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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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공무원의 영혼 보호법’이 필요한가 “간단한 불복종, 예컨대 단순히 관습에 무릎꿇기를 거부하는 것도 하나의 의무이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다. 그는 반대자와 이단자를 옹호하며, “희생물에 일제히 달려드는 떼거리에 대한 증오”를 표명했다. 그러나 세상은 밀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았다. 20세기의 세상은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으로 치닫기도 했다.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면서 획일화를 찬양한 파시즘 체제의 등장은 인간이 군집행동을 하는 동물과 크게 다를 게 없으며, 훨씬 더 잔인한 동물이기도 하다는 걸 웅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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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증오의 광기’가 들끓는 대한민국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광기가 최고로 행복한 상태라고 했다지만, 보답받지 못한 사랑의 광기는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앞의 광기와 뒤의 광기는 어떻게 다른 걸까? 고대 로마의 스토아학파 철학자 세네카는 “약간의 광기를 띠지 않은 위대한 천재란 없다”고 했다지만, 이런 종류의 광기는 사실상 세네카의 목숨을 앗아간 폭군 네로의 광기와는 어떻게 다른 걸까? 이런 의문이 시사하듯이 광기엔 두 얼굴이 있고, 우리 인간은 늘 그 두 얼굴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왔다. 대체적으로 보아 결론은 늘 하나로 모아지곤 했다. 결과가 좋으면 ‘아름다운 광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추악하거나 사악한 광기’였다. 어떤 분야에서건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엔 그들이 성공을 위해 보인 광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물론 예찬의 용도로 말이다. 큰 사회적 지탄을 받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에도 그들의 광기가 거론되곤 하지만, 이건 비난의 용도로 소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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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왜 정치인들은 성찰에 인색할까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의 수준이 곧 우리 정치인들의 수준이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다. 내심 이 말에 동의할 사람들은 많겠지만, 동의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사람은 드물 게다. 매우 위험한 말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주장을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삼성 회장 이건희가 27년 전에 한 말이다. 이 발언이 당시 김영삼 정권을 화나게 만들어 삼성이 한동안 바짝 긴장하기도 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지만, 일반 시민들 중엔 동의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마 지금 물어봐도 동의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아닐까 싶다. 일반 시민이나 언론인이나 지식인이 “정치는 4류”라고 말하는 건 전혀 위험하지 않다. 정치가 늘 우리를 실망시키고 화나게 만드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수준이 곧 우리 정치인들의 수준이라는 이유로 “국민은 4류”라는 말을 보탠다고 생각해보라. 돌 맞기 십상이다. 국민은 성역이다. 물론 유권자도 성역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유권자들이 정치인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조차 유권자 탓은 하지 못한 채 정치인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이상한 게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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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분노와 증오의 블랙홀을 넘어서 “국민의힘이 특정언론사 사진기자의 실명을 거론하고 관련법규까지 예시하며 응분의 조치를 하겠다고 한 것은 언론과 기자에 대한 겁박과 다르지 않으며 언론의 취재활동을 위축시키고 국민의 알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국회 사진기자단이 지난 9월21일 발표한 성명서다. 국민의힘 미디어국이 전날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유상범 의원의 오래전 대화를 마치 오늘 대화한 내용처럼 보도한 ‘노컷뉴스’ 아무개 기자의 보도는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허위의 내용이 보도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하며 곧 응분의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낸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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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이준석의 ‘허망한 승리’ 지난해 5~6월 ‘이준석 돌풍’이 불었을 때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크게 당황했다. 곰팡내 나던 국민의힘에 새 바람이라도 불었다간 큰일 난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5월31일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예비경선을 1위로 통과하자 민주당의 상근부대변인은 이준석을 향해 “히틀러의 향기가 난다”는 극언을 구사했다. 6·11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이 예상을 깨고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되자, 진보언론과 지식인들까지 이준석을 겨냥한 집중공격을 퍼부었다. 그 주요 내용은 이준석이 사회적 약자에 대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식이었다. 나는 너무 지나치다 싶어 그런 비판에 대한 반론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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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윤석열, ‘부정적 당파성’의 약발이 떨어졌다 “집값이 너무 심하게 올랐어요. 내 집 마련은 평생 불가능할 것 같네요.” “아니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게 문재인 정권 탓이란 말이에요? 이번에 서울시장으로 오세훈 뽑겠네요.” “아이고 그런 뜻이 아닌데, 쓸데없는 말을 해 죄송합니다.” “이미 기분이 상했으니, 당장 그만두고 환불해주세요.” 2021년 3월 서울의 어느 네일숍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경향신문(2021년 4월1일)에 실린 <“한국사회, 무조건 자기편만 지지” 82%>(류인하 기자)라는 제목의 기사에 소개된 에피소드를 내가 조금 각색해 소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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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이준석을 덮친 ‘성공의 저주’ 2021년 5월31일 36세의 젊은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예비경선을 1위로 통과하자 세상은 깜짝 놀랐다. 모두 다 어림도 없는 도전이라고 비웃었으니,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황했다. 이준석을 히틀러에 비유하면서 비난하는 무리수까지 나왔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굳이 히틀러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만큼 당혹스럽고 두렵다는 뜻이었을 게다. 당시 민주당 원로인 전 국회 사무총장 유인태는 “이준석 돌풍을 정치권이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특히 민주당 쪽 사람들은 굉장한 위기감을 느끼더라”며 “이준석이 되면 내년 대선 끝난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목소리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 이유로 그는 “젊은 이준석 후보는 그동안 방송이나 매체에 나와서 상식에 근거한 얘기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라며 그가 국민의힘 대표가 되면 국민의힘이 ‘늙은 꼰대’ 정당의 이미지를 벗을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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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한류의 주역’ X세대에 경의를 표한다 “김은희, 김태호, 나영석, 박진영, 방시혁, 서태지, 싸이, 양현석, 연상호, 황동혁.” 위 10인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우선 대중문화 종사자라는 답이 나올 게다. 그다음엔? 이 질문엔 생각이 좀 필요하겠지만, 대중문화 애호가라면 ‘X세대(1970년대생)’라는 답을 내놓을지도 모르겠다. 1990년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X세대 열풍’을 기억하실 게다. 1975년생 작가인 김민희가 최근 출간한 <다정한 개인주의자: K-컬처를 다진 조용한 실력자 X세대를 위하여>는 X세대가 K컬처(한류)의 주역임을 밝힌 책이다. 위에 언급한 10인의 이름은 화려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대중문화는 거의 X세대가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의 경우 봉준호(1969년생)와 이병헌(1970년생)처럼 한 살 위아래까지 X세대의 속성을 지녔다고 한다면, X세대 감독이 1000만 관객 영화 15개 중 13개를 만들었다는 통계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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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다양성에 대한 집단적 위선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다양성은 유전적 ‘보험증서’ 같은 기능을 한다.”(레베카 코스타) “다양성을 수용하려는 의지가 약할수록 진정한 자기 인식 능력도 떨어진다.”(마이클 린치) “너무 유사한 집단은 새로운 정보를 논의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우기 어렵다.”(제임스 마치) “동질성이 강한 집단은 다양성이 강한 집단에 비해 더 쉽게 결집하며, 응집력이 높아질수록 외부 의견과 고립되고 집단에 의존하는 성향이 강해진다. 그 결과 집단의 판단이 옳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된다.”(제임스 서로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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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복합쇼핑몰은 ‘광주 정신’을 훼손하는가? 지난 대선 기간 중 광주에서 복합쇼핑몰 유치가 선거 쟁점으로 부각되었을 때 나는 착잡했다. 5년 전인 2017년 내가 사는 전주에서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나는 그간 내가 갖고 있던 복합쇼핑몰 반대 입장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전통시장 상인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내 주변엔 찬성파가 더 많았다. 나는 젊은 대학생들의 생각은 좀 다를까 싶어 수업 중에, 그리고 개인적으로 학생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쇼핑몰 유치에 반대하는 학생보다는 찬성하는 학생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그들은 쇼핑몰을 소비공간인 동시에 문화공간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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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확신은 ‘잔인한 사고방식’이다 “양비론은 양측을 똑같이 비판함으로써 누구의 과실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리기 어렵게 한다. 찬성과 반대를 분명히 가리거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찬반의 대립구조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중도적인 입장으로 양측을 모두 존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과실이 더 큰 쪽을 유리하게 만들어준다.” 위키백과에 나오는 ‘양비론 비판’이다. 아울러 ‘양비론 비판에 대한 비판’과 ‘양비론 비판에 대한 비판에 대한 다른 견해’를 소개함으로써 양비론 논의의 균형을 취하려고 애쓴 점이 돋보인다. 양비론! 과거에 양비론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최근엔 양비론적 글을 쓴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는 나로선 할 이야기가 많은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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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 언론인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을 맞아 하루 전까지만 해도 신문사 편집국장과 논설위원 등으로 일하면서 ‘정치 중립’ ‘공정 보도’를 부르짖었던 중견 언론인들이 바로 다음날 대선 주자 캠프로 출근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폴리페서’처럼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의 의미를 합친 ‘폴리널리스트’란 이름을 붙일 수도 있겠다.” 15년 전 경향신문(2007년 7월6일)에 게재된 “ ‘폴리페서’와 ‘폴리널리스트’ ”란 제목의 사설이다. 그 이전에 사용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알기론 ‘폴리널리스트’란 신조어가 탄생한 최초의 기록이다. 약 보름 후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폴리널리스트를 언론계의 ‘산업 스파이’라고 부르면서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