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소정
경향신문 기자
모바일팀 소속입니다. 책과 여행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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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감정이란…뇌 속 연결지도를 찾아서 “제가 왜 못 우는지 모르겠어요.” 형제들에게 등 떠밀려 응급실에 온 남자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는 8주 전 시골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뒤집힌 차 속에서 안전띠에 거꾸로 매달린 신혼부부의 몸이 흔들렸다. 아내와 뱃속 아이가 차갑게 식어가는 모습을 청년은 속절없이 지켜보았다. 눈물이 사라진 건 그가 한순간에 미래를 잃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사실 뇌 신경계 깊은 곳의 7번 신경섬유가 고장 난 상태였다. 얼굴 신경이라 불리는 7번 뇌 신경은 표정과 눈물샘을 지배한다. -
책과 삶 화학원소는 어떻게 차별의 도구가 됐나 깨진 온도계에서 나온 은빛 액체가 책상 위를 또르르 굴렀다. 마법에 홀린 듯 손을 뻗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외쳤다. “만지지 마!” 이 물질은 ‘퀵 실버’라는 별명의 수은(水銀). 원소기호 Hg 또한 물(hydor)과 은(argyros)을 붙인 라틴어 hydragyrum에서 왔다. 연금술사들이 붉은색 황화수은 광석을 태워 얻던 수은은 참 쓸모가 많았다. 밀도와 표면장력이 높아 압력 측정에 편했고, 형광물질을 바른 유리에 증기 형태로 넣으면(형광등) 세상이 밝아졌다. -
책과 삶 AI 피드백 받은 학생들 수학 시험 결과 봤더니… 인공지능(AI)만 있으면 뚝딱 리포트를 써내고, 그림과 음악을 창조해내는 시대다. 도깨비방망이가 따로 없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AI는 우리를 똑똑하게 만드는 걸까, 바보로 만드는 걸까. MIT 미디어랩 연구진은 사람이 직접 쓴 글과 AI의 도움을 받아 쓴 글을 비교했다. 스스로 쓴 글은 개성 있었으며, AI를 활용한 사람들은 뭘 썼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글을 쓸 때 우리는 정보를 떠올리고 통합해 구조화하는 복잡한 인지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뇌의 여러 영역이 이어지고 활성화된다. AI를 활용해 글을 쓸 땐 뇌의 활성화도가 낮다. -
책과 삶 두 과학자가 나눈 편지 슬기로운(?) 과학 생활 과학자라고 하면 세상에 무관심한 ‘괴짜 천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평범한 일상이 있고, 다양한 관심사가 있다. 과학자는 평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 ‘알쓸’ 시리즈로 얼굴을 알린 물리학자 김상욱과 천문학자 심채경이 주고받은 편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한 사람은 뉴턴의 법칙을 알려주기 전에 뉴턴이라는 인간을 먼저 알려주고 싶다. 물리학을 이해하려 철학과 역사를 파고들었고, 전쟁과 미술에 관심이 많다. 책을 읽기 위해 지하철을 타며, 책에 줄을 벅벅 그어야 직성이 풀린다. 미신도 MBTI도 믿지 않지만, 특정 브랜드의 0.38㎜ 빨간 펜이 없으면 불안하다. 질문을 받으면 질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 다시 질문하며, 답을 찾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따지는 ‘노가다’를 감수한다. ‘물리학자’라는 이름으로 납작하게 정의되는 것은 3차원에서 2차원이 되는 ‘차원 낮은’ 인간이 되는 것이지만, 1차원적인 국수를 매우 사랑한다. -
책과 삶 ‘실재’를 보는 틀, 양자역학과 일원론 철학…다르지만 같다 모든 것은 하나다하인리히 페스 지음 | 김영태 옮김바다출판사 | 451쪽 | 2만8000원 그 작은 입자들을 발견하지만 않았더라면, 골치 아픈 양자역학 또한 세상에 없었을까. 원자를 발견한 이래 물리학은 자연을 작은 조각으로 분해해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환원주의 철학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소립자들은 대차게 고전물리학을 배반했다. 덕분에 애꿎은 고양이는 상자 속에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됐고(슈뢰딩거의 고양이), 입자의 위치를 알면 운동량은 포기해야 하며(불확정성 원리), 입자인 듯 파동인 듯한 두 성질은 상호 보완적이라는(상보성 원리) 양자역학 개념들이 생겼다. -
책과 삶 ‘기대하지 않았던 모퉁이에서’ 피어난 미래를 연 연구들 1년 가까이 매주 기차여행을 다녀온 뒤 ‘미래의 세계’(원제 Zukunftswelton)를 보았노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허풍쟁이가 아니라 과학자다.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독일 내 38곳, 해외 4곳 지역에 있는 84개 연구기관이었다. 이 장소들은 모두 한 이름 아래 묶여 있다. 막스플랑크협회, 총 3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독일의 비영리 단체다. -
책과 삶 뇌과학으로 읽어낸 현대미술 미술, 마음, 뇌에릭 캔델 지음 | 이한음 옮김프시케의숲 | 280쪽 | 2만2000원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한 섕 수틴은 유대인 정착촌 출신이었다. 그의 그림은 또 다른 정착촌 출신 마르크 샤갈의 신비로운 그림과 달랐다. 포크는 일그러졌고, 건물은 살아 움직이고, 초상화 속 얼굴은 비뚤어졌다. 그 원초적 불편함이 애호가들을 끌어모은 이유는 뭘까. -
책과 삶 누구나 알지만 모르는 시간 끝의 세계 블랙홀브라이언 콕스·제프 포셔 지음 | 박병철 옮김392쪽 | 3만3000원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시공간, 블랙홀. 빛마저 빠져나오지 못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천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내뱉은 사람은 18세기 영국의 목사이자 과학자인 존 미셸이었다. 그 별 위에 껍질을 씌운다면 그 이름은 사건(의)지평선이다. 그 너머에 존재하는 ‘특이점’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통하지 않는, 장소라기보다 시간이며, 어쩌면 “시간의 끝”이다. -
김정수의 시톡 (28)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메모하다 한 모임에서 “어릴 적, 한겨울에 거의 영하 30도까지 내려갔다”고 하자, 믿지 않더군요. 강원도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경기도 안성은 그럴 수 없다면서요. 억울한 마음에 휴대전화로 검색해 안성 옆 여주의 ‘영하 27도’까지 내려간 기록을 보여줬습니다. 그래도 쉽게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기후위기도 그렇지 않을까요. 인류가 전혀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환경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사람들은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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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우리 애가 달라졌다, 화학 덕에 재미있고 쓸모있는 화학 이야기 이광렬 지음·코리아닷컴·1만9000원 여성의 몸에 여성호르몬보다 남성호르몬이 많다. 사실일까. 화학과 교수님 말씀이니 믿어보자. 여성의 몸에서는 두 호르몬이 서로 변환되기까지 한다. 호르몬을 이용해 ‘우리 아이, 우리 부부가 달라졌어요’가 가능할까. 역시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가능하다. 시험을 못 본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지나치게 간섭하면 아이의 뇌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많이 나와 기억력과 집중력을 더 떨어뜨린다. 대신 아이가 뭔가를 성취했을 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엔도르핀이 나와 또 다른 뭔가를 성취할 힘을 얻는다. 남편을 무시할 때 그의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되고, 테스토스테론이 만드는 근육 대신 아랫배만 출렁인다. 아내를 무시하면 역시 코르티솔 때문에 아내한테 비만과 우울증, 불면증이 생기기 쉽다. 전자레인지에 넣어도 되는 플라스틱은 어느 것인지, 탄 음식이 진짜 암을 유발하는지, 다이어트약의 효과는 왜 낮은지 등 일상 속 다양한 화학 정보를 망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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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초식남들이 왜 인셀이 됐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 스기타 슌스케 지음·명다인 옮김·또다른우주·1만6800원 세상은 남성들의 사회적 특권을 말한다. 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약자 남성’들은 이를 체감할 수 없다. 이들은 ‘안티’나 ‘인셀(비자발적 싱글)’의 어둠에 빠지기도 한다. “강렬하고 일시적인 감정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인터넷 전장에서 ‘적’과 싸우면 고양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던 ‘프리터’ 시절 자신도 인셀이 될 수 있다는 내면의 어둠을 자각했던 저자가 남성의 관점에서 약자 남성에 대해 고찰했다. 그는 여성들의 ‘유리 천장’에 빗대 ‘유리 지하실’에 추락한 남성들이 있다고 말한다. 약자 남성들 스스로 약함을 인정하되, 사회의 소수자들과 ‘불행 배틀’을 하거나, 여성에게 위로와 돌봄을 기대하고 강요하지 말자고 한다.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에 나온 남자들이 사실은 ‘동성 친구 없는 남자들’이기에 더 고독했음을 지적하며, 동성 친구들과 깊지도 얕지도 않은 사귐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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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죽음이 밝힌 진실과 과학 재난에 맞서는 과학 박진영 지음·민음사·1만7000원 다치고 아프고 죽어야 만들어지는 지식이 있다. 2023년 10월 말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확인된 사망자는 1835명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가족의 청결과 건강을 지키는 제품으로 판매됐다. 출시 전부터 울린 경고음을 제조사들은 무시했다. 2011년 원인불명의 폐 질환 사례가 쌓였고, 역학조사진은 교차비가 47.3(특정 인자에 노출된 사람이 노출 안 된 사람보다 질병 확률 47.3배)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더디 결정된 수거 명령 시점까지 제품은 1000만 개 가까이 팔렸다. 저자는 환경사회학과 과학기술학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재구성했다. 특히 과학의 기본 특성인 불확실성이 재판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지적하며 “차갑고 객관적이고 완전무결한 과학은 재난을 끝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과학이 뭔지 묻자며 “누구나 손을 들고 과학에 대해 말할 때 세상이 바뀐다”고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