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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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색이 바랜 노란 리본 10년 전, 저마다 다른 꿈을 꾸던 싱그런 304개의 꽃봉오리들이 채 피어나지도 못한 채 떨어졌다. 팽목항 주변을 떠돌던 섧디설운 울음소리는 지금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 진상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 또한 지지부진하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가슴에 달거나 가방에 매달고 다니던 노란 리본은 어느 사이엔가 슬그머니 제거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내 지갑에는 10년 전에 넣어둔 카드가 꽂혀 있다.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부터 바꾸겠습니다.” 지갑을 열 때마다 민망해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살고 있는 나의 무심함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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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고통이 주는 선물 ‘내 인생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요.’ 만나는 이마다 이런 하소연을 한다. 행복은 저 멀리 신기루처럼 깜박일 뿐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전시된 타인들의 행복한 모습은 우리의 남루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감당해야 할 인생의 무게가 태산처럼 느껴질 때 비애감도 덩달아 커진다. 고달픔, 서러움, 억울함의 감정은 무거운 추가 되어 우리를 심연으로 잡아당긴다. 누구나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되는 순간 지금이라는 기적을 한껏 누리지 못한다. 행복의 신기루를 좇는 이들일수록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통은 즉시 제거되어야 할 적이다. 고통은 행복의 철천지원수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병철 교수는 고통에 대한 전반적인 두려움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통에 대한 내성도 급속하게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초래할 수 있는 일에 연루되려 하지 않는다. 사랑조차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택하기도 한다. 외로움이 심화되고 자기 삶을 위협할 수도 있는 타자에 대한 적대감 또한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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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우리 위로 떨어지는 섬광 얼마 전 시카고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다녀왔다. 미국 전역에서 온 참가자들은 3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울림과 어울림’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모임의 첫 시간에 진행자는 참가자들에게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후에 다섯 글자로 이 모임에 참여하며 품은 소망을 표현해보라고 요구했다. ‘날마다 기적’ ‘방향성 찾기’ ‘울림 내 안에’ ‘비움과 채움’ ‘살고 싶어서’ ‘한 박자 쉬고’ ‘한 걸음 성장’ ‘나 좀 살려줘’ ‘별을 찾아서’ ‘홀로와 함께’ ‘모름 속으로’ ‘날 놀래켜 줘’. 아주 짧은 이 표현들 속에 각자가 처한 상황과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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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대한 추위가 무섭지만 정치권은 뜨겁기 이를 데 없다. 거대 양당의 틀 안에서 달음질하는 이들도 있고,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며 판을 다시 짜느라 이합집산하는 이들도 있다. 출사표를 낸 이들은 저마다 경세가를 자처한다.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순정한 마음으로 나선 이들도 있고, 허망한 열정에 들떠 나서는 이들도 있다. 유권자들의 분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상황이다. 박석무 선생의 <다산의 마음을 찾아>를 읽다가 우리 시대를 비춰주는 것 같은 한 대목과 만났다. 다산은 퇴계가 제자 이중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에 주목한다. 퇴계는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탄식이 자기에게도 있다고 고백한다. “나의 경우는 학문이나 능력이 텅텅 빈 사람인데도 그런 줄을 알아차리지 못함에 대한 탄식이라네.” 대학자의 겸허한 자기반성이다. 다산은 그런 퇴계의 글을 읽다가 문득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자기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사람들은 도리어 그의 ‘기억력이 뛰어나다’고 칭찬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모르는 사이에 땀이 나고 송구스럽다. 이를 태연히 인정하여 남들이 속아줌을 즐기다가 진짜 큰일을 맡기는 경우 군색하고 답답함에 몸 둘 곳이 없을 터이니 매우 두려운 일이다.” 성경의 한 지혜자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은금의 순도는 불에 넣어 보면 알 수 있고, 사람의 순수함은 조금만 이름이 나면 알 수 있다.” 무서운 말이다. 자기가 한 일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 평가는 언제든 냉혹한 적대감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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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모든 인간은 시작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는 말한다. “시간을 이용하시오. 시간은 아주 빨리 사라지니까! 질서가 당신에게 시간을 버는 법을 가르쳐줄 거요.” 악마는, 시간은 이용해야 하는 것이고,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질서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을 잘 통제하지 못하고 허비하는 것은 죄라는 것이다. 메피스토의 세계에서 향유를 위한 멈춤은 허용되지 않는다. 꿈을 꾸는 사람이나 사랑에 빠지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한 해의 끝자락에 섰다. 시간을 타고 사는 것 같았지만 실은 시간에 떠밀리며 살았다. 조급증에 시달리며 질주해 온 우리 발자취가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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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기다리는 사람들 기독교인들은 성탄절에 이르기까지의 4주간을 대림절기라 한다. 이미 오신 예수를 기리는 동시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이다. 교회력의 한 해를 기다림으로 시작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기다림은 지금은 부재한 뭔가를 혹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행위이다. 학생은 방학을 기다리고, 군인은 제대 날짜를 기다리고, 구직자는 합격 통보를 기다린다.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는 기다림이야말로 삶의 활력소이다.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고사목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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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씨앗을 손에 쥔 채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우리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세운다. 서방 언론은 이 전쟁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 칭하고, 아랍계 언론은 이스라엘-가자 전쟁이라 칭한다. 한쪽은 암암리에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상기시키고 있고, 다른 쪽은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주목하라고 요구하는 듯하다. 어떻게 칭하든 지붕이 없는 거대한 감옥 같았던 그 땅은 황폐하게 변하고 있다. 가자 땅에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애곡하는 소리가 무딘 귀에도 아프게 들려온다. 벌써 양측을 합쳐 1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고, 그중에는 전쟁과 무관한 어린이와 여성들이 많다. 사회 기반 시설도 다 파괴되고 있다. 난민촌도 공격을 받아 많은 이들이 죽었고, 성 포르피리우스 교회도 파괴되었다. 주민 대부분이 연료, 물, 식량,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피란길에 오를 기회조차 잡지 못한 이들은 절망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상군이 투입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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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니토크리스의 묘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역사’라는 책에서 바빌론 여왕 니토크리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도시 중앙을 통과하여 곧게 흐르던 유프라테스강에 운하 몇개를 파 물이 몇 굽이로 굴절되어 흐르게 했다. 홍수를 예방하는 효과는 물론이고 외적들이 곧바로 도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 많은 기념비들과 도로를 건설했다. 니토크리스는 소름 끼치는 장난도 생각해냈다. 그는 도시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문 위에 자신의 묘를 만들게 한 후 이런 비문을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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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영웅 헤라클레스는 자기 죄를 씻기 위해 에우리스테우스 왕의 종이 되었다. 심술궂었던 왕은 그에게 열두 가지 과업을 해결하라고 명령했다.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을 하루 동안에 청소하는 일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 외양간에는 소가 수천 마리 살고 있었고,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청소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이지만 헤라클레스는 알페이오스강과 페네우스의 강물 줄기를 외양간으로 끌어들여 단번에 외양간 청소를 끝냈다. 과거에는 일거에 일을 끝내버린 헤라클레스의 지력과 담력에 마음이 후련해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외양간의 오물들이 강물로 흘러들어갔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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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학습된 무기력을 떨쳐버리고 세상이 펄펄 끓고 있다. 기후위기는 징후가 아니라 전면적 현실로 우리 앞에 당도했다. 만기가 도래한 약속어음처럼. 집중호우에 제방은 무너지고, 편리를 위해 만든 터널이 무덤으로 변한다. 벌목과 택지 개발이 이루어졌던 산은 흘러내린다. 흔히 재앙은 무차별적이라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해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떠오르고, 비도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그 결과는 공평하지 않다. 재난의 1차적 희생자들은 늘 안전의 취약지대에 사는 이들이니 말이다. 우리의 살림살이를 위협하는 것은 자연재해만이 아니다. 철근을 빼먹고 지은 아파트가 곳곳에 서 있다. 순살 아파트라는 신조어가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우리 시대의 슬픔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책임을 져야 할 당국자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남 탓하기에 분주하다. 무엇이든 정치화하는 순간 책임 소재는 불분명해지고 거친 싸움판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비관주의가 스멀스멀 우리 의식을 파고든다. 공공성에 대한 의식의 쇠퇴를 차가운 미소로 반기는 이들이 있다.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사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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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일본이 다핵종제거설비인 알프스(ALPS)를 통과한 물을 30여년에 걸쳐 태평양에 방류하겠다고 밝히는 시점이 다가온다. 국내에선 때아닌 논쟁이 활발하다. 어떤 이들은 그 물을 처리수라 부르며 인체에 무해하다고 말한다. 국정 고위 책임자들과 원자력 연구자들 가운데는 그 물을 몇 리터라도 마실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들은 그 물을 원전 오염수라고 부르는 이들이 ‘괴담’을 퍼뜨리고 있다고 매도한다. 환경운동가들과 의사들은 아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현실이기에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 동위원소 세슘-137은 반감기가 무려 37년이고, 세슘은 해양생물 속에 농축돼 그것을 섭취하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식 기능이 떨어지고 기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런 위험성을 인지하고, 우리 해역과 수산물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총 177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추가 편성했다고 밝혔다. 어민들과 상인들은 해산물 소비가 줄어들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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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 “이상한 존재는 많지만, 인간보다 더 이상한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나오는 말이다. ‘이상한’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데이논(deinon)은 이상하다는 뜻 외에도 ‘무서운’ ‘경이로운’ 등의 의미로 쓰인다. 평온할 때는 괜찮지만 문득 불안감에 사로잡히거나 갈등 상황에 직면할 때면 인간은 자신을 하나의 문제로 인식한다.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기 정체성을 구성한다. 타자의 존재는 우리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타자의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됨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