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소정
경향신문 기자
모바일팀 소속입니다. 책과 여행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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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시톡 (28)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메모하다 한 모임에서 “어릴 적, 한겨울에 거의 영하 30도까지 내려갔다”고 하자, 믿지 않더군요. 강원도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경기도 안성은 그럴 수 없다면서요. 억울한 마음에 휴대전화로 검색해 안성 옆 여주의 ‘영하 27도’까지 내려간 기록을 보여줬습니다. 그래도 쉽게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기후위기도 그렇지 않을까요. 인류가 전혀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환경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사람들은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태어나는 시 이재연 시인(1963~ )의 두 번째 시집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는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재앙과 희망 없는 미래, 그런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 어른들의 무책임, 그리고 신(神)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은유와 통찰을 통해 빼어난 솜씨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평범한 일상과 회상을 시간(경험)을 통해 재구성하면서도 적절하게 성경 구절과 신화를 시에 녹여냅니다. 신은 오만한 인간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인류는 공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시인이 절망하는 지점이면서 시적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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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우리 애가 달라졌다, 화학 덕에 재미있고 쓸모있는 화학 이야기 이광렬 지음·코리아닷컴·1만9000원 여성의 몸에 여성호르몬보다 남성호르몬이 많다. 사실일까. 화학과 교수님 말씀이니 믿어보자. 여성의 몸에서는 두 호르몬이 서로 변환되기까지 한다. 호르몬을 이용해 ‘우리 아이, 우리 부부가 달라졌어요’가 가능할까. 역시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가능하다. 시험을 못 본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지나치게 간섭하면 아이의 뇌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많이 나와 기억력과 집중력을 더 떨어뜨린다. 대신 아이가 뭔가를 성취했을 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엔도르핀이 나와 또 다른 뭔가를 성취할 힘을 얻는다. 남편을 무시할 때 그의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되고, 테스토스테론이 만드는 근육 대신 아랫배만 출렁인다. 아내를 무시하면 역시 코르티솔 때문에 아내한테 비만과 우울증, 불면증이 생기기 쉽다. 전자레인지에 넣어도 되는 플라스틱은 어느 것인지, 탄 음식이 진짜 암을 유발하는지, 다이어트약의 효과는 왜 낮은지 등 일상 속 다양한 화학 정보를 망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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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초식남들이 왜 인셀이 됐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 스기타 슌스케 지음·명다인 옮김·또다른우주·1만6800원 세상은 남성들의 사회적 특권을 말한다. 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약자 남성’들은 이를 체감할 수 없다. 이들은 ‘안티’나 ‘인셀(비자발적 싱글)’의 어둠에 빠지기도 한다. “강렬하고 일시적인 감정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인터넷 전장에서 ‘적’과 싸우면 고양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던 ‘프리터’ 시절 자신도 인셀이 될 수 있다는 내면의 어둠을 자각했던 저자가 남성의 관점에서 약자 남성에 대해 고찰했다. 그는 여성들의 ‘유리 천장’에 빗대 ‘유리 지하실’에 추락한 남성들이 있다고 말한다. 약자 남성들 스스로 약함을 인정하되, 사회의 소수자들과 ‘불행 배틀’을 하거나, 여성에게 위로와 돌봄을 기대하고 강요하지 말자고 한다.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에 나온 남자들이 사실은 ‘동성 친구 없는 남자들’이기에 더 고독했음을 지적하며, 동성 친구들과 깊지도 얕지도 않은 사귐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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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죽음이 밝힌 진실과 과학 재난에 맞서는 과학 박진영 지음·민음사·1만7000원 다치고 아프고 죽어야 만들어지는 지식이 있다. 2023년 10월 말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확인된 사망자는 1835명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가족의 청결과 건강을 지키는 제품으로 판매됐다. 출시 전부터 울린 경고음을 제조사들은 무시했다. 2011년 원인불명의 폐 질환 사례가 쌓였고, 역학조사진은 교차비가 47.3(특정 인자에 노출된 사람이 노출 안 된 사람보다 질병 확률 47.3배)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더디 결정된 수거 명령 시점까지 제품은 1000만 개 가까이 팔렸다. 저자는 환경사회학과 과학기술학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재구성했다. 특히 과학의 기본 특성인 불확실성이 재판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지적하며 “차갑고 객관적이고 완전무결한 과학은 재난을 끝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과학이 뭔지 묻자며 “누구나 손을 들고 과학에 대해 말할 때 세상이 바뀐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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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누가 간병해?” 왜 묻지도 않나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신성아 지음·마티·1만6000원 등교 중 코피를 흘린 아이가 반나절 만에 악성질환 진단을 받는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던 엄마는 무균실의 간병인으로 살얼음판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휘몰아치는 백혈병 투병기에 빠져들다가 몇 번이고 표지를 다시 보았다. 품었던 궁금증은 40페이지를 넘어설 즈음 풀린다. 예상치 못한 발병을 두고 제 잘못부터 찾아보는 여성들. 국가의 복지가 품어야 할 돌봄이 “간병은 누가 해?”라는 질문 한번 없이 유독 여성 가족 구성원에게만, 그것도 ‘모성’이라는 탈을 씌워 전가되는 현실. 그는 “결혼한 여자의 사랑은 왜 항상 자기 파괴적인가”라고 되묻는다. 평가절하된 돌봄의 노동 가치, 모두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 그리고 소아암 환자들의 교육권까지… 그는 정치가 현실의 삶을 떠받쳐줘야 하는 부분들을 짚어낸다. 좁은 간병인 침대에서 잠 못 드는 밤 치열하게 읽었을 책들에서 튀어나온 문장들도 적재적소에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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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페미니즘 대중화 그 이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지음·교양인·1만8000원 저출생의 원인이 뭘까. 단순히 출산 기피일까? 저자는 결혼 기피와 만혼의 결과이며, 이는 남녀 집단 간 인식 불균형 탓이라고 본다. 2015년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여성에게는 페미니즘이 기본값이 됐지만, 남성의 여성관과 자아 인식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남자가 피해자”라는 피해 의식의 원인도 집단적 ‘문화 지체 현상’에서 찾는다. 그는 그간 여성주의의 중심에 있었던 피해자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규범적인 피해자 이미지가 전제돼 “여성에게 불리할 뿐 아니라 실현 불가능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난민과 트랜스젠더 여성 배제도 꼬집는다. 2005년 <페미니즘의 도전>으로 여성주의를 소개했던 저자가 ‘김건희 여사 비판이 미소지니인지’ 등 한국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을 재해석했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을 비난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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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정신의학을 흔든 논문의 진실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수재나 캐헐런 지음·장호연 옮김·북하우스·1만9800원 50여 년 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한 논문은 ‘우리가 과연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할 수 있는가’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스탠퍼드대학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을 포함한 가짜 환자 8명은 의사에게 “비었어. 안에 아무것도 없어. 공허해. 둔탁한 소음이 나”라는 환청을 듣는다고 호소한다. 정신병원들은 하나같이 입원 결정을 내렸고, 이들은 입원 중 ‘정상적인’ 생활을 했음에도 평균 19일을 갇혀 있었다. “정신의학의 심장에 칼을 꽂은” 이 실험의 뒷이야기는 거의 알려진 게 없었다. 로젠한은 쓰고 있던 책 출간을 포기했고, 출판사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자가면역 뇌염’을 조현병으로 오진 받은 적 있는 저자는 로젠한의 동료에게 남겨진 자료와 생존 인물들을 통해 역사적 실험 이면의 진실과 논문에서 지워진 이들을 추적했다. 정신의학의 본질과 한계 등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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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형광 물고기는 왜 생겼을까 상어가 빛날 때 율리아 슈네처 지음·오공훈 옮김·푸른숲·1만8500원 산호초에 사는 물고기 중 자체발광하는 물고기는 두툽상어를 비롯해 무려 180종이 넘는다. 광합성도 안 하는데, 어떻게 형광빛을 낼까. 심해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은 자기 몸을 숨기기 위한 위장 색과 패턴을 갖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다른 개체로부터의 공격은 막되 번식은 할 수 있도록 바로 식별하기 어려운 빛을 고안해내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봤다. 형광빛을 내는 물고기는 눈에 노란색 필터를 추가로 갖춘 덕분에 장파장에 있는 형광을 잘 인식하고 서로를 알아본다. 평균 수심 4000m,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닷속에서 해양생물들은 자신만의 생존 방식으로 살아간다. 홍해파리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영원히 살며, 돌고래는 자기들끼리 알아듣는 “서명 휘파람”을 지어 소통한다. 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 막스 플랑크 연구소 등을 거치며 심해 생물을 연구해온 저자가 바다 밑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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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가난을 자본으로 자란다는 건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지음·돌베개·1만7500원 ‘흙수저’를 상속받은 아이들은 어떤 꿈을 꿀까. 가난은 그저 재화 부족이 아니다. 내면의 힘을 키울 환경이 없고, 사회적 자본도 부족하다. 성실을 보상받는 것조차 스스로 “야망이 크다” 여길 만큼,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어렵다. 가난 때문에 엇나가기도 하지만, 일찍 철이 들기도 한다. 가족에 대해 애틋하며,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 가족’의 틀을 따라 “평범한 가정”을 꿈꾸나 순탄치는 않다. 교사인 저자는 초임 시절 청소년 현실에 무력감을 느껴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빈곤 대물림에 대한 박사 논문을 준비할 때 알게 된 청소년들과 10년간 꾸준히 만나 가난이 성년 이후까지 미치는 영향을 추적했다. 3대를 이은 가난·우울증·알코올중독으로 고통받는 소희, 성실하지만 그 결과가 두려운 영성, 전과자라는 편견과 싸우는 현석 등 8명의 이야기는 교육·노동·복지정책의 현실을 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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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음식의 미래 라리사 짐버로프 지음·제효영 옮김·갈라파고스 1만8500원 지구상의 동물 90%가 ‘식용’이고, 가축 사육 과정의 온실가스가 교통수단의 온실가스를 넘어섰다. 때마침 동물성 식품 소비를 줄이자며 탄생한 ‘실험실 음식’은 과연 우리 몸과 지구에 좋을까? 오랜 당뇨병으로 음식 성분 분석을 생활화해온 저자는 첨단식품기술 업계를 폭넓게 취재하며 각종 미래 음식의 기술적 안전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파헤쳤다. ‘임파서블 버거’와 ‘비욘드 버거’를 앞세운 비동물성 버거, 닭 없는 달걀, 소 없는 유제품 등을 분석한 그는 이들도 ‘가공식품’이기에 더 빨리 허기를 느끼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기 같은 식감과 지방의 감칠맛을 위해 유전자 조작 성분과 ‘포화지방 90%’ 코코넛유가 포함된 점, 대형 식품기업들의 마케팅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는 점도 찜찜하다. 해조류, 콩비지와 두부를 활용해온 우리 전통 밥상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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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페이지보이 <페이지보이>엘리엇 페이지 지음·송섬별 옮김·반비·1만8000원 네 살, 선 채로 오줌 줄기를 조준하려다 변기 칸을 더럽혔다. 여섯 살, “나 남자가 될 수 있어요?” 어머니에게 물었다. 스물, 영화 <주노>에서 10대 임산부 역을 맡아 이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스물셋, 영화 <인셉션>의 주인공이 됐고, 시스(생물학적 성과 심리적 성이 같은) 남성들로 가득한 촬영장의 스트레스에 대상포진이 번졌다. 스물일곱,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했다. 서른셋,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커밍아웃했다. 배우 엘리엇 페이지는 진짜 자신을 찾는 여정이 “두 발짝 나갔다 다시 한 발짝 물러남의 연속”이었지만,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다이크(레즈비언을 부르는 속어)’라 불리며 혐오의 대상이 됐던 어린 시절, 여배우로서 강요받아야 했던 ‘여성스러움’, 그루밍에 내던져졌던 영화판 이야기를 담담히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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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김초롱 지음·아몬드·1만8000원 그는 그날 거기 있었다. 평범한 날, 익숙한 장소가 참사 현장으로 변한 건 순식간이었다. 발이 땅에 닿지 않고 앞뒤로 압력이 가해지는 공포 속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상담사는 그를 ‘생존자’라 불렀고, 그는 상담사가 “오버”한다 생각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상담 과정을 적은 그 글이 큰 화제가 된 뒤엔 어떻게 지냈을까. 구청 상담 선생님은 자꾸 ‘집에 쓰레기봉투가 몇 장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정신과 의사마저 쓰레기봉투 체크 숙제를 냈다. 짜증을 내며 돌아와 마주한 집은 충격적이었다. 운으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바로 옆에서 참사를 못 알아챘다는 자기 혐오, 바뀌지 않는 사회를 향한 분노, 거기에 중증 우울증까지 덮쳐왔다. 이 책은 여전히 분투 중인 그가 고통을 ‘자원화’하는 시도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타인을 살리는’ 기록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며 용기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