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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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조롱과 혐오는 민주시민의 핏줄에 흐른다 조롱과 혐오는 민주시민의 핏줄에 흐른다. 우리는 한때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만 외친 게 아니다. 권력자를 설치류나 조류에 빗대어 조롱했고, 부패의 조무래기와 타락의 앞잡이를 비루하다고 경멸했다. 때로 슬픔도 힘이 되듯, 증오는 물론 조롱과 혐오마저도 공화정의 적과 민주정의 기생자를 규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혐오는 자유가 아니란다. 이 표현은 일단 조롱과 혐오를 뒤섞는 듯 보이며, 혐오와 증오마저도 구별하지 못하는 듯 보이기에 둔감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둔한 감수성에 비하면 발언의 자유라는 중요한 시민권을 제한하려는 그 기세는 모질기 짝이 없다. 정작 그렇게 허용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마음의 상태에 대한 것인지, 재현 방식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발언 행위의 효력 그 자체인지부터 애매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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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공정하게 보여야 할 임무 지방선거가 끝났건만 선관위의 관리 부실 후폭풍이 거세다. 선관위는 투표용지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해 투표중단 사태를 초래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과실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게 문제가 아니다. 시민 참정권이 침해됐고 따라서 재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는데 아직 이렇다 할 응답과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선관위는 정녕 위태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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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이딴 거 안 할 거라고, 이 ○○ 새끼야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장안의 화제다. 극중 영화판에 널린 찌질한 군상 가운데 예외적으로 어른의 품격을 보여주는 인물이 있으니, 고박필름 대표 고혜진이다. 그가 영화판에 뛰어든 이유는 기자 생활에 질렸기 때문이다. 기삿거리를 찾던 중, 뉴스를 만들려면 약자의 절통한 슬픔마저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부장의 함축된 지시를 듣고, “이딴 거 안 할 거라고, 이 ○○ 새끼야”라고 응수하고 언론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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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거짓이란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 만약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발언자를 처벌해야 한다면, 요즘 대세인 대형언어모형 인공지능 역무야말로 어떻게든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나는 두세 종류의 인공지능 보조역을 필요에 따라 골라서 사용하고 있는데, 모두 불과 몇개월 전과 비교해 확실히 똑똑해졌고 그래서 그런지 거짓말도 더 능숙해졌다.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논문을 인용해 답변하는 일과 같은 새빨간 거짓말은 확실히 줄었다. 그러나 내 질문의 의도와 배경 동기를 추론해 어떻게든 내 추론이 맞다는 식으로 확인해주려는 편향은 여전하다. 아니 더욱 교묘해졌다. 인공지능 보조역은 거의 숨 쉬듯 진실을 비틀어서 내 의도에 적중하게 답변하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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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언론인의 압박감과 반감 새삼 언론윤리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 기자가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대통령 최측근이 고위 검사들과 공소취소를 두고 뒷거래를 시도했다고 폭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즉각 논쟁이 일었다. 출처를 밝혀야 한다, 진행자도 책임이 있으니 사과해야 한다, 심지어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저마다 윤리적 판단을 내놓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기준과 추론 근거는 제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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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부정선거 음모론의 자리 안타깝다. 개혁신당 대표 이준석과 ‘전한길 뉴스’의 발행인 전한길이 맞붙는 부정선거론 토론회가 취소됐다. 토론회를 진행하기로 했던 종편채널이 심의를 이유로 내세워 방송할 수 없겠다고 개혁신당에 통보했다고 한다. 만약 예정대로 열렸다면 이준석과 4인의 부정선거론자 간 대결이라는 희대의 매체 사건을 넘어, 이 나라 방송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편성기획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토론을 주관해서 진행하겠다는 용기 있는 방송사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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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한국 언론의 경향성 테제 수세식 언론의 본명은 아마도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 정도가 되겠다. 그저 인터넷 방송이라고 하는 건 진짜 방송이 아니라서 곤란하고, 그렇다고 유튜브 뉴스라고 부르기에는 자체 제작 뉴스를 별로 찾을 수 없기에 명실상부하지 않다. 세상 대부분 언론사가 인터넷에 올라탄 지도 오래됐기에 인터넷 언론이라 부르면 변별성이 없다. 따라서 한두 진행자가 사안별로 몇몇 평론가를 초대해서 웃고 떠드는 (내용적으로 이게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그 내용 제공자를 그렇게 부르면 맞춤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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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재래식 언론’ 유감 주류 언론을 일컬어 재래식 언론이라 부르는 말을 들었다. ‘기레기’급의 멸칭은 아니지만 ‘재래식’이란 단어를 포함한 용례를 생각해 보면 결코 아름답거나 향기롭지는 않아서 새삼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전래의 주류 언론이 재래식이라면 그 반대말은 뭔지도 묻게 된다. ‘신식’인가, ‘수세식’인가. 전통적인 주류 언론매체를 ‘레거시 미디어’라 부르던 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때부터 전경과 배경이 뒤집혔다. ‘레거시 미디어’라는 번역도 안 된 말을 사용하면서, 뉴미디어, 인터넷 언론, 디지털 네이티브 매체 등 새로운 언론매체를 앞으로 내세워 불렀던 관행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제 인터넷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장한 새로운 언론매체는 배경으로 물러나고, 전래 언론매체가 전경이 되어 ‘재래식’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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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전면 재검토해야 언론을 개혁하자면서 실은 언론보도를 둘러싼 사법적 쟁송을 부추기고, 결과적으로 시민의 활발한 정치적 토론을 억압하는 쪽으로 악용될 것이 뻔한 법을 만들고 있다. 이를 다름 아닌 내란을 극복하면서 여당이 된 쪽에서 제안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만약 이런 법이 우리나라에 있었더라면 ‘뉴스타파’와 같은 탐사보도는 이미 망했고 ‘조선일보’든 MBC든 과거 정권을 비판했던 언론사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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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전투적 민주주의의 취약성 기분 탓일까. 해외의 고명하다는 선생들의 강연을 우리나라 매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최근 스티븐 레비츠키의 연설도 그중 하나다. 동료 대니얼 지블랫과 함께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로 유명한 그가 ‘민주주의 방어를 위한 세 전략’을 소개한 기사를 ‘한겨레’에서 만났다. 평소 두 저자의 글은 나오는 대로 보는 편이라 흥미롭게 읽던 중, 기시감이 들어 확인해보니 언젠가 봤던 내용이다. 2024년 10월 트럼프의 재선을 앞두고 두 저자는 ‘트럼프를 저지할 네 가지 길이 막힌 지금, 한 길은 남았다’는 기고문을 뉴욕타임스에 실었다. 파시스트 또는 독재자가 될 수도 있는 권위주의적 인물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커진 시점에서 미국 민주정을 구할 방법을 모색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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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남용되고 악용될 우려가 있는 그 개혁 언론개혁이 화두인 제22대 국회에 세 가지가 없다. 위태롭기 짝이 없는 언론 현실에 대한 분석이 없다. 개혁 입법이 초래할 사태에 대한 검토가 없다. 제도 개선 목표와 방법을 두고 여론 수렴이 없다. 개혁하자면서 정작 없애야 마땅한 제도는 그대로 두고, 장차 남용될 만한 제도를 놓고 설왕설래할 가능성만 크다. 언론개혁을 둘러싼 담론에 세 가지가 뚜렷하다. 진영마다 고유한 피해의식이 뚜렷하고, 당파적으로 동원하려는 전략이 노골적이며,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 따지는 계산은 치밀하다. 관심 있는 공중이 납득할 만한 청사진은 없다. 우당탕 개혁안이 확정되면 누구에게 유리한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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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미워하는 마음과 구부러진 원칙 이른바 ‘조국 사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광복절 특사로 정치를 재개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행보를 놓고 나오는 언론 논평과 시민 반응은 6년 전 서초동 대 광화문 집회처럼 분열적이다. 심지어 상대방을 나무라는 목소리는 더욱 가혹하고 냉혹하게 들린다. 점잖은 자리에서 ‘조국 사태’는 여전히 누구도 함부로 꺼내지 않으려는 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