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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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꿀벌의 분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꿀벌 집단에서 개체 수를 전담하는 것은 여왕벌이다. 여왕벌의 산란 속도는 경이적이어서, 평균 1분당 1개꼴로 하루에만 약 1500개에 달하는 알을 낳는다. 아무리 일벌의 수명이 6주에서 최대 6개월 남짓으로 길지 않다고 해도, 이 정도 속도라면 곧 하나의 벌집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 마련이다. 이렇듯 밀집도가 올라가면, 이들 중 일부는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며 자연스럽게 분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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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차이는 손이 아닌 발에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신체적 특성 중 하나는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손의 존재이다. 우리는 손으로 수없이 많은 것을 만들고 가꾸고 다듬어왔다. 발로는 그런 걸 할 수 없다. 엄청나게 서툰 결과물을 접할 때 “발로 만들었냐”며 비꼬는 건 그 때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의 손은 해부학적 구성이 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는 물론이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구성하는 뼈의 수도 14개로 동일하다.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각각 5개의 뼈가 있으며, 이들은 다시 여러 개의 뼈들이 어우러져 커다란 관절을 구성하는 손목뼈와 발목뼈들과 맞물린다. 손목뼈가 8개인 데 비해 발목뼈는 7개로 하나가 적을 뿐 손과 발의 전체적인 뼈의 수와 구성, 그 배열 패턴은 매우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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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공감의 뇌과학 “살민 살아진다.” 근래 인기를 끈 드라마에서 많은 사람을 울린 대사다. 사고로 순식간에 자식을 잃고 절망에 빠진 아직은 어린 부모에게, 나이 든 이들이 한 말이다. 하지만 지금 무거운 슬픔에 짓눌린 부부에게 이 말이 제대로 들릴 리 없다. 어떻게 이 슬픔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그렇게 영혼이 빠진 듯 숨만 쉬던 중 부부의 눈에 문득 무언가가 들어온다. 따듯한 밥상, 먼지 없는 마루, 채워진 쌀독, 남겨진 다른 자식들의 말갛게 씻긴 얼굴 같은. 그건 그들이 그 기간을 살아낼 수 있도록 돌봐준 사람들의 흔적이었다. 그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다르게 공감해준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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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긍정보다 부정이 쉬운 이유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인간은 여타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갓 미물이라 여기는 생쥐와 인간의 유전적 일치율은 80%에 달하고, 진화상 가장 최근에 갈라진 침팬지와의 유전적 차이는 1% 남짓이다. 그러나 나무 위의 침팬지들이 수백만년 동안 별 변화 없이 살아온 데 비해, 땅에 내려선 인류는 지형을 뒤바꿀 정도의 문명을 이루며 무려 80억이 넘는 수로 불어났다. 무엇이 침팬지와 인간을 이토록 다르게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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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물고기도 안다 ‘머리가 나쁘다’라고 누군가를 낮잡아 볼 때, 흔히 소환되는 동물 중 하나가 금붕어다. 금붕어의 기억력이 겨우 3초에 불과하다는 낭설은 너무나도 널리 퍼져 있다. 과학적인 시각으로 봐도 물고기의 지능은 물리적으로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대개의 물고기들은 뇌가 아주 작고 신경세포의 숫자도 1000만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적다. 이는 어림잡아도 인간 뇌의 1000분의 1에 불과하며, 이렇게 작은 뇌는 신체활동을 유지하고 움직임을 제어하며 본능적 반응을 담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찰 정도다. 하지만 과연 정말 물고기는 속설대로 멍청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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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나무늘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세상에는 참 다양한 생물들이 많다지만, 그 ‘희한한 동물들’의 목록 상단에 위치할 만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나무늘보다. 남아메리카의 울창한 정글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던 나무늘보를 처음 문명 세계에 알린 것은 16세기 스페인의 한 탐험가였다. 그는 나무늘보를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동물”이라고 혹평했고, 이 부정적인 첫인상은 이후 나무늘보의 이미지를 ‘너무나 게을러 형편없는 짐승’으로 고착시킨다. 나무늘보에 대한 경멸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그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는데, 나무늘보의 영어 명칭인 ‘sloth’는 7대 죄악 중 하나인 ‘나태(sloth)’에서 그대로 붙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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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머무르거나 떠도는 것이 운명을 결정한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종류는 약 200종이나 되지만, 이들을 정착의 여부로만 보면 부착성 세포(adherent cell)와 부유성 세포(suspension cell), 단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부착성 세포는 말 그대로 특정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 서로 결합해 못 박힌 듯 자리를 고수하는 세포들이다. 사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 대부분은 부착성을 가진다. 그렇지 않으면 몸을 제대로 유지하거나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혈관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단단히 결합하지 않으면 혈관에 구멍이 나기 십상일 테고, 복강 내 내장기관이나 근육층 내부에서 머리카락이나 치아가 자라나는 상황은 상상조차 끔찍하다. 이처럼 자리를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에, 부착성 세포들은 제자리에서 떨어지면 사멸하기 마련이다. 부착성 세포에게 정착은 그 자신과 몸 전체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고수해야만 하는 운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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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요리하는 영장류 코로나19 감염 후, 답답한 자가격리를 끝내고 외출이 가능해졌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건 공원이었다. 아직 초봄이라 공기는 차가웠지만, 바깥 바람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짧은 산책의 마무리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제격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한 모금 머금은 따뜻한 액체에서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색과 제형은 커피가 분명한데, 혀는 커피를 인식하지 못했다. 코로나19의 후유증인 미각 상실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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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남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다 퀴즈 하나, 인간의 몸에서 빨간색이고 통통하며 만지면 뜨겁고 아픈 데다 마음먹은 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염증(炎症, inflammation)이다. 충혈, 부종, 열감, 통증, 기능 저하는 염증의 5대 특성이다. 염증은 괴롭다. 라틴어 ‘flamma’는 불꽃이라는 뜻이며, 한자 염(炎) 역시도 불타다는 뜻이니, 염증은 이름 그 자체부터 뜨겁고 괴로운 것임을 내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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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결정적 순간은 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에는 결정적 순간이란 것이 있다. 이전까지는 없던 새로운 개념이나 관점을 누군가가 최초로 깨닫고 그 이후로는 역사의 행보가 달라지는 순간 말이다. 1928년의 어느 날 역시도 그 결정적 순간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바로 알렉산더 플레밍이 실험용으로 키우던 세균 배양접시에 페니실린을 품은 푸른곰팡이가 날아든 순간 말이다. 흔히 페니실린은 ‘최초의 항생제’라 불린다. 항생제(antibiotics)란 “미생물이 다른 미생물의 성장과 증식을 억제하거나 사멸시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물질”을 의미한다. 미생물들이 경쟁자를 물리치고 자신만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화학무기가 바로 항생제인 셈이다. 미생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저마다 다양한 종류의 항생제를 만들어 서로를 견제해왔다. 하지만 인간이 이를 눈치채고 이용하기 시작한 건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만드는 곰팡이를 찾아낸 바로 그 순간이라 여긴다. 그러나 인류가 ‘세균 잡는 곰팡이’의 가능성을 눈치챈 건 이보다 훨씬 이전이었다. 플레밍의 발견보다 반 세기나 앞선 1870년대, 이미 영국의 생리학자 존 버든 샌더스경은 곰팡이로 덮어둔 배양액에서는 세균이 자라지 못함을 발견한 바 있고, 무균수술법을 창시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의사 조지프 리스터는 심지어 푸른곰팡이의 일종(Penicillium glaucium)이 인체 조직에서 세균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음을 관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발견은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않고 미지의 가능성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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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한 마리 펭귄을 키우는 데 필요한 책임과 믿음 사시사철 추운 남극에서도 가장 추운 겨울인 5월에서 8월까지는 황제펭귄의 번식기다. 황제펭귄은 암컷이 낳은 알을 수컷이 품어 부화한다.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와 시속 100㎞에 달하는 칼바람 속에서 두 달여를 꼼짝하지 않고 발 위에 놓인 알을 소중히 품은 채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는 황제펭귄의 모습은 ‘부성애’의 대표적 이미지로 그려진다. 심지어 수컷 펭귄은 오랜 굶주림 속에서도 끝까지 소화흡수되지 않고 배 속에 남겨둔 물질들로, 젖과 비슷한 유동식인 펭귄 밀크(Penguin milk)를 만들어 새끼에게 먹이기도 한다. 이러한 아빠 펭귄의 숭고한 부성애는 감동적이지만, 어린 펭귄이 무사히 살아남아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부성애 외에도 다른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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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너그러움·친밀함, 유전자에 남은 생존의 지혜 1938년, 500마리의 붉은털원숭이를 실은 배가 인도를 출발해 대서양 건너 푸에르토리코의 카요 산티아고라는 작은 섬으로 향하는 긴 여정에 올랐다. 이들은 영장류의 사회생활과 성적 행동 연구를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의 주요 관찰 대상자로 선정되어 강제이주 중인 상태였다. 편한 여행길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당수의 원숭이들이 선상에서 목숨을 잃을 정도로 가혹한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일부는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작은 섬 카요 산티아고는 곧 ‘원숭이섬(Monkey Island)’이 되었고, 이곳은 영장류 학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인위적이지만 더없이 이상적인 연구실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