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이기환 문화부 선임기자는 지난 8월31일 경향신문을 정년퇴임했고, 이후 ‘역사 스토리텔러’ 직함으로 경향신문에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를 주간경향에 ‘이기환의 Hi-story’를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습니다.
최신기사
-
이기환의 Hi-story (107)백제 마지막 왕은 의자왕이 아니다 ‘660년? 663년?’ 백제는 언제 멸망했을까요. 무슨 뜬금없는 질문이냐고요? 660년이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배우지 않았냐고요. 하지만 과연 660년이 맞을까요. 663년설도 제법 설득력이 있거든요. 또 하나 착안점이 있습니다. 백제의 독립투쟁이 672년까지 이어진다는 겁니다. 마침 올해(2023)가 백제금동대향로의 발굴 30주년입니다. 게다가 며칠 전에 부여 가림성에서 백제~통일신라시대의 유구가 확인됐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또 10월 20일 세종시 운주산 기슭에서 의미심장한 행사가 벌어졌는데요. 660년 이후 3년간 벌어진 ‘백제부흥운동’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바친 백제부흥군·왜 연합군의 넋을 기리는 백제고산대제가 열렸습니다. 백제군의 최후 보루였던 주류성 함락일에 맞춰 봉행돼 왔는데요. 올해로 꼭 30년이 됐답니다.
-
이기환의 Hi-story 거적때기 둘러쓰고, 제자리 잃고…광화문 '해치'의 기구한 팔자 왕범이, 해치…. 아무리 봐도 동물인 것 같은데 감이 확 와닿지는 않습니다. 예, 동물은 맞습니다. 하지만 분명 차이는 있습니다. 왕범이는 ‘실존’이고, 해치는 ‘상상’의 동물이라는 겁니다. 같은 점도 있습니다. 이 두 ‘실존’ 및 ‘상상’의 동물이 한때(왕범이) 혹은 지금(해치) 서울시의 공식마스코트입니다. ‘왕범이’는 1998년 2월~2008년 5월 사이 서울의 마스코트였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에서 따왔습니다. ‘왕’하면 떠오르는 한국의 으뜸 도시라는 이미지를, ‘호랑이’의 순우리말인 ‘범’에 붙인 겁니다.
-
이기환의 Hi-story (106)거적 쓰고 밀려났던…광화문 ‘해치’의 팔자 왕범이, 해치… 아무리 봐도 동물인 것 같은데, 감이 확 와닿지는 않습니다. 동물은 맞습니다. 하지만 분명 차이는 있습니다. 왕범이는 ‘실존’이고, 해치는 ‘상상’의 동물이라는 겁니다. 같은 점도 있습니다. 이 두 ‘실존’ 및 ‘상상’의 동물이 서울의 공식 캐릭터였거나(왕범이), 현재 ‘ing’ 중(해치)이라는 사실입니다. ‘왕범이’는 1998년 2월에서 2008년 5월 사이 서울의 마스코트였답니다. ‘왕’ 하면 떠오르는 한국의 으뜸 도시라는 이미지를, ‘호랑이’의 순우리말인 ‘범’에 붙인 겁니다. 그런데 2008년 5월 ‘왕범이’가 상상의 동물인 ‘해치’로 전격 교체되는데요.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200년 조선의 패션리더 ‘별감’, 서울을 ‘붉은 옷’으로 물들였다 200년전 서울과 서울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려볼 수 있을까. 사실 100년전이면 신문·잡지가 발행된 시기였고, 사진 기록까지 다수 남아있으니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런데 ‘200년전은?’ 하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다행히 단원 김홍도(1745~?)와 혜원 신윤복(1758~?) 같은 이들의 풍속화로 200년전의 ‘이미지’를 가늠할 수 있다. ■껌씹고 침 좀 뱉은 200년전 양아치 또 놓쳐서는 안될 자료가 있다. 18세기말~19세기초의 서울 풍물을 시로 묘사한 ‘성시전도시’ 몇 편이다. 그중 초정 박제가(1750~1806)의 시가 눈길을 끈다.
-
이기환의 Hi-story 중국 건국의 100대 영웅 정율성은 한중우호의 상징? 경계인? 빨갱이? ‘정율성(1914~1976)’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부은’이었는데요. ‘선율로 성취하겠다’는 뜻을 담아 ‘율성(律成)’으로 바꾸었답니다. 음악가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름이죠. 그런데 이 ‘정율성’이 요즘 ‘색깔론’의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국가보훈부가 광주광역시가 추진중인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에 제동을 건겁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정율성이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기를 북돋운 ‘팔로군 행진곡’과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 군가를 작곡했고, 직접 남침에 참여해 대한민국 체제를 위협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정율성 기념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이미 설치된 흉상 등 기념물도 철거할 것을 권고했는데요.
-
이기환의 Hi-story (105)한·중 우호 상징서 빨갱이 논쟁까지…정율성이 변했나요 ‘정율성(1914 혹은 1918~1976)’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부은’이었는데요. ‘선율로 성취하겠다’는 뜻을 담아 ‘율성(律成)’으로 바꾸었답니다. 음악가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름이죠. 그런데 이 ‘정율성’이 요즘 ‘색깔론’의 중심인물이 됐습니다. 국가보훈부가 광주광역시가 추진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에 제동을 건 겁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정율성이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기를 북돋운 ‘팔로군행진곡’과 ‘조선인민군행진곡’ 등 군가를 작곡한 인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이기환의 Hi-story ‘헤어스타일을 보니’…“백제금동대향로의 5악사는 여성 악단이었다” 위대한 발견은 어느날 불쑥 예고없이 찾아온 손님 같습니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1971년 7월5일 송산리 6호분 배수로 공사중 인부의 삽날에 부딪친 것은 다름아닌 무령왕릉의 모서리 벽돌이었죠. 무령왕릉 발굴의 이면에는 소름돋는 에피소드가 있답니다. 일제강점기 공주 지역을 돌며 마구잡이로 파헤친 공주고보 교사 가루베 지온(輕部慈恩·1897~1970)의 이야기인데요. 그 가루베가 1931~33년 사이에 송산리 6호분을 무단 발굴했습니다. 그런데 가루베는 ‘송산리 6호분=무령왕릉’으로 오판했답니다. 6호분 바로 뒤에 구릉(진짜 무령왕릉)을 6호분의 수호신(현무)로 여겨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
이기환의 Hi-story (104)백제금동대향로 다섯 악사는 여성 전문 악단 위대한 발견은 어느 날 불쑥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 같습니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국보 중의 국보’로 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의 발굴 이야기입니다.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백제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부여 능산리고분군’(현 백제왕릉원)엔 관람객들이 증가 추세에 있었습니다. ‘찜찜해서 파보자고 했더니…’ 그러나 주차시설이 턱없이 비좁았습니다. 부여군은 고분군의 서쪽 능선에 주차장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고요. 사전시굴조사가 진행됐고요.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무령왕 3년상 완전복원했다…제사상엔 은어3마리 올렸다 “영동대장군 사마왕(무령왕)이 62세가 되는 계묘년(523년) 5월7일 돌아가셨다. ‘신지(申地)’의 땅을 사서 무덤을 조성했다. 을사년(525년) 8월12일 대묘에 안장했다.” 1971년 7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백제 무령왕릉 발굴의 출토품은 5000점이 넘는다. 그 가운데 12건(17점)이나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그중 ‘원톱’을 꼽자면 금은으로 치장한 화려한 유물이 아니다. 생뚱 맞지만 ‘돌판’ 2점이다. ■무령왕릉 유물의 ‘원톱’ 하지만 예사로운 ‘돌판’이 아니다. 무령왕의 돌판, 즉 무덤 임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묘지석이다.
-
이기환의 Hi-story (102)김부식도 천대한 가야, 유네스코가 대접한 까닭 “1000년 전 김부식이 천대했던 ‘가야’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며칠 전 한국의 ‘가야고분군’이 제4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7개 가야고분군은 유곡리 및 두락리(전북 남원), 지산동(경북 고령), 대성동(경남 김해), 말이산(경남 함안), 교동 및 송현동(경남 창녕), 송학동(경남 고성), 옥전(경남 합천) 고분군입니다. 유네스코는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습니다.
-
이기환의 Hi-story (101)이순신 장군 ‘큰 칼’은 국보 장검? 쌍룡검? 얼마 전 ‘이순신 장검’(2점)이 국보로 지정됐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 뉴스를 접한 여러분들은 대번에 이순신 장군(1545~1598)의 ‘한산도가’를 떠올렸을 겁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閑山島月明夜上戍樓)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撫大刀深愁時)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何處一聲羌笛更添愁).” ‘한산도 야음(夜吟·밤에 읊다)’이란 시도 있습니다. “넓은 바다에 가을 햇빛 저무는데(水國秋光暮) 추위에 놀란 기러기 떼 높이 나는구나(驚寒雁陣高). 근심스러운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밤(憂心輾轉夜) 새벽달은 활과 칼을 비추도다(殘月照弓刀).”
-
이기환의 Hi-story (100)‘七’ 자 기왓조각에 ‘묻지마’ 사적지정 왜? 2000년 전쟁터니까 겨우 ‘칠(七)’이라고 찍힌 명문 기왓조각이 나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덕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된(2002년 1월) 산성이 있습니다. 경기 파주 적성 중성산(해발 148m)에 조성된 칠중성입니다. 변변한 발굴조사 한번 없었습니다. 1982~2000년 사이 5차례에 걸쳐 지표 및 정밀지표조사를 벌이는 데 그쳤습니다. 다만 2000년 정밀지표조사 때 성 주변에서 수습된 유물 중 ‘칠(七)’ 자 명문 기왓조각이 나온 게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데 문화재위원회는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곧바로 사적으로 지정하자”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칠’ 자 명문 기왓조각 1점 나왔다고 ‘묻지마 지정’이라는 얘기인가요. 경솔한 결정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만 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