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용
전남대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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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시대정신 & 실용주의 대선판에 자주 소환되는 두 개의 철학 개념이 있다. 실용주의와 시대정신이다. 특히 이번 대선은 두 개념의 프레임 전쟁이다. 먼저 윤석열이 올라타려는 시대정신부터 보자. 시대정신은 말 그대로 한 시대를 규정하는 정신이나 가치다. 그럼 어느 시대나 그 시대만의 고유한 지배적 가치가 있을까? 18세기 이전까지는 시대정신이란 말조차 없었다. 정신이 시대마다 다를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정신은 시대 초월적 보편 가치의 상징이었다. 헤겔은 시대마다 고유한 가치가 있고, 모든 가치는 변화 속에서 보편성을 축적한다고 생각한 첫 번째 학자다. 그 원본성을 인정해 영어권조차 시대정신을 독일어 차이트가이스트(Zeitgeist)라고 말한다. 헤겔은 19세기 초 유럽 문제를 분열로 파악하고, 이 분열을 통합하는 힘으로서 ‘자유의식의 확장’을 시대정신으로 삼는다. 헤겔 철학은 곧 자유의 철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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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순수의 시대, 증오의 노예들 순수! 순수 우리말 같다. 아니다. ‘다른 것이 전혀 섞이지 않았다’는 뜻의 한자말이다. 순수는 대체로 좋음을 형용하지만 ‘순수한 관계’에서 순수는 다르다. 영화 <순수의 시대>는 ‘순수’와 ‘시대’가 충돌하는 부조리극이다. ‘순수’는 단 한 사람, 전쟁 영웅 김민재의 한 차례 감정을 지시한다. 당시는 제도, 규범, 이익에 따라 사회적 관계를 이루고 사는 인륜의 시대다. 민재도 인륜적으로 살았고 성공했다. 그런 그가 순식간에 제도, 규범, 이익의 바깥에 있는 여인 가희에게 그야말로 순수하게 이끌린다. 인륜의 시대와 충돌한 그의 순수 감정은 죽음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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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민주주의와 그 적들 A는 탁월한 검찰이다. 이 명제가 참이라면 ‘A는 검찰이다’는 명제도 참이다. 이때 ‘A는 탁월한 사람이다’도 참일까? 아니다. 탁월함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의 자연적 속성이 아니다. 탁월한 검찰이 검찰로만 탁월할 뿐이다. ‘탁월함’이나 ‘좋음’과 같은 부사적 형용사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밀착되지 않는다. 영국의 철학자 윌리엄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것은 노란 새다’는 명제는 ‘이것은 새다’와 ‘이 새는 노랗다’는 명제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은 노란 새다’와 ‘새는 동물이다’는 명제로부터 ‘이것은 노란 동물이다’도 이끌어 낼 수 있다. 반면 ‘그는 좋은 배구선수다’는 명제는 ‘그는 배구선수다’와 ‘그는 좋다’로 분리될 수 없듯이 ‘그는 좋은 배구선수다’와 ‘배구선수는 사람이다’를 ‘그는 좋은 사람이다’로 결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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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평화정치를 위한 종전선언 2021년 12월9~10일. 6·25가 끝난다. 희망이고 전망이다. 제1회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Global Democracy Summit)가 열리게 될 그날, 앞뒤로 종전이 선언되길 바란다. 필드에서 전쟁은 끝난 지 오래다. 전쟁정치, 독재정치, 정치전쟁이 70년 넘게 종전을 지연시키고 있다.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바이든의 대선공약이다. 그는 트럼프가 구사한 정치전쟁을 민주주의 후퇴이자 위협으로 본다.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을 뒤섞은 정치의 전쟁화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세계민주주의연합을 제안한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하고 가상과 현실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진행될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부패, 인권침해, 불평등 증가, 기후위기, 팬데믹과 맞서 연합국이 함께 싸울 것을 구체적으로 결의하고, 약속을 이행하며 생긴 성공 스토리를 공유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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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두 혁명과 반혁명 두 혁명의 깃발이 보인다. 자본의 논리로 자본주의 심장에 빗금 긋는 혁명이다. 자본주의가 양육·증식한 주체들이 자본주의 정점을 향해 진군한다. 자본을 따라 가니 자본의 감시도 없다. 한 혁명은 (여)성혁명이다. 일부를 제외하고 기록된 역사는 남성의 세계였다. 자본주의 이전의 여성은 가정경제 틀에 묶여 있었다. 여성은 소비하고 소비될 뿐이었다. 반면 자본주의는 여성을 생산의 주체로 양성한다. 생산 주체가 된 여성은 이제 남성의 통제를 거부하는 (여)성혁명을 수행 중이다. 혁명 초기라 두 성 간의 감정적 심연이 깊어지고 있지만 곧 메울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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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삼성·현대보다 네이버·카카오 메타피직(Metaphysic)에서 메타버스(Metaverse)로 대전환이 일어난다. 초월적 본성이나 원본을 향한 형이상학적 열망은 차갑게 식은 지 오래다. 관계가 바뀌면 다 바뀐다는 것이 자명해지면서다. 모든 것은 서로 작용하고 변화한다. 상호작용 바깥에 변하지 않는 본질의 세계는 없거나 무의미하다. 의미의 세계는 관계와 더불어 변화하는 무수한 현상으로서 데이터의 세계, 곧 메타버스다. 메타(Meta)는 ‘~ 사이’ ‘~ 뒤에’ ‘~ 위에’를 뜻한다. 메타피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집을 만들며 생긴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300년이 지난 기원전 1세기경 처음으로 그의 전집을 편집 구성한 안드로니코스는 논리학, 윤리학, 정치학, 시학, 수사학, 자연학 순서로 배치했다. 그런 다음 이런 학문들의 궁극적인 원리에 해당하는 글들을 모아 ‘자연학 뒤에 위치하는 글들’이라는 뜻으로 메타피직(ta meta ta physika)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후 메타피직은 궁극의 원칙과 본질을 탐구하는 제1의 학문, 곧 형이상학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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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증오의 밭에서 꽃은 피지 않는다 (이준석) 현상이다. 고건, 안철수, 반기문, 윤석열에 이은 정치인 현상이다. 현상이 넘친다. 아니 넘치는 것이 현상이다. 넘치는 힘이 복잡한 사태를 휘감는다. 현상은 한낮의 암막커튼처럼 복잡한 정치 문제를 한 사람의 프리즘에 가둔다. (이준석) 현상은 이전과 다르다. 이전 현상은 모두 정치 바깥에서 정치하는 사람에게 쏠린 탈정치적 기대 효과였다. 내 편의 승리에 도움 될 만한 스타를 만들어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한다. 정치로 들어만 오면 별이 쏟아지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러나 고건, 반기문 현상은 거품처럼 꺼졌다. 안철수와 윤석열 현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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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트럼프가 돌아온다! 미국이 돌아왔다. 민주국가, 패권국가로. “지금 세계는 미국의 복귀를 환영하며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의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사실성과 타당성의 교차로에서 국제 질서와 정치 변동을 정확하게 읽어낸 말이다. 트럼프는 떠났다. 그는 미국의 자연스러운 민낯이었다. 그와 함께 자연상태에 빠졌던 미국은 착하지도 예쁘지도 않았다. 자연이 원래 그렇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자연 질서는 선악과 미추의 저편 논리다. 이 논리를 문화에 이식하면 잔인하고 끔찍해진다. 뒤처지고 가난하고 불편한 이웃을 누르고 버리는 세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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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박정희를 초대한 광주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13번째다. 세계적 예술축제지만 마냥 흥겹지는 않다. 처음 비엔날레의 문을 연 힘은 5·18이다. 세계 예술과 어울리며 상처가 치유되길 바랐다. 한쪽에선 안티 비엔날레도 열었다. 그래도 세계의 작가들이 광주로 왔다. 세계에 흩어져 있던 연대의 기억들이 예술작품이 되어 광주에 모인다. 광주비엔날레는 연대의 기억들이 연대를 이루는 전시였다. 곧 세계의 비엔날레로 성장한다. 그러다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가 점점 사라진다. 비엔날레가 광주에 묶여 자폐나 자위에 빠질 것을 염려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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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인간은 죽었다? 바이러스는 정치적이다. 정치력의 크기는 각기 다르다. 정치력이 지구적이면 팬데믹이다. ‘팬데믹 바이러스’는 나타나서 사라질 때까지 정치적이다. 의료인과 과학자는 팬데믹 바이러스의 적이 아니다. 적은 공적 담론을 생산하는 시민과 정치인이다. 시민과 정치가 좋은 의견과 의지를 모아야 팬데믹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다. 팬데믹은 그리스어 Pan과 Demos의 합성어다. Pan은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종교에서 뮤즈의 음악이 흐르는 자연 야생의 신이다. 자연의 신이지만 사람과 사랑을 나눠 반신반인이다. 자연을 넘어 문명의 세계를 침범한 신, 그래서 ‘모든’이란 의미를 가진다. Demos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시민, 특히 혈족이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는 시민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정의 기반을 다진 클레이스테네스는 4부족 혈연동맹 체계인 에트노스(Ethnos)를 해체하고 10개 단위의 지역동맹 체계인 데모스를 만든다. 이 데모스 대표들이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데모스’가 지배하는 통치(kratia) 체계인 민주주의가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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