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최신기사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미국 재정적자가 글로벌 경제의 약한 고리 금주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을 넘어섰고, 코스피는 2600선을 하회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미국의 조기 금리 인하가 힘들어졌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금리를 낮추기에는 미국 경제가 너무 뜨겁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7%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경제가 잠재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성장을 하는 상황에서 물가가 안정되기는 어렵다.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존립 근거로 삼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의 통제하에 순조롭게 억제된 경우는 역사적으로 매우 드물었다. 대체로 경제에 큰 탈이 나고 나서야 물가가 잡혔다. 1970년대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린 후에야 멈췄는데, 당시의 고금리는 미국 경제의 리세션과 달러 부채가 많았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채무불이행으로 귀결됐다. 1980년대 후반 인플레이션은 미국 주택대부조합(S&L)의 파산을 불러온 이후에야 진정됐고, 1990년대 중반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연준의 긴축은 한국과 태국 등을 엄습한 신흥국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2000년대 초반의 인플레이션과 연준의 긴축은 미국 모기지 시장의 붕괴로 이어졌다.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일본 경제가 직면한 도전, 과도한 관치와 세대 충돌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 중반에는 일본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개발연대기 한국의 성장모델이 일본을 따라잡기 위한 ‘캐치 업(catch up)’ 전략에 기반하고 있었던 데다 당시만 해도 일본이 꽤 괜찮은 경제모델로 평가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가전업체 조지루시가 만든 코끼리 밥솥이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 구매 대상이 될 정도로 ‘일제(made in Japan)’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돌아보면 일본이 이후 걸어간 ‘잃어버린 30년’의 초입이었지만 말이다. 2000년대 들어서선 한국이 일본에 대해 가졌던 열등감은 거의 없어졌다. 새롭게 열리던 중국 시장에서 큰 기회를 잡으면서 한국 경제는 도약했다. 기업단위에서도 삼성전자는 소니를 따돌렸고, 현대차는 도요타에 비견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반면 일본 경제는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 폭락이 수반된 장기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일본 경제의 위상은 본받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의 사례로 추락했다.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지난해 말부터 주식시장과 관련해 이런저런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격적인 공매도 금지와 주식 양도차익 과세 기준 완화 등이 발표됐고, 내년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상속세 기준 완화 등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주식시장 부양을 도모했던 과거 관치경제 시절의 무지막지한 증시지원책이 있기도 했지만, 단발성 정책을 넘어 요즘처럼 주식시장과 관련한 이슈들이 연이어 사회적 의제로 부각됐던 기억은 없다. 이런 논의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최근 수년 사이 주식시장 등락에 이해관계가 노출된 국민은 급증했는데, 한국 증시의 성과는 신통치 않은 탓일 게다. 한국의 주식투자 인구는 2019년 말 618만명에서 2022년 말에는 1441만명까지 늘어났다. 한국 증시의 장기 성과는 매우 부진한데, 종합주가지수(코스피)는 최근 10년(2014년 2월8일~2024년 2월7일) 동안 36%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각각 178%, 150% 오른 미국 S&P500지수, 일본 닛케이225지수와 비교하면 초라한 성과이고, 장기 정체에 빠져 있는 중국 상하이종합지수 상승률 38%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경기 사이클이 달라졌다 필자는 1996년부터 증권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직장 생활 초기 10여년은 그야말로 ‘다이내믹 코리아’를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사원 때 외환위기가 터졌고, 대리가 되니 당시 3대 재벌이었던 대우그룹이 파산했다. 과장으로 승진하니 카드위기로 경제가 휘청였고, 차장 때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불길이 한국으로 옮겨붙었다. 각각의 위기는 대형 금융기관들의 파산 위험이 수반되며 금융시스템과 실물경제가 동시에 흔들리는 시스템 리스크로 비화됐고, 그때마다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코스피는 50% 이상 급락하면서 소위 반토막이 나곤 했다.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주주들 힘으로 활력을 도모하는 일본 경제 미국의 1980년대는 욕망의 시대였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옹호한 케인스주의가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거치면서 권위를 잃었고, 시장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시카고학파의 보수주의 경제학이 힘을 얻기 시작한 시기가 1980년대였다. ‘시장’과 ‘경쟁’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절대선이었고, 금융시장은 부를 좇는 원색적 욕망이 가장 적극적으로 투영되는 장이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8년작 <월 스트리트>에 나오는 고든 게코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제국이 쇠할 때 나오는 신호들 주식시장에서는 최고의 기업에 투자해 큰 손실을 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는 과잉낙관에 대해 주가가 반응하는 과정이다. 아무리 훌륭한 기업일지라도 낙관적 기대가 주가에 충분히 투영돼 있다면 좋은 투자 대상이 아니다. 장밋빛 미래의 스토리는 투자자들을 매혹하지만, 이미 이런 기대를 넘치게 반영하고 있는 주가는 뒤늦게 매수에 가세한 투자자들을 실망시키곤 한다.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일 때가 실은 투자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일 수 있다. 국가 경제 역시 자신감이 넘칠 때가 하강 사이클이 시작되는 변곡점이 되곤 한다. 한국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듬해 IMF 외환위기를 맞았고, 중국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4조위안의 경기 부양책을 통해 ‘한때는 (개혁개방으로) 자본주의가 중국을 살렸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중국이 자본주의를 살렸다’는 칭송을 받았던 때가 경제적으로는 정점이었다. 부동산에 집중됐던 과잉투자는 지금까지도 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주가로 보는 경제, 소수만 흥하고 다수는 어렵다 주식시장은 당대의 경제 상황을 반영한다.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코스피가 처음 1000선에 올라선 때는 1989년 3월이었다. ‘3저 호황’을 등에 업고 한국 경제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린 시기에 코스피지수는 사상 처음 네 자릿수에 올랐다. 코스피가 2000선에 도달한 시기는 2007년 7월로 1000선 도달 후 1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중국 경제 고성장의 수혜를 누리면서 당시 코스피는 레벨업됐다. 이후 코스피는 코로나 팬데믹 직후의 초저금리를 동력으로 2021년 1월 3000선에 올라섰지만 이후 조정 국면이 이어지면서 2000선으로 내려앉았다.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시장 개입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쟁들 지난달 열린 ‘2023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다시 강조했다. 재정지출은 늘 뜨거운 감자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면 ‘세금을 낭비하면서 눈 먼 돈이 풀린다’는 우려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 ‘정부의 공적 역할을 방기한다’는 비판이 나오곤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정부의 재정 건전성 강조는 보수주의자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정책 방향이다.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경제적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를 나눈다. 경제적 진보주의자는 정부가 개입해 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고, 보수주의자는 정부가 끼어들어 자원 배분을 왜곡하기보다는 가능하면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양자의 대립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고여 있는 부(富)의 순환을 허하라 경제 성장과 불평등 사이에 뚜렷한 인과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 성장이 불평등을 강화하거나 혹은 약화하는 쪽으로 일관되게 작동하지는 않았다. 통념과는 달리 1980년대 한국은 경제적으로 비교적 평등한 사회였다. 정치적 민주화와 궤를 같이했던 1987년 이후의 전투적 노동운동이 불평등을 완화한 측면도 있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 약화는 1980년대 전반에 걸쳐 추세적으로 진행됐던 현상이다. 1987년 이전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시기에도 불평등 지표는 약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또한 포스코와 한국전력 등 우량 공기업들의 소유권이 국민주 공모라는 이름으로 다수 대중들에게 분산되기 시작하던 시기도 1980년대였다.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행동하는 주주들 A사는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유제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이다. 오랫동안 영업을 잘해온 우량 기업이었고, 주가도 한때 116만원까지 상승해 황제주 대접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좋았던 회사가 10여년 전부터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리점에 대한 갑질과 고객 개인정보 유출, 오너 일가의 회삿돈 유용 의혹이 잇따라 터져나오다가 급기야 자사 제품이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가 치명타를 맞았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돌출된 스캔들이라 더욱 큰 공분을 샀다. 영업실적도 추세적으로 악화됐다. 2022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최근 10년 동안 자기자본이익률(ROE)은 평균 -1.6%였다. A사는 장기적으로 경제적 부(富)를 파괴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은행에 예금을 해도 부가 조금이라도 증식되는데, 장기간의 기업 활동이 결과적으로 부를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은행 위기와 대마불사 자본주의 은행 위기는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속성을 가진다. 은행의 실제적 상황과는 관계없이 예금자들이 은행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면 그 자체로 은행은 파산한다. 은행의 기본적인 비즈니스는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하는 일인데,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인출하면 버텨낼 수 있는 은행이 없다. 은행의 위기는 경제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비화되곤 한다. 은행은 돈의 흐름을 중개하는 경제의 혈관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은행이 힘들어지면 대출이 중단되고,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게 된다. 돈이 돌지 않는 금융시장의 경색은 실물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줘 급격한 경기 하강을 유발하게 되는데, 금융이 매개가 된 이런 일련의 악순환이 시스템 리스크이다. 혹여 은행이 파산하기라도 하면 혼란은 배가된다. 2007~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과정에서 경험했던 그 난리통이 시스템 리스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금융 권력 흥망사 문학과 영화에 나오는 금융인들은 악당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그렇고, 올리버 스톤 감독은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M&A 전문가 고든 게코를 ‘고삐 풀린 탐욕’을 상징하는 인물로 묘사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나오는 은행원 고태수는 순진한 여성 초봉을 희롱하는 바람둥이이고,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에서 부모를 살해하는 악한 조규환의 직업은 거액의 자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였다. 금융인들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비호감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금융이 실물경제에 기생하는 영역이라는 오래된 편견이 있고, 이자 수수를 금지하는 기독교 문화권에서 금융은 천대받던 소수자인 유대인의 영역이었다는 역사적 맥락, 대체로 10여년에 한 번씩 나타났던 금융 스캔들이 경제 전반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그것들이다.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