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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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끝나지 않는 공영방송 희비극 우리 공화국에서 지겹도록 실패를 거듭하는 제도가 여럿인데, 그중 으뜸이 공영방송이다. 뭐든 새로운 걸 좋아라 하는 우리에게 지겨움이란 악덕이다. 수틀리면 갈아치우면 된다는 식이니 바람직한 제도라고 해도 세심하게 살펴 고쳐 쓰는 데 취약하다. 우리 공영방송은 수틀리면 갈아치운다는 바로 그 논리를 따라 이리저리 차이다 이젠 기괴한 희비극의 클라이맥스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어떤 대사를 쳐야 할지도 모르는 표정인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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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이제라도 입법투쟁에 나서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24일 임신중단(낙태)이 프라이버시 권리의 일종이기에 헌법적 권리에 속한다고 보았던 1973년 로 판례를 뒤집었다. 이를 두고 미국이 퇴보하고 있다느니, 연방대법원이 어쩌다 반동의 온상이 됐느니, 인권을 외면하는 당파적 엘리트 대법관들을 어찌해야 하느니 하는 식자들의 한탄과 염려가 들린다. 그러나 이 사태는 미국 시민들이 자초한 일이며, 그것도 미국의 진보와 보수 엘리트가 경쟁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 벌어진 일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두세 번 연속해서 인민의 대표를 뽑는 일을 그르치다 보면 이 꼴이 된다. 선출된 정무관이 정치적 고려에 따라 최고위 법관을 지명하고, 선출된 입법자들이 인민의 의지를 확인하지 않고 그를 인준하면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동적 결과를 놓고 한탄하고 염려할 일이 아니라, 그렇게 일이 돌아가도록 만든 선출된 자들을 감시하고 다그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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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진보 정치의 품성과 솜씨 누가 봐도 명백한 진보 진영의 후퇴다. 민주당과 정의당 후보가 대거 낙선한 결과보다 진보의 크고 작은 텃밭에서 일찌감치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가 많았다는 사실이 뼈아픈 패배다. 선거로 이기고 지는 일이야 정당의 상사다. 그러나 이번엔 상대가 잘해서 진 것도 아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부터 자중지란에 빠져 하나씩 둘씩 동지를 내쫓고 지지자를 내치다 보니, 애초에 누구를 어떻게 설득해야 이길 수 있을지 모른 채 받아든 결과라서 승패를 떠나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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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영원히 어리숙한 케이 엘리트 남이 써준 글로 출판해서 이름을 내고, 봉사 기록을 부풀려 실적을 마련하는 젊은이들이 개탄스럽다. 정말 이건 아니지 싶어 고개를 가로젓다가 개탄을 넘어 살짝 불안해진다. 혹시 우리가 알고 있는 똑똑하다는 요즘 청년들이 대개 이런 식으로 성장한 건 아닐까. 번듯한 집안에서 멀쩡하게 잘 커서 예절도 바르고 대인관계도 좋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어쩔 줄 모르며 판단이 흐려지는 케이 엘리트가 이렇게 만들어지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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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잘 돌아가는 집구석 세상에 믿을 게 하나 없다는 불평을 듣다보니 나도 지친다. 그래서 철지난 이야기를 꺼내 본다. 지난 대선에서 지상파 출구조사 팀이 0.6% 차이로 당선자를 예측한 이야기다. 당선자가 아닌 후보들에게 투표한 나머지 51%에게는 섭섭한 결과였지만, 출구조사와 개표결과를 맞춰본 시민은 그래도 뭔가 제대로 작동하는 제도가 하나는 있다는 걸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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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국회는 시청각매체법을 논의하라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정말 늦은 것이다. 그러니 변명하지 말고 서둘러야 한다. 마음만은 진정했다는 말이 가장 진정하지 않게 들린다. 그러므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 국회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포함한 시청각매체 규제개혁을 위한 입법에 나서라. 공영방송을 떠올리면 매체정책 전문가는 물론 일반 시민도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한다. 임박한 정권교체를 계기로 공영방송의 성과를 놓고 또 한바탕 정치적 논란이 벌어질까봐 그런 것만 아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근본적인 변화 없이 지속할 듯 보이는 공영방송 제도와 실천이 한심하다. 어느덧 공영방송은 누가 집권해도 달라질 게 없고, 누가 경영해도 기대할 게 없고, 결국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어찌 되어도 상관없는 제도로 쇠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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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여론조사, 누구를 대상으로 삼나 여론조사를 보며 울고 웃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 여론조사 결과로는 도저히 누가 대통령이 될지 예단하기 어려우니 힘 빼지 마시라.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선거결과를 예측하겠다는 전문가의 면모를 봐두라. 대신 아껴둔 힘으로 이번 선거가 끝난 뒤 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조사기관이, 누구의 의뢰를 받아, 어떤 방법론을 적용해서, 어떻게 분석한 여론조사 결과가 편향이 적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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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주문’이 논변을 대체하는 정치 야당 대통령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 일곱 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것은 구호인가, 암호인가. 아니면 어떤 주문인가. 여성가족부의 구조개혁은 야당은 물론 여당도 오랫동안 검토해 온 사안이기에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는 대체로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이유도 대안도 없고, 연관된 사안을 검토한 흔적도 없이 냅다 두 마디를 던지는 대통령 후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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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언론, 교과서도 문제다 코바치와 로젠스틸이 네 번째 판본을 찍었다는 소문을 듣고 내심 기다렸다. 존경하는 언론학자 이재경이 번역하고 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한 번역본이 곧 나오리라고. 과연 ‘기자들의 교과서’로 불리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개정 4판이 도착했다. 다른 일도 이렇게 바란 대로 착착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노래하며 표지를 넘겼다. 쉽지 않은 책이다. 내용이 지시하는 현실부터 그렇다. 뉴스같이 보이는 선전들, 사실이면서 편파적인 주류 언론, 공정성 논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공영방송, 폐쇄적이고 공모적인 기자단 운영 등 우리 언론 현실을 배경으로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미국 언론이라면 뭔가 다를까 싶어서 이 책을 읽는 자는 누구나 실망할 것이다. 사례의 특성과 심각성에 차이가 있을 뿐, 세계의 언론 전문가들은 같은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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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사회를 설명하는 언론 애초에 젊은 남자를 묶어서 ‘이대남’이라 부른다고 할 때부터 이상했다. 이런 식으로 인구의 일부를 성별과 연령대로 잘라서 명찰을 달아주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그랬다. 세대론이란 대체로 정신이 가난한 자의 사회학이고, 잘해야 그저 그런 마케팅 도구로 남용될 뿐이라고 배웠던 나로서는 ‘이대남’이 마치 우리 사회의 어떤 병리현상을 설명하는 변수처럼 활용되는 꼴을 보고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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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누구를 못 믿어 문제란 말인가 “언론계 친구들 이야기로는 기자들이 다 기레기는 절대 아니라고 하면서, 또한 기자가 모두 기레기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이 함께 있다고 해요.” 지난 16일 춘천 한림대에서 열린 ‘저널리즘 신뢰위원회’ 세미나 자료에 인용된 한 젊은이의 말이다. 시민의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언론이 정작 그런 불신의 이유가 되는 시민의 평가를 인정해야 할지 말지 동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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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사화의 정치와 언론의 도구화 이것은 사화의 정치다. 정적은 물론 가족과 지인의 신상까지 꼬투리를 잡아 정적 집단 전체를 제거하겠다는 싸움 말이다. 이념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당파란 어느 시대나 있으며, 정치란 정쟁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상대를 다시는 정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찍어내자는 싸움은 정쟁을 넘어선다. 제6공화국에서 드디어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나 했더니, 지난 10여년간 일어난 정파 간 복수혈전은 조선시대 사화를 방불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