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이기환 문화부 선임기자는 지난 8월31일 경향신문을 정년퇴임했고, 이후 ‘역사 스토리텔러’ 직함으로 경향신문에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를 주간경향에 ‘이기환의 Hi-story’를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습니다.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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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조선은 똥!덩!어!리!’...박제가는 왜 ‘중국어공용론’까지 설파했을까 ‘대련(對聯)’이라는 서예의 형식이 있습니다. 새해 맞이나 집안의 경조사, 장수축하 등을 알리는 글귀를 한 쌍으로 만들어 문기둥이나 문짝에 붙이는 것을 뜻합니다. 중국에서는 명·청 시대를 거치면서 대중화했답니다. 조선의 ‘대련’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이 유명하죠. 이 ‘대련’을 조선에 처음 도입한 이가 바로 초정 박제가(1750~1805)로 알려져 있는데요. 초정은 북학파 실학자로 유명하지만 뛰어난 문장가이자 시·서·화로도 명성을 떨친 분입니다. 하지만 정작 초정이 도입했다는 ‘대련’ 글씨는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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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111)신안 보물선에 밀수품이 800만개나? 30, 50, 70, 700, 900, 1500. 무슨 숫자조합일까요. 올해(2023)에 유독 많이 붙은 ‘~주년’의 수식어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과 천마총 발굴 50주년이고요.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입니다. <고려도경>을 쓴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 방문(1123) 900주년이 됩니다. 백제 무령왕의 장례식(523)이 거행된 지 1500주년이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올해가 또 하나의 ‘~주년’이었다는 사실을 알린 행사가 열렸더라고요. 그것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신안 보물선’이 1323년(충숙왕 10) 원나라 경원(저장성 닝보·浙江省 寧波)을 출발한 지 700주년이 된 해라는 겁니다. 얼마 전(11월 11일) 고려대에서 ‘신안선 출항 700주년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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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폭군’ 궁예, “끌고가 도륙하라” 했다…1100년 전 비석 탁본 읽어보니 ‘불변(不變)의 기록, 10년의 두드림’. 얼마전 문화재청과 불교중앙박물관이 개최한 학술대회의 명칭이다. 대체 무엇이 ‘불변의 기록’이고, 또 무엇을 ‘10년간 두드렸다’는 걸까. ‘불변의 기록’이란 금속이나 돌로 만든 유물에 새겨(써) 넣은 명문(글씨)인 ‘금석문’을 가리킨다. 이 금석문은 당대 사람들이 직접 남긴 생생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필설로 다할 수 없는 1차 사료의 가치를 갖는다. ‘두드림’은 ‘탁본’을 뜻한다. 비면에 종이를 대고 그 위에 먹 방망이를 톡톡 두들겨 명문을 뜨는 행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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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700년 전 침몰한 신안보물선…수출금지품 800만개 실은 밀수선" 30, 50, 70, 700, 900, 1500. 무슨 숫자조합일까요. 올해(2023년)에 유독 많이 붙은 ‘~주년’의 수식어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과, 천마총 발굴 50주년이고요.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입니다. <고려도경>을 쓴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 방문(1123년) 900주년이 됩니다. 백제 무령왕의 장례식(523년)이 거행된지 1500주년이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올해가 또하나의 ‘~주년’이었다는 사실을 알린 행사가 열렸더라고요. 그것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신안 보물선’이 1323년(충숙왕 10) 원나라 경원(저장성 닝보·浙江省 寧波)을 출발한 지 700주년이 된 해라는 겁니다. 얼마전(11일) 고려대에서 ‘신안선 출항 700주년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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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110)흠결을 찾을 수 없는 ‘고려판 세종’ 아세요? ‘고려판 세종대왕’, ‘도무지 비판할 거리가 1도 없는 군주’…. 아니 고려 역사에 이런 임금이 있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고려사>에 나오는 표현이고요.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조에서도 “국난에 빠진 고려를 중흥시킨 영명한 군주”라며 롤모델로 삼은 분입니다. 바로 고려 현종(재위 1009~1031)입니다. 마침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바로 이 고려 현종 시대를 다루고 있죠. ■12세기 이전 ‘장의사’ 명문기와의 의미 실제로 현종의 자취와 유산이 개성(개경)도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고고학 발굴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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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고려판 세종대왕'이었던 현종…도무지 비판거리가 '1'도 없었다 ‘고려판 세종대왕’, ‘도무지 비판할 거리를 찾을 수 없는 군주’…. 아니 고려 역사에 이런 임금이 계셨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붙인 수사가 아니구요. <고려사>에 분명하게 나오는 표현이구요.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조에서도 “국난에 빠진 고려를 중흥시킨 영명한 군주”라며 롤모델로 삼은 분입니다. 올해들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분이죠. 바로 고려 현종(992~1031, 재위 1009~1031)입니다. 시쳇말로 ‘비판할 거리가 1도 없는 고려판 세종대왕’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마침 KBS 대하 드라마인 ‘고려·거란전쟁’이 바로 이 고려 현종시대를 다루고 있는데요.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한 정통사극이어서 저도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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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109)‘빨간펜 정신’으로 살린 ‘적신의 괴수’가 쓴 실록 “‘빨간펜(주묵사) 정신’을 잊지 마세요.” 강원도 평창에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 ‘오대산 사고본 실록과 의궤’가 상설 전시된다는 자료를 받고 단박에 ‘빨간펜’이 떠올랐습니다. 우선 ‘오대산 사고본’ 실록이 뭔지 잠깐 소개해보죠. 실록은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472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일어난 순서대로 서술하는 방식)로 기록한 책이죠. 책은 춘추관(서울), 정족산(강화), 봉화(태백산), 적상산(무주), 오대산(평창) 등 ‘5대 사고’에 한 부씩 보관했습니다. 이중 오대산 사고본은 1913년 일본 도쿄대(東京大)로 반출됐다가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으로 대부분 불타 없어졌고요. 용케 살아남은 75책(<성종실록>·<중종실록>·<선조실록>·<효종실록>)이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 상설 전시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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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대방태수 장무이’…식민사관의 악령을 일깨운 인물이다. 그러나… ‘장무이(張撫夷)’라는 인물이 있다. 1700여년전 황해도 사리원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일제강점기 잠자고 있던 ‘식민사학의 악령을 깨운 인물’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물론 ‘장무이’ 본인은 그런 누명을 뒤집어쓸 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침 열린 최근 제47회 한국고고학대회에서 ‘장무이묘’를 주제로 최신 연구성과가 발표되었다. 이 참에 ‘장무이’와 ‘장무이묘’와 관련된 사연을 풀어보고자 한다. ■대동강변에서 확인된 벽돌무덤의 정체 1909년 10월의 평양 대동강변으로 시공간을 옮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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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지독한 ‘빨간펜 정신’…‘역신의 수괴가 편찬한' 실록도 버리지 않았다 “‘빨간펜(주묵사) 정신’을 잊지 마세요.” 강원 평창에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 ‘오대산 사고본 실록과 의궤’가 상설 전시된다는 자료를 받고 단박에 ‘빨간펜’이 떠올랐습니다. 우선 ‘오대산 사고본’ 실록이 뭔지 잠깐 소개해보죠. 실록은 태조~철종까지 25대 472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일어난 순서대로 서술하는 방식)로 기록한 책이죠. 책은 춘추관(서울)·정족산(강화)·태백산(봉화)·적상산(무주)·오대산(평창) 등 ‘5대 사고’에 한 부씩 보관했습니다. 이중 오대산 사고본은 1913년 일본 도쿄대(東京大)로 반출됐다가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으로 대부분 불타 없어졌고요. 용케 살아남은 75책(<성종실록>·<중종실록>·<선조실록>·<효종실록>)이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에 상설 전시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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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환향녀라 손가락질? 남자들이나 잘하세요”…병자호란 여인들의 절규 ‘환향녀, 화냥년….’ 왜 다짜고짜 욕지거리로 시작하냐고 하시겠네요. 그러나 단순한 욕이 아닙니다. 요즘 장안에 화제를 뿌리고 있는 MBC 드라마 ‘연인’을 보면 금방 이해할 겁니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로 끌려간 여주인공(길채)이 온갖 고초를 겪고 고향으로 돌아왔죠. 그러나 남편은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삼고 임신까지 시킨 뒤였습니다. 돌아온 부인과 맞딱드린 남편의 말이 기막힙니다. “부인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없었겠죠?”하고 묻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길채를 보고 “오랑캐에게 더럽혀진 몸. 뻔뻔스럽게…낯도 참 두껍다”고 손가락질합니다. 드라마이다 보니까 좀 과장이 섞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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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모기향 고분’이라고?…‘황금새다리’가 초라한 무덤에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 일인학자들이 혈안이 되어 파헤친 지역이 있다. 가야고분이 집중되어 있던 영남 지방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조선병합은 임나일본부의 부활이니 반드시 그 근거를 이곳(영남의 가야고분)에서 찾아낼 것”(<매일신보> 1915년 7월24일자)이라는 일인학자 구로이타 가쯔미(黑板勝美·1874~1946)의 큰소리를 들어보라. 그러나 막상 마구잡이로 파헤친 고분 및 산성 중에 이른바 ‘임나일본부의 증거’는 털끝만큼도 찾아내지 못했다. 구로이타는 결국 “막상 임나일본부라고 해도 조사하면 조선풍인 것이 틀림없다…임나일본부 추정할만 하나, 그 자취는 이미 사라져서 이것을 찾을 방법이 없다는 게 유감”이라고 입맛을 다시며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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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 백제 마지막 왕이 의자왕?…아니다, 32대 풍왕이 있다 ‘660년? 663년?’ 백제는 언제 멸망했을까요. 무슨 뜬금없는 질문이냐구요? 660년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지 않았냐구요. 그러나 과연 660년이 맞을까요. 663년설도 제법 설득력이 있거든요. 그 뿐이 아닙니다. 또하나 착안점이 있습니다. 백제의 독립 투쟁이 <삼국사기> 기록상 672년까지 이어진다는 겁니다. 마침 올해(2023년)가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지 30년이 지난 때잖습니까. 게다가 며칠전에 부여 가림성에서 백제~통일신라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는 발굴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501년(동성왕 23) 축조된 백제성이 함락된 뒤 신라가 차지·운용했다는 이야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