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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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의 말의 힘 일어선 국가 키케로는, 시민의 자유(libertas civium)가 억압되면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시민들이 들고일어나는데, 이를 “일어선 국가(concitata civitas)”라고 불렀다. 키케로의 말이다. “여기에서부터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저 새로운 전환이 비롯되었다. 청자여, 자연적인 운동의 순환과 방향을 저 발단에서부터 살펴보고 통찰하라! 이는 국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핵심 사건이다. 오만왕의 큰아들이 … 루크레티아를 강제로 범했다. 고귀하고 정숙한 여인은 저 불의의 폭행에 맞서 죽음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이를 보고 한 사람이 의연히 일어났다. 덕과 능력에 있어서 탁월했던 브루투스였다. 그는 질곡의 노예 상태에서 시민들을 구원했다. 국가로부터 어떤 공직도, 어떤 중책도 맡고 있지 않은 사인(私人)에 불과했다. 하지만 공동체 전체를 구했다. 시민들의 자유를 지키는 일에 공사(公私)의 구분이 없음을 가르친 최초의 인물이다. 그가 주도하고 지도하여 일어선 국가는 루크레티아의 가족이 낸 탄원을 받아들여 타르퀴니우스 왕의 폭정과 그의 아들들이 저지른 수많은 범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왕과 그 자식들은 물론 타르퀴니우스 일가를 추방하는 명령을 내렸다.”(<국가론> 제2권 45~4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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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의 말의 힘 단어의 시민권에 대하여 서기 1세기 로마에 포르켈루스(Porcellus)라는 사람이 살았다. 싸움 잘하는 장군도, 말 잘하는 정치가도, 노래 잘하는 가수도, 멋진 근육의 검투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로마 역사의 한 귀퉁이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사연인즉 이렇다. 그는 문법 학교의 교사였다. 까칠하고 꼬장꼬장한 라틴어 ‘훈장’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라틴어 문법에 어긋나는 말을 하거나 어떤 단어나 문장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자신의 이익이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말과 언어를 자의적으로 사용하거나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목숨까지 내놓고 맞섰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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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의 말의 힘 어떤 박절했던 결단에 대하여 어느 날 로마 왕실의 기둥에서 뱀이 나왔다. 기이한 징조였다. 이런 징조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공적인 일에 해당하고, 그 해석은 에트루리아 출신의 사제에게 맡겨졌다. 하지만 왕은 자신의 아들들을 델포이의 신전에 파견했다. 왕은 이 사건을 사적인 일로 판단했지만, 이 판단은 국가를 공동의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불의한 것으로 여겨졌다. ‘각자의 것은 각자에게(suum cuique)’라는 정의의 원리에 따라 공과 사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하는데, 왕의 판단은 이에 위배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적인 일을 사적으로 처리한 왕이 타르퀴니우스였다. 이에 맞서 싸운 사람이 로마 공화정의 아버지인 브루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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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의 말의 힘 말의 한계에 대하여 말의 한계는 어디에서 드러날까? 그 답은 소리와 이미지 사이에 있는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차이는 오비디우스의 ‘나르키소스와 에코’의 이야기에서 잘 읽을 수 있다. 이미지를 중시했던 나르키소스와 목소리의 상징인 에코의 슬픈 사랑은 인식 지평에서 이루어지는 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의 밀당 관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미지를 소리로 포착하려고 하면, 그 소리가 보여주는 것은 이미지의 끝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말은 이미지의 끝자취를 지시하는 무엇에 불과하다는 것. 말로는 결국 실체를 붙잡지 못한다는 것. 생각도 말에 남은 이미지의 마지막 흔적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이, 어쩌면 이미지의 흔적을 뱅뱅 도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사물의 세계란 사실 이미지의 흔적에 불과하기에. 이는 데리다라는 철학자가 주목한 물음이기도 하다. 릴케가 <어린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들>에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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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의 말의 힘 라틴어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라틴어도 처음에는 가난했다. 그 시절에 로마인들이 했던 일은 그리스 작가를 모방하고 번역하는 것이었다. 이는 훈민정음 창제 직후의 한글 작품 대부분이 <월인석보> <두시언해>와 같은 언해들이었던 한국어의 초기 상황에 비견된다. 아무튼, 일찍이 그리스어는 일상생활에서도 라틴어를 압도했는데, 카이사르는 브루투스의 칼을 맞는 순간에도 그리스어로 “아들아, 너마저(kai su, teknon!)”(수에토니우스 <아우구스투스전(傳)>, 82장)라고 했다고 한다. 시인 루크레티우스는 라틴어의 가난함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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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의 말의 힘 다시, 소문(fama)의 시대다 숨기면 숨길수록 커지는 것이 소문이다. 베르길리우스의 말이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강해지고 퍼지면 퍼질수록 세진다. 처음엔 겁이 많고 왜소하지만 금세 하늘을 찌른다. 발로는 땅 위를 걷지만 머리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 (…) 빠른 발과 날랜 날개를 가진 무시무시하게 거대한 괴물이다. 몸에 난 깃털만큼 많은 잠들지 않는 눈과 소리를 퍼뜨리는 혀와 입과 쫑긋 선 귀를 깃털들 아래에 가지고 있다. (…) 지붕 꼭대기와 높은 성탑에 올라앉아 망을 보며 온 나라를 경악하게 만든다. 사실을 전하지만, 거짓말과 꾸민 이야기도 퍼뜨린다.”(<아이네이스> 제4권 175~189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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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의 말의 힘 미친 헤라클레스 그리스 속담에, ‘벗에게는 사랑을, 적에게는 증오를 주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전시(戰時)에 힘을 발휘하는 전우론(戰友論)이었다. 자신의 애인이자 전우였던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에게 되돌려준 아킬레우스의 복수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이 전우론을 평시(平時)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특히 국내 정치를 대외 전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내 편을 지지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진영과 정적을 동포이자 동료 시민이 아니라 죽이거나 제거해야 하는 적으로 보게 만드는 인식의 뿌리가 실은 전시의 전우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과 정치는 다르다. 정적도 동포이고 동료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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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의 말의 힘 한 사람만의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한 사람만의 국가는 국가가 아니지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나오는 말이다. “이 나라를 내가 아닌 남의 뜻에 따라 다스려야 한다고?”(736행)라는 크레온의 물음에 대한 그의 아들 하이몬의 답이다. 이에 크레온이 “국가를 통치하는 자가 바로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냐?”(738행)라고 되묻자, 하이몬은 “사막에서라면 멋대로 독재할 수 있지요”라고 되받는다. 크레온은 격노한다. 이성을 잃고 크레온이 비극적 불행을 마주하는 장면으로 작품은 막을 내린다. 하이몬은 자신이 사랑하는 안티고네를 따라 지하세계로 가버린다. 그의 어머니도 사랑하는 아들의 뒤를 따른다. 크레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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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의 말의 힘 늑대 정치를 아시나요 ‘약자에게는 동아줄이지만 강자에게는 거미줄인 것이 법이다.’ 솔론의 말이다. 자신에게 향한 법은 거미줄처럼 찢어버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법을 동아줄로 이용하는 통치자를 그리스인들은 튀란노스(Tyrannos)라고 부른다. 독재자를 뜻한다. 튀란노스들 중에는 완력과 폭력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자도 있지만, 대개는 말기술과 법기술을 자신의 통치술로 삼는다. 대개 자신의 지지 세력에 의지해서 다른 세력을 외적으로 돌리거나 정치적인 희생양(scapegoat)으로 만드는 말기술과 법기술을 자신의 통치술이라고 자랑한다. 이들에 대한 플라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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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의 말의 힘 짙은 여운의 ‘말 잔치’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할 이들이 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제24차 세계수사학사 학술대회(7월23~26일)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말이 어떻게 문명을 움직이고, 말의 힘이 어떻게 역사의 방향과 성격을 바꾸고 결정하는지에 대한 학술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말 잘함의 역사와 말의 힘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학술대회는 말 잘하는 사람들의 경연대회(agon)가 아니라 말 잘함에 대해 자신들이 연구하고 새롭게 찾아낸 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모인 공부하는 이들의 말 잔치이다. 이 잔치를 준비하고 주관한 학회장 데이비드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200명이 넘게 모인 잔치였다. 어느 것 하나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각설하고, 말 잔치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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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의 말의 힘 안토니에게 보내는 답글 최근에 나눈 작은 대화를 하나 소개한다. 알게 된 지 어언 10년이 넘은 친구이자 오랜 글벗인 미국 보스턴 대학 리치 연구소 소장인 안토니 우셀라(Antoni Urcelor S J) 신부가 지난 6월에 방한하여 일본의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대한 강연을 숭실대에서 한 적이 있다. 강연에서 내가 흥미롭게 들은 것은, 일본의 경우에 에도 막부가 불교를 이용해 그리스도교를 박해했고 그리스도교와 유교가 아니라 신도 사상과 불교의 충돌이 핵심이었다는 대목이었다. 이 대목이 흥미로운 것은, 한·중·일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유교의 성격이, 특히 조선 유교의 특징이 그리스도교의 박해 과정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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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의 말의 힘 인구절벽을 보는 또 다른 시선에 대하여 역대 한국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 중에 가장 성공한 것이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인구정책일 것이다. 그 목표치는 이미 초과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인구가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었다. 요컨대, 인구문제는 로마 역사의 초기부터 정치의 핵심적인 고민이었다. 리비우스의 말이다. “인구수를 늘릴 목적으로 로물루스는 국가를 건국했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전통적인 수법을 썼다. (…) 지금은 성벽으로 둘러싸였지만, 구원을 찾아 카피톨리움 언덕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위해 성스러운 숲 사이에 피난소를 열었다. 이곳으로 인근의 지역에서 자유인과 노예, 온갖 무리의 사람이 새로운 삶을 찾아 도망쳐왔다. 이는 로물루스가 국력을 키우기 위해 우선적으로 행한 일이었다.”(<로마건국사> 제1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