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화의 종점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사물화는 타인을 물건 취급하다가
결국엔 자신조차 상품으로 만든다

팔리지 않는 상품 되지 않으려면
대통령은 지금 돌아서야 한다
통치에서 상호공감의 정치로

“헌정사 관행이 무너졌다.” 대통령 말이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외면한 야당에 책임 묻기다. 하지만 더 큰 책임은 정치를 실종시킨 그 자신이다. 정치 불신으로 정치에 수갑을 채웠기 때문이다. ‘정치 없는 통치’, 곧 대통령의 시행령 통치와 검찰 통치가 나라를 어지럽힌다. 헌정사 관행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헌정질서 자체가 흔들린다.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정치는 상호 공감과 인정이다. 통치는 일방적 관찰과 감독이다. 무엇이 먼저일까? 사태를 합리적으로 파악하는 인지적 능력은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관찰자의 위치를 벗어나면 안 된다. 나아가 자신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혹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정의감을 가져야 한다. 여기까지가 통치자, 혹은 관리자로서 요구되는 덕목이다.

통치자의 덕목을 갖추는 것도 고되다. 더구나 통치 덕목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다. 오히려 위험하다. 통치자는 그가 품은 뜻이 아무리 고귀하더라도 야당을 포함한 국민 전체를 통치의 대상으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대상화(objectification)?

대상화는 대체로 부정적인 말이다. 옛 철학자 칸트는 다른 사람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하는 것을 대상화로 규정했다. 지금 철학자 누스바움에 따르면 대상화는 일곱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대상화는 타인이 ①스스로 결정하고, ② 행동하며, ③자기만의 감정과 경험이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나아가 대상화는 타인을 ④도구로 이용하고, ⑤소유하려 들며, ⑥필요하면 침범하거나, ⑦교환과 교체가 가능한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사람을 물건이나 상품으로 관리하고 감독하는 대상화의 통치로는 더 이상 국가를 이끌어갈 수 없다.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주체다. 서로 갈등하는 주체와 주체가 만나서 교통하고 소통하며 경쟁하고 협력하는 것이 정치다. 대통령은 정치의 중심에 선 헌법기관이다. 헌법기관으로서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제1의 정치 덕목은 공감이다.

발달심리학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타인의 관점을 취하고 공감하며 인정하는 ‘공동-주의’(joint-attention) 과정 없이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특히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특히 고통에 공감하지 못할 경우 정서적 자폐에 빠질 수 있다. 어떤 사람도 처음부터 완성된 자아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타자와 공감하면서 비로소 인간은 자기 자신의 개인화와 사회화를 성취한다. 타자화, 자기화, 사회화는 ‘공동-주의’와 공감으로 성장하는 사람됨의 과정이다.

국민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공감하는 능력 때문에 함께 도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누구나 자기를 사랑한다. 동시에 누구나 타인에게 공감한다. 애덤 스미스는 공감을 자기 사랑이나 이기심으로 환원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이익보다 손해다. 그래도 사람은 공감한다.

“외아들을 잃어버린 당신을 내가 위로할 때 … 만약 나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들이 불행히도 죽게 된다면 내가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당신이라면 나는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는데, 이 경우 나는 당신과 입장만 바꿔보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까지도 바꿔보게 되는 것이다.”(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스미스는 도덕의 두 뿌리인 자기 사랑과 공감을 신체적인 것, 감각적인 것으로 본다. 그만큼 다른 인지 능력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실제로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상호 공감 능력을 기반으로 모든 인간은 상호 인정 질서와 사회 체계에 진입한다. 그런데 사회적 불안과 혐오가 증폭되면서 공감과 인정의 토대를 망각하거나 거부하는 증오가 증폭된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는 증오가 아니라 공감을, 징벌이 아니라 인정을 회복하는 데에 집중해야만 한다.

우리의 헌정질서는 모든 국민을 동등한 주권자로 인정한다. 주권자의 인격은 어떤 경우에도 대상화될 수 없다. ‘정치 없는 통치’가 헌정질서와 충돌하는 이유다. 더구나 대상화는 타인만 사물화하는 것이 아니다. 미학자 루카치에 따르면 사물화는 처음에는 사물을 돈으로만 보기 시작해서 다른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다가 결국에는 자기 자신조차 진열된 상품으로 만든다. 대상화의 종점에서 팔리지도 않는 상품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은 지금 돌아서야 한다. 통치에서 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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