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소정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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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정신의학을 흔든 논문의 진실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수재나 캐헐런 지음·장호연 옮김·북하우스·1만9800원 50여 년 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한 논문은 ‘우리가 과연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할 수 있는가’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스탠퍼드대학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을 포함한 가짜 환자 8명은 의사에게 “비었어. 안에 아무것도 없어. 공허해. 둔탁한 소음이 나”라는 환청을 듣는다고 호소한다. 정신병원들은 하나같이 입원 결정을 내렸고, 이들은 입원 중 ‘정상적인’ 생활을 했음에도 평균 19일을 갇혀 있었다. “정신의학의 심장에 칼을 꽂은” 이 실험의 뒷이야기는 거의 알려진 게 없었다. 로젠한은 쓰고 있던 책 출간을 포기했고, 출판사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자가면역 뇌염’을 조현병으로 오진 받은 적 있는 저자는 로젠한의 동료에게 남겨진 자료와 생존 인물들을 통해 역사적 실험 이면의 진실과 논문에서 지워진 이들을 추적했다. 정신의학의 본질과 한계 등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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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형광 물고기는 왜 생겼을까 상어가 빛날 때 율리아 슈네처 지음·오공훈 옮김·푸른숲·1만8500원 산호초에 사는 물고기 중 자체발광하는 물고기는 두툽상어를 비롯해 무려 180종이 넘는다. 광합성도 안 하는데, 어떻게 형광빛을 낼까. 심해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은 자기 몸을 숨기기 위한 위장 색과 패턴을 갖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다른 개체로부터의 공격은 막되 번식은 할 수 있도록 바로 식별하기 어려운 빛을 고안해내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봤다. 형광빛을 내는 물고기는 눈에 노란색 필터를 추가로 갖춘 덕분에 장파장에 있는 형광을 잘 인식하고 서로를 알아본다. 평균 수심 4000m,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닷속에서 해양생물들은 자신만의 생존 방식으로 살아간다. 홍해파리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영원히 살며, 돌고래는 자기들끼리 알아듣는 “서명 휘파람”을 지어 소통한다. 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 막스 플랑크 연구소 등을 거치며 심해 생물을 연구해온 저자가 바다 밑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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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가난을 자본으로 자란다는 건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지음·돌베개·1만7500원 ‘흙수저’를 상속받은 아이들은 어떤 꿈을 꿀까. 가난은 그저 재화 부족이 아니다. 내면의 힘을 키울 환경이 없고, 사회적 자본도 부족하다. 성실을 보상받는 것조차 스스로 “야망이 크다” 여길 만큼,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어렵다. 가난 때문에 엇나가기도 하지만, 일찍 철이 들기도 한다. 가족에 대해 애틋하며,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 가족’의 틀을 따라 “평범한 가정”을 꿈꾸나 순탄치는 않다. 교사인 저자는 초임 시절 청소년 현실에 무력감을 느껴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빈곤 대물림에 대한 박사 논문을 준비할 때 알게 된 청소년들과 10년간 꾸준히 만나 가난이 성년 이후까지 미치는 영향을 추적했다. 3대를 이은 가난·우울증·알코올중독으로 고통받는 소희, 성실하지만 그 결과가 두려운 영성, 전과자라는 편견과 싸우는 현석 등 8명의 이야기는 교육·노동·복지정책의 현실을 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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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음식의 미래 라리사 짐버로프 지음·제효영 옮김·갈라파고스 1만8500원 지구상의 동물 90%가 ‘식용’이고, 가축 사육 과정의 온실가스가 교통수단의 온실가스를 넘어섰다. 때마침 동물성 식품 소비를 줄이자며 탄생한 ‘실험실 음식’은 과연 우리 몸과 지구에 좋을까? 오랜 당뇨병으로 음식 성분 분석을 생활화해온 저자는 첨단식품기술 업계를 폭넓게 취재하며 각종 미래 음식의 기술적 안전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파헤쳤다. ‘임파서블 버거’와 ‘비욘드 버거’를 앞세운 비동물성 버거, 닭 없는 달걀, 소 없는 유제품 등을 분석한 그는 이들도 ‘가공식품’이기에 더 빨리 허기를 느끼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기 같은 식감과 지방의 감칠맛을 위해 유전자 조작 성분과 ‘포화지방 90%’ 코코넛유가 포함된 점, 대형 식품기업들의 마케팅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는 점도 찜찜하다. 해조류, 콩비지와 두부를 활용해온 우리 전통 밥상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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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페이지보이 <페이지보이>엘리엇 페이지 지음·송섬별 옮김·반비·1만8000원 네 살, 선 채로 오줌 줄기를 조준하려다 변기 칸을 더럽혔다. 여섯 살, “나 남자가 될 수 있어요?” 어머니에게 물었다. 스물, 영화 <주노>에서 10대 임산부 역을 맡아 이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스물셋, 영화 <인셉션>의 주인공이 됐고, 시스(생물학적 성과 심리적 성이 같은) 남성들로 가득한 촬영장의 스트레스에 대상포진이 번졌다. 스물일곱,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했다. 서른셋,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커밍아웃했다. 배우 엘리엇 페이지는 진짜 자신을 찾는 여정이 “두 발짝 나갔다 다시 한 발짝 물러남의 연속”이었지만,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다이크(레즈비언을 부르는 속어)’라 불리며 혐오의 대상이 됐던 어린 시절, 여배우로서 강요받아야 했던 ‘여성스러움’, 그루밍에 내던져졌던 영화판 이야기를 담담히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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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김초롱 지음·아몬드·1만8000원 그는 그날 거기 있었다. 평범한 날, 익숙한 장소가 참사 현장으로 변한 건 순식간이었다. 발이 땅에 닿지 않고 앞뒤로 압력이 가해지는 공포 속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상담사는 그를 ‘생존자’라 불렀고, 그는 상담사가 “오버”한다 생각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상담 과정을 적은 그 글이 큰 화제가 된 뒤엔 어떻게 지냈을까. 구청 상담 선생님은 자꾸 ‘집에 쓰레기봉투가 몇 장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정신과 의사마저 쓰레기봉투 체크 숙제를 냈다. 짜증을 내며 돌아와 마주한 집은 충격적이었다. 운으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바로 옆에서 참사를 못 알아챘다는 자기 혐오, 바뀌지 않는 사회를 향한 분노, 거기에 중증 우울증까지 덮쳐왔다. 이 책은 여전히 분투 중인 그가 고통을 ‘자원화’하는 시도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타인을 살리는’ 기록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며 용기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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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 外 <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 최의택 지음·교양인·1만6800원 이렇게 ‘깨발랄’하게 장애를 말할 줄이야. 능변가 앞에서 혼이 쏙 빠지는 느낌이다. “글쓰기가 가장 만만했다”라는 그는 사실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 읽고 쓰기다. 엄마가 마우스 위에 오른손을 올려주면 온 힘을 다해 커서를 옮기고 왼손에 체중을 싣듯 키패드 스위치를 눌러 글을 쓴다. 근육병(선천성 근위축증) 때문에 늘 휠체어를 탔지만, 초등학교 땐 반장을 도맡을 만큼 ‘나댔다’. 대화체가 어색하다는 지적에 랩을 연습했던 좌충우돌 작가 성장기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에게 글쓰기란 “왜 사는지 자신을 설득하는 일”이다. 영화 <미 비포 유>를 빗댄 미래 고민에서 진지함이 묻어난다. SF문학상 대상을 받은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분명 있지만 보이지 않는 장애인의 현실에 빗대 제목을 달았다. 이번 에세이를 통해 “분류로서만 존재하는” 장애인들이 이름을 찾고 “따옴표를 벗어던지”기를 함께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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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독방 40년 外 <독방 40년>앨버트 우드폭스 지음·송요한 옮김·히스토리아 1만8000원 “이 빌어먹을 깜둥이 놈, 네가 브렌트 밀러를 죽였다.” 심문을 당하며 들은 그 말은 판결과도 같았다. 악명 높은 미국 루이지애나 앙골라 교도소. 그는 폭이 1.8m, 길이가 2.7m인 독방에 갇혀 하루 23시간씩 무려 40년간 견뎌야 했다. 10대부터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렸던 그는 교도소에서 사회주의 무장단체 블랙팬서당(흑표당)원들을 만난 뒤 완벽하게 달라졌다. 수감자들 간의 상습 성폭행을 막고, 인권보호에 앞장섰다. 인권단체들을 통해 그의 결백이 알려진 뒤에도 사법체계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은 넘어서기 어려웠다. 그는 69세에야 형량거래를 통해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됐다. 40여 년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묻는 이들에게 그는 말한다. 여전히 수많은 비무장 흑인들이 경찰관의 총에 살해되고 있다고, 그래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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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外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김현아 지음·창비·1만8000원 “오래전부터 난 속에서 뭔가가 잘못되었어.” 하얀 팔 위의 수많은 칼자국을 보여주던 날. 아이는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는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 의사인 엄마는 끝없이 “왜?”를 묻지만, 답은 들을 수 없다. 아이의 투병을 지켜보며 아이와 병을 이해하기 위해 싸운 7년. 정신질환에 무지했고 남들과 다름없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내과의와 신경외과의 부부는 각종 연구와 통계자료를 뒤지고, 전기충격 치료를 시도하고, 부작용을 유발한 약을 직접 찾아낸다. 아이는 보호 병동에 16번 입원하지만, 부모와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다. 책은 정신질환과 연관된 유명인들의 삶을 통해 증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환자를 위한 대화법과 부모 서바이벌 가이드 등 노하우를 전한다. ‘미쳤다’ 대신 ‘아프다’, ‘정신질환’ 대신 ‘뇌 질환’이란 단어를 사용하자는 제안도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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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대치동은 대치동일 뿐입니다 外 <대치동은 대치동일 뿐입니다> 정성민 지음·젤리클·1만5000원 통장 잔액이 2600원만 아니었어도 지금 대치동에 없을지 모른다.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으로 입학사정관을 거친 저자는 편의점에서 일하다 논술 첨삭 아르바이트를 소개받고 대치동을 찾는다. 논술 강사 자리 제안이 입시 컨설턴트로 이어져 20여 년. 그가 만난 ‘대치 키즈’는 다양했다. 유치원부터 의대까지 선행으로 쉼 없이 달려가는 아이도 있지만, “은마아파트 사거리를 뱅뱅 돌아다닌 기억밖에 없”고 눈치만 백단인 아이도 있다. 대치동 학생 80%는 좋은 대학에 못 가며, 이들을 위한 학원은 은밀히 운영된다. 그는 봉사활동 몇 시간, 반장 몇 회 등 스펙을 정량화한 입시 불안 마케팅을 비판한다. 대신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와 대학이 원하는 다양한 인재상에 집중한다. ‘현대판 맹모’가 돼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도 있다. “대치동에 온다고 다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대치동도 그냥 동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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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지리학자의 열대 인문여행 外 <지리학자의 열대 인문여행> 이영민 지음·아날로그·1만8800원 열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다 게으르고 야만적일까? ‘열대’의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한편으론 야자수 아래 푸른 바다와 백사장이 펼쳐지는 낙원이, 또 한편으론 정글과 야생동물, 가난과 잔인한 내전이 떠오른다. 지상낙원의 이미지는 19세기 말 폴 고갱 등의 작품 속에서 구현되기 시작했다. 가난과 내전을 초래한 것은 식민지배로 뻗어 나온 서구 선진국의 탐욕이다. 인문지리학자인 저자는 긍정과 부정의 두 모습 모두 관념적으로 정형화된 ‘열대성’에 가깝다고 말한다. 마치 ‘오리엔탈리즘’처럼 말이다. 그는 열대에는 다양한 자연이 있고 그 배경에 열대우림, 열대사바나, 열대몬순 등 다양한 기후가 있다고 설명한다. 보르네오섬, 아마존, 빅토리아호, 세렝게티, 열대 고산지대, 열대 바다휴양지 등 여섯 지역을 여행하는 매력과 열대 지역 사람들의 진짜 삶을 전한다. -
신간 전쟁과 죄책 外 <전쟁과 죄책>노다 마사아키 지음·서혜영 옮김·또다른우주·1만9800원 1941년 내과의사 유아사 겐은 군의관으로 지원했다. 중국 산시성 타이위안 인근 병원에서 첫 번째 생체 해부가 벌어진 날, 그는 수술대 위 중국인들이 죽을죄를 저질렀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종전 후 포로수용소로 보내진 그는 ‘의사는 전쟁 중에도 별로 죄지을 일이 없다’고 믿는다. 뒤늦게 7건의 생체 해부를 자백한 그에게 한 통의 편지가 온다. “유아사, 나는 네가 죽인 남자의 어머니다.” 그제야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죽인 남자가 가족이 있는 인간이었음을. 생체 해부와 인체 실험에 참여한 군의관 전범들은 전후 일본 의학계로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저자의 아버지도 군의관 출신이지만, 그 시절에 대해 함구한다. 저자가 인터뷰한 전범들은 감정 없이 살상과 고문에 임했고, 악몽조차 없었던 과거를 고백한다. 군국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의 감정을 마비시켰는지 보여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