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판결이 될까, 그저 혼란일까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지금 미국 연방대법원에 수정헌법 제1조 관련 재판이 하나 진행 중이다. 여기에서 인터넷 담론 지형을 뒤흔드는 세기의 판결이 나올지 모른다.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가 자기 사이트에서 ‘내용중재(content moderation)’하는 행위를 헌법적 권리로 보아 과도한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플랫폼 사업자가 자기 사이트에서 특정 내용물을 삭제하거나 재배열하는 행위는 일종의 ‘사적 검열’이기에 규제해야 마땅하다는 텍사스와 플로리다의 새 법을 합헌이라고 판결할지도 모른다.

쟁점을 단순화해 비유하자면, 서울시가 조례를 만들어 서울 책방들의 도서 진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한 동네 서점이 소수자 집단에 대한 증오를 설파하는 책들만 잔뜩 진열하며 장사해도 그대로 둬야 하냐는 데 있다. 이건 또 규제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렇게 되면 바로 옆 책방에서 진보적 견해를 소개하는 책만 판다는 이유로 서울시가 보수적 책자도 골고루 배열하라고 행정지도하는 일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플로리다와 텍사스에서 플랫폼 규제법안을 주도한 쪽은 공화당이다. 요컨대, 인터넷에 보수의 목소리가 소외됐으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도로 법을 통과시켰다. 두 주의 입법자들은 플랫폼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차단하는 등 사실상 ‘사적 검열’을 했다며 이런 법을 만들었다. 관건은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 특히 교류매체(social media) 사업자가 자체 기준을 적용해 특정 정치인의 발언이나 내용물을 제재하는 게 과연 ‘사적 검열’인지, 아니면 정당한 ‘내용중재’인지 보는 관점에 따라 결말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데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내용으로 인한 책임에서 면책이라는 통신품위법 제230조를 유지해 왔다. 플랫폼 사업자를 ‘발행인(publisher)’으로 간주해서 내용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미국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 법의 도움을 받아 성장해 왔다. 통신품위법 제230조는 또한 부가적인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통해서 선의로 음란물이나 폭력물을 삭제하거나 중재하는 일도 함께 보호하고 있다. 현재 연방대법원에 계류 중인 문제의 판결로 이 모든 게 바뀔 수 있다.

이 재판을 놓고 사위가 시끄럽다. 논평 중에는 보수가 장악한 연방대법원이 바이든 정부를 지원해 온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한 방 먹일 거라는 식의 유치한 전망도 있다. 반대로 그래서 걱정이라는 당파적 해석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인터넷 공론장을 놓고 미국이 유지해 온 핵심적 가치인 발언의 자유를 보호할 최선의 제도를 설계하기 위해 갑론을박 중이다. 특히 기존 제도를 변경하거나 유지하는 데 정파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는 걸 언급하면서, 동시에 규제 원리와 누적한 판례를 인용하여 논변을 전개하는 전문가들과 그 논변을 검토해서 소개하는 언론인들의 품격이 대단하다.

우리 현실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규제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있는 법을 놓고도 파행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단 정권을 잡았을 때 자당에 유리한 인터넷 담론 환경을 만들어 놓겠다는 심산인 건지, 우리 제도의 역사와 누적한 판례의 정신을 무시한 채 일방통행 중이다. 입법자들도 한심하다. 이미 과도한 규제하에 놓인 인터넷 공론장을 두고 경쟁적으로 강성 규제법안을 도입하다가 결국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독일 법이니 유럽연합 규제니, 맥락 없이 제도를 수입해서 반대 목소리를 통제하자는 식이다. 흔히 민주주의가 좋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제도를 유지하거나 변경하는 절차 그 자체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사방이 어두워져 가는 가운데, 도대체 이게 뭐 하자는 민주정인지 모르겠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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