데, 한 달에 50만원씩 16년 넘게 모아야 1억원이 됐다. 그러나 부동산에서 1억원은 돈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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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돈이 사람을 돌볼 수 없다 아이, 하면 바로 돈 타령을 하는 것은 새롭지도 않다. 통계청과 보건사회연구소 등의 연구 자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동아일보 2019 대한민국 양육비 계산기를 돌려 보면 이제 평균 양육 비용은 약 3억8000만원으로 나온다. 임신, 출산, 육아 문제를 돈으로 환산해 해결할 수 있을까? 일부 정책 입안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경남 창원시는 ‘결혼드림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하면 1억원을 대출해 주고 10년 안에 세 명의 아이를 낳으면 탕감해 준다는 계획이다. 충청남도에는 ‘충남형 더 행복한 주택’이 있다. 이쪽은 아이 둘을 낳으면 임대료가 공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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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당위와 삶이 괴리된 ‘빈말’ 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받을 때였다. 점심 때마다 김밥을 사다 먹고 있었는데, 하루는 중년 여성들의 도시락 팀에서 나를 불러다 앉혔다. 싸온 것이 없다고 면구스러워하는 내게 숟가락을 쥐여주더니, 내 앞에 반찬 뚜껑을 놓고 밥을 한 술씩 덜어주고 하나씩 가져온 반찬을 공개했다. 반찬에 얽힌 스토리가 공유되면 거기에 김치 맛이 참 잘 들었다, 배추가 달다, 이런 칭찬이 한마디씩 따라붙었다. 밥그릇을 비우자 제철 사과가 두어 개 나왔다. 그걸로 입가심을 하고 나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들이 움직였다. 먹은 흔적이 금세 사라지고 책상이 깨끗해졌다.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어릴 적 밥상 앞에서 부친이 음식 타박을 하다가 TV 보러 가면 남은 식구들끼리 서로 치우기 싫어하던 그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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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인류 평화를 위해 잘 먹자 최저임금으로 ‘치킨 한 마리’ 정도는 부담없이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노동운동계의 구호가 무슨 뜻인 줄 안다. 시간을 조각내 값싸게 팔며 아르바이트 끝나고 치킨 사주는 회식 자리가 설레도록 좋았다. 하지만 이젠 치킨 말고 다른 얘기도 하고 싶다. 일하다 너무 배가 고파서 자투리 식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다 혼났던 건 내 인생의 강렬한 기억 중 하나다. 그게 남은 재료로 만든 거란 걸 알고 사장님이 금방 사과했는데, 그래도 계속 눈물이 났다. 돌이켜보면 기숙사에는 식당도 주방도 없고, 음식을 가져올 집도 없고, 파는 건 시급에 비해 너무 비싼 그 모든 여건이 갑자기 나를 떠미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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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누가 우리를 이간질하는가 “우리는 노동 현장에서든 가정이나 침대에서든 우리가 한 노동에 걸맞은 돈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 전체는 맨움(manwom)에 대한 경제적 착취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위 문장은 여성과 남성이 정확히 반대의 위치에서 살아간다고 가정한 판타지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쓴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1977년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의 일부다. 맨움은 이 작품에서 남성을 뜻하는 고유명사이며, 소설 속 인물이 남성의 ‘독박’ 돌봄에 항의하는 대목이다. 2015년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이름은 이 소설에서 나왔다. 현실이 반대라고 가정한 채 쏟아진 언어들. 그제서야 한국 사회는 성차별이란 단어를 정오의 태양 아래로 소환했고, 난리가 났다. 다들 잊었나? 그다음이 처참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가부장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감화되는가 싶더니, 권력은 한 톨도 내주지 않았다. 2018년 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얼굴이 전국 지도를 둘러싼 인포그래픽 형식으로 공개됐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중년 남성 정치인’ 젠더 표현을 적확하게 구현해 낸 얼굴들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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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1인 가구 문제는 비혼공동체의 문제 열다섯 살, 집을 나오기로 결심하고 밤거리를 헤맨 적이 있다. 모르는 ‘언니’네 집에 가면 하루는 재워준다고 했는데, 선뜻 가긴 어려웠다. 반 친구가 집을 나와 우리 집에 온 일도 있다. 갈 데 없어 난감하던 기억 때문에 오라고는 했는데, 집답지 않은 우리 집이 면구스러웠다. 좁은 방에 자려고 누워 ‘가족 욕은 금기’라고 서로 생각하는 게 분명한 상태로 머뭇거리며 가족 문제를 얘기했다. 집 문제를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는 청소년을 도우려 한 적도 있다. 주거복지센터를 통해 같이 임대주택을 찾아봤지만 열일곱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보다 능력 있을 ‘어른’을 찾아가 사적인 도움을 청해보기도 했는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점점 난감한 관계가 됐다. 서서히 연락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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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가난한 사람의 ‘나이키 운동화’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를 비판하면 그 글이 어떤 내용이든 인공지능(AI)이 쓰는 것처럼 비슷비슷한 댓글이 달린다. 아무튼 부정수급자를 일제 ‘검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수급에 대한 제도적 검열 장치는 이미 많고 사회적 비난과 낙인이 있음에도, 수급자 상태는 ‘멀쩡한’ 일을 하기에 최악의 조건임에도, 충분히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수급자들이 제도의 도움과 자력구제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직장은 그저 월급 인출기인가? 직장이란 존재를 증명하는 명함,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신용, 살아가며 필요한 인맥을 보장한다. 수급자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시민권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인구의 3.4%인 극빈계층으로 산다는 것은 중산층의 삶과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는 닫힌 세계 안에 사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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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안전하게 공동체 하기 세상은 위험하다. 조금이라도 가진 것들은 못되게 굴기 일쑤다. 내가 정말로 안전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이런 욕망을 가진 사람이 가족주의자가 되는 것이겠지만, 가족이 아동·청소년과 여성에게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은 명료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연중 가장 가족적인 명절에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약 두 배로 증가한다.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내가 만들어야지. 페미니즘을 알게 되고 이거다 싶었다. 페미니스트를 모으면 안전한 공동체가 될 것 같았다. 3개월 만에 1000여명의 페미니스트가 모였고, 오프라인에서 100여명씩 모여 집단적 고양감에 취하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온갖 분쟁과 논란 속에 규칙을 만들고 문제를 처리하는 데 1년 반을 썼다. 번아웃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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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동네 미용실, 집주인, 세입자 마을의 일원이 되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 관심이 많다. 예를 들면 단골 미용실을 만들고 싶다. 미용실은 말하자면 나이와 젠더와 계급, 지역색 같은 온갖 조건이 교차하고 그에 따라 선택지와 결과물이 달라지는 전쟁터다. 나 같은 사람이 맘 편하기 쉽지 않다. 여기는 서울에서 살게 된 다섯 번째 동네다. 보수적이고 겁 많은 내가 가까운 역 근처 프랜차이즈 미용실부터 조심조심 시도해 보고 있을 때, 용감한 식구들은 ‘두발자유’라는 시원시원한 미용실에서 ‘투블록’을 치고, ‘뽀꾸레’라는 개성 넘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말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