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수빈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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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사라진 골목, 사라진 마을···길냥이 시선으로 본 도시의 뒷모습 집으로 가는 여정 표현우 글·그림 | 노란상상 | 48쪽 | 1만7000원 책은 혼잣말로 시작한다. “내 가 살 던 곳 은 사 라 졌 다.” 한 바닥 펼쳐진 종이 위에 덩그러니 쓰인 현실 인식이 막막하다. 어느 날 집이 무너져 내려 살 곳을 잃은 고양이는 쫓기듯 더 높은 동네로 오른다. 그곳에서 가끔 저 멀리 떠나온 곳을 바라본다. 한때 그의 집이던 그곳에는 어느새 높은 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층 건물이 솟아 있다. 고양이는 말끔해진 아랫동네와 다르게 낮고 낡은 집들이 군데군데 금 간 담장을 공유하는 달동네를 거닌다. 어쩌면 여기서는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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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다정한 마음 곁에 모여드는 작은 존재들, 그렇게 따스해지는 삶 의자에게김유 글·오승민 그림모든요일그림책 | 48쪽 | 1만7000원 딸의 이사날, 변두리에서 홀로 구멍가게를 하는 할머니는 딸이 쓰던 낡은 소파를 가져와 살뜰히 챙긴다. 의자를 가게 앞 차양 아래 두고 솔기가 해진 곳은 명주실로 단단히 꿰매고, 닦고 또 닦는다. 할머니는 얼룩덜룩하고 주름진 의자에서 검버섯 피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자신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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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일상의 작은 틈으로 다른 숨을 틔우다 나는 흐른다송미경 글·장선환 그림창비 | 72쪽 | 1만8000원 수영을 배우면서 물속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을 조금은 알게 됐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물은 여전히 두렵지만, 때때로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때 홀가분하다. 시작과 끝이 정해진 수영장 레인을 따라갈 뿐이지만 물의 흐름을 타면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부터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세계,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나이지만 내가 아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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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언제나 곁을 내어 주는 작고 기쁜 영혼…‘고마워, 코코’ 가장 밝은 산책을 데려가 줘서 코코에게최현우 글·이윤희 그림창비 | 48쪽 | 1만7000원 어느 겨울, 홀로 걷던 아이는 캄캄한 지하 주차장에서 버려진 강아지를 만난다. 상자에 담긴 강아지를 보고 놀라 도망쳤던 아이는 이내 강아지가 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강아지도 아이를 향해 뛰어온다. 아이는 매고 있던 빨간 목도리를 풀어 강아지를 조심히 감싸 안는다. 다시는 같은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 이름을 붙여준다.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아 ‘코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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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다양한 우정만큼이나 많은 ‘좋은 친구’ 되는 법 친구를 사귀려면하이로 부이트라고 글·마리아나 루이스 존슨 그림·김지애 옮김파란자전거 | 38쪽 | 1만4000원 ‘엄청 커다란 나무 아래 앉아 있거나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꿀벌을 구해준다.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거나 먼저 “안녕?”하고 한 사십 번쯤 인사한다.’ 얼핏 엉뚱해 보이는 이 조언들은 새 친구를 만나기 위한 아주 쉽고, 조금 특별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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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꽉 막힌 출근길, 쳇바퀴 같은 일상…마법 같은 하루로 안내된다면 달리다 보면김지안 글·그림웅진주니어 | 80쪽 | 1만6800원 삐비빅 삐비빅.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힘겹게 끈다. 무거운 눈을 겨우 뜨고 찌뿌드드한 몸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오늘 따라 뚜고씨의 출근길은 유난히 피곤하다. 하늘은 맑고 상쾌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한강의 윤슬도 파릇한 신록도 들어오지 않는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앞차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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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얼굴이 흐려지는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 잃어버린 얼굴올가 토카르추크 글·요안나 콘세이요 그림이지원 옮김 | 사계절 | 64쪽 | 1만8000원 여기 모두가 좋아하는 얼굴이 있다. 빛나는 눈, 선이 예쁜 코, 도톰한 입술을 가진 남자는 무척이나 또렷한 사람이다. 그는 자랑스러운 자신의 얼굴을 항상 사진으로 남긴다. 셀피를 찍고 도시와 유적지, 구름과 바다 같은 멋진 배경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그는 사진찍기를 멈추지 않는다. 악몽 같은 사건이 닥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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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공고하던 나의 세계 안에 ‘너’를 들여놓는다는 것 사랑은, 달아박세연 글·그림난다 | 48쪽 | 1만5000원 “당분간이야.” 달씨는 갈 곳 없는 개에게 단호하게 말했지만, 어느새 18년이 흘렀다. ‘당분간’이 잠깐이 아니게 될 것이란 건 달씨가 바지에 묻은 개털을 떼어내며 앞으로 지킬 규칙들을 읊을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책 <사랑은, 달아>는 낯선 생명에게 잠깐 쉴 곳을 내어주려던 마음으로 시작해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두려운 반려인의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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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어긋난 길에서 만난 다채로운 삶의 풍경 새 그림자김규정 글·그림보리 | 48쪽 | 1만5000원 붉게 물든 하늘 위로 철새 무리가 대형을 맞춰 날아간다. 그를 닮은 새 그림자들도 떼 지어 함께 이동한다. “난 날기 위해 존재해. 세상은 우리 날갯짓의 배경일 뿐이야. 그런 무리에 함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 새 그림자는 무리 속에 있는 자기 모습이 퍽 마음에 든다. 노을이 눈부시게 아름답던 날, 새 그림자 하나가 멍하니 노을을 바라보다 그만 무리에서 떨어진다. 그는 다시 무리 속으로 돌아가려 발버둥 치지만 그의 자리는 이미 다른 그림자가 차지한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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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아이와 반려견, 삶의 속도 다른 두 ‘동갑 친구’의 교감 동갑길상효 글·조은정 그림웅진주니어 | 48쪽 | 1만5000원 볼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아기와 보송보송한 털을 지닌 강아지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까맣고 말간 두 눈빛 사이 애정이 반짝 빛난다. 둘은 같은 해에 세상에 발을 내디딘 동갑이다. 같은 시간 속에서 아이는 자라고 개는 늙는다. 아기가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는 동안 개의 시간은 그보다 빠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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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할머니집, 절절 끓는 아랫목, 솜이불 속…세상 제일 포근한 그 품 겨울 이불안녕달 글·그림창비 | 68쪽 | 1만6000원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쌓인 눈 위로 발자국을 콩콩 찍으며 할머니 집에 간다. 추위를 뚫고 도착한 뜨끈한 방의 구들장. 후끈한 열기에 가방도, 패딩 점퍼도, 양말도 훌러덩 벗고 편안한 내복 차림으로 꽃무늬 솜이불에 쏙 파고든다. 얼었던 몸이 찌르르 녹는다. ‘따뜻해’ 행복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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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아빠 어렸을 적엔…” 그람시가 아들에게 남긴 옥중 편지, 짧지만 긴 여운 여우와 망아지안토니오 그람시 지음·비올라 니콜라이 그림이민 옮김 | 이유출판 | 42쪽 | 1만5000원 정치범으로 투옥된 아버지는 감옥에서 가족과 친지에게 편지를 썼다. 노트 30여권에 남긴 글 중에는 당시 엄혹한 현실에 대한 날선 비판도 있었지만,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작은 이야기도 있었다. 옥중에서 보내지 못한 채 남은 조각 글은 사후에 책으로 묶여 출판됐다. 세심한 문체와 인간애가 넘치는 작품이라는 평가 속에 이탈리아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