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윤석열 타도’를 외치는가?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의화이부동

강준만의화이부동

‘윤석열 퇴진’ ‘윤석열 해고’ ‘윤석열 탄핵’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타도’ ‘윤석열 정권 타도’ ‘윤석열 타도’ 등등.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외쳐진 정치 구호들일 게다. 대통령 윤석열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민주화 이전에 자주 듣거나 생각했던 ‘타도’라는 단어를 역주행 유행을 시킨 원인 제공자라는 점에서 말이다. 타도의 국어사전 정의는 “어떤 대상이나 세력을 쳐서 거꾸러뜨림”이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야권과 야권 지지자들은 출범한 지 만 2년도 안 된 정권 또는 대통령을 쳐서 거꾸러뜨리겠다는 걸까? 이들의 주요 주장을 살펴보자.

“‘2기 촛불정부를 누가 만드느냐’ 했을 때 지금 이재명 말고는 누가 만들겠어요. 괜히 돌려가면서 말할 필요가 없어요. 까놓고 얘기하면 2기 촛불정부의 조기 수립이라는 이야기는 윤석열을 빨리 끌어내리고 이재명을 대안으로 다음 정부를 빨리 만들자는 얘기거든요.”

3월14일 서울대 명예교수 백낙청이 오마이TV의 ‘오연호가 묻다’ 인터뷰에 출연해 ‘2기 촛불정부의 조기 수립’을 역설하면서 한 말이다. 백낙청이 지난 대선 패배 직후부터 해온 주장인데,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모든 명예를 건 위험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적극 후원했던 문재인 정권이 왜 정권을 빼앗겼는지 그 이유에 대한 분석은 제대로 하고서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그게 없다.

“어쩌다가 이런 (윤석열) 정권이 나왔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이 흥미롭다. 그는 “2022년 대선 때 저쪽(국민의힘)은 (촛불혁명의 위력을) 알게 돼서 ‘한 번만 더 지면 우리는 끝장’이라는 간절함이 생겼고, 그래서 윤석열과 이준석,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까지 (보수세력이) 총집결을 했다”면서 “그런데 당시 민주당 안에는 이번에 져도 우리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즉, ‘간절함의 차이’가 지난 대선의 승패를 갈랐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란 말인가? 문 정권과 자신을 포함한 강성 지지자들이 잘못한 건 전혀 없었단 말인가? 단지 간절함만 강해진 ‘2기 촛불정부’라면 더욱 거친 독선과 오만과 내로남불로 일관할 텐데, 그게 윤 정권보다 나을 게 뭐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정권이 바뀌어 재미를 보는 건 자신과 같은 정파적 엘리트 계급일 뿐, 평범한 보통사람들은 늘 양쪽으로부터 돌아가면서 기만을 당한다고 보는 게 진실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3월16일 조국혁신당 대표 조국은 비례대표 후보자로 나서 지지자들을 향해 “저를 압도적 1위로 만들어달라”고 호소하면서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선명하게 가장 뜨거운 파란 불꽃이 돼 검찰독재 정권을 하얗게 불태우겠다”고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자신을 정치 탄압을 받는 투사로 둔갑시킨 그 뻔뻔함에는 기가 막힐 지경”이라고 비판했다지만, 조국의 호소에 열광한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호남인들이 열광했다.

경향신문의 ‘광주 르포’ 기사(탁지영 기자)에 따르면, 어느 60대 광주시민은 조국혁신당의 주요 인물들에 대해 “전부 윤석열이 반대했던 사람들이잖아요. 한이 맺힌 사람들인데 한풀이는 제대로 하겠죠”라면서 “윤석열 정부와 잘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호평했다. 어느 50대 광주시민은 조국혁신당을 지지하는 광주 민심 기저엔 “민주당이 못했던 것들 조국 네가 한 번 사정없이 그냥 짖어불고 한번 뒤집어부러라. 너 당한 거 있잖아. 당하고만 있지 말고 똑같이 되빠꾸(되치기)해라”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3월19일 조국은 “1차적으로 윤석열 정권의 레임덕을, 두 번째는 데드덕으로 만드는 게 조국혁신당의 목표”라며 “윤석열 정권 조기 종식을 탄핵으로 한정하지 않고, 권력 오남용을 하지 못하도록 힘을 빼놓을 것”이라고 했다. 조국혁신당의 약진에 위협을 느낀 민주당도 ‘윤석열 때리기’를 넘어 ‘윤석열 죽이기’를 위한 선명성 경쟁에 본격적으로 발 벗고 나섰다. 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이날 강원도 총선 지원 유세에서 “서슬 퍼런 박근혜 정권도 우리가 힘을 모아서 권좌에서 내쫓지 않았나”라며 “이제는 권력을 회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3월20일, 가상자산(암호화폐) 투기 의혹이 불거져 민주당을 탈당했던 무소속 의원 김남국이 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입당했다. 아니 그래도 되나? 무슨 명분과 이유로? “아무리 곱씹어도 윤석열 정부의 독주와 폭거를 가만히 손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러다간 음주운전을 하다가 걸려도 “윤석열 정부의 독주와 폭거에 너무 분노한 나머지”라는 핑계를 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3월21일 전 국가정보원장 박지원은 라디오에서 “범야권이 200석을 만들면 윤 대통령 탄핵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200석 타령’에 동참하는 민주당 후보들이 늘어가자 지도부는 행여 유권자들에게 오만하게 보일까봐 ‘151석’이라는 소박한 목표를 강조하는 경계령을 내렸지만, 이재명의 언어는 날이 갈수록 거칠고 과격해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게다. 이번 총선은 자신의 정치생명, 아니 전 인생의 성패가 달려 있는 선거니까 말이다. 지난해 9월27일 새벽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유창훈이 이재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을 때 내세운 사유 중 하나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었다. 지난 2월8일 조국은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 재판부도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판사들이 말한 방어권은 ‘법적 방어권’이었지만, 이재명과 조국은 지금 ‘정치적 방어권’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판사들은 그걸 예상하지 못했나?

참 이상한 일이다. 3년여 전 현 야권이 주장했던 건 “사법쿠데타에 의한 민주주의의 전복”이었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23일 조국의 부인 정경심이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고, 다음날 법무부의 검찰총장 윤석열 정직 2개월 중징계에 대해 법원이 ‘집행 정지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그 다음날 고려대 명예교수 임혁백은 한겨레에 “사법쿠데타에 의한 브라질 민주주의의 전복”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브라질 민주주의 위기의 특징은 검찰과 사법부의 법 기술자들이 법적 수단과 장치를 동원하여, 보이지도 않고 의식할 수 없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야금야금 민주적 제도와 규범을 침식하여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는 사법쿠데타라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칼럼은 브라질 이야기만 했을 뿐이지만, 독자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 칼럼에 달린 ‘베스트댓글’이 말해주듯이 “브라질의 정치현실은 여기 한국과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여권은 이후 걸핏하면 ‘사법쿠데타’를 주장하고 나섰는데, 그건 연작 형식의 코미디였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법원 판결이 나오면 판사들을 극찬하고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판사들을 욕하는 치졸한 작태를 반복하곤 했다. 임혁백에게 묻고 싶다. 당시 선구적으로 제시한 사법쿠데타론은 지금 한국에서 여전히 유효한가?

지금 한국은 수년째 정쟁에 국력을 탕진하고 있다. 이에 가장 큰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다. 적어도 2022년 5월10일 이후부터는 윤석열의 책임이다. 앞서 인용한 어느 광주시민은 조국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조국 대표가 억울할 것 같아요. 가족을 도륙 내놨어요. 만약 윤석열이 김건희하고 장모하고 처남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대고 똑같이 수사했으면 박수 쳐줘요. 그런데 지금 그런 판은 아니잖아요.” 나 역시 이 말에 공감한다. 나는 앞서 윤석열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여기엔 상식, 아니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내로남불에 대한 놀라움이 들어 있다.

조국 가족을 그렇게 ‘도륙’ 낸 사람이 자기 가족 특히 아내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모셔놓고 그 어떤 충정 어린 고언에도 화를 벌컥 낸다는 그의 이중 기준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런 사고와 행태가 대중의 분노를 유발해 정권을 몰락의 수렁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다는 걸 눈곱만큼도 깨닫지 못하는 둔감함과 어리석음이다. ‘윤석열 타도’라는 외침은 윤석열의 자업자득이지만, 그로 인해 이 나라가 치러야 할 값비싼 희생을 생각하노라면 깊은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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