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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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광장 시민-정당의 ‘연합정치’ 공동선언 지난 9일 광장대선정치연합시민연대,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이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내란 세력을 청산하며 사회대개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힘을 모으며 이재명 후보를 ‘광장 대선 후보’로 지지한다는 연합정치 선언이었다. 이 연합정치 실험은 민주 헌정 수호를 위한 ‘탄핵 연합’에서 출발했다. 계엄군을 저지하고 그 후 이어진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 대통령 탄핵 소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 사법기관의 내란 주동자 구속 수사 등에서 광장 시민과 정당의 연대와 협력은 놀랄 만한 힘을 발휘했다. 광장을 중심으로 한 연합정치의 힘이 아니었으면 민주주의 회복은 꿈도 꾸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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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시민정치’가 계속 필요한 이유 윤석열의 내란을 저지한 가장 큰 힘은 시민정치였다. 헌법재판소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면서 그런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시민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 민주공화국을 지켰다는 지적은 옳다. 성별, 지역, 계층을 넘어 공화국의 시민들이 나섰고, 심지어 ‘제복 입은 시민들’까지 계엄을 멈추는 데 한몫했다. 내란 세력을 제압하고, 윤석열을 탄핵한 것도 시민의 힘으로 이룬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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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윤석열의 하이브리드형 쿠데타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 제3세계 국가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탈식민 국가의 정치·경제 불안정, 냉전 체제를 지배하던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잘 조직된 군대의 권력 확장 등의 요인으로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흔했다. 우리도 그런 국가의 하나였다. 박정희의 5·16과 유신 쿠데타, 전두환의 12·12 쿠데타는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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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신속한 탄핵, 엄정한 처벌, 철저한 개혁 윤석열 탄핵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에 나와 겁먹은 표정으로 혹세무민하는 그의 선동이 도를 넘어 세상을 불안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망월폐견(望月吠犬)이라 하던가? ‘한 마리가 짖으니 두 마리 개가 짖고 만 마리 개가 따라 짖는’ 격이다. 지난 주말은 광주를 시끄럽게 한 모양이다. 그가 자기 잘못에 대한 추궁을 가리켜 ‘호수 위에 뜬 달그림자를 쫓는 것’이라며 눙치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았는데, 나는 그에게 ‘달그림자를 보고 짖는 윤석열’이라는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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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윤석열, 내란 선동을 멈추라 윤석열은 비루하다. 말과 행동이 너절하고 지저분하다. 그는 비상계엄이 자기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게 되자 온갖 거짓말, 궤변, 책임 전가, 말 바꾸기, 공갈 협박을 일삼으며 추태를 보였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가 정치에 경고하려는 것이었다는 설명이나 두 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는 변명은 아재 개그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습다 못해 서글픈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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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윤석열의 ‘부질없는 독전’ 선언 이후 윤석열의 독전(督戰) 선언이 나왔다. “잠시 멈춰 서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탄핵 소추 결정 후 그가 내뱉은 첫 번째 소리다. 어떻게 저런 천연덕스러운 말을 할 수 있는지 속이 메스껍다. 자기 맘대로 군인과 경찰을 풀어 정치인을 잡아다 가두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하며, 언론의 주리를 틀라 하고, 국회와 선관위를 군홧발로 짓밟은 내란 수괴가 다시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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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윤 대통령, 주술정치를 벗어야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주술정치에 대한 걱정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를 염려하는 것은, 주술은 종교와 달리 목표의 합리성이나 수단의 윤리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뜻에 따라 이타적으로 살라고 하는 종교와 달리 주술은 신에 기대어 자기 개인, 가족 혹은 집단의 이익을 이기적으로 추구한다. 주술은 개별 이익을 좇기에 바쁠 뿐, 공동체의 선 따위는 안중에 없다. 종교가 보편주의라면 주술은 특수이익을 찾아다니는 개별주의다. 우리가 주술의 정치 지배를 경계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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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퇴진을 넘어 사회대개혁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남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의 지지율은 바닥이며 회복탄력성도 보이지 않는다. 오지랖 부인의 저지레로 남은 한 줌 지지마저 까먹는 것도 시간문제다. 지난주에도 궁중 담장을 넘어온 패설(稗說)이 뉴스를 뒤덮었다. 우리는 그녀가 제시한 지문을 읽고 “여기에서 말하는 ‘오빠’는 누구를 가리키는가?”라는 문제를 풀어야 했다. 이 ‘킬러문항’의 답은 실로 난해한 것이어서 그것을 제대로 쓴 사람은 없었다. 국민 오답 사태에 무안했거나 아니면 터무니없는 문제에 뿔이 났던지 보수언론의 한 칼럼도 윤 대통령에게 ‘나라인가 아내인가’를 택하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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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임종석의 ‘도발적 발제’ 임종석이 ‘두 개의 국가론’을 저렇게 내지른 배경이 뭘까? 지난 주말 논단은 온통 그의 표현대로, 임종석의 ‘도발적 발제’가 차지했다. “통일, 하지 맙시다”로 시작하는 그의 2024년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사는 ‘통일’ 논의는 부질없으니 더 하지 말고, 지금부터는 ‘평화’에 대해서나 고민하자는 것이었다. 못할 말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그리고 최근에 들어와서는 부쩍 자주 등장하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그가 왜, 지금, 저런 자리에서, 다짜고짜 얘기를 꺼내는 것인지는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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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재명의 민주당’, 의미와 과제 민주당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했다. ‘민주당의 이재명’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란 사실 그리 좋은 말은 아니다. 정당이 책임정치의 주체라는 교과서 기준으로 보면, 어떤 정당의 누구란 표현은 자연스러우나 누구의 정당이라는 것은 그러하지 못하다. 그것은 정당의 개인화라는 뜻으로도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주목한다. 왜냐하면 그 말이 민주당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계기로 어떤 변화를 하려는가? 어디에 자신을 세우려고 하며 어디로 가려는가? ‘이재명의 민주당’이란 이런 궁금한 것들에 대해 귀띔해 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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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박정희 동상 세우지 마라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구의 관문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려고 한다. 속도전이다. 벌써 조례를 만들었고 예산도 배정했다. 반대 목소리가 있지만 개의치 않겠단다. 올여름에 기승을 부린 ‘도깨비 장마’처럼 습하고 어두운 소식이다. 이 이념 과잉의 도시에 잿빛 구름이 몰려온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랫말처럼 “장맛비 구름이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 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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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윤 대통령, ‘6·29선언’을 하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잃어버린 것 같다. 총선 후 여론조사를 보니, 30%대에 턱걸이한 사례도 있으나 대부분 20%대에서 헤매고 있다. 이건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았고 야당과 협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운영의 일방주의와 독선의 대가다. 검찰의 힘을 권력의 기반으로 삼은 그 태생적 본질이 바뀌지 않은 탓이다. 그가 치켜든 공정과 정의라는 깃발이 부메랑이 되어 그 자신을 위선의 표상으로 만들어 버린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