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대중문화와 글쓰기 관련 기사를 씁니다. 시와 노래, 세상의 모든 연애사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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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촛불 촛불을 켜든 시민들이 다시 광장에 모였다. 우리는 수천, 수만의 촛불이 모이면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된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1979년 계엄령을 전후해서 발표된 뒤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노래가 있다. 정태춘과 조용필의 ‘촛불’이다.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오면/ 창가에 촛불 밝혀 두리라/ 외로움을 태우리라/ 나를 버리신 내 님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뤄 지새우며/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노라/ 이 밤이 다 가도록….’ 1978년에 정태춘이 만들고 부른 ‘촛불’은 서정성이 돋보이는 포크음악이다. 이듬해 정태춘은 이 노래로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상을 받았다. 훗날 정태춘은 실연의 아픔을 담아 부른 노래였다고 말했다. 지금 정태춘은 촛불을 켜든 광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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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불과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요절한 차중락은 오빠부대의 원조였다. 1970년대 남진과 나훈아가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다면, 1960년대 말엔 배호와 차중락이 있었다. 그러나 차중락은 1966년 발표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노랫말처럼 1968년 11월 요절했다. 베트남 위문공연과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찾아온 고열을 동반한 뇌수막염이 원인이었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빰이 몹시도 그립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 고이 간직 하렸더니/ 아아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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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갈까부다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막을 내린 tvN 드라마 <정년이>(사진)에서 단연 눈길을 끈 배우는 김태리였다. 특히 극중에서 대역을 쓰지 않고 부른 노래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판소리 ‘춘향가’ 중 한 대목인 ‘갈까부다’도 소리꾼으로 성장해 가는 정년이의 진심이 묻어난 노래였다. ‘갈까부다 갈까부다/ 님 따라서 갈까부다/ 천리라도 따라가고/ 만리라도 갈까부다/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떼지어 날아가는 청천의 기러기도 다 쉬어 넘는/ 동설령 고개라도 님 따라 갈까부다/ 하늘에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일 년 일도 보련마는/ 우리님 계신 곳은/ 무슨 물이 막혔건대/ 이다지도 못 보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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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20집 앨범 제작발표회가 끝난 뒤 대기실에서 조용필과 마주 앉았다. “앨범은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얘기한 그가 “다음엔 로큰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음악이 없는 삶’은 죽음이기에 ‘마지막 앨범’은 공언이 될 수도 있다. 1988년 내놓은 10집 앨범은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것이었다. 원래 두 장짜리 앨범으로 기획했으나 한꺼번에 유통하는 게 여의치 않아 1년을 사이에 두고 ‘파트 1’과 ‘파트 2’로 나눠서 냈다. ‘파트 2’(사진)에 실린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은 파격 그 자체였다. 재생시간이 19분56초로 소설로 치면 대하 장편이다. 양인자가 작사한 이 노래에는 ‘실험적인 앨범’을 갈망한 조용필의 의지가 반영됐다. 그 당시 조용필은 울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이 떠들썩했던 박지숙과의 이혼, 9집 수록곡인 ‘마도요’의 표절과 왜색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말하라…’는 세상을 향해 울부짖고 싶었던 조용필의 심정이 담긴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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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퀸시 존스의 결정적 장면들 최근 세상을 떠난 퀸시 존스(사진)는 팝 음악계의 거장으로 추앙받아온 인물이다. 그의 삶에 인상적인 몇 장면이 있다. 그는 자서전에서 불우한 흑인소년의 인생을 바꾼 건 디저트를 훔치러 들어간 레크리에이션센터에서 만난 피아노였다고 회고한다. 피아노에 손을 얹는 순간 평생 건반과 함께하게 될 거라는 예감을 받았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센터의 관리인이 몰래 피아노를 치러오는 퀸시 존스를 위해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점이다.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이 만든 앨범 <스릴러>(1982년)는 전 세계적으로 7000만장 이상 팔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튜디오에서 단 5일간 진행했지만 음악적 자존심으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두 사람의 기싸움이 대단했다. 그러나 퀸시 존스가 문워크 춤으로 잘 알려진 ‘빌리 진’ 수록을 고집하는 마이클 잭슨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마이클 잭슨은 ‘스타라잇’을 퀸시 존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스릴러’로 완성했다. 서로의 양보가 ‘팝의 황제’를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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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세렝게티처럼 조용필이 스무 장째 정규앨범(사진)을 냈다. 조용필은 기자간담회에서 “내 나이 70 넘어서 신곡을 발표한다는 것이 어려웠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작업의 무게감을 안다. 그때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떠오른다. 조용필은 표범 그 자체다. 이 노래는 김희갑과 양인자 부부의 작품이다. 두 사람을 이어준 게 조용필이었다. 조용필은 노래 작업을 위해 만났을 때 두 사람 사이의 기류를 읽고 먼저 일어나곤 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노랫말은 양인자가 미리 써놓은 신춘문예 당선 소감이었다. 양인자는 부산에서 유명한 문학소녀였다.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을 때 신춘문예 정도는 너끈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은사였던 소설가 김동리도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제자를 안타까워했다. 양인자는 방송작가 김수현과 월간 ‘여학생’ 기자를 같이했던 인연으로 방송작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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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섬집 아기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한때 국민 자장가였던 ‘섬집 아기’는 가슴 저릿한 동요다. 1946년 발간된 한인현의 동시집 <민들레>에 수록된 동시로, 이흥렬이 곡을 붙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읜 한인현이 고향 원산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을 떠올리면서 쓴 동시다. 가만가만 부르다 보면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남은 아기와 그 아기가 걱정되어 굴 바구니를 채우지 못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의 애틋함이 가슴을 헤집는다. ‘모닥불’ ‘목마와 숙녀’ ‘방랑자’의 가수 박인희도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여 불렀으며 이선희, 체리필터 등도 리메이크하면서 국민 자장가의 면모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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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철학동화 어른들도 읽는 철학동화가 인기를 얻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인기에 힘입어 만든 노래가 덩달아 히트하기도 했다. 배철수가 이끄는 활주로의 노래 ‘이 빠진 동그라미’도 그중 하나다. “한 조각을 잃어버려 이가 빠진 동그라미/ 슬픔에 찬 동그라미 잃어버린 조각 찾아/ 떼굴떼굴 길 떠나네/ 어떤 날은 햇살 아래 어떤 날은 소나기로/ 어떤 날은 꽁꽁 얼다 길옆에서 잠깐 쉬고/ 에야디야 굴러가네.” 이 노래는 미국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셸 실버스타인의 동화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사진)을 보고 라원주가 개사, 작곡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도 유명한 실버스타인은 시적인 문장과 번뜩이는 해학을 담은 철학동화로 스테디셀러 작가로 사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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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싱어송라이터 한강 “눈물도 얼어붙네/ 너의 뺨에 살얼음이/ 내 손으로 녹여서/ 따스하게 해줄 게/ 내 손으로 녹여서/ 강물 되게 해줄 게/ 눈물도 얼어붙는/ 12월의 사랑 노래….”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이 만들고 부른 노래 ‘12월 이야기’는 그의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비채)의 부록으로 발표했다. 반주도 없이 생목소리로 가만가만 부르는데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까지 전달된다. 10곡의 노래를 차분하게 듣다 보면 따스한 진심이 느껴진다. 연극 <12월 이야기>를 보고 만든 노래라고 했다. 한강은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가난한 소설가의 딸이었기에 문방구에서 종이 건반을 사서 연습만 했을 뿐 정작 피아노를 배운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악보를 쓰는 대신 생각나는 대로 녹음해둔 노래로 앨범을 완성했다. ‘12월 이야기’는 가수 이지상과 듀엣으로 불러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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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아이유의 가을 아이유(사진)처럼 가을 감성을 잘 담아내는 가수가 있을까. 그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신곡 ‘바이 썸머(Bye Summer)’를 부르던 날 거짓말처럼 가을이 왔다. 아이유에게 가을은 새벽부터 밤까지 온통 그의 시간이다. 특히 그가 직접 고른 리메이크 곡들은 가을이면 꼭 찾아듣고 싶은 노래가 됐다. 듣는 것만으로도 가을 아침 알싸한 공기와 청명한 하늘이 느껴진다. “매일 그대와 아침 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매일 그대와 도란도란 둘이서/ 매일 그대와 얘기하고파/ 새벽비 내리는 거리도/ 저녁노을 불타는 하늘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걸/ 같이 나누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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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박인희와 이해인 이해인 수녀와 박인희는 풍문여중 시절 단짝이었다. 박인희의 생일날 이해인이 소월 시집을 선물하자 사진관에 가서 기념촬영을 하던 문학소녀들이었다. 박인희의 산문집 <우리 둘이는>에는 이해인 수녀와 나눈 손편지가 여러 편 담겨 있다.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旗)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 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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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프로야구가 폭염을 뚫고 천만관중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이진원(사진)이 만든 1인 밴드인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떠올랐다. 원래 LG트윈스의 열성 팬이었던 그가 만든 응원가 제목이었지만 마무리 투수 이상훈이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 되자 데뷔앨범에 넣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면서 만든 홈메이드 데뷔앨범 ‘Infield Fly’는 지금도 사랑받는 명반이다.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보석처럼 빛나던 아름다웠던 그대/ 이제 난 그때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었다네/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인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절룩거리네’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