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용
전남대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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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민주당의 길 더불어민주당이 무기력하다. 지지자들의 한숨소리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무엇을 바라기에 실망일까? 여당일 땐 더 공정한 나라를 위한 제도 개혁과 입법을 바랐다. 손익 따지다 망쳤다. 야당인 지금 정권의 퇴행과 폭압에 제대로 맞서길 바란다. 자기방어에 급급해 상대의 실수만 기대하는 모양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이질성 3가지와 유사성 3가지를 따지며 출구를 찾아보자. 다른 점부터 보자. 첫째, 국민의힘은 외부에서 지도자를 모셔온 반면 민주당의 지도자는 항상 내부에서 성장했다. 집권만 가능하면 누구라도 모셔오는 국민의힘과 다른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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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멜랑콜리 멜랑콜리? 고대 그리스의 의학용어였다. ‘혼합한’ ‘검은’의 멜랑과 ‘담즙’의 콜리를 합친 ‘검은 담즙’을 뜻하는 말이자 동시에 이 검은 담즙의 과잉과 불균형이 유발하는 질병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오래 지속되는 두려움과 슬픔”으로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멜랑콜리로 진단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멜랑콜리를 학문과 예술, 그리고 정치에서 탁월한 사람들이 걸리기 쉬운 병으로 봤다. 병이지만 예민한 천재와 숭고한 영웅들의 성향이기도 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를 구별한다. 그에게 애도와 멜랑콜리는 리비도를 집중했던 대상의 상실이라는 동일한 상황에 대한 상이한 반응이다. 리비도는 어디에 집중하는가? 생명 충동인 리비도는 대개 살아 있는 사람에게 집중한다. 이 경우 리비도 집중 현상을 사랑이나 우정이라고 부른다. 일반화된 리비도 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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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대상화의 종점 “헌정사 관행이 무너졌다.” 대통령 말이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외면한 야당에 책임 묻기다. 하지만 더 큰 책임은 정치를 실종시킨 그 자신이다. 정치 불신으로 정치에 수갑을 채웠기 때문이다. ‘정치 없는 통치’, 곧 대통령의 시행령 통치와 검찰 통치가 나라를 어지럽힌다. 헌정사 관행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헌정질서 자체가 흔들린다. 정치는 상호 공감과 인정이다. 통치는 일방적 관찰과 감독이다. 무엇이 먼저일까? 사태를 합리적으로 파악하는 인지적 능력은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관찰자의 위치를 벗어나면 안 된다. 나아가 자신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혹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정의감을 가져야 한다. 여기까지가 통치자, 혹은 관리자로서 요구되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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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들리는 세계의 분할 통치 ‘보이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가 뒤틀린다. 첫 유엔 연설, 대통령의 말이 들린다. 그의 말소리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부합하듯 위엄이 있다. 어느 순간 불쑥 대통령 부인이 보인다. 지휘하고 응원하고 평가하는 모습이다. 혼란스럽다. 퍼스트 레이디인가, 퍼스트 퍼슨인가? 말하는 사람이 퍼스트 퍼슨이다. 언제나 그랬다. 부처, 공자, 예수, 소크라테스는 모두 말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말소리는 로고스(logos)다. 합리적 이성의 소리다. 철인, 성인 못지않게 정치 지도자의 말도 힘이 세다. 특히 최고 권력자의 말은 자체로 법적 근거를 갖는다. 말이 권위고 권력이다. 그만큼 무겁고 무서운 것이 대통령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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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대통령은 여전히 선거 중 두 번의 선거로 권력을 독점한 대통령. 그만큼 생활세계의 가치를 키워야 할 무서운 책무가 뒤따른다. 그런데 그를 선택했던 시민들조차 그의 업무수행에 싸늘해졌다. 국정지지가 곤두박질친다. 국정 방향이 없으니 지지할 국정도 없는 셈이다. 더구나 겪어야 하는 재난보다 재난을 처리하는 대통령의 능력과 태도가 더 큰 재난처럼 보인다. 늪에서 빠져나올 출구는 하나다. 국정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작용과 부작용을 점검한 정책을 수행하고, 정책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에 대해 무한책임을 감수하는 정치를 하면 된다. 이런 정치가 지속되면 적어도 그에게 투표했던 수보다 많은 시민들이 태도를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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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동물농장의 일기(2):개들이 판치는 통치 5월9일자 칼럼 ‘동물농장의 일기(1)’에서 나는 농장의 권력을 장악한 돼지들이 어떻게 변질되는지 알아봤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명제가 정권을 잡자마자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로 바뀐 과정이다. 가혹하고 성급한 평가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딱 두 달이 지난 7월9일 교수인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가 왔다. “동물들의 정부라 하셔서 처음부터 너무 격한 게 아닌가 했는데 짐승들의 정부 맞네요.” 대통령과 원내대표가 주고받은 문자를 보면 짐승이라기보다 날짐승들의 정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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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죽거나 말거나 Roe is gone. ‘로’는 갔다. 스스로 떠난 것이 아니라 강제 추방됐다. 미연방의 늙수그레한 대법관들이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로’에게서 헌법이 부여했던 ‘임신중단(낙태)권’을 빼앗았다. ‘로 대 웨이드(Roe et Wade)’는 임신중단권을 임신부에게 부여한 1973년 판결의 명칭이다. ‘로’는 텍사스의 임신중단금지법에 위헌소송을 제기한 여성의 가성이고, 웨이드는 소송 대상 검사의 진성이다. 이때부터 ‘로’는 이름 없는 여성의 이름이 되었다. 감염과 합병증으로 건강과 생명을 잃은 여성들, 계획되지 않은 임신으로 생계수단을 잃은 여성들, 생명체를 품은 채 버려진 여성들, 비난과 절망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들은 모두 ‘로’이다. 죽거나 말거나 이제 여기저기서 ‘로’의 배를 향한 발차기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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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아치의 노래, 정태춘’의 미학 정태춘, 온몸이 노래고 예술이다. 그의 몸은 감각적 촉수로 시를 쓰는 큰 이성이다. 흔한 계산적 이성 주체와는 거리가 멀다. 거꾸로 그의 몸은 바깥의 사물과 사태, 곧 현실의 부름에 반응하는 객체다. ‘객체 우선’은 그의 노래를 횡단하는 미학이다. 음악을 해석하려면 그것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로 나눠야 한다. 그 순간 그 음악만의 특별한 감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추상화된 단순한 음의 연결을 해석할 수 없으면 특별한 감성은 그저 개인적 감정 분비물로 소비될 뿐이다. 부족하더라도 그의 음악을 구성하는 심미적 요소를 사유하려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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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동물농장의 일기 (1) 동물농장이다. 들어가고 싶지 않다. 바깥에서 서성인다. 바깥이 없다. 바깥엔 또 다른 동물농장이다. 벌써 동물농장 안이다. 비극이다. 야생의 뻔뻔함이 판쳐서가 아니다. 싸움을 피할 수 없어서다. 동물농장의 이념은 ‘동물주의’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반)혁명을 이끈 동물들의 자랑이다. 인간은 적이다. 고통의 뿌리란다. 몰아내면 고통이 사라질 거란다. 발가벗은 공정과 상식으로 농장을 통치할 것이다. “그것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마라. 그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오웰의 말이다. ‘지금 여기’에 그것이 일어났다. 무능했고 무기력했다. 비장하게 반성하는 이, 철저하게 계산하는 자들 천지다. 나는 그냥 멈춘다. 그래! 다시 한 번, 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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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새로운 길 “탑이 무너졌다,/ 붉은 마음의 탑이-// 손톱으로 새긴 대리석 탑이-/ 하룻저녁 폭풍에 여지없이도, …꿈은 깨어졌다/ 탑은 무너졌다.” 인왕산 둘레길에 표류하고 있는 윤동주의 시를 읽는다. 긴 어둠의 터널에서 견딜 수 있는 하나의 빛이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놀랍다. ‘王’의 놀이일까? ‘王’에의 의지야 손바닥 문신에서 확인했다. 그 의지는 실현된 것 아닌가? 이제 더 큰 권력을 향한 의지가 생긴 것일까? 왕보다 높은 황제? 황제가 될까봐 단 하루도 안 된다는 말에 진정성이 있다.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누가 알려주었을까? 어떻게 알았을까? 이 명제를 구성하는 세 개념, ‘공간’ ‘의식’ ‘지배’ 모두 어려운 말이다. 제대로 알려면 폭넓은 독서와 토론이 필요하다. 공간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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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사표는 없다 가위스토리, 멋진 이름이다. 5년 전 이사한 마을 미장원이다. 내 또래 헤어 디자이너 한 분이 운영하는 가게다. 정성으로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내면서 두피와 모발 건강까지 살피는 미용을 하니 그만큼 많은 시간이 든다. 나에겐 힘든 시간이다. 다행히 미용사님이 전해주는 세상 이야기가 새롭고 흥미롭다. 첫 만남 이후 머리 스타일만큼이나 그녀와의 사회적 신뢰와 연대가 쌓였다. 3월9일, 사전투표를 했기에 미용 예약을 했다. 상황 진단도 들어보고 싶었다. 어쩌다 조금 늦어져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마음의 기도가 필요해 집에 들어갔다며 선거 끝나면 오라고 한다. 간절함이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에야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녀로부터 문자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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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의 직관 분노와 존엄의 대결 진실이 힘을 잃고 있다.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기준들조차 조롱받는다. 정치판은 그 극단을 보여준다. 편가르기가 정치의 본질이라면 지금 대선처럼 무논리, 반이성이 판치면 결국 분노동원 세력이 축배를 들 것이다. 사바나의 자연상태에서 메타버스 인공세계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확정성이다. 정글에선 사자가 달려오는 것보다 저편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 더 무섭다. 무지는 불안의 원천이면서 자유의 약탈자다.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안다는 것은 그곳으로 갈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헤겔이 자유를 필연성의 인식이라고 말한 까닭이다. 문제는 앎이 커질수록 자유만이 아니라 무지도 확장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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