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유전자에 어떤 경험을 새길 것인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아이들 유전자에 어떤 경험을 새길 것인가

‘복제(複製)’의 한자를 풀이하면 ‘겹옷(複)을 짓다(製)’는 뜻이다. 그래서 복제란 마치 옷 두 벌을 겹쳐서 똑같은 옷을 한 벌 더 짓는 것처럼 ‘본디의 것과 똑같은 것을 만드는 행위 또는 그렇게 만든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생물도 예외가 아니기에, 체세포핵치환을 통해 어떤 생물의 유전적 정보를 복제하면 그 생명체와 똑같이 생긴 존재가 태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2001년 세계 최초의 복제 고양이가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제의 대상이던 암컷 고양이 레인보는 오렌지색과 검은색 털이 알록달록 섞인 삼색털 고양이였지만, 복제하여 태어난 암고양이 CC는 흔히 ‘고등어’라고 불리는 특징적인 검은색 줄무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은 고양이에게서 털색을 나타내는 유전자의 발현 패턴에 있었다. 고양이의 털빛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X 염색체 위에 있다. 그런데 암컷의 경우 두 개의 X 염색체 중 한쪽만 기능하고, 다른 한쪽은 발생 과정에서 불활성화되며 쪼그라든다. 이를 바소체(Barr body)라고 하는데, 두 개의 X 염색체 중 어떤 쪽이 바소체가 되는지는 순전히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 암컷 삼색털 고양이는 양친으로부터 각각 오렌지색 털과 검은색 털 유전자가 든 X 염색체를 물려받지만, 어느 쪽 유전자가 든 X 염색체가 바소체가 될지는 세포마다 무작위적이다. 그래서 아무리 유전적 쌍둥이라 해도 최종적인 털빛과 패턴은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결정은 무작위적이라 해도, 한번 결정된 패턴은 평생 지속된다. 그래서 한번 결정된 고양이의 털색은 자란다고 바뀌지 않는다.

생물의 특성이 수정 시 양친에게서 부여받은 유전자의 유무에 의해서만 확정되는 것이 아니며, 발생 과정에서 그 발현 정도가 조절되어 최종 표현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후생유전학(epigentics)’의 기본 개념이 되었다. 전등을 설치했다고 늘 불이 켜지는 게 아니라 스위치로 온·오프를 조절하는 것처럼, 생물의 유전자도 가지고 있다고 모두 발현되는 게 아니라, 유전자 스위치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에 메틸기(-CH3)가 붙으면 불활성화되고, 아세틸기(-COCH3)가 붙으면 활성이 촉진된다. 다만 필요에 따라 쉽게 켜고 끌 수 있는 전등과는 달리 유전자 스위치는 한번 결정되면 고정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차이가 있다.

이후 연구가 지속됨에 따라 고양이의 털빛처럼 무작위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개체가 자라면서 겪는 환경과의 상호 소통이 유전자 스위치의 온·오프를 조절할 수 있음이 밝혀진다. 대표적인 것이 어미 쥐의 모성 행동이다. 어미 쥐는 어린 쥐를 본능적으로 핥아주고 털을 골라주며 보듬는다. 하지만 그 행동의 빈도와 지속 시간은 쥐마다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냉담한 어미의 손에서 자란 쥐들은 낯선 환경을 더 두려워하고 잘 놀라는 겁 많은 쥐로 자라났지만, 다정한 어미의 자손들은 반대의 행동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라서 자신이 받은 대로 자손에게 행했고, 그러다 보니 세대가 지날수록 두 그룹의 쥐들은 전혀 다른 성향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었다. 어미의 다정한 행동이 갓 태어난 새끼 쥐의 뇌에서 스트레스 저항성 호르몬 유전자의 스위치를 켠 것이었다. 이는 어미가 누군지와는, 다시 말해 어린 쥐의 유전적 특성과는 상관없었다.

모든 쥐들은 동일하게 스트레스 저항성 호르몬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스위치를 켜거나 끄는 건 그들이 경험한 어미의 다정한 행동이었다. 최고로 냉담한 어미에게서 태어난 새끼 쥐라 하더라도, 다정한 유모에게 맡겨지면 그들의 스트레스 저항성 호르몬 유전자는 반짝반짝 켜지고 이는 평생 지속되어 훗날 자신의 자식들에도 다정하게 대했다. 충분히 보살핌을 받은 경험이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고, 대를 물려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후생유전학자들은 ‘경험은 유전자에 새겨진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더라도 출생 이후 경험에 따라 유전자 스위치의 온·오프가 결정되고, 일단 결정된 유전자 스위치가 개체의 평생을 넘어 대물림된다는 사실은 다음 세대를 대함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정하게 대우받은 아이는 그 다정함을 물려준다. 아이의 경험이란 일차적으로는 부모와 가정이 담당하는 일이지만, 모든 아이가 적합한 환경에서 태어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모자란 경험을 공동체가, 국가가, 기존의 세대들이 나누어 줄 수 있는 사회가 진정으로 ‘인간다운’ 사회일 것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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