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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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제2의 방송개혁위 설치를 공약하자 20세기 말에 만든 현 방송법이 그간의 환경 변화에 뒤처졌다는 게 방송계의 중론이다. 차기 정권에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텐데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정상적이라면 오랫동안 꿈꿔온 대권 희망자와 그의 조력자들이 그간 갈고닦아온 새 비전을 공약으로 제시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선인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에 정부 조직 등을 정비해 취임한 뒤 앞서 준비한 바들을 펼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급히 치르는 대선일 다음날 인수위조차 없이 바로 대통령 직무를 시작할 다음 정권에서 방송 영역은 기존 질서가 일단 답습될 가능성이 높다. 극심한 정파적 극화 상황에서 당장 닥칠 정무적 사안들의 돌출로 큰 틀에 대한 숙고는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방송 분야는 정치적·산업적 이해가 교차하는 곳으로서, 잘못 건드렸다가는 국정 지지율 등에서 손해만 볼 수 있다. 그간의 대통령들이 방송법 전면 개정보다는 당장 불가피한 부분만 수선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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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주목 경제’ 시대의 언론, 정치, 교회 눈길 끌기가 경제적 성패를 좌우하는 현상을 ‘주목 경제’(economy of attention)라고 한다. 온라인에서 흘러넘치는 정보와 미디어가, 제한된 인간의 주목을 놓고 경쟁하는 세상이다. 시장 상인이 손뼉 치며 외치듯, 언론은 자기 기사를 클릭해달라며 ‘속보’ ‘알고 보니’ ‘충격!’ 등의 어구로 시선을 끌려 한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이용자의 성향을 분석해, 클릭할 수밖에 없는 영상을 무한 공급한다. 그 결과는 기존 신념에 맞는 정보만 지속·증폭·강화되는 ‘메아리 방(echo chamber) 효과’이며, 그 끝은 우리가 지금 생생히 경험하는 정치적 극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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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 이유 조 바이든이 승리했던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 공화당 지지자 상당수가 선거 사기를 의심하고, 진짜 승자는 도널드 트럼프라고 믿었다. 투표 기계의 표 바꿔치기나 트럼프를 찍은 투표용지 대량 파기 등으로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사기 증거는 발견된 바 없으며 각종 문제 제기는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지만 잘못된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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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언론이 사이비 민주주의자를 대하는 법 스웨덴의 ‘민주주의 유형 연구소’(Varieties of Democracy Institute)는 2024년 3월에 발표한 전년도 세계 민주주의 상황에 대한 보고서에서 한국을 ‘독재화 국가’ 42개국 중 하나로 분류한 바 있다. 여기서 독재화란 한 나라의 ‘자유민주 지수’가 그 전 해보다 하락한 것을 말한다. 이 보고서는 특히 문재인 정부 때 상승했던 지수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불과 1년 만에 원점으로 돌아갔음을 짚었다. 보고서는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을 축소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일반적으로 언론인 괴롭히기를 통해 작동”한다며, 한국을 “표현과 언론의 자유 훼손이 비단 혹독한 독재 국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았다. 윤 대통령의 집착적 ‘자유민주 선언’은 그만큼의 허언이었고 독재화의 끝은 친위 쿠데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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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내란 보도, 삼인성호의 주술에서 벗어나야 잠시 움츠렸던 내란세력은 우두머리의 선동과 함께 다시 일어났다. 극우 컬트 집단도 동원됐다. 나는 초기에 윤석열과 김용현이라는 망상가들의 돌출 행동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건은 이해관계로 묶인 권력 네트워크가 공유한 집단적 욕망의 표출이란 것을 깨닫는다. 본래 친위 쿠데타라는 것이 권력을 독점, 영속하기 위해 수권 집단이 헌정을 유린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번 일에서 더 심각한 것은 총리, 장관, 그리고 국민의힘 등 보수 권력 네트워크의 반응이다. 이들은 탄핵과 수사 등 헌정질서 회복 조치를 방해하며 내란을 사실상 옹호한다. 나는 이들의 행태가 수괴 처벌 이후에도 한국 내에 민주공화정을 부정하는 극단주의 집단 양성의 단초가 될 것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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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언론자유 훼손하는 내란 세력 물러가라 윤석열은 취임 후 지금까지 언론자유를 끊임없이 훼손해 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국가기관을 동원해 자신을 비판한 언론에 벌을 주었다. 권력자에 대한 비판은 권력남용과 무능을 막기 위한 필수적 사회기능이다. 하지만 윤석열은 자신에겐 적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형법상 명예훼손 조항을 악용해 비판적 기자들을 인신 구속까지 했다. 수석비서관들이 회칼 테러를 거론하며 기자를 위협하기도 했으며, 대통령에게 한 질문이 무례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경호처는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시민의 입을 막아 끌어내고, ‘황제 골프’를 취재하던 기자를 방해했다. 헌법 수호 책무를 지는 대통령으로서 윤석열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자유를 도리어 탄압했다. 헌법을 위반한 윤석열을 탄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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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앵커 한마디’와 방송 공정성 지난 미국 대선에서 ‘워싱턴 포스트’가 후보 지지 선언을 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미국 신문은 특정 후보 지지 사설을 싣는 것이 일반적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발생할 사업상 불이익을 걱정해 이 신문 사주가 해리스 지지를 막은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미국, 영국 등과 달리 한국 신문은 후보 지지 선언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2002년 대선 당일 조선일보의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라는 사설이 이례적이었다.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한 것을 철회한 뒤 이 신문은 “유권자들의 선택은 자명하다”며 사실상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물론, 사설로 굳이 밝히지 않아도 한국 유권자들은 어느 신문이 누구를 미는지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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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언론진흥재단 독립 방안도 논의해보자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파성이 두드러졌다. 지난 정부 때 임명된 이사장을 쫓아내려 하고, 재단 기능과 무관한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급조했다. 한 해외 보고서 중 MBC가 신뢰도 1위라는 내용이 들어간 한국 부분만 빼고 번역해 발표하기도 했다. ‘정치 행사’라는 이유로 대통령 비판 행사의 한국프레스센터 이용을 막았다. 이 재단의 ‘운영 지침’을 보면 대관 불허 목록에 “창당, 전당대회, 당원교육 등”의 “정치 행사”가 들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 건은 ‘정치 행사’의 뜻을 정당의 범위를 넘어 해석한 ‘정치 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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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형해화한 방통위, 합의 정신으로 되살려야 형해화(形骸化). 살과 정신은 스러지고 백골만 남았다는 섬뜩한 말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바로 그렇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야당 추천 위원 임명을 사실상 거부한 뒤, 전 정권이 임명한 위원장을 해임해 방통위를 정부여당 다수로 만들었다. 이후 야당은 정권 입맛에 맞출 수 없다며 새 위원 추천을 거부하는 한편, 대통령 지명 2인만의 방송장악을 막겠다며 새 위원장들을 거듭 탄핵소추했다. 현재는 실질적으로 위원 1명만이 남은 상태로 대한민국 방송통신 규제 기능 자체가 마비됐다. 이게 정상적 정부이고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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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올림픽 여성 복서에 대한 소수자 혐오 보도 알제리의 이마네 칼리프와 대만의 린위팅이 성정체성 논란을 딛고 올림픽 복싱에서 금메달을 땄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보면 “XY 염색체 복서”로 시작하는 기사 제목들이 줄을 잇는다. “딱 봐도 남자인데” “성전환 복서” “트랜스젠더” “이건 미친 짓” “남이 여 때려, 죽어야 끝나” “괴물” “생물학적 남 복서” “역시 다르네” “자궁 없고 잠복고환” 등 자극적 표현이 넘친다. 부정확성과 혐오라는 전형적 소수자 보도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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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종사자들에게 맡기는 민영 MBC 모델 구상 지난 11일 서울 MBC 앞에서 <MBC 힘내라 콘서트>가 열렸다. 다가오는 방송 장악 기도에 MBC 노동자들이 항전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내달이면 여권 성향 다수로 재편될 방송문화진흥회는 현 안형준 사장을 ‘묻지 마 해임’하고 MBC를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로 되돌리려 할 것이다. 나는 현재의 MBC가 저널리즘 원칙에 비춰 고칠 게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앙시앵 레짐’(구체제)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친정권적, 수준 미달 방송이었다. 불공정과 저품질을 강요당한 제작 전문가들의 분노 파열이 2012, 2017년 파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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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아예 공영방송법을 따로 만들자 한국 공영방송사들은 어떤 의무를 지고 있을까? 놀랍게도 법에 규정된 의무로는 공직 선거 출마자들의 방송 연설과 토론을 무료로 방송해주는 것 외에는 없다! 사실, 방송법 등 방송관련법들에 ‘공영방송’이란 말 자체가 전혀 안 나온다. 엉뚱하게도 공직선거법만이 공영방송사가 선거방송 의무를 진다면서 그것들이 KBS와 MBC에 해당한다고 적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