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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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학습된 무기력을 떨쳐버리고 세상이 펄펄 끓고 있다. 기후위기는 징후가 아니라 전면적 현실로 우리 앞에 당도했다. 만기가 도래한 약속어음처럼. 집중호우에 제방은 무너지고, 편리를 위해 만든 터널이 무덤으로 변한다. 벌목과 택지 개발이 이루어졌던 산은 흘러내린다. 흔히 재앙은 무차별적이라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해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떠오르고, 비도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그 결과는 공평하지 않다. 재난의 1차적 희생자들은 늘 안전의 취약지대에 사는 이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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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일본이 다핵종제거설비인 알프스(ALPS)를 통과한 물을 30여년에 걸쳐 태평양에 방류하겠다고 밝히는 시점이 다가온다. 국내에선 때아닌 논쟁이 활발하다. 어떤 이들은 그 물을 처리수라 부르며 인체에 무해하다고 말한다. 국정 고위 책임자들과 원자력 연구자들 가운데는 그 물을 몇 리터라도 마실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들은 그 물을 원전 오염수라고 부르는 이들이 ‘괴담’을 퍼뜨리고 있다고 매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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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 “이상한 존재는 많지만, 인간보다 더 이상한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나오는 말이다. ‘이상한’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데이논(deinon)은 이상하다는 뜻 외에도 ‘무서운’ ‘경이로운’ 등의 의미로 쓰인다. 평온할 때는 괜찮지만 문득 불안감에 사로잡히거나 갈등 상황에 직면할 때면 인간은 자신을 하나의 문제로 인식한다.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기 정체성을 구성한다. 타자의 존재는 우리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타자의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됨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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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신성한 땅은 어디인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틈 날 때마다 크고 작은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 기념관을 찾아가 머물렀다. 어디에나 그곳의 역사와 전시된 유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안내인들이 있었다. 전시된 유물 하나하나는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역사는 기억하려는 이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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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반딧불이처럼 깜박이며 먼산에 물결처럼 번지는 연초록 나뭇잎들의 바림을 황홀하게 바라본다. 장엄한 생명 세계가 그곳에 있다. ‘골짜기의 신묘함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아득한 암컷이라고 하고, 아득한 암컷이라는 문을 천지의 근본’이라고 했던 노자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산은 뭇 생명을 품어 안고 기른다. 하지만 미세먼지와 황사는 그 산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을 어지럽힌다. 가뭄이 지속되면서 도처에서 일어난 산불로 생명의 터전이 무너지고 있다. 집을 잃은 이들의 탄식이 억눌린 함성이 되어 번져간다. 기후 재앙을 알리는 경고의 나팔소리가 이미 울렸지만 사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태연하다. 더 많은 소비와 편리한 삶에 대한 욕망이 지구촌의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적 책임 의식을 압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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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희망은 과거로부터 온다 “노인들이라고 해서 너무 얕보지 말고,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동냥해서 (주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하면 사람이 아니지.” 94세인 양금덕 할머니의 담담하지만 단호한 선언이다. 미쓰비시중공업으로 강제동원돼 17개월 동안 일하고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이후에 일본군 위안부가 아니었느냐는 의혹의 눈길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의 말이기에 심상하게 들을 수 없다. 정부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제3자 변제를 통해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풀겠다고 했다. 당사자들은 그런 돈이라면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몇 푼의 돈이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인정과 사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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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아낌만 한 것이 없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이 일어난 지 벌써 10여일이 지났다. 사망자가 4만1000명을 넘겼다 한다. 언론은 이제 구조에서 복구로 이행하는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한 생명도 쉽게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건물의 잔해에 갇힌 지 228시간 만에 구조된 사람도 있지 않은가? 실낱같은 가능성이라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리해야 할 문젯거리가 아니라 인간의 인간됨을 묻는 물음표로 우리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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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어디에나 있는 고향 많은 사람이 일시적 귀향을 서두르는 시간에 엉뚱하게도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작가인 장 아메리가 떠오른다. 그는 평생 나치의 절멸수용소에서 겪은 고문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1978년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고문이 그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고문이 “타자에 의한 내 자아의 경계 침해”라며 고문에 시달린 기억이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을 고향처럼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고향은 저기 어딘가에 있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구성되는 사회적 실체인지도 모르겠다. ‘달러가 있는 곳이 고향’이라는 말도 같은 사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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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레흐는 어디에나 있다 폴란드 출신 미국 작가 저지 코진스키(Jerzy Kosinsky)의 <무지개빛 까마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상황 속에 버려진 한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이야기이다. 이 책은 사람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겁하며 맹목적인지 보여준다. 작중인물인 새 장수 레흐는 매우 상징적이다. 그는 욕구불만이 생길 때마다 자기가 팔러 다니는 새 중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센 놈을 골라내 온몸에 야생화보다 더 알록달록한 색을 칠한다. 숲에서 새의 목을 가볍게 비틀면 새는 숨이 막혀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지른다. 이내 같은 종류의 새들이 몰려와 초조하게 날아다니면 레흐는 그 새를 놓아준다. 자유를 누리게 된 새는 기쁨에 겨워 한 점의 무지개처럼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그 새를 맞이한 잿빛 새들은 잠시 혼란을 느낀다.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새는 자기가 그들의 동료임을 알리려고 더 가까이 다가가지만, 새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다가 일시에 그 새를 공격해 죽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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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그늘이 지나간 장소 기독교인들에게 오늘은 교회력의 마지막 날이다. 교회는 기다림의 절기로 한 해를 시작한다. 기다림을 촉발하는 것은 우리 내면에서 싹튼 그리움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리움을 품고 산다. 어쩌면 그리움이야말로 우리 삶을 밀어가는 힘이 아닐까?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을 때 삶은 권태롭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림의 대상이 올 때까지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더럽고 어지럽혀진 집을 정돈하는 사람처럼, 기다림의 대상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예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자 요한은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하는 것을 자기 소명으로 이해했다.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하는 이들은 그 세상을 선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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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심연을 뚫고 솟아오르는 빛 마르틴 루터가 불붙인 종교개혁 기념일이 다가온다. 모든 생명은 탄생, 성장, 정체, 경직, 죽음의 과정을 거친다. 문명도 마찬가지다. 변화를 추동하는 역동성이 형식과 조화를 이룰 때 문명은 빛이 난다. 역동성이 형식을 압도할 때 혼란이 찾아오고, 형식이 역동성을 억누를 때 정체 상태가 발생한다. 종교가 권력에 맛들이고 부를 축적할 때, 권력 욕망이 권위를 압도할 때 종교는 타락하게 마련이다. 하나의 소리가 압도적인 지배권을 행사할 때 다른 소리들은 잦아들고 세상은 경직된다. 권력은 위기에 빠질 때마다 폭력을 사용하라는 유혹에 즐겨 굴복한다. 종교적 진실의 핵심은 지배의 포기이지만, 지배에 맛들인 종교인들은 신자들을 수동적 객체로 전락시킴으로 그들의 영혼을 자기 의지에 복속시키려 한다. 자기 확신에 찬 말들이 범람하면서 진리 혹은 진실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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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신의 이름을 오용하는 이들 러시아발 위기가 심각하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남지역을 합병하기 위한 주민투표가 진행되었다. 러시아는 주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고 선언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그 투표가 적법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며 합병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한다. 러시아는 그러나 그런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만약 그 지역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있다면 그것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핵무기도 사용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지역 전문가들은 그 말이 단순한 위협이 아닐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러시아는 이미 예비군 동원령을 내렸고 전쟁에 나설 의사가 없는 이들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외국으로의 이주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