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빈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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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사라진 골목, 사라진 마을···길냥이 시선으로 본 도시의 뒷모습 집으로 가는 여정 표현우 글·그림 | 노란상상 | 48쪽 | 1만7000원 책은 혼잣말로 시작한다. “내 가 살 던 곳 은 사 라 졌 다.” 한 바닥 펼쳐진 종이 위에 덩그러니 쓰인 현실 인식이 막막하다. 어느 날 집이 무너져 내려 살 곳을 잃은 고양이는 쫓기듯 더 높은 동네로 오른다. 그곳에서 가끔 저 멀리 떠나온 곳을 바라본다. 한때 그의 집이던 그곳에는 어느새 높은 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층 건물이 솟아 있다. 고양이는 말끔해진 아랫동네와 다르게 낮고 낡은 집들이 군데군데 금 간 담장을 공유하는 달동네를 거닌다. 어쩌면 여기서는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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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다정한 마음 곁에 모여드는 작은 존재들, 그렇게 따스해지는 삶 딸의 이사날, 변두리에서 홀로 구멍가게를 하는 할머니는 딸이 쓰던 낡은 소파를 가져와 살뜰히 챙긴다. 의자를 가게 앞 차양 아래 두고 솔기가 해진 곳은 명주실로 단단히 꿰매고, 닦고 또 닦는다. 할머니는 얼룩덜룩하고 주름진 의자에서 검버섯 피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자신을 본다. 의자 하나 가져왔을 뿐인데 할머니의 일상에는 작은 흥이 돋는다. 의자는 할머니의 말동무이자 안락한 등받이가 돼준다. 구멍가게 주인이 아니라 큰 회사의 사장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버려질 뻔한 의자는 “딸네 집에서 모셔 온” 의자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의자 속을 헤집고 스펀지를 훔쳐간다. 할머니는 스펀지 도둑을 쫓다 의외의 ‘범인’을 발견한다. 새끼를 위해 뭐든 하는 어미의 마음을 마주하고 코끝이 찡해진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지난날 자기 모습과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추운 겨울 어린 딸을 위해 연탄을 훔치려 한 자신에게 새 연탄을 쥐여준 주인집 할머니를 떠올리며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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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일상의 작은 틈으로 다른 숨을 틔우다 수영을 배우면서 물속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을 조금은 알게 됐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물은 여전히 두렵지만, 때때로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때 홀가분하다. 시작과 끝이 정해진 수영장 레인을 따라갈 뿐이지만 물의 흐름을 타면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부터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세계,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나이지만 내가 아니기도 하다. 그림책 <나는 흐른다>의 영아는 등굣길에서 보는 반짝이는 윤슬에 사로잡혀 강가를 서성이다 그만 강물 속에 풍덩 뛰어든다. 사실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영아가 아니라 어딘가로 자유롭게 흘러가고 싶은 영아의 마음이다. 영아는 물속에서 행복해하는 자신에게 차마 밖으로 나오라고 말하지 못하고, 자신을 물속에 둔 채 학교로 향한다. 몸은 학교에 있지만 수업시간 내내 마음은 유유히 헤엄친다. 물 밖에서 평소처럼 숙제를 하고 개와 산책을 나서지만, 영아의 일상엔 작은 틈이 생겼다. 그 틈새로 영아는 다른 숨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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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언제나 곁을 내어 주는 작고 기쁜 영혼…‘고마워, 코코’ 가장 밝은 산책을 데려가 줘서 어느 겨울, 홀로 걷던 아이는 캄캄한 지하 주차장에서 버려진 강아지를 만난다. 상자에 담긴 강아지를 보고 놀라 도망쳤던 아이는 이내 강아지가 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강아지도 아이를 향해 뛰어온다. 아이는 매고 있던 빨간 목도리를 풀어 강아지를 조심히 감싸 안는다. 다시는 같은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 이름을 붙여준다.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아 ‘코코’라고 부른다. 짧고 단순하고 반복하는 발음인 ‘코코’는 어디에나 있다. 책에선 코코 헤어, 코코 슈퍼, 코코 오락실 등 코코의 이름이 가득한 동네 풍경이 정겹게 그려진다. 미용실에서 반려동물과 꼭 닮은 모습으로 파마한 반려인, 코코를 반기는 아이들의 목소리처럼 장면 곳곳에서 반려동물을 향한 다정한 마음과 재치 있는 시선이 묻어나 흐뭇하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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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다양한 우정만큼이나 많은 ‘좋은 친구’ 되는 법 ‘엄청 커다란 나무 아래 앉아 있거나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꿀벌을 구해준다.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거나 먼저 “안녕?”하고 한 사십 번쯤 인사한다.’ 얼핏 엉뚱해 보이는 이 조언들은 새 친구를 만나기 위한 아주 쉽고, 조금 특별한 방법이다. 친구를 사귀고 싶은 개구리는 조언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여본다. 우선 집 밖으로 나서 친구가 되고 싶은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린다. 햇볕에 새까맣게 탈 걱정은 접어두고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고는 새장에 갇힌 새를 풀어줘 그에게 넓은 세상을 선물하고, 종이 인형을 만들어 공원 곳곳에 선물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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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꽉 막힌 출근길, 쳇바퀴 같은 일상…마법 같은 하루로 안내된다면 삐비빅 삐비빅.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힘겹게 끈다. 무거운 눈을 겨우 뜨고 찌뿌드드한 몸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오늘 따라 뚜고씨의 출근길은 유난히 피곤하다. 하늘은 맑고 상쾌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한강의 윤슬도 파릇한 신록도 들어오지 않는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앞차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갈 뿐이다. 그때 “띠롱, 새로운 경로로 안내합니다” 내비게이션 기계음이 울리고 차는 한적한 길로 접어든다. 갑자기 먹통이 된 내비게이션에선 노란 별 모양의 요정, 노별이 튀어나온다. 도로 정체에서 벗어나 홀린 듯 터널을 통과하자 쏟아지는 햇살 아래 꽃과 나무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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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얼굴이 흐려지는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 여기 모두가 좋아하는 얼굴이 있다. 빛나는 눈, 선이 예쁜 코, 도톰한 입술을 가진 남자는 무척이나 또렷한 사람이다. 그는 자랑스러운 자신의 얼굴을 항상 사진으로 남긴다. 셀피를 찍고 도시와 유적지, 구름과 바다 같은 멋진 배경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그는 사진찍기를 멈추지 않는다. 악몽 같은 사건이 닥치기 전까지. 그림책 <잃어버린 얼굴>은 ‘찰칵, 찰칵, 찰칵’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얼굴이 흐려지는 세상을 그렸다. 어느 날 또렷하던 남자의 얼굴은 얼룩처럼 희미해진다. 흑백 픽셀처럼 뭉개진 얼굴에 좌절한 남자는 얼굴을 되찾기로 결심한다. 그는 얼굴을 파는 밀수품 거래인을 찾아간다. “다시 또렷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선명한 얼굴로 부탁드립니다.” 평생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얼굴을 구매한 남자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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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공고하던 나의 세계 안에 ‘너’를 들여놓는다는 것 “당분간이야.” 달씨는 갈 곳 없는 개에게 단호하게 말했지만, 어느새 18년이 흘렀다. ‘당분간’이 잠깐이 아니게 될 것이란 건 달씨가 바지에 묻은 개털을 떼어내며 앞으로 지킬 규칙들을 읊을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책 <사랑은, 달아>는 낯선 생명에게 잠깐 쉴 곳을 내어주려던 마음으로 시작해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두려운 반려인의 편지다. 식물을 물어뜯지 말고, 가구에 올라가지 말고, 짖지 말아줘. 달씨의 규칙이 개에게 통할 리 없다. 다른 존재와 함께 살면서 자신의 공간을 고스란히 지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달씨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을 잃었다. 그의 일상에는 금이 갔지만 대신 그 틈새로 매일의 햇살, 건강, 미소가 스몄다. 자신의 규칙을 강요하는 대신 개에게 너의 규칙은 무엇이냐 물으며 서로 발걸음을 맞춰간 덕분이다. 달씨는 달라진 자신의 삶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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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어긋난 길에서 만난 다채로운 삶의 풍경 붉게 물든 하늘 위로 철새 무리가 대형을 맞춰 날아간다. 그를 닮은 새 그림자들도 떼 지어 함께 이동한다. “난 날기 위해 존재해. 세상은 우리 날갯짓의 배경일 뿐이야. 그런 무리에 함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 새 그림자는 무리 속에 있는 자기 모습이 퍽 마음에 든다. 노을이 눈부시게 아름답던 날, 새 그림자 하나가 멍하니 노을을 바라보다 그만 무리에서 떨어진다. 그는 다시 무리 속으로 돌아가려 발버둥 치지만 그의 자리는 이미 다른 그림자가 차지한 참이다. 혼자가 된 새 그림자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 날 수 없으면 새가 아니다. 그림자는 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고민 속에서 새 그림자는 결심한다. 새로운 무리를 찾기 전에 우선 혼자 힘으로 어디든 한번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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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아이와 반려견, 삶의 속도 다른 두 ‘동갑 친구’의 교감 볼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아기와 보송보송한 털을 지닌 강아지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까맣고 말간 두 눈빛 사이 애정이 반짝 빛난다. 둘은 같은 해에 세상에 발을 내디딘 동갑이다. 같은 시간 속에서 아이는 자라고 개는 늙는다. 아기가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는 동안 개의 시간은 그보다 빠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작가는 반려견과 함께한 기억의 잔상을 소환하며 영원한 우정을 이야기한다. 한 살, 두 살, 세 살…그리고 열다섯 살. 삶의 속도가 다른 두 생명체가 교감하는 모습을 한 컷 한 컷 배치해 긴 시간의 흐름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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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할머니집, 절절 끓는 아랫목, 솜이불 속…세상 제일 포근한 그 품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쌓인 눈 위로 발자국을 콩콩 찍으며 할머니 집에 간다. 추위를 뚫고 도착한 뜨끈한 방의 구들장. 후끈한 열기에 가방도, 패딩 점퍼도, 양말도 훌러덩 벗고 편안한 내복 차림으로 꽃무늬 솜이불에 쏙 파고든다. 얼었던 몸이 찌르르 녹는다. ‘따뜻해’ 행복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절절 끓는 아랫목과 두꺼운 이불 사이에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펼쳐진다. 노란 장판 위 크고 작은 동물들이 곤히 자고, 옆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달아오른 밥그릇에 물을 끼얹으며 사우나를 즐긴다. 이 찜질방의 특별 메뉴는 곰이 엉덩이 열기로 쪄낸 ‘곰 엉덩이 달걀’과 할머니가 얼음판 밑에서 떠낸 ‘얼음 할머니 식혜’. 아이의 상상 속에서 작은 방 이불 속, 평범한 공간은 후끈한 사우나, 신나게 뛰노는 골목길, 썰매 타는 강가로 종횡무진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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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아빠 어렸을 적엔…” 그람시가 아들에게 남긴 옥중 편지, 짧지만 긴 여운 정치범으로 투옥된 아버지는 감옥에서 가족과 친지에게 편지를 썼다. 노트 30여권에 남긴 글 중에는 당시 엄혹한 현실에 대한 날선 비판도 있었지만,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작은 이야기도 있었다. 옥중에서 보내지 못한 채 남은 조각 글은 사후에 책으로 묶여 출판됐다. 세심한 문체와 인간애가 넘치는 작품이라는 평가 속에 이탈리아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다. 그림책 <여우와 망아지>는 그람시가 아들 델리오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그림을 붙여 만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 사르데냐 산골 마을에서의 경험 중 한 장면을 꺼내 아들에게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