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소탕 대상, 경쟁자는 소통 상대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안재원의 말의 힘]적은 소탕 대상, 경쟁자는 소통 상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대해 말들이 들려온다. 안타까운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짚고 가자. 선거는 전쟁이 아니다. 물론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전쟁에 가까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의 경쟁자가 전쟁의 적군은 아니다. 그는 어쩌면 직장 ‘동료’이고, 고향의 ‘벗’이며, 학교 ‘동창’이고, 생각의 ‘동지’이자 이익의 ‘동반자’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정치의 경쟁자도 공동체의 재난과 위기에는 서로 손을 맞잡고 힘을 합해야 하는 공동체의 친구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선거는 전쟁과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적은 소탕의 대상이지만, 경쟁자는 소통의 상대이다.

선거는 끝났다. 하지만 사정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선거 과정에서 작동했던 언어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전쟁 영웅인 오디세우스는 “적군에게는 쓰라림, 친구에게는 달콤함”(<오디세이아> 6권 184행)을 주라는 명언을 남겼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각자의 몫은 각자에게(suum cuique)”라는 배분 정의가 바탕에 깔린 말이다. 이 정의는 특히 전쟁 시기에 위력을 발휘한다. 물론 평화의 시기에도 그 효능감을 자랑한다. 일상의 활동과 노동의 가치를 따질 때 적용되는 원리가 바로 이 배분 정의이다.

하지만 배분 정의를 전쟁이 아닌 정치에 적용할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 통합이 아닌 분열을 키우는, 즉 진영의 논리를 강화하는 일에 봉사하고, 그래서 ‘팬덤 정치’의 논리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배분 정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 기간에는 ‘친구에게는 달콤함을, 적군에게는 쓰라림을’ 주어야 한다는 전쟁의 어법이 어느 정도는 허용된다. 하지만 선거가 끝났음에도 이 어법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위험하다. 정치의 경쟁자를 일터와 삶터의 동료, 혹은 공동체의 친구가 아니라 여전히 적군으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적을 소탕이 아니라 소통의 상대로 인정하는 인식이 필요한 때가 어쩌면 선거가 끝나고 난 지금일 것이다. 적에게 던지는 가시 돋친 일격이 아니라 친구에게 베푸는 호의와 우정의 마음부터 갖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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