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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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다시 찾아온 선거의 계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동네 어귀마다 커다란 후보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이 나부끼고, 서로 다른 색깔의 옷을 입은 후보들이 출퇴근 길목에서 연신 손을 흔들며 고개를 숙인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예전처럼 북적거리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거철이 왔구나 싶다. 아니다. 솔직히 이번 국회의원 선거처럼 깜깜이 선거는 처음이다. 얼마 전 우리 동네 온라인 마을 카페에는 출마 후보자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후보자 정당이 어디인지 모르겠고, 후보자가 내건 공약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내가 투표한 한 표가 어떻게 계산되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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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재난과 공동체의 책임 코로나19 환자가 무섭게 늘어나고 있다. 대한감염학회 등 국내 10여개 감염병 전문가들로 구성된 ‘범학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는 지난 22일 “이제는 확진자 발견과 접촉자 격리 등 차단 중심의 봉쇄전략(1차 예방)에서 지역사회 확산을 지연시키고, 이로 인한 건강피해를 최소화하는 완화전략(2차 예방)의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야 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이미 전국에서 확진환자가 발생했고, 앞으로 상당 기간은 그 숫자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 재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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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사할린 한인의 간절함 사할린. 인천에서 비행기로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러시아 영토의 섬. 태평양을 바라보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 섬은 남쪽으로 일본 홋카이도, 북쪽으로 러시아 본토와 마주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의 슬픈 역사가 새겨진 섬이다. 일제강점기로 거슬러간다. 당시 북위 50도 이남의 남사할린은 일본의 영토였다. 전쟁시기 일본은 국가총동원령에 따라 수만명의 식민지 조선인을 남사할린 탄광으로 강제징용 보냈다. 마을마다 할당된 징용 몫을 채우기 위해서 맏형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신 징용길에 올랐고, 이제 막 결혼한 새댁은 남편 혼자 보낼 수 없어 보따리를 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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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죽음을 기록한다 #베트남에서 온 사람이 한국에서 죽었다. 자기보다 15살이 많은 한국 남성과 결혼하고 한국에 온 지 3개월 만에 남편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생활비와 용돈을 달라는 아내의 요청에 남편은 “너의 생활은 네가 알아서 하라”며 폭언을 했고, 그녀가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겨 말다툼을 하다가 살해하고 암매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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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혐오 없는 선거를 위해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180일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4월15일에 예정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 전 180일인 10월18일 이후부터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정한 행위들이 제한 또는 금지된다. 바야흐로 선거기간이 시작된 것이다. 정치인들도 여러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제20대 국회 성적표에 책임을 지고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초선 정치인도 있고, 같은 이유로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국회법을 위반하여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오히려 다음 선거에서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고 약속한 정당이 있다. 이들이 한 시대에 살고 있는 유권자의 대리인으로 선출된 사람들이라는 것이 혼란스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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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불법인 사람은 없다 또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사람을 피해 도망치다 목숨을 잃었다. 반복된 죽음이다. 작년 8월 김포의 건설현장에서 미얀마에서 온 청년 노동자가 출입국 단속을 피하던 중 건설현장 지하에 떨어져 사망했다. 이번엔 경남 김해, 태국인 노동자였다. 부산 출입국·외국인청은 “10여명의 불법 체류자가 있다는 민원제보”에 따라 현장에 출동했고, “사망 외국인은 단속반원에 의한 일체의 추격이나 신체적 접촉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부검결과 강한 외력(外力)에 의한 장기파열이 사망원인으로 밝혀지면서 사망경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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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외국인 ‘건보 차별’ 왜 문제인가 올해 7월부터 국내에서 6개월 이상 머무는 외국인은 건강보험 당연가입 대상자가 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보험제도인 건강보험 가입에 국적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도 가입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 건강권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이다. 시민단체와 유엔인권기구에서도 장기체류 외국인에 대한 차별 없는 건강보험적용을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작년 7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면서 “적정 부담능력 있는 곳에 적정 부과 원칙”이라는 사회보험 원칙을 강조한 바 있었기에 외국인의 건강보험제도와 관련한 제대로 된 정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정부의 장밋빛 정책방향이 실제 현장에는 전혀 다른 기형적인 제도로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되지만, 단언컨대 이번 외국인 건강보험 당연가입 제도가 그중 가장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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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마을에서 살다 첫째가 태어난 뒤 이름을 짓는 것이 제일 고민이었다. 이름이란 그 의미도 중요하지만 평생 다른 사람들에게 불리는 것이니만큼 시대의 유행도 고려해야 했다. 아내와 며칠 밤을 심사숙고한 끝에 어렵게 정했다. 그런데 막상 신고서를 써 내려가면서 선뜻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던 부분은 아이의 이름이 아닌 등록기준지였다. 등록기준지라는 것이 아이가 출생신고 당시에 살고 있었던 거주지 주소라는 행정적인 기록일 뿐이지만, 그래도 발음하기도 힘든 외래어로 된 아파트 몇 동 몇 호가 아이의 출생기준지가 된다는 것이 좀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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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사람의 권리는 사람이 만든다 “모든 사람은 하늘에서 부여한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의 기초이다.” 세계인권선언 서문에 등장하는 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권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하늘에서 부여한 것(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선언의 논리는 그 자체로 완결적이다. 세상의 어떤 부모도 아이가 태어날 때 삼신할머니의 실수로 꼭 챙겨 나와야 할 여러 권리들 중에 무엇인가 빼먹은 건 아닌지 확인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선언의 외침은 강렬하지만, 그것만으로 개인에게 권리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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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기적을 만드는 하모니 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엄마를 따라온 한국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와 학교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출입국사무소를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 꽉 막힌 거리에 가야 할 거리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서로 주고받을 이야깃거리가 금세 바닥을 들어내고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실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았지만, 뭔가 괜한 상처가 될까 싶어 입안에만 말이 맴 돌았습니다. 침묵을 견디다 못해 튀어나온 이야기라고는 20년도 지난 옛날 중학생들의 일상이었고, 저 아재의 추억담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한 녀석은 손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눈은 창밖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노래가 한 곡 흘러나왔습니다. 요즘 노래가 아닌 오래된 노래인데 최근에 케이블방송 음악 프로그램에서 다시 불리는 모양입니다. 지루했던지 녀석도 조금씩 노래를 따라 불렀고,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놓지 않기로 유명한 저도 나름 화음을 보태 흥얼거렸습니다. 조그마한 차 안에서 옛날 노래 한 곡을 함께 흥얼거리면서, 녀석과 처음으로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눈이 마주칠 때는 서로 피식 웃기도 했습니다. 음악이 가진 오묘한 힘을 새삼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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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초라한 법무부의 반성문 지난 4월 법무부에 교육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 정부 핵심부처 관계자들이 모여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외국인 정책’을 주제로 회의를 개최했다. 참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유학생, 혼인이주자, 외국인 노동자, 이주아동, 난민 등 다양한 체류 목적을 가진 외국인이 머물고 있기 때문에 각 부처에서 실시하는 외국인 정책이 유기적·통합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대감을 품고 본 보도자료에는 그동안 시행되어온 정부 정책 중 국민 역차별 논란이 제기되는 일부 다문화 정책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순간 보도자료가 누락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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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외국인에 대한 경찰 조사 당신이 외국인이라고 치자. 지금 당신은 한국의 경찰서에 있다. 당신은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선택했고, 그동안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다. 평범한 하루였다. 일터에 여러 명의 경찰관들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경찰관들은 동료들 앞에서 당신을 체포했다. 그날 경찰은 당신의 이름과 나이, 국적 등 개인정보를 ‘취재안내’라는 이름으로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TV와 인터넷에는 보도가 쏟아졌다. 사회적으로 당신은 이미 범죄자로 불린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당신은 낯선 타국의 철창살이 주는 고립감과 범죄자에 대한 감시의 시선을 온전히 견뎌야 한다. 그날 저녁 조사가 시작된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경찰관이 앉아 있다. 무방비 상태의 당신에게 오랫동안 훈련된 수사전문가의 준비된 질문이 시작되었고, 이미 당신의 멘털은 붕괴되어 버린 상태이지만 애써 정신을 붙잡고 힘겨운 대답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경찰관이 표정을 싹 바꾸며 묻는다. “왜 거짓말을 하나요?” 여덟 글자밖에 안되는 이 짧은 질문에 당신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