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대중문화와 글쓰기 관련 기사를 씁니다. 시와 노래, 세상의 모든 연애사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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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제비 “정답던 얘기 가슴에 가득하고/ 푸르른 저 별빛도 외로워라/ 사랑했기에 멀리 떠난 님은/ 언제나 모습 꿈속에 있네/ 먹구름 울고 찬 서리 진다 해도/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던 날/ 고운 눈망울 깊이 간직한 채/ 당신의 마음 품으렵니다.” ‘제비’는 조영남의 히트곡이다. ‘딜라일라’ ‘내 고향 충청도’ ‘물레방아 인생’ ‘최진사댁 셋째딸’ 등과 함께 조영남이 불러 히트시킨 번안곡 중 하나다. ‘조영남은 남의 노래로 먹고산다’라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딜라일라’의 히트 이후 TV 쇼프로그램을 연출하는 PD들이 원곡을 주면서 번안곡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잦았다는 게 조영남의 증언이다. 대개 2~3일 만에 원곡에 노랫말을 붙여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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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만약 당신이 떠나신다면 봄꽃이 질 때 사람들은 허무에 빠진다. 내리는 봄비에 속절없이 진 꽃잎들이 아스팔트를 수놓으면 왠지 마음이 스산해진다. 꽃이 피고 지는 일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에 가지 말라고 붙들 수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고 애원하는 노래 중에서 ‘이프 유 고 어웨이’(If You Go Away)만 한 노래가 있을까. “당신이 이 여름날 떠나신다면/ 태양을 가져가신 거나 마찬가지죠/ 여름 하늘 날던 새들이랑 함께요/ 우리 사랑이 새롭고 가슴이 뜨거웠을 때/ 우리가 젊었고 밤도 길었을 때/ 밤에 우는 새를 위해 달은 내내 밝았지요/ 만약 당신이 가시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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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민들레 봄꽃에 홀려 길을 걷다 문득 발밑에서 기척을 느껴 만나는 꽃이 있다. 아스팔트의 터진 틈으로 수줍게 피어 있는 꽃, 민들레다. 그래서 민들레는 예로부터 민초(民草)들의 상징이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겨울을 견디다가 봄이면 수줍게 피어난다. 이연실은 그런 민들레를 사랑했던 가수였다. 1989년 ‘고운노래모음’(사진)에 민들레를 소재로 한 노래 두 곡을 한꺼번에 발표했다. “민들레 민들레 피어나/ 봄이 온 줄 알았네/ 잠든 땅 목숨 있는 건/ 모두 다 눈부시게 피어났다네/ …/ 눈덮인 겨울산에서 시름 앓고 울었네/ 길고도 추웠던 겨울 견디어/ 화사하게 피어났다네.”- ‘민들레’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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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꽃밭에서 봄꽃은 기습적으로 핀다. 잠깐이라도 해찰하면 어느새 피었다 지는 게 봄꽃이다. 정훈희(사진)는 흐드러진 봄꽃을 몽환적으로 노래한 몇 안 되는 가수다. 작곡가 이봉조는 탐내는 가수가 많은 ‘꽃밭에서’를 정훈희에게 줬다. 대마초 사건 후 재기를 노리던 그를 위한 배려였다. 1978년 발표 후 단숨에 히트곡이 됐다. 정훈희는 언젠가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멜로디가 너무 아름다워서 꼭 불러보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꽃밭에서’는 여러 가수가 리메이크했다. 1994년 조관우가 맨 먼저 불렀고, 가수 소향, 소프라노 조수미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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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님과 함께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은 남진에게 최고의 히트곡을 물으면 주저 없이 ‘님과 함께’를 꼽는다. 전성기 때 해병대에 입대, 월남 파병을 다녀온 남진은 1972년 고향 작사, 남국인 작곡의 ‘님과 함께’를 발표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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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공포의 외인구단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듬해 크게 히트한 야구만화가 있었다. 바로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사진)이다. 어린이날이면 불량만화 화형식을 하고, 만화가들이 국가안전기획부에 모여 자정 결의대회를 하던 시절에 어른들은 이 만화에 열광했다. 1986년 이장호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공포라는 단어가 심의에 결려 ‘이장호의 외인구단’이라는 제목으로 극장에서 개봉했다. 엄지를 사랑하는 외인구단의 무명투수 까치 오혜성과 한쪽 팔을 잃은 최관, 혼혈아 하국상 등이 만들어가는 꼴찌의 반란이 주된 스토리였다. 이들을 이끄는 재일교포 출신 천재 감독이면서, 선수들에게 지옥훈련을 시키는 손병호 감독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라는 신조를 가진 괴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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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제비꽃 사람도 그렇지만 꽃도 수줍음이 많은 꽃이 있다. 제비꽃은 길가 어디쯤 조용하게 피어나서 무심한 사람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 꽃이다. 그런 꽃에 숨결을 불어넣은 노래가 있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조동진의 ‘제비꽃’(1985)은 그가 작고 아름다운 것에 눈길을 주던 음유시인이었음을 증명해주는 노래다. 조동진은 시집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청맥, 1991)에서 ‘제비꽃’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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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안창호와 선우일선 도산 안창호 선생은 1938년 3월10일 오랜 투옥과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작고했다. 꿈에도 그리던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였다. 선생은 청년시절부터 시가(詩歌)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창가(唱歌)가 공동체의 화합과 단결, 민족 정서를 고양하는 데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18세 때 밀러 목사가 운영하던 밀러학당에서 써낸 ‘무궁화 노래’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조선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노랫말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애국가의 작사가가 친일파 윤치호냐, 안창호 선생이냐는 논란이 끝이 없다. 안창호 선생과 함께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평양 기생 출신의 가수 선우일선(사진)이다. 그의 대표곡은 ‘조선팔경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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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밤양갱 “떠나는 길에 네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잠깐이라도 널 안 바라보면/ 머리에 불이 나버린다니까/ 나는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하려던 얘길 어렵게 누르고/ 그래, 미안해 라는 한마디로/ 너랑 나눈 날들 마무리했었지.” 가사만 놓고 보면 평범한 이별 노래다. 비비가 불러 음원차트를 싹쓸이하고 있는 노래의 제목은 ‘밤양갱’이다. 아이유, 르세라핌, 태연 등 음원 강자들과 맞붙어서 전혀 밀리지 않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싸구려 커피’ ‘우리 지금 만나’ 등을 만든 장기하의 곡이다. 그가 쫀드기, 건빵, 약과의 반열에 있는 밤양갱을 소환하여 이별 노래를 만들었다. 뮤직비디오(사진)에서 장기하는 치사한 이유를 들이대면서 떠나는 나쁜 남자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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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원곡보다 유명한 번안곡들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번안곡이 등장한 건 대략 1960년대 이후다. 미8군의 영향으로 팝송에 익숙했던 가수들이 이를 번안해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송창식과 윤형주로 결성된 트윈폴리오는 번안곡으로 낸 독집 앨범이 크게 히트했다. 타이틀곡 ‘웨딩케잌’은 코니 프랜시스의 동명곡을 번안했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엔…”으로 시작되는 히트곡 ‘하얀 손수건’도 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노래다. 원곡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트윈폴리오의 노래가 더 애절하다. 그만큼 두 사람의 화음이 완벽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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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한국과 쿠바가 전격적으로 수교를 맺었다. 쿠바를 상징하는 단어가 많지만 음악팬이라면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부터 떠올릴 것이다. 레코딩 프로듀서 라이 쿠더가 녹음한 앨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전 세계적으로 800만장이 팔렸고, 음악적으로 재조명됐다. 미군 사교클럽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에서 일하다 1959년 쿠바혁명 이후 뿔뿔이 흩어진 뮤지션들이 50여년 만에 다시 뭉친다. 콤파이 세군도, 루벤 곤살레스, 이브라힘 페레르, 오마라 포르투온도 등은 6일 만에 녹음한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삶이 바뀐다. 1999년 빔 벤더스의 다큐로도 만들어지면서 미국 카네기홀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공연(사진)을 했고, 한국에도 여러 차례 내한하여 팬들을 열광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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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 카루소 199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KBS <열린음악회>가 열렸다. 2002년 월드컵 유치를 기원하는 행사로 콘체르토하우스 무대에서 펼쳐졌으며 국내외 유명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날 무대에 ‘카루소’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칸초네 가수 루치오 달라가 출연하여 자신의 히트곡을 불렀다. 가수 조영남과 ‘산타루치아’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루치오 달라를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그는 로마에서부터 직접 운전해서 빈까지 왔다고 했다. 노래처럼 겸손하고 소박했던 그가 참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