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금융 권력 흥망사

문학과 영화에 나오는 금융인들은 악당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그렇고, 올리버 스톤 감독은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M&A 전문가 고든 게코를 ‘고삐 풀린 탐욕’을 상징하는 인물로 묘사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나오는 은행원 고태수는 순진한 여성 초봉을 희롱하는 바람둥이이고,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에서 부모를 살해하는 악한 조규환의 직업은 거액의 자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였다. 금융인들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비호감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금융이 실물경제에 기생하는 영역이라는 오래된 편견이 있고, 이자 수수를 금지하는 기독교 문화권에서 금융은 천대받던 소수자인 유대인의 영역이었다는 역사적 맥락, 대체로 10여년에 한 번씩 나타났던 금융 스캔들이 경제 전반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그것들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대중들의 평가와는 별개로 금융의 현실적 영향력은 시대별로 달랐다. 금융은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19세기의 금융이 그랬다. 정부의 조세 정책도, 제대로 된 중앙은행도 없었던 시대, 돈줄을 쥐고 있던 금융은 막강한 권력이었다. 프랑스 루이 18세의 경제 책사였던 리슐리외는 영국의 유서 깊은 은행 베어링브러더스와 관련해 이런 말을 남겼다. “유럽에는 6개의 위대한 힘이 있다.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그리고 베어링브러더스이다.”

금융, 공적 통제 피하기 힘든 산업

신대륙 미국에는 JP모건이 있었다. JP모건 본사가 위치해 있었던 월스트리트 23번지에는 상호가 들어 있는 간판이 붙어 있지 않았다. 굳이 스스로를 광고할 필요도 없이, 돈이 필요한 이가 찾아오라는 오만 섞인 자부심의 산물이었다. 이 건물은 ‘더 코너(the corner)’로 불렸다. JP모건은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공룡기업이었다. 금융뿐만 아니라 당대의 성장산업이던 철도 비즈니스를 쥐락펴락하는 거물이었고, 철강왕 카네기로부터 제철회사를 인수해 ‘유에스 스틸’이라는 당대 최대의 철강 트러스트(기업 결합체)를 만들어 운영했다. 또한 해운 트러스트인 IMM을 조직한 세계 해운 시장의 큰손이기도 했는데, 대서양을 항해하다 비극적으로 침몰한 타이태닉호도 IMM에 속한 선박이었다. JP모건은 당시 가장 큰 벤처 투자자이기도 했다. 에디슨이 설립해 후에 GE로 성장하는 ‘에디슨 전구’의 초기 투자자가 JP모건이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금융이 누렸던 호시절은 끝났다. 금융은 공적 규제의 대상이 됐다. 애초부터 금융이 공격의 타깃이 됐다기보다는 거대한 덩치의 JP모건이 반독점의 칼날을 맞았다. 거대한 트러스트는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원흉으로 비난을 받았는데, 1890년에 반독점법의 원조인 셔먼법이 제정됐고, 20세기 최초 10년의 미국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반독점의 선봉에 섰다.

금융권력 JP모건이 미국 의회의 ‘푸조 청문회’에 불려 나간 해는 1912년이었다. 칠순 노인 모건은 의회에서 신랄한 추궁을 받았고, 이듬해인 1913년에 사망했다. 모건의 사망과 함께 금융은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왔다. 모건이 사망한 해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만들어졌다. JP모건은 연방준비제도 설립의 후원자이기도 했지만, 민간 금융자본의 위상은 공적 중앙은행이 설립된 이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각종 금융감독기관이 생겼고 금융은 공적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금융은 공적 통제를 피하기 힘든 산업이다. 금융은 기업주의 출자금보다는 고객의 돈으로 비즈니스를 한다. 2022년 9월 말 기준 한국 상장 제조업체들의 자기자본 총계는 1236조원이고, 부채 총계는 1277조원이다. 반면 금융업은 자기자본이 609조원인 데 비해 부채는 4775조원이나 된다. 자기자본과 부채는 기업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자금의 원천인데, 자기자본은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이 부담하는 몫이고, 부채는 타인에게 빌려온 돈이다. 금융회사에 돈을 빌려주는 이들은 금융회사의 고객인 경우가 많다. 금융소비자가 예금을 하면 은행은 이를 기반으로 대출을 하고, 은행 입장에서 고객에게 받은 예금은 부채가 된다. 한편 은행 예금은 정부로부터 예금자 보호를 받는다. 자기자본보다 부채 규모가 훨씬 큰 고위험 산업이고, 사업 자금은 주주들이 아닌 고객들이 많이 대고, 일정 정도 정부의 보호까지 받는 금융업이 100% 사적 자율성이 관철되는 산업이라고 볼 수는 없다.

주주권, 공적 통제서 꼭 논의돼야

문제는 공적 통제의 범위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관치금융이라는 단어에서 음험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개발연대기의 특혜금융과 정치권력에 의한 인맥 심기가 횡행했던 과거 역사에 있다. 특혜금융은 성장 둔화가 역력한 한국 경제에서 앞으로 큰 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고, 인사 문제는 향후 관료들이 자신들의 진실성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금융규제의 정도는 국가별로도 차이가 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융규제가 강화됐지만, 지역별로는 온도차가 있었다. 미국은 2017년 트럼프 정권 출범 국면에서 금융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유럽은 완고한 규제의 틀을 유지했다.

주주권은 금융에 대한 공적 통제에서 꼭 논의돼야 할 부분이다. 주주들의 권리와 금융이 가진 공익성은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금융업은 공적인 속성이 다분히 있지만, 주주들에게 이런 책무를 강요할 수는 없다.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데, 금융규제의 강도에 따라 금융주 주가는 매우 큰 편차를 나타냈다.

금융위기 직후 글로벌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던 2009년 2월 말 이후 14년 동안 유럽의 금융주 지수는 4.8%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미국의 금융주 지수는 454%나 급등했다. 한국도 금융업종 지수가 24.7% 오르는 데 그쳐, KOSPI 상승률 128.4%에 훨씬 못 미쳤다. 많이 벌면 견제가 들어오는 성격을 가진 공익적 업종에서는 안정적 배당이 주주들에게 나름의 보상이 될 수 있다. 한국 금융지주회사들의 배당성향은 25% 정도인데, 국제 비교에서 배당을 더 늘릴 여력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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