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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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경제’를 대선에 이용하지 말라 “선진국 가운데 지난 2년간 가장 높은 평균 성장률”,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위상을 굳건히”,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무역 강국, 수출 강국으로”, “우리 정부에서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연 데 이어… 4만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세계를 선도해 나가는 신산업 분야가 날로 늘어나고”, “문화콘텐츠 산업까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 “소득불평등과 양극화 문제가 지속적으로 개선”…. 대통령 문재인의 신년사다. 대통령을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년사는 긍정과 낙관의 기운이 충만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딴 세상 인식의 자화자찬”이었다고 비판했지만, 이 신년사가 나온 시점의 여론은 사실상 정권 연장을 더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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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갈라파고스 정당’이 만든 ‘김종인 현상’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 김종인이 4번째 선거지휘를 맡았다. 여야를 넘나들면서 선거지휘를 하고, 선거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나면 사실상 배신을 당하거나 갈등을 빚어 퇴장한 그의 이력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긍정적 평가 못지않게 부정적 평가가 많은 탓인가? 지난 6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전성인이 경향신문에 쓴 칼럼의 제목이 ‘김종인을 위한 변명’이다. 변명? 김종인이 이번엔 국민의힘을 지휘하는 탓에 불편하게 생각할 경향신문 독자들의 기분을 고려한 것인가? 그런 의아심이 들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 전성인의 칼럼 내용은 좋았다. 무엇보다도 왜 김종인이 ‘몽니 부리는 꼰대’ 소리를 들으며 권한과 자리를 요구했는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그건 바로 ‘경제 민주화’라는 ‘미완의 꿈’을 이루고 싶어하는 김종인의 열망이다. 그런데 이 열망은 자주 권력욕과 혼동되곤 한다. ‘희대의 거간 정치인’이라느니 ‘노욕의 정치기술자’니 하면서 험담을 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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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법조 공화국’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 한국은 민관 합동으로 세운 ‘법조 공화국’이다. 고소·고발과 ‘정치의 사법화’가 왕성하게 일어나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나라가 아닌가. 법을 사랑하지 않으면 대통령 되기도 힘들다. 지난 6월 중앙일보는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의 상위권을 법과대학 출신 정치인이 싹쓸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이재명, 이낙연, 홍준표, 추미애, 최재형이 그러하며, 이외에도 정세균, 이광재, 원희룡, 황교안 등 죄다 법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어떤가? 대부분 법대를 나온 법조인 출신이 16대 국회 41명, 17대 54명, 18대 59명, 19대 42명, 20대 49명, 21대 46명 등 늘 전체 의원의 15~20%를 차지해왔다. 너무 많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당들은 인재 영입 시 법조인을 우대하는 걸 어이하랴.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2월 총선을 앞두고 외부인사를 영입했을 때 전체의 약 30%가 법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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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의전’을 죽여야 나라가 산다 지난 8월27일에 일어난 ‘무릎 꿇고 우산 씌워주기’ 사건은 이미 흘러간 역사가 되었지만, 되짚어 볼 점은 있다. 이 사건은 처음엔 ‘과잉 의전’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한 취재진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빚어진 일이라는 반론이 나오면서 비난의 강도는 좀 수그러들었다. ‘언론 탓’은 일리는 있지만 전적으로 타당하진 않다. 공무원들은 언론의 요구에 무조건 복종하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를 수용할 경우에만 타당할 뿐이다. ‘무릎 꿇고 우산 씌워주기’가 8분 이상 지속되었음에도 주변에 있던 간부급 공무원들이 이걸 그대로 방치한 무감각마저 ‘언론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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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정파적 통계’가 갈등을 부추긴다 19세기 프랑스의 공학자이자 자유주의자인 미셸 슈발리에는 “훌륭한 통계는 협박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증언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가 원하는 것처럼 돌아가진 않았다. 통계는 늘 조작의 위협에 시달리느라 훌륭해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말을 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통계의 힘은 강하다. 정치인이 통계 수치를 잘 활용하면 유권자들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똑똑하다는 인상과 더불어 성실하다는 느낌도 줄 수 있다. 무엇이 “엄청나게 많다”고 말하는 정치인과 개략적인 통계수치를 제시하면서 말하는 정치인을 비교해 보라. 누가 더 똑똑해 보이며 누가 더 신뢰할 만한 정치인이라고 여기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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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능력주의를 보는 좀 다른 시각 ‘능력주의(meritocracy)’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능력주의를 내세움으로써 논쟁의 확산에 기여한 점은 있지만, 사실 논쟁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돼 온 것이다. 지난해에 출간된 <능력주의와 불평등>이란 책이 그런 논쟁의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10명의 필자가 참여한 이 책은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시사하듯이, 능력주의를 심도 있게 비판한 탁월한 작품이다. 나는 그간 능력주의에 대해 많은 글을 써왔는데, 내 입장 역시 단호한 비판이었다. 그런데 능력주의와 관련된 ‘갈등’이나 ‘사건’이 터졌을 땐 좀 다른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이론적이고 일반론적인 비판을 현실 세계의 개별 사례에 곧장 적용해도 괜찮은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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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거짓말이다 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일 만에 첫 대외 활동으로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돼 왔던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행사 현장에 있던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이 뉴스를 접한 일부 문 대통령 지지자들도 눈물을 흘렸다. 오마이뉴스의 관련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악조건에서, 불안하게, 근무하던, 1만명의 직원들이 정규직이 된다? 내가 다 눈물이 나네요. 대통령의 민생문제 해결의 진정성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더군다나, 정규직화로 인하여, 경비도 3% 정도 절감된다는데, 어찌하여 이제까지 못했었는지… 사랑의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인천공항처럼, 큰 비용 안 들이고도, 노동자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길도 많이 있다고 봅니다. 좋은 소식 계속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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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당신들의 말을 믿어도 될까요? 더불어민주당 내 현안 중 하나는 대선 경선 일정이다. 민주당 당헌은 대통령 선거일 ‘180일 전’까지 후보 선출을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기에 당헌에 맞추려면 늦어도 7~8월 경선을 치러 9월 초 후보를 확정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의원들이 야당에 비해 너무 일찍 후보를 확정해서 얻을 이득이 없고, 예정에 없던 4월 재·보궐 선거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친 점을 이유로 들면서 두 달 정도 연기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른바 ‘친이재명 진영’은 당헌대로, ‘친문 진영’은 연기론을 주장하고 있다. 친문 진영이 “연기할지 말지 전 당원 투표로 결정하자”고 한 것에 대해 ‘친이재명 진영’은 “유불리에 따라 정략적으로 경선 일정을 흔드는 순간 내전(內戰)”이라며 반발했다. 지난 2월부터 벌어진 이 갈등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일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각 후보 진영의 소리 없는 전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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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다시 문제는 싸가지다 “그렇게 압도적인 지지 속에 개혁 전권을 위임받는 정부가 근시일 내에 또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적처럼 그런 에너지가 모였을 때 잘 써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그게 너무 아쉽다. 오만·독선 같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교한 비전과 철학이 부족했던 게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장강명 작가가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비전’이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칼럼(4월14일)에서 4년 전 문재인 정부가 갖고 있던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한 세대 뒤의 미래를 설계할 힘”이 이젠 사라져버린 걸 아쉬워하며 한 말이다. 문 정권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잘 표현된 칼럼이다. 나는 칼럼 내용엔 흔쾌히 동의하면서도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걸린다. 반론이라기보다는 내 생각을 보태는 보론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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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문재인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어떤 사람에게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면 그것은 머릿속으로 간다. 그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그것은 그의 마음으로 직행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세계적인 인권운동가였던 넬슨 만델라의 말이다. 그는 27년간 감옥살이를 하면서 자신을 가둔 남아프리카 태생 백인들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고, 그들이 좋아하는 럭비를 시청하고 그들의 언어를 배웠다. 이게 그가 비폭력운동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였다. 백인들과의 소통과 상호 신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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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왜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지 못할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라는 말은 데카르트가 했다곤 하지만, 이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너무도 당연한 말 아닌가. 그런데 의외로 이걸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냥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끝날 일인데도 한사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한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도대체 왜 그러지?”라는 의문을 가져 봤을 것이다. 물론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이 워낙 크고 두려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선 잘못의 인정이 꼭 필요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쓸데없는 변명이 늘면서 사실을 왜곡하게 되고, 그래서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간 일을 잘해온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라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으므로 모두 힘을 합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신은 잘못한 게 전혀 없다고 우기면 그간 잘해온 일마저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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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부족국가 대한민국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사람들은 누굴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가족, 친척, 친구일 게다. 친구엔 동네(고향) 친구와 학교 친구가 있다. 혹 이름을 꼽아 본다면 거의 대부분 혈연, 지연, 학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일 게다. 이런 연고는 개인적으론 행복의 근원이지만, 우리는 사회적으론 연고주의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른바 ‘공사(公私) 구분의 원칙’ 때문이다. 어느 공직자가 큰 어려움에 처한 친구에게 자기 돈을 주는 건 아름다운 일이겠지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금전적 특혜를 주는 건 범죄행위다. 돈뿐이겠는가? 친구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의 유형은 다양하다. 어떤 도움이건 공사를 엄격히 구분해서 줘야 한다는 게 우리 사회의 합의이지만, 그런 합의가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연고주의를 넘어서 아예 부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