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령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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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시기와 불안에 흔들림 없는 나무로 산다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의문을 안고 살아간다. 남들보다 뒤처진 것은 아닌지, 이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지, 불안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 답을 찾으려 할수록 질문은 늘어나고 마음은 그 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세상에 초연할 수 있는 존재를 꿈꿀 때가 있다. 어떤 변수들이 밀려와도 발목 잡히지 않을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의 존재를. -
그림책 소중한 사람의 곁을 지키기 위한 쉼 없는 달리기 때때로 삶이 달리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내가 왜 이 길 위에 서 있는지조차 흐릿해진다. 끝이 보이지 않아 주저앉고 싶은 위기도 찾아온다. 그렇게 모든 것이 벅찰 땐 나를 기다리는 가족, 혹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을 향해 다시 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될 테니. -
그림책 이상한 나라의 보통 사람은 이상한 사람인가, 보통 사람인가 거리를 걷는 사람의 배낭 위엔 흰 새가 올라타 있고, 카페에 앉은 사람은 떡하니 ‘가짜뉴스’라고 적힌 신문을 읽는다. 옆집 굴뚝엔 바나나가 꽂혀 있다. 그 집 아저씨가 가꾸는 정원엔 낙타가 보인다. 아이가 가는 곳곳마다 이상한 사람들, 그리고 조금씩 어긋난 풍경들이 지나간다. 이 그림책은 이렇게 노골적인 장면들로 독자를 맞이한다. ‘이상함’은 처음부터 책장 한가운데에 놓인다. 일러스트레이터 카타리나 소브럴이 그린 세상에선 보라색 나무가 자라고 자전거 안장은 핫도그로 만들어진다. 현실을 닮았지만 현실 같지 않은 일상의 모습들은 보는 이의 시선을 붙잡는다. 왜 여기에 이게 있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피식 미소가 새어 나온다. -
그림책 상처를 가능성으로 만드는…이토록 무해한 상상 집 안을 날쌔게 돌아다니다가 꽝! 넘어진 아이의 머리엔 혹이 생겼다. 거울을 확인한 아이는 ‘알’이 자란 이마를 보며 놀란다. 그러곤 볼록 솟아오르는 알만큼 호기심도 부풀어 오른다. 만약 주변에 걱정 많은 어른이 있었다면 괜찮냐고 달려왔을 상황이다. 하지만 아이는 알로 보이는 혹 앞에서 울음 대신 질문을 꺼낸다. 이 알에선 누가 태어날까? 아이는 백과사전에서 온갖 알들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타조가 나오기엔 너무 크고 벌새가 나오기엔 너무 작은 알. 누나는 악어알 아니냐고 끼어든다. 수탉이 나올 것 같다는 말도 들었는데, 아이는 아침부터 울어대는 수탉은 원하지 않는다. 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알. 아이는 결국 수건으로 머리를 칭칭 감아 따스한 등불 밑에서 알을 부화시키려 한다. 한숨 자고 눈을 떠보니 “꼬꼬 꼬꼬꼬!” 자그마한 병아리들과 암탉이 방을 돌아다닌다. 아이는 다행히 수탉은 아니라고 안심한다. -
그림책 인샬라, 잿빛 가자에서 색색의 꿈을 꿉니다 바닷가에서 즐겁게 놀던 아이가 팔레스타인에서 온 편지를 발견한다. 일상이 무너진 가자지구에서, 한 어린이가 친구를 만들고 싶어 보낸 편지다. 편지엔 전쟁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포연 속에서 살아가는 소년의 삶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편지를 보낸 아이의 이름은 칼리드. 칼리드는 편지를 받을 친구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 칼리드는 축구와 수영 그리고 올리브 나무를 좋아한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가끔은 방에 꼭꼭 숨어 있어야 해서 공을 찰 수 없고, 모든 것이 모자라 수영을 할 수 없다고 아쉬워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올리브 나무를 베어버리는 ‘그들’이 있다고도 말한다. -
그림책 토끼 대신 범 내려왔다…쑥대밭 용궁 어떡하지? 은색 파도가 부서지는 동쪽 바다 아래엔 큰 병에 걸린 용왕이 누워 있다. 잉어 의원은 육지에 사는 토끼, 즉 토선생의 간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바다 밖에서도 숨 쉴 수 있는 건 오직 자라 영감뿐이다. 귀가 아주 어두운 자라 영감이 생김새조차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동물을 꾀어 그의 간까지 빼 올 수 있을까? 물고기 신하들의 ‘잘 듣고 실수하지 말라’는 잔소리를 뒤로하고 뭍으로 올라온 자라 영감. -
그림책 그렇게 우리 광장에 함께 앉아 이겨냈다 책상에서 밤새워 공부하는 수험생,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긴 수도승, 매일 같은 자리로 출근하는 직장인들. 이들 모두 ‘엉덩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다. 엉덩이 싸움은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인내의 시간이며 가장 조용한 저항이기도 하다. 작가 둘채는 엉덩이 싸움을 시작한 한 소녀의 투쟁을 오직 검은 펜 선으로 따라간다. ‘앉아있기’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소녀는 대통령의 ‘앉기 금지’ 선포를 맞닥뜨린다. 그러곤 앉을 권리를 되찾으려 광장에 앉는다. 이미 많은 동지가 “서있기를 거부한다” “앉는 게 뭐 어때서”가 적힌 팻말을 들고 앉아 있다. 작가는 폭력 대신 평화를 선택한 삽화 속 시민들을 둥글고 부드러운 그림체로 그려냈다. -
그림책 숨기고 싶은 손톱…어쩌죠? 또 물어뜯고 싶은데 무의미하게 슥슥 넘기는 스마트폰 속 쇼츠 영상, 배고프지 않아도 먹게 되는 야식…. 나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해치는 행동인 걸 알지만, 이성보다 몸이 항상 먼저 나선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고쳐지지 않는 버릇은 어른에게도 숙제다. 하물며 어린이들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잘 먹는 호호는 손톱까지 물어뜯어 먹는 습관이 있다. 호호가 뜯어낸 손톱들은 잇자국이 더해져 마치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뾰족한 박쥐 같다. 호호도 알고 있다. 갈기갈기 찢긴 손톱이 부끄럽다는 사실을. 학교 수업 중엔 손을 들지 못하고, 좋아하는 친구 앞에서도 팔을 자신 있게 내밀지 못한다. -
그림책 짝 잃은 양말은 쓸모를 잃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사라진 양말한 짝 루시아나 데 루카 지음·줄리아 파스토리노 그림 | 문주선 옮김 | 여유당 | 40쪽 | 1만7000원 빨래를 하고 나면 양말 하나 홀로 남을 때가 있다. 집 구석구석을 찾아도 사라진 한 짝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 태어날 때부터 함께였던 양말 알록이와 달록이가 있다. 이 둘의 생이별도 어느 날 세탁기 속에서 갑작스레 찾아왔다. -
그림책 인간아, 우리를 어디까지 밀어낼래 숲의 끝에서지성희 지음 | 고정순 그림킨더랜드 | 40쪽 | 1만6800원 끝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 호기심 많은 고라니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발아래 부서지는 낙엽 소리로 길을 느끼고 나뭇잎 사이로 내려앉는 빛을 보며 하늘을 상상하는 이 작은 생명체는 거대한 녹음의 경계가 궁금하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 고요히 바라보는 고라니와 눈이 마주쳤다면 시선을 따라 조심스레 책장을 넘겨보자. -
그림책 빈자리는 그리움으로 채우고, 이제 저와 함께 걸어요 바삐 움직이는 짧은 다리에 보폭을 맞추고, 익숙한 길을 나란히 걷는다.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채워지는 순간. 하루하루 다를 것 없이 흘러가지만 우리만의 계절이 쌓여간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산책’이란 이런 시간이다. 강아지가 다친 다리로 흙길을 걷고 있다. 마음껏 먹고 뛰노는 꿈을 꾸는 이 강아지는 어느 노부부를 만난다. 그리고 ‘건이’라는 이름도 생긴다. 나무에 새잎이 나면서 건이의 상처에도 새살이 돋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산책도 나가기 시작한다. 마음껏 달릴 때 들리는 콩콩 심장 박동 소리, 뒤돌아보면 늘 따라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에 건이는 행복하다. -
그림책 미래는 미스터리, 그러니 지금을 지켜야 할 뿐 소년과 녹나무히가시노 게이고 지음·요시다 루미 그림유소명 옮김 | 소미미디어 | 40쪽 | 1만8500원 일본 대표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림책을 냈다. 작년에 출간된 <녹나무의 여신>을 읽은 독자라면 더욱 반가울 작품이다. 소설 속 소년과 소녀는 그림책을 만드는데, 그 이야기를 완성해 엮은 작품이 <소년과 녹나무>다. 추리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이야기가 어우러진 그림책, 궁금해서 펼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