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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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억압적 발언 문화 이건 또 무슨 난리냐 싶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가 고려해야 할 변수가 늘고 있다. 그중에는 고등법원 파기환송심과 대법원 재상고심 일정도 포함된다. 심지어 국회가 새로 탄핵이나 관련법 개정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 현 대통령 권한대행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일까 따져보는 이도 있다. 나랏일을 함께 걱정하는 게 시민 된 도리라지만, 시민들이 사법 일정과 함께 헌법기관 간 권한 다툼까지 검토하는 이 현실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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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자유를 위해 자유권을 제약한다는 생각 언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계엄이 뭔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계엄군이 언론사에 진출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로 계엄이란 시민의 귀와 입을 틀어막는 조치로 시작하는데, 요즘 시대에 이런 짓이 필요하고 또한 가능하다고 믿는 자만이 무도하게 계엄을 선포할 수 있겠다고 했다. 동아일보가 공개한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 공소장에서 이 요점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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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볼만한 기사가 없던 주말 금요일 오후에 벌어진 일이라서 그랬을까. 엄청난 사건이 터졌는데 볼만한 기사가 없다. 서울중앙지법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를 판결한 이후 주말 동안의 언론 사정이다. 법원의 결정을 타전한 직술뉴스가 있고, 검찰이 항고 여부를 놓고 고심한다는 관찰 기사도 나왔다. 여야 정치권의 반응과 분열된 시민 집단들의 찬반 시위를 묘사한 스케치 기사가 있지만 그뿐이다. 법원 판결문을 직접 구해 읽어볼 처지가 아닌 나로서는 6공화국 최초로 내란죄로 대통령을 구속한 일이 실은 부당했다는 법원의 판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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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일탈영역의 양가성 ‘기계적 중립’이라는 표현이 있다. 언론보도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할 때 주로 등장한다. 갈등하는 사안의 양쪽 입장을 비교해 절반씩 보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요점을 전달할 때, 기계적 중립을 비판한다. 그런데 이 용어는 ‘그 간단한 중립조차 못 지키냐’는 요지로도 사용된다. 언론보도가 정파성과 경향성이 지나쳐 최소한의 균형잡기도 못하고 기울어져 보도하는 걸 비판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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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탄핵 이후의 소통 질서 어차피 우린 제6공화국에서 벌어질 두 번째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라는 반헌법적 행위를 처벌하지 않고 견딜 민주공화국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며칠 후 윤석열이 관저를 떠날지, 몇달 후 그가 파면될지 주술사 점치듯 무당 굿하듯 기다리지 말자. 차분히 또박또박 절차를 밟아 유린당한 헌정질서를 회복하면서 탄핵 이후의 질서는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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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공화국의 적과 수호자 비상계엄 선포를 확인하고 부랴부랴 하던 일을 접었다. 집으로 향하는 광화문 대로에 계엄군은 보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방송과 인터넷을 동시에 켜니, 한쪽은 계엄포고령을 방송하고 있고, 다른 쪽은 국회의사당 내 대치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나는 페이스북을 켜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렇게 쓰기 시작했다. 한국 언론, 백척간두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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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이념에 절고 전략에 찌든 선거 만사인 민주정에서 살다보면 이런 일을 당한다. 이념이니 정체성이니 앞세우고, 전략이니 정책이니 떠들던 자들도 일제히 입 다물고 국민 선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한국의 민주화세력은 2012년 대선에서 단일후보가 나서고도 패하면서 씁쓸하게 결과를 수용해야만 했다. 멀게는 야권 단일화 없이도 이길 수 있다며 분열하여 참패한 1987년 대선 때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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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주술적 여론조사를 그만두자 여론조사인가 주술인가. 논란의 인물인 명태균이 미래한국연구소에서 수행했다는 여론조사란 도대체 뭐였을까. 그가 2022년 경남 창원의창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한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예비선거 과정에서 뭘 어쨌다는 것인지 결국 밝혀질 일이다. 속단도, 예단도 말고 언론의 다음 폭로기사를 기다리면 좋겠다. 다만 기다리며 생각해 보자. 정당에서 후보공천을 하고 정당 간에 후보단일화를 한다면서 여론조사에 매달린다는 게 가당키는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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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한국 언론에 ‘머로 순간’이 오고 있다 ‘머로 순간’이란 말이 있다. 언론이 거침없이 행동하는 유력 정치인 말을 조신하게 받아쓰다가 돌연 태도를 바꿔 그에게 비판적으로 돌아서는 시점을 말한다. 1950년대 초 냉전시대 미국에서 빨갱이 사냥으로 승승장구하던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은 1954년 마침내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 몰락을 앞당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 바로 CBS의 머로 기자다. 그는 <지금 봐라(See It Now)>란 방송에서 매카시의 발언이 얼마나 모순인지 고발하면서, “안에서 자유를 저버리면서, 해외에서 지킬 수는 없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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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플랫폼 시대의 이상한 싸움질 아직도 ‘내용이 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의적절한 기획에 따라, 훌륭한 이야기를 갖추고, 고품질로 제작한 드라마와 예능은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요지를 담은 주장이다. 여기서 성공이란 많은 시청자 수와 그에 따른 높은 수익률만 뜻하는 게 아니다. 당대는 물론 후대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문화적 성취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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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소위 진보가 망해가는 이유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밴스의 회고록을 읽어보라. 세계 최강국 부통령이 유력한 자에 대해 뭐라도 배우자는 게 아니다. 그 책에 어떤 목소리가 담겨 있어서다. 누구도 대변하지 않는 목소리에 주목한 저자의 시선도 함께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읽기에 지친 독자라면 넷플릭스 검색창에 ‘힐빌리’라고 치면 나오는 영화를 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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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제도를 망치는 법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그랬지만 국민권익위원회를 보니 자명하다. 제도가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다. 최소한의 내적 정합성도 갖추지 못한 위원회 결정은 그 과정과 결론만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다. 제도 자체가 의심의 대상이 된다.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시비와 별도로, 애초에 그렇게 막가는 방식으로 운영해도 되는 것이냐는 탄식이 나온다. 예외가 일상처럼 보이고, 남용이 예상 가능한 순간 제도는 이미 망가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