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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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저열한 정치가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나 “그는 악명을 떨치길 바라겠지만, 우리 뉴질랜드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겠다.” 백인 우월주의자의 테러로 참혹한 희생을 치른 뉴질랜드의 총리가 의회에서 결연하게 선언한 말이다. 과연 우리는 그 백인 우월주의 테러분자가 누군지 모른다. 오직 참혹한 비극을 맞아 차분하게 그러나 영웅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뉴질랜드 국민을 기억할 뿐이다. 저신다 아던. 테러에 찢긴 나라를 추스르고 있다. 참사를 연대의 기회로 전환한 지도자다. 테러 발생 72시간 만에 내각에서 총기규제 정책을 만들고, 6일 만에 총독이 규제 명령에 서명할 수 있도록 준비한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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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정치탄압의 위험한 ‘전유’ 북한군 특수부대가 5·18에 개입했다고 한다. 독일 기자 힌츠페터는 간첩이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한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이 영웅이란다.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39년이 지나고, 제6공화국이 출범한 지 32년이 경과한 대한민국 국회의 공청회에서 나온 말들이다. 시민들은 물론 공청회를 주최한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이런 주장을 얼마나 믿을지 의아하다. 주장이라는 게 근거가 있어야 평가할 수 있는데, 근거는커녕 주장조차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군이 참전한 작전이라면 전투라 불러야지 ‘폭동’이든 뭐든 될 수 없겠다. 북한군의 침투를 막지 못한 당시 국군은 어찌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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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말로 이름 붙이기도 귀찮다는 듯이 ‘오버더탑’ 또는 ‘오티티’라 부르는 대상이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TV, 네이버TV, 아프리카TV 등을 아우르는 용어다. 사람들은 이를 인터넷 방송이라 부르는데, 생김새도 하는 일도 방송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버더탑이 방송과 닮았으니 방송처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흥하고 있다. 다만 실제로 어떻게 규제해야 할지 방법은 모른 채 그러하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 방송법 개정을 통해 오버더탑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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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사기언론과 진정한 폭로자 이것은 오보가 아니다. 가짜뉴스도 아니다. 허위조작정보라고 할 수도 없다. 엄정한 취재와 유려한 글쓰기로 이름을 떨치던 한 언론인이 쓴 기사가 허구라는 사실이 언론사 자체 조사로 드러났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7년간 탐사물과 피처물을 쓰면서 존경받던 클라스 렐로티어스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다. 렐로티어스는 2018년 독일 언론인상 피처부문 수상자다. 이 상이 아니더라도 그는 고품격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가 칭찬받던 바로 그것, 즉 상황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 인물에 대한 접근, 절묘한 인용문들이 허구였다고 한다. 그는 취재 장소에 가지 않고 상황을 그려내는 재주를 가졌고, 당사자를 만나지 않고도 인품을 묘사하는 마술을 부렸다. 취재한 내용에 여기저기 그럴듯한 내용을 보태서 작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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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위협적인 인간의 존엄성 세계적으로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의 득세가 뚜렷하다. 터키의 에르도안, 헝가리의 오르반,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등이 대중의 지지를 받아 선거로 집권에 성공했다. 유럽에서 극우 정당의 발호가 두드러진다. 난민 포용정책을 반대하는 극우파가 득세하는 현실을 보며 메르켈은 더 이상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는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이 우리 정치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난민 반대를 주장하는 청와대 청원에 70만명이 단기간에 몰려 찬성했던 일이 그렇다. 여성차별, 징집, 난민 사안에 몰입해서 험한 말을 주고받다 못해 치고받는 젊은이들을 봐도 그렇다. 주류 매체에서 소외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늙은이들이 유튜브와 카카오톡으로 현대사와 고대사를 배우는 현실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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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포털뉴스와 뉴스 이용 경험의 저열화 곧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한 지 몇 년째인데, 아직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게 있다. 애플이 제작한 드라마다. 도대체 스필버그나 샤말란이 감독한다던 시리즈는 언제 나오나. 리즈 위더스푼이나 제니퍼 애니스톤이 출연한다던 연속극은 어떻게 됐나. 아시모프의 원작인 <파운데이션>을 각색해서 10부작으로 제작한다는 소문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대조적으로 애플 단말기에 등장한 지 3년이 지났건만 모두가 심드렁하게 취급하는 서비스가 있다. 애플 뉴스다. 애플 단말기에 있는 둥 없는 둥 심심히 뉴스를 깔아준다. 그런데 최근 뉴욕타임스는 애플이 실은 심각한 뉴스 플랫폼이며, 그것도 미래 언론의 생명줄이 될 수도 있는 서비스라는 견해를 소개했다. 애플 간부의 말을 인용한 견해라서 좀 그렇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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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인터넷 여론조작과 발언의 자유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는 일은 더 이상 없다. 드루킹이 매크로를 이용해서 포털 댓글을 조작하는 일도 더 이상 없다. 그런데 인터넷 여론은 왜 또 이렇게 어수선한가? 난민과 동성애 사안에 특별히 민감하지 않은 이들도 눈치챘을 것이다. 이에 대해 온갖 수상쩍은 말들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운동세력이 있음이 밝혀졌다. 지난 27일 한겨레는 ‘동성애·난민 혐오 가짜뉴스 공장’이란 기사에서 폭로했다. 에스더기도운동이라는 한 기독교 운동단체가 동성애 반대, 인권조례 폐지, 차별금지법 반대 등과 관련한 내용물을 유튜브와 카카오톡에서 조직적으로 퍼뜨렸다는 내용이다. 난민에 대한 증오 발언과 동성애 혐오 담론을 전파한 경로도 소상하게 밝혔다. 추가 폭로가 기대되는 모범적인 탐사보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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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가짜학회 가짜뉴스 부실한 국제학회에 대한 추문으로 학계가 떠들썩하다. 지난달 19일 뉴스타파와 MBC의 공동 보도에 따르면, 와셋(WASET)이라는 ‘해적’ 학술단체가 개최한 ‘가짜’ 학술대회에 한국 학자들이 다수 참여했다고 한다. 참여자를 나라별로 집계했더니 한국 연구자가 전체 5위였다. 이들 언론사가 폭로한 내용은 놀라운 정도를 넘어 어처구니없을 지경이다. 로봇이 대필한 가짜 논문을 제출해도 논문 발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70만원 상당의 참가비를 지불하면 관광지로 유명한 도시에서 발표할 수 있다. 비전공자가 모인 학회장에서 논문 발표를 하고도 운이 좋으면 우수논문상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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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제대로 쓴 사망기사를 보고 싶다 한 좌파 정치인이 타계했다. 현대사 전공자인 한 칼럼니스트는 그날로 3700단어 분량의 사망기사를 가디언 지면에 실었다. 한글로 번역하면 원고지로 약 60장에 달하는 분량이다. 같은 날 런던타임스도 3700단어로 썼고, 좌파 정치인과 수십년 치고받고 싸워온 보수일간지 텔레그래프는 2700단어 규모의 사망기사를 냈다. 영국 노동당 좌파의 전설이 된 토니 벤을 기린 사망기사를 읽어 보자. 젊어서 진보적이었다가 늙으며 우경화했던 무수한 좌파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나이 들면서 더욱 개혁적으로 변했다. 그는 보수당 의원은 물론 왕당파, 산업지도자, 금융자본, 국제주의자, 그리고 동료 좌파로부터도 위험하다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벤은 주민의 도움을 받아 법을 바꿔서 귀족 작위를 포기하고 지역구 의원직을 되찾은 인물이며, 50년이나 지켜온 의회를 떠나면서 “정치에 전념하기 위해” 의원직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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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이방인을 ‘혐오’하는 언론들 이방인의 도래는 과제다. 이방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한 사람의 인간됨을 짐작할 수 있다. 환대하면 좋겠지만 조심해야 한다. 조심함이 지나쳐 무례하면 추하다. 무신경하게 무례함을 반복하면, 그것은 잔인하다. 잔인한 인간들이 사는 나라를 좋은 나라라 할 수 없다. 난민을 다루는 법을 보면 국가의 품격을 알 수 있다. 예멘 난민을 다루는 일부 언론보도에 유감이다. 온통 혐오뿐이기 때문이다. 난민 혐오, 이슬람 혐오, 무슬림 혐오, 예멘 혐오, 그리고 이 모두를 조합하고 확장한 것들에 대한 혐오가 있다. 혐오에 대한 고발과 규탄이 넘치다보니 혐오에 대한 혐오가 자연스럽다. 기독교 혐오, 여성주의 혐오, 구직자 혐오, 그리고 ‘우리가 이 수준이지 뭐’라는 식의 자기혐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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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공직자의 트위터 이용자 차단은 ‘위법’ 무기가 족쇄가 된다. 트럼프의 트위터 말이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언론매체에 대항하기 위해 트위터를 무기처럼 사용해 왔다. ‘언론사 패싱’의 도구로 사용했다. 기자와 언론사를 모욕하고 저주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반복적으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망하고 있다고 조롱해 왔으며, 시엔엔은 아예 가짜뉴스로 취급했다. 트위터에서 트럼프는 일종의 왕이다. 뉴욕타임스를 보는 유료독자는 약 350만명인 데 반해, 트럼프는 5000만명이 넘는 트위터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 중에는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라는 뉴스거리에 목을 매는 전 세계 언론인들이 있다. 역으로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추종하는 계정은 달랑 48개뿐인데, 그것도 대부분 자기 회사, 가족, 측근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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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드루킹 나비효과와 언론의 자기 반성 일본 침몰을 예언했다던 ‘드루킹’도 자신이 저지른 일이 이렇게 번질 줄 몰랐을 게다. 드루킹 나비효과라 부를 만하다. 네이버 댓글조작 시비로 발단한 사건은 인터넷 댓글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시비로 이어지고, 포털의 댓글 서비스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거쳐, 이제 포털과 언론사 간 뉴스 제공 방식을 놓고 힘겨루기로 나가고 있다. 나비효과란 최초의 작은 움직임이 연쇄작용을 통해 걷잡을 수 없는 파급효과를 낳는 일을 뜻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쉽게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정운호 나비효과라 불리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정운호에서 진경준, 롯데그룹, 우병우, 최순실을 거쳐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파급효과를 지칭한다. 드루킹 나비효과가 향후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와중에 한국 언론의 자기반성의 계기가 등장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