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이기환 문화부 선임기자는 지난 8월31일 경향신문을 정년퇴임했고, 이후 ‘역사 스토리텔러’ 직함으로 경향신문에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를 주간경향에 ‘이기환의 Hi-story’를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습니다.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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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117) 7전 7승 ‘고려의 이순신’ 양규…2차 고려-거란 전쟁에선 강감찬도 조연 “나는 왕명을 받고 왔지, 강조의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我受王命而來 非受兆命).”(양규)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사극 <고려거란전쟁>을 계기로 새삼 부각되는 역사적인 인물 두 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고려판 세종대왕’으로 통하는 고려 현종(재위 1009~1031)이죠. 1254년 몽골의 잇따른 침략에 시달리던 고종(재위 1213~1259)은 ‘국난 극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면서 ‘현종=세종대왕’으로 지칭하죠. “세종대왕(世宗大王·현종)께서 큰 난리를 평정해 중흥과 반정(反正)의 공을 세웠다”고 표현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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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뼈가 가루가 되도록 싸웠다’…사료만으로 따져본 양규의 7전승 신화 “나는 왕명을 받고 왔지, 강조의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我受王命而來 非受兆命)”(양규)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KBS 사극 ‘고려거란전쟁’을 계기로 새삼 부각되는 역사적인 인물 두 분이 계십니다. 한 분은 ‘고려판 세종대왕’으로 통하는 고려 현종(992~1031, 재위 1009~1031)이죠. 1254년 몽골의 잇단 침략에 시달리던 고종(1231~1259)이 종묘에서 ‘국난 극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면서 ‘현종=세종대왕’으로 지칭하죠. “세종대왕(世宗大王·현종)께서 큰 난리를 평정하여 중흥과 반정(反正)의 공을 세웠다”고 표현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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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116)‘고려도경’의 서긍, 송나라 간첩 58명과 개경에 도착했지만… 쓴다 쓴다 하면서 미뤄뒀다가 해를 넘긴 아이템이 있습니다. <고려도경>을 쓴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고려를 방문한 지 900주년 되는 해가 2023년이었는데요. 하지만 그냥 넘길 수 없죠. 음력으로 치면 아직 해가 바뀌지도 않았고요. 또 귀국한 서긍이 <고려도경>을 써서 송 휘종(재위 1100~1125)에게 바친 것이 1124년(인종 2)이었습니다. 따라서 2024년은 <고려도경> 편찬 900주년이 되는 해가 됩니다. 그러니 ‘900주년 기념’ 기사는 유효합니다. ■비색 청자와 세밀가귀 <고려도경> 하면 ‘비색 청자’가 첫손가락으로 꼽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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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580년 만에 ‘갑툭튀’한 장영실의 ‘신상정보’…새빨간 가짜뉴스일까 호군-장영실-실보-계유-경주인’. 2022년 5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의 현판, 궁중현판’ 특별전을 둘러보던 강민경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눈이 번쩍 뜨이는 현판 1점을 보았다. ‘활자 주조를 감독한 신하 명단을 새긴 현판’(이하 현판)이었다. 1857년(철종 8) 창경궁 화재로 불탄 주자소를 재건하면서(1858) 내건 현판이었다. 현판에는 계미자(1403)부터 경자자(1420)·갑인자(1434)·정유자(1777)·임인자(1782)·병진자(1796) 등을 주조한 선배들과 함께 무오자(1858) 담당 관원의 인적사항이 적혀 있었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은 ‘장영실’이었다. ‘호군(정4품) 장영실’과 함께 ‘자(字·다른 이름)=실보(實甫)’, ‘태어난 해=계유·1393)’와 ‘본관=경주’가 적혀 있었다. 단 12자에 불과한 장영실의 초간단 인적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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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고려도경' 서긍은 간첩단 두목이었다…송나라 사신단의 ‘넘버4맨' 쓴다 쓴다 하면서 미뤄뒀다가 해를 넘긴 아이템이 있습니다. <고려도경>을 쓴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고려를 방문한 지 900주년 되는 해가 2023년이었는데요. 그러나 그냥 넘길 수 없죠. 음력으로 치면 아직 해가 바뀌지도 않았고요. 고려를 방문하고 귀국한 서긍이 <고려도경>을 써서 송 휘종(1100~1125)에게 바친 것이 1124년(인종2)이었습니다. 따라서 2024년은 <고려도경> 편찬 900주년이 되는 해가 됩니다. 그러니 ‘~주년 기념’ 기사는 유효하겠지요. ■비색청자와 세밀가귀 <고려도경> 하면 ‘비색청자’가 첫손가락으로 꼽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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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115)나라님도 ‘와유’할 때 금강산 직접 여행한 제주 여인·14세 소녀 ‘와유(臥遊)’라…. 국립춘천박물관이 지난해 12월 초부터 상설전시관 2층 브랜드존에서 <이상향으로의 초대 금강산과 관동팔경> 관련 작품 전시를 시작했습니다. 요즘 국립박물관의 ‘핫템’인 ‘고 이건희 회장 기증품’인 ‘단발령망금강산’(정선·1676~1759) 등 9건이 특별 출품됐답니다. 저는 전시회 설명 중 ‘누워서 노닌다(즐긴다 혹은 감상한다)’는 뜻인 ‘와유(臥遊)’라는 용어에 이른바 꽂혔습니다. ‘와유’는 중국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종병(375~443)과 관련된 성어인데요. 종병은 벼슬길도 마다하고 산수를 유람했던 은사였습니다. 그러다 늙고 병들어 다닐 수 없게 되자 대안을 마련했는데요. “예전에 다녔던 명승지를 모두 그림으로 그려 벽에 걸어놓고 누워 감상하며 노닐었다(臥以游之)”(<송서> ‘열전·종병’)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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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114)영조는 “개가 왜 짖냐”…정조는 잠자리서도 ‘탕탕평평평평탕탕’ ‘탕탕평평…’. 국립중앙박물관이 영조 즉위 300주년을 맞아 개최 중인 특별전의 제목이 좀 ‘쨍’ 합니다. 영조(재위 1724~1776)와 정조(재위 1776~1800)가 ‘탕탕’하고 ‘평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펼친 ‘탕평’과 관련된 특별전입니다. 영·정조가 탕평책을 쓰면서 글과 그림을 통해 소통했던 방식을 한번 들여다보자는 것이라 합니다. 이 특별전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삽살개’가 등장하는 특별전 포스터가 그것입니다. 또 하나는 특별전 제목인 ‘탕탕평평’인데요. 이 대목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탕탕평평’도 모자라 ‘탕탕평평평평탕탕(蕩蕩平平平平蕩蕩)’이라고 새긴 정조의 장서인(규장각 소장)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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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영조는 '어느 개가 짖어!' 했고, 정조는 '탕탕평평평평탕탕!' 외쳤다 ‘탕탕평평…’. 국립중앙박물관이 영조 즉위 300주년을 맞아 개최 중인 특별전의 제목이 좀 ‘쨍’ 합니다. 영조(재위 1724~1776)와 손자 정조(1776~1800)가 ‘탕탕’하고 ‘평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펼친 ‘탕평’과 관련된 특별전입니다. 영·정조가 탕평책을 쓰면서 글과 그림을 통해 소통했던 방식을 한번 들여다보자는 것이라 합니다. 이 특별전을 보면서 두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삽살개’가 등장하는 특별전 포스터가 그것입니다. 또 하나는 특별전 제목인 ‘탕탕평평’인데요. 이 대목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탕탕평평’도 모자라 ‘탕탕평평평평탕탕(蕩蕩平平平平蕩蕩)’이라고 새긴 정조의 장서인(규장각 소장)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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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113) 문화재 ‘죽어도 못 보내’? 이제는 ‘필요하면 보내’!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남성 4인조 그룹인 2AM이 2010년 발표한 ‘죽어도 못 보내’라는, 벌써 13년 된 곡입니다. 뜬금없이 웬 노래로 시작하느냐고 할 테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문화유산의 해외 전시 및 수출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이 노래가 떠오르기 때문이죠. ■‘죽어도 못 보낼 문화재’ 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를 기념하는 ‘한·일 문화재 국보전’이 개최될 예정이었는데요. 그때 문화재위원회가 ‘백제 금동대향로’(국보)와 ‘영조 어진’(보물)의 반출을 불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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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꽃에 미친 ‘김 군’, 18세기 화폭에 꽃박람회 펼친 그 화가” “표암(강세황)의 화제(畵題·그림 위에 쓴 시와 글)가 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얼마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조선시대 꽃그림 전시’를 위해 정은진 영남대 교수(한문교육과)에게 두루마리 그림(기계 유씨 후손 소장)의 검토를 의뢰했다. 가로 4m80, 세로 75㎝인 비단 위에 그린 꽃그림이었다. 그림 위에 표암 강세황(1713~1791)과 단원 김홍도(1745~1806?)의 아들인 긍원 김양기(1792?~1842?)의 글이 쓰여 있었다. 당대 예술계의 대부였던 ‘표암’의 글이 있었기에 표암 연구자인 정은진 교수가 작품을 검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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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죽어도 못보내!", "원한다면 보내!"…문화재 수출논쟁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남성 4인조 그룹인 2AM이 2010년 발표했으니 벌써 13년 된 곡입니다. 뜬금없이 웬 노래로 시작하느냐고 할테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문화유산의 해외 전시 및 수출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이 노래가 떠오르기 때문이죠. ■‘죽어도 못보낼 문화재’ 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를 기념하는 ‘한·일 문화재상호 국보전’이 개최될 예정이었는데요. 그때 문화재위원회가 출품 예정이었던 ‘백제 금동대향로’(국보)와 ‘영조 어진’(보물)의 반출을 불허했습니다. “백제 예술의 정수인 금동대향로를 내보낼 필요가 없고, 일왕의 유물이 해외에 나가지 않는데 굳이 영조의 초상화가 해외에, 그것도 일본에 출품될 이유도 없다”고 만장일치로 불허방침을 세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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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112)조선은 똥!덩!어!리?…박제가는 왜 ‘중국어공용론’을 폈나 ‘대련(對聯)’이라는 서예의 형식이 있습니다. 새해맞이나 집안의 경조사, 장수 축하 등을 알리는 글귀를 한 쌍으로 만들어 문기둥이나 문짝에 붙이는 것을 뜻합니다. 중국에서는 명·청 시대를 거치면서 대중화했답니다. 조선의 ‘대련’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이 유명하죠. 이 ‘대련’을 조선에 처음 도입한 이는 바로 초정 박제가(1750~1805)로 알려져 있는데요. 초정은 북학파 실학자로 유명하지만 뛰어난 문장가이자 시·서·화로도 명성을 떨친 분입니다. 하지만 정작 초정이 도입했다는 ‘대련’ 글씨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