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이태원 참사, 이태원 블루가 된다

실패한 애도의 유령인 멜랑콜리가
죽어서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 멜랑콜리하자

멜랑콜리? 고대 그리스의 의학용어였다. ‘혼합한’ ‘검은’의 멜랑과 ‘담즙’의 콜리를 합친 ‘검은 담즙’을 뜻하는 말이자 동시에 이 검은 담즙의 과잉과 불균형이 유발하는 질병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히포크라테스는 “오래 지속되는 두려움과 슬픔”으로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멜랑콜리로 진단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멜랑콜리를 학문과 예술, 그리고 정치에서 탁월한 사람들이 걸리기 쉬운 병으로 봤다. 병이지만 예민한 천재와 숭고한 영웅들의 성향이기도 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를 구별한다. 그에게 애도와 멜랑콜리는 리비도를 집중했던 대상의 상실이라는 동일한 상황에 대한 상이한 반응이다. 리비도는 어디에 집중하는가? 생명 충동인 리비도는 대개 살아 있는 사람에게 집중한다. 이 경우 리비도 집중 현상을 사랑이나 우정이라고 부른다. 일반화된 리비도 집중이다.

어떤 사람은 추상적인 이념이나 제도, 혹은 조직에 리비도를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자유나 정의와 같은 이념에 몰입하거나 가족, 종족, 민족, 혹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지나치면 매우 위험한 리비도 집중 현상이다. 죽음, 혹은 죽은 것에 리비도를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갖가지 물신이나 사이비 종교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적인 영역에선 문제없지만 공적 영역을 침범하면 가장 위험한 병적 증후다.

생명을 키우는 건강한 리비도 집중은 즐겁다. 대상을 향했던 리비도는 자기를 향해 되돌아오는 과정을 순환 반복한다. 사랑하는 나는 동시에 사랑받는 나이다. 그렇게 리비도를 집중했던 대상이 사라지거나 사그라지면 단순한 불쾌를 넘어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생명 에너지를 집중했던 대상의 상실은 주체의 생명 자체를 위협한다.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서서히 리비도를 회수 혹은 철회해야만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에너지 소모도 뒤따른다. 리비도를 집중했던 대상은 무수히 많은 대상 중에 하나가 아니다. 그 대상은 다른 모든 대상관계가 유지되기 위한 조건이다. 그 무게만큼 상실의 고통은 크다. 그렇지만 대상의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실된 대상에서 리비도를 회수하고 다시 리비도를 집중할 대상을 찾는다. 이것이 정상적인 애도의 과정이다. 생명을 사랑하는 충동이 정상적인 애도를 이끈다. 니체의 말처럼 ‘그래, 다시 한 번’을 외치며 리비도를 집중할 새로운 대상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 여행이 취소되면 비극이 막이 오른다.

정상적인 애도를 못한 사람은 자신이 텅 비어 있다는 빈곤 감정에 빠진다. 멜랑콜리해지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멜랑콜리에 빠진 자아는 “스스로를 비난하고, 스스로에게 욕설을 퍼붓고, 스스로가 이 사회에서 추방되어 처벌받기를 기대한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에서 안티고네의 멜랑콜리는 스스로를 비극적 죽음으로 이끈다.

안티고네의 삼촌이자 테베의 지배자인 크레온은 권력을 두고 전쟁을 벌인 정적이자 조카인 폴뤼네이케스의 매장을 법으로 금한다. 정적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안티고네는 국법을 어기고 오빠를 테베의 땅에 안장한다. 국가의 지배자인 크레온에게 안티고네의 행위는 반역이고 위협이다. 안티고네는 죽지만 이 죽음으로 국익을 내세우는 크레온을 영구 처벌한다. 안티고네는 죽는 순간까지 공포를 모르지만 크레온은 결국 공포에 휩싸인다. 라캉에 따르면 국가의 지배자 크레온은 자신의 판단 착오와 오류의 대가를 치르는 법을 몰랐다. 위기를 모면할 기교와 요령에만 능숙했다. 죽음을 감수하는 법도 모르는 법의 수호자, 곧 국가 조직에 리비도를 집중한 폭군이었을 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준법을 강조했던 크레온은 멜랑콜리의 주인공 안티고네에게 전복된다.

이태원 참사가 이태원 블루로 옮겨가고 있다. 연인이나 가족의 경우처럼 대체 불가능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다시 웃고 노래하고 사랑할 능력을 회복하는 것은 어렵다. 죽을 만큼 슬퍼한 후에야 가능하다. 그런데 정작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게 했으니 그 끝이 비극으로 치달을 위험이 크다. 희생자들과 구체적 인연이 없는 국민들에게 이번 참사는 ‘국가의 죽음’을 의미한다. 국가 역시 다른 국가로 대체될 수 없으니 국민들에게 멜랑콜리는 전복의 에너지로 어딘가에 매장되기 마련이다. 실패한 애도의 유령인 멜랑콜리가 죽어서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는 멜랑콜리하자.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