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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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임종석의 ‘도발적 발제’ 임종석이 ‘두 개의 국가론’을 저렇게 내지른 배경이 뭘까? 지난 주말 논단은 온통 그의 표현대로, 임종석의 ‘도발적 발제’가 차지했다. “통일, 하지 맙시다”로 시작하는 그의 2024년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사는 ‘통일’ 논의는 부질없으니 더 하지 말고, 지금부터는 ‘평화’에 대해서나 고민하자는 것이었다. 못할 말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그리고 최근에 들어와서는 부쩍 자주 등장하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그가 왜, 지금, 저런 자리에서, 다짜고짜 얘기를 꺼내는 것인지는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종석 자신의 설명은 이랬다. 북한이 올해 초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개의 국가’로 규정하고 대남사업기구 정리, 조국 통일 3대 원칙 폐지, 조국 통일 3대 헌장 기념탑 철거 등 ‘통일 지우기’를 하고 있고 남북이 맺은 모든 합의를 사실상 무효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 논의를 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는 그런 성향이 심하여 통일에 대한 거부감까지 보이는 상황에서 통일을 얘기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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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재명의 민주당’, 의미와 과제 민주당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했다. ‘민주당의 이재명’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란 사실 그리 좋은 말은 아니다. 정당이 책임정치의 주체라는 교과서 기준으로 보면, 어떤 정당의 누구란 표현은 자연스러우나 누구의 정당이라는 것은 그러하지 못하다. 그것은 정당의 개인화라는 뜻으로도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주목한다. 왜냐하면 그 말이 민주당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계기로 어떤 변화를 하려는가? 어디에 자신을 세우려고 하며 어디로 가려는가? ‘이재명의 민주당’이란 이런 궁금한 것들에 대해 귀띔해 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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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박정희 동상 세우지 마라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구의 관문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려고 한다. 속도전이다. 벌써 조례를 만들었고 예산도 배정했다. 반대 목소리가 있지만 개의치 않겠단다. 올여름에 기승을 부린 ‘도깨비 장마’처럼 습하고 어두운 소식이다. 이 이념 과잉의 도시에 잿빛 구름이 몰려온다. 정태춘·박은옥의 노랫말처럼 “장맛비 구름이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 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내리고 있다. 오래전 누군가 박정희를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 했다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이 도시에서 그는 온전한 신(神)이다. 그의 초상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열심히 기복(祈福)하는 모습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이 들어서면 대구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발아래를 지나게 될 것이다. 싫어도 그 ‘신’의 시선을 피할 방법은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곳은 가슴 벅찬 경배의 순례지겠으나, 그의 그림자만 봐도 아픈 기억을 소환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약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라는 세 글자에 가위가 눌리는 사람들도 동대구역에 내리면 꼼짝없이 그의 동상 앞을 지나가야 한다. 그건 분명 폭력이다. 공포의 신탁(神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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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윤 대통령, ‘6·29선언’을 하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잃어버린 것 같다. 총선 후 여론조사를 보니, 30%대에 턱걸이한 사례도 있으나 대부분 20%대에서 헤매고 있다. 이건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았고 야당과 협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운영의 일방주의와 독선의 대가다. 검찰의 힘을 권력의 기반으로 삼은 그 태생적 본질이 바뀌지 않은 탓이다. 그가 치켜든 공정과 정의라는 깃발이 부메랑이 되어 그 자신을 위선의 표상으로 만들어 버린 결과다. 이런 것들이 지난 총선에서 태풍을 일으켜 윤석열 대통령을 심판했다. 그 결과,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이 국회 다수파가 된 이른바 분할정부(a divided government) 구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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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우원식 구박이 대중정당 노선인가? 국회의장을 맡기로 한 우원식을 민주당 일부 당원들이 구박하는 걸 보기가 참 민망하다. 저것이 정녕코 당원 주권의 표현이란 말인가? 나는 우원식과 특별한 인연이 없다. 가끔 그가 휴대전화를 어리바리 잘못 눌러서 나와 이름이 같은 민노총 김태일 사무총장에게 할 전화를 나에게 걸어놓고 서로 멋쩍게 웃던 기억이 전부다. 어느 날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들이 우원식을 국회의장으로 뽑았다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무슨 일인지 당 내부가 계속 시끄럽다. 당원이 당의 주인이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러나 우원식을 지지한 민주당 국회의원을 수박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누구인지를 샅샅이 뒤져 찾아내겠다고까지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우원식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의 정체성과 진정성은 의심치 않는다고 한다는데 그러면 됐지 왜 논란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당원 대중과 원내 의원의 선호가 달라서 당원들이 불만을 표할 수는 있겠으나 선호의 차이 문제로 혐오까지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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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검찰 정권’이 다시 등장하지 않도록 윤석열, 한동훈이 “내가 수사해 봐서 잘 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녀서 조롱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말이 아니라 검사 출신들이 책임 있는 자리를 맡으며 흔히 내뱉는 말이었다. 그걸 듣는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1960, 70년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쿠데타 군인들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폭력으로 사회적 평화를 강압하는 일에 동원된 경험이 있으므로 민간 정치에 개입하여 자본축적의 위기를 잘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생각은 당시 군부 조직에 만연했던 일종의 믿음 혹은 문화 같은 것이었다. 그런 조직 문화를 군부 정치 연구자들은 ‘신직업주의(neo-professionalism)’라고 불렀으며 그것을 쿠데타 원인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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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의대 교수들이 참스승이 되려면 지난 주말,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한꺼번에 사직서를 낼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면서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윤석열 정부가 어떤 제재를 가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제자의 안위를 염려하고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스승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1980년대,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학생들을 처벌하라는 정권의 지시를 뿌리치면서 김준엽 고려대 총장은 총장직을 스스로 던져버렸다.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학교를 떠나기에 앞서 참석한 그의 마지막 졸업식장은 오히려 스승을 지키겠다는 제자들의 절규로 눈물바다가 되었다. 제자를 지키는 일에 자기희생을 주저하지 않았던 그는 또한 제자들에게 절제를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참스승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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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재명, ‘변방의 장수’ 정신을 잊었나 이재명은 가진 것 없는 ‘변방의 장수’를 자임하며 여의도로 들어왔다. 그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거머쥐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좋은 점이 많은 정치인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이재명은 모든 사안에 명쾌한 입장을 냈고, 무슨 일에든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극한 상황을 견디며 책임윤리를 다한 김대중의 끈질긴 권력의지, 놀랄 만한 용기로 장애물을 돌파한 김영삼의 담대함, 권력 투쟁의 냉정한 현실에서 평상심을 잃지 않은 김종필의 유장함, 역사의 격랑에 주저 없이 몸을 던지는 노무현의 열정이 다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으나 그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특히 그를 돋보이게 했던 것은 기동력이었다. 의표를 찌르는 신속한 판단이야말로 다른 정치인들을 압도하는 덕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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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굿바이 안철수’ 이후 안철수는 떠났다. ‘청춘 콘서트’의 환호, ‘제3 정치세력’의 전율을 뒤로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딸들에게 모든 걸 나누어주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리어왕의 신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했던 응원도, ‘그랬더라면 지금 의미 있는 대안일 텐데’라는 회한도 이제는 다 부질없는 넋두리다. ‘굿바이 안철수.’ 그에게 정치적 다양성 실현을 기대했던 시민들은 미련 없이 작별 인사를 보냈다. 그의 실험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거대 양당의 진영 대결이 만드는 혐오와 배제 정치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 절망의 현실에서 그는 하나의 반면교사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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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굿바이 안철수’ 이후 안철수는 떠났다. ‘청춘 콘서트’의 환호, ‘제3 정치세력’의 전율을 뒤로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딸들에게 모든 걸 나누어주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리어왕의 신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했던 응원도, ‘그랬더라면 지금 의미 있는 대안일 텐데’라는 회한도 이제는 다 부질없는 넋두리다. ‘굿바이 안철수.’ 그에게 정치적 다양성 실현을 기대했던 시민들은 미련 없이 작별 인사를 보냈다. 그의 실험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거대 양당의 진영 대결이 만드는 혐오와 배제 정치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 절망의 현실에서 그는 하나의 반면교사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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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재명, 다시 사과하는 일이 없기를 선거제도를 두고 민주당의 시름이 깊어지는 것 같다. 선거제도 문제는 그것이 놓여 있는 맥락과 경로, 그리고 참여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무겁게 생각해야 하는 기억 하나를 깨우치고자 한다. 대통령 선거운동이 뜨거워지던 때다. 2021년 11월11~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이틀에 걸쳐 고개를 숙였다. 그 전해에 있었던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든 것이 잘못이라는 사과였다. 사실, 이 후보의 사과는 저강도였다. “우리 당에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갈채(喝采)는 고강도였다. “민주당과 이재명이 달라졌다. 내로남불이라 했더니 아니구나. 지난날 잘못을 인정할 줄도 아네. 민주당이 변하고 있나 보다.” 이 후보의 사과로 유권자의 호의가 부쩍 커졌다. 내친김에 이 후보는 위성정당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위성정당방지법 제정을 민주당에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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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비만 고양이’에게 바란다 국민의힘 대구 국회의원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자기 당대표를 지낸 이준석에게 ‘비만 고양이’라 조롱을 당하고 있다. 그 말이 참 아픈 모양이다. ‘비만 고양이’란 주는 밥이나 먹고 햇볕 따신 창가에 앉아서 졸기나 하는 게으른 고양이라는 뜻이 아닌가? 주인의 눈치나 살피는 무능한 고양이 꼴이라는 비유다. 이보다 더한 능멸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준석이 쏴붙인 이 모욕에 한마디 대꾸하는 국회의원이 없다는 것이다. 이곳 국회의원들은 정말 어리바리한 살찐 고양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