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깨기와 유튜브 정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박용진 민주당 의원 등의 공천 탈락 과정은 극단화하는 정치와 유튜브 등 뉴미디어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진보 보수 구분 없는 다수 언론의 지적에도 이재명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스템 공천이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시스템을 구성하는 방정식의 결과값은 공개되지 않은 입력값을 유추하게 한다. 특정 성향 후보들이 거의 탈락했다면 이 시스템은 그런 의도로 꾸며졌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2022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가 ‘내부총질’ 죄로 쫓겨난 것도 당의 공식 시스템을 통해서였다. 일부 친민주당 유튜브 채널이나 온라인 게시글을 보면 이 기회에 “수박을 확실히 깨야 한다”는 주장이 넘친다. 공천 문제를 지적하는 경향신문 등의 기사에는 언론사와 기자에 대한 악플이 달린다. 이 글도 아마 같은 반응을 얻을 것이다.

여야를 망라한 분열과 증오의 정치는 유튜브 등 온라인 미디어와 공생한다. 일부 유튜브 정치 채널은 강한 정파성으로 이용자에게 ‘교리’를 학습시킨다. 몰랐던 상세한 사실과 배경을 알려주면서도 반론은 생략하고 과장을 섞어 만든 프레임으로 열혈 신도에게 확신을 준다. 신흥종교가 기성 종교를 비판하듯, 우호적 언론의 충고조차 조롱하며 자신들만의 정당성을 키워가기도 한다. 치열한 백병전에서 주저하며 진격하지 않는 자는 수박이나 내부총질자로 명명된다. 이는 빨갱이니, 종북이니 하며 자기편을 결집하고 비판자들을 탄압하는 짓과 다를 바 없다. 반대로, 이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에겐 이런 천군만마가 따로 없다.

얼마 전까지 미디어크라시(mediacracy), 즉 미디어가 주도하는 민주주의는 다수 대중을 향한 이미지 정치였다. 그러나 지금의 ‘유튜브 정치’는 집단 내 공명이 핵심이다. 진행자, 정치인 패널, 이용자가 적에 대한 분노와 조롱의 감정을 주고받으며 배타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외부의 악이 클수록 자신들은 더 정의로워진다. 특정 정파 채널들만의 선택적 노출은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극명하게 갈리게 한다는 게 그간의 연구결과다. 미디어 강력효과 이론의 설명대로, 같은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반복해 들으면 그 메시지의 영향력은 폭증한다. 태도가 강해진 유튜브 이용자는 댓글 달기는 물론 후보자 경선 여론조사 등 정치 참여에도 적극적이게 된다. 여러 시사 프로그램을 순례하며 함께 분노해주는 정치인은 진행자의 칭찬을 받고 그만큼 공천 가능성도 커진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한국만의 여론조사 공천을 통해 소수의 당심이 다수의 민심을 대체하는 일이 벌어진다.

유튜브가 공표행위를 대중화하고 참여 민주주의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정치지식을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주목받는 것이 성공의 핵심인 ‘주목 경제’ 시장에서 유튜브의 생존 전략은 상업적 선정주의가 되었다. 유튜브는 기존 언론을 제약해온 객관주의 문법 정도는 쉽게 떨칠 뿐만 아니라 오락성을 극대화한다. 이 동네로 건너와 좋은 저널리즘을 해보려고 시도하는 몇몇 언론인도 이곳 문법을 안 따르면 지속하기 어렵다. 미디어의 사회통합 기능은 사라지고 분열은 커지고 있다.

대안은 쉽지 않다. 자본과 정치에서 독립을 내세우며 분투하는 어느 온라인 매체도 특정 정파의 잘못을 비판하려면 후원 취소를 감수해야 하는 눈치다. 이럴 때 중심을 잡아 줘야 할 공영방송 KBS는 권력이 망치는 중이다. 정통 저널리즘을 추구하려는 언론과 언론인을 개인적 차원에서 후원이나 구독하는 것밖엔 딱히 방안이 없는 듯하다. 정치 유튜브 애청자라면 기성 언론도 보면서 객관적 시각을 함께 고려하길 권한다. 정치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비전을 세워, 저절로는 해결되지 않을 구조적 문제를 고치는 일을 하는 게 정치다. 부정적 추세를 도리어 이용하거나 방치하는 정치인이 국가지도자가 되면 자신은 물론 모두에게 불행이 됨을 우리는 보아왔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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