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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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걸프 못 지킨 아브라함 협정 2024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아브라함 패밀리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 건축물의 고즈넉함에 한동안 말을 잃었다. 모스크와 교회, 유대교 회당이 나란히, 같은 크기와 소재로 세워진 그 공간은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의 살아 있는 상징이었다. UAE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지어진 이 세 종교의 집은 새로운 중동 질서의 도래를 선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협정의 설계자들은 이를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 경제와 안보의 시대’라 불렀다. 당시 만났던 현지 관계자는 이 협상에 대해 ‘중동 지역은 이제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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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이란 ‘불타버린 세대’의 희망 “잘 지내고 있어? 어떻게 지내? 우리는 모두 잘 지내. 네가 보고 싶다.” 이란의 한 도시에 사는 나의 ‘이란 가족’이 가족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내왔다. 다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나 역시 ‘전쟁’이라는 단어 대신, 그리고 질문을 아낀 채 곧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라는 짧은 답을 보냈다. 단 네 줄의 메시지 속에서도 수백 가지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이란과 미국·이스라엘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전쟁을 다루는 보도 속에는 나의 이란 친구들은 없고, 위협과 팽팽한 긴장만이 존재한다.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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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폭격이 가져다줄 수 없는 자유 미국과 이스라엘이 2월28일 이란 전역에 대규모 합동 공습을 감행했다. ‘장엄한 분노(Epic Fury)’와 ‘포효하는 사자(Roaring Lion)’로 명명된 이 작전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비롯한 수십명의 수뇌부가 제거됐다. 올해 1월, 이란 정권은 1979년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를 총탄으로 진압하며 수천명의 시민을 학살했다. 그 정권의 수장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이스파한과 카라지의 거리에서는 경적이 울리고 테헤란 옥상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47년간 억압받아온 이들의 기쁨은 진심이었고, 그 감정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나의 이란 친구는 고국의 가족들 안위가 걱정되면서도, 다가올 이란의 변화가 기대된다는 이중적인 감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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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아물 수 없는 이란의 역사적 기억 “리알화 가치가 아프가니스탄 돈보다도 못해요.” 2024년 가을 이란 방문 당시, 택시 기사가 한숨 섞어 뱉은 이 한마디는 붕괴해가는 이란 경제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당시에도 달러당 리알화 가치는 폭락해 있었다. 100달러를 환전하자 말 그대로 돈뭉치를 받았다. 2025년 6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공습 이후 리알화 하락세는 가속화됐다. 같은 해 12월28일 일요일, 테헤란 알라에딘 전자상가를 시작으로 이란 경제의 중심 역할을 하는 전통시장 상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시위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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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말라가는 중동, 기후난민 시대 “물, 전기, 생명-우리의 기본 권리!” 올해 5월부터 이란 곳곳에서 터져 나온 절규다.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사흘째 물이 끊긴 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외침이었다. 테헤란의 라트얀 댐은 9%의 물만 남았고, 마슈하드의 아르다크 댐은 3%에 불과했다. 이란 전역 19개 댐이 사실상 바닥을 드러냈다. 지난 11월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비가 오지 않으면 테헤란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가 사원에서 열리기도 했다. 또한 이란 전역에서 이 기후위기에 맞선 시위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국가의 대통령이 1500만명이 사는 수도의 이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위기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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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그저 사고’가 아닌 시민불복종 2025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It Was Just An Accident)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20년간 영화 제작 금지와 출국 금지 처분을 받은 감독이 비밀리에 촬영한 이 작품은, 과거 정치범으로 수감됐던 다섯 명이 자신들을 고문한 남자와 우연히 마주치며 벌어지는 복수극이다. 하지만 파나히 감독은 복수가 아닌 용서, 증오가 아닌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정권이 무너질 때 폭력은 끝날 것인가, 아니면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수 있는 시점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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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시간 지난 21일 캐나다와 영국이 주요 7개국(G7) 가운데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했다. 이튿날 유엔총회장에서는 프랑스가 뒤를 이었다. 호주·룩셈부르크·몰타·벨기에 등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오랫동안 선언적 구호로만 머물러온 ‘두 국가 해법’이 세계의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점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흐름이다. 팔레스타인의 운명이 다시 국제 정치 무대 한가운데 놓였다는 점은 중동 정세의 중대한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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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가자에서 아이들이 죽어간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매일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가자 보건부에 따르면 8월22일 현재 기아로 숨진 이는 최소 273명이고, 그중 112명은 어린이다. 가자지구 아이들의 앙상한 체구는 눈 뜨고 보기가 힘들 정도다. 굶주림과 탈수로 쓰러져가는 아이들의 팔에는 영양실조가 중증임을 알리는 ‘적색’ 진단 팔찌가 감겨 있다.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이 장면은 전쟁이 아니라 굶주림이, 그것도 의도적으로 설계된 굶주림이 생명을 앗아가고 있음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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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갈 곳 없는 아프간 난민의 비극 지난 6월 이스라엘과 이란 간 12일의 직접 무력 충돌이 끝난 후, 예상치 못한 인도적 재앙이 벌어지고 있다. 50만명이 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이란에서 강제 추방당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가장 큰 규모의 강제 인구 이동 중 하나였다. 이는 전쟁의 직접적 피해자가 아니었는데도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바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는 잔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란에 거주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상황은 이 비극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탈레반을 피해 이란으로 간 이들은 테헤란에 떨어지는 이스라엘 미사일을 보며 절망했다. 안전을 찾아간 곳에서 다시 전쟁의 공포를 마주한 것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합법적 지위 없이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피란처조차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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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일어서는 사자’의 충격 2025년 6월 중동에 전례 없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일어서는 사자’ 작전이 중동 정세에 던진 충격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지역 전체가 전면전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이 중동 내 미군과 가족들을 대피시킨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이 시작됐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선제공격으로 이란 핵 과학자 9명과 군 고위 지휘관 30여명을 포함해 최소 224명의 사망자가 17일 현재 보고됐고, 민간인 사망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보복을 넘어 이란의 국가 기능 자체를 마비시키려는 전략적 작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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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트럼프, 이란 상대 ‘되감기 외교’ 2025년 4월, 로마 주재 오만 대사관에서 미국과 이란의 고위급 핵협상이 다시 열렸다. 트럼프 1기 정부가 2018년 핵합의(JCPOA)를 파기한 지 7년 만이다. 협상장 풍경은 기묘했다. 양측은 마주 앉지 않고 오만 측 중재자를 통해 입장을 전달했다. 이 불편한 거리감은 단지 외교적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불신의 깊이를 드러낸다. 협상 테이블에서 양측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다. 미국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이란은 농축이 국가 주권의 문제로 ‘협상 불가’라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협상 실패 시 군사 행동을 위협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선제타격은 거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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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튀르키예 ‘시민 보이콧’ 의미 이스탄불의 4월, 보스포루스 해협의 윤슬이 반짝인다. 시민들은 연휴를 즐기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풍경 이면에는 심각한 정치적 긴장이 존재한다. 지난달 19일,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의 구속 소식이 국제사회에 전해졌다. 임박한 선거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유력한 도전자로 간주되던 이마모을루는 공식적으로는 부패 혐의로 체포됐으나 여러 관측통은 이 조치에 대해 정치적 동기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