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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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쓰는 일과 애쓰는 일 매일 6~7㎞ 정도 걸은 지 7년이 넘었다. 만 보가 채 못 되는 거리라 운동이라 하긴 뭐하지만, 꾸준히 하고 있어 적잖이 뿌듯하다.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지속하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저께 밤에는 한 차례 뛰기도 했다. 천변을 걷는데 난데없이 맵싸한 강풍이 불어왔다. 머리끝에 고드름이 달리는 것 같았다. 고드름이 달리지 않게 하려면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 정도 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호흡을 가다듬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돌이켜보니 이렇게까지 뛰어본 게 언제인지 아뜩했다. 건널목에서 전력 질주를 한 적은 있었으나 도착이라는 목적 없이 달린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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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어른값 강연 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어른은 언제 되는 걸까요?” 학생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주민등록증 나오면!” 호기롭게 대꾸하는 이도 있었다. 학생의 눈빛을 바라보니 그렇게 간단히 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질문이 나를 향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일까? 당당하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게 도리질을 쳤다. “저는 결정을 내린 후, 그 결정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황급히 교문을 나서는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결정을 내리는 데 애를 먹는 것은 물론, 그 결정에 책임을 제대로 졌는지 묻는다면 그렇다고 결연하게 답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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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12월의 다른 이름 12월이 오면 몸과 마음이 바빠진다. 몸과 마음의 속도가 같은 것은 아니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몸은 이미 다른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다. 이 일만 마치면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덩달아 바쁜데 향하는 곳이 제각각이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달이니 조금 느긋하면 좋으련만 못다 한 일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앞다투어 발목을 붙잡는다. 한숨과 가쁜 숨을 번갈아 내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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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제일과 두루 “뭐가 제일 좋았어?” 로스앤젤레스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 여정을 함께해준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의 낯빛이 복잡해 보였다. 좋은 게 너무 많아서 그런가 싶었다. “다 좋았지.” 역시나 그랬구나 하고 안도하는 찰나, 질문이 날아들었다. “나는 ‘제일’이 어렵더라. 제일 좋은 거, 제일 마음에 드는 거. 왜 꼭 하나만 뽑아야 하는 거야?” 친구는 10년 넘게 대기업에서 일하다 몇년 전에 사직서를 제출했었다.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경쟁이 치열했을 것이다. 제일 좋은 것뿐 아니라 제일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늘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친구에게 나는 또다시 ‘제일’ 카드를 들이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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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길치의 기쁨 길눈이 몹시 어둡다. 낯선 곳에 가면 신경이 곤두선다.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지만 그럴 때일수록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모르면 물으면 된다. 알 것 같아도 확인차 다시 물으면 된다. 모임 자리에 가면 공간을 죽 둘러본다. 머릿속으로 나름의 지도를 만드는 셈이다. 매장 밖에 화장실이 위치한 경우라면, 볼일을 보고 나온 다음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머리가 바빠진다. “나와서 오른쪽, 쭉 가서 왼쪽으로 돌기.” 나직하게 혼잣말하며 화장실에 들어선다. 앞뒤에 큰 문이 나 있는 대형 상가에서 길을 잃은 뒤 생긴 버릇이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얘기지만 당사자로서는 진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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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나를 궁금해하기 이런저런 자리에서 말할 기회가 생겼다. 처음 무대 위에 올랐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마이크를 손에 쥘 때면 적잖은 긴장감이 샘솟는다. 기분 좋은 팽팽함이다. 이 팽팽함이 현장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대부분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말하는 중간중간 온기 가득한 눈빛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유독 불편한 자리는 사람을 얼어붙게 하고 편하기만 한 자리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말실수가 발생한다. 적당한 거리감이 오히려 마음을 늦추지 않게 한다. 이야기하는 도중 엉뚱한 길에 빠진 나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게 해주는 것도 바로 긴장감이다. 정신을 바짝 차린 뒤 다시 궤도에 오를 때면 매번 같은 질문이 싹튼다. 이분들은 왜 여기 오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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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안쪽으로 깊어지는 시간, 밤 얼마 전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위즈덤하우스, 2025)이 출간되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세 계절 동안 라디오에 연재했던 에세이 원고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제야’나 ‘마침내’ 같은 부사가 어울릴 듯하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쓰는 사람으로 지내면서 깨달은 사실은 각각의 책에는 그 책만의 삶이 있다는 것이다. 이삼십대에는 출간에 대한 조급함이 있었다. 그 시기에 책이 꼭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으로 이어져 불안정한 상태로 나를 내몰기도 했다. 시의성이라는 말로 나의 성급함을 두둔했지만, 돌이켜보니 책의 진가는 특정 시기에 예속된 것이 아니었다. 좋은 책은 언제고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자, 당장의 반응에 신경 쓰기보다 좋은 책을 쓰기 위한 고민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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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팝콘과 시루떡 “너는 꼭 팝콘처럼 말한다.” 술자리에서 친구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기본 안주로 나온 팝콘이 그릇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글쎄, 무슨 말일까?” 친구가 묘한 웃음을 지었다. 팝콘 몇알을 들고 있던 손이 괜히 무안해졌다. 가까운 친구였기에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달콤하고 고소하게 말한다는 건 아닐 것 같은데?” 다른 친구의 말에 옥수수 알갱이 같은 웃음이 팡팡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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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사람이라서 불완전하고, 인간이라서 공감하는 얼마 전 교장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키워드는 인공지능(AI)이었다. 챗GPT를 필두로 다양한 AI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요즘, 실시간으로 묻고 답하는 게 더 이상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곧잘 번역도 하고, 길고 복잡한 문서를 재빠르게 한 페이지 분량으로 요약한다. 생성형 AI가 창작자들을 도울지 위협할지 기대와 걱정이 섞인 물음도 들려온다. 고심 끝에 강연의 제목을 ‘AI는 시를 욕망하지 않는다’로 잡았다. AI에 ‘묻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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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어떤 길에도 손이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지원하는 해외 한국학대학 번역 실습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왔다. 내일은 지난 3월부터 내 시집을 가지고 번역 실습을 한 러시아 교수와 학생들에게 강연해야 한다. 모스크바에서 한국학을 가르치시는 M 교수님 덕분에 대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는 호텔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말하는 일을 제법 오래 해왔지만, 아직도 그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때그때 청중이 달라지고, 그들이 강연에서 원하는 바도 각기 다를 것이다. 고마운 것은 이 익숙지 않음이 내게 자극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낯선 길에 내딛는 첫 발짝이 주는 설렘과 두려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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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몰라도 좋아요 청소년 시집 <마음의 일>(창비교육, 2020)에 나는 ‘몰라서 좋아요’라는 시를 실었다. 청소년 시기의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보기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을 골라낼 줄 알고 삼각함수 문제를 풀 수도 있었지만, 친구의 의중을 파악하고 말의 속뜻을 알아차리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모르는 목소리/ 모르는 얼굴/ 모르는 맛/ 모르는 감정/ 모르는 내일// 모르는 것투성이이지만/ 내가 모른다는 것만은 알아요// 몰라요/ 몰라서 좋아요”라는 구절에는 ‘모름’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아는 게 힘이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모르는 게 약이라고 애써 믿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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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기다림에 어울리는 말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탕웨이)는 남편이 살해된 사건의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에게 이렇게 말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봐.” 그는 남편의 죽음에 동요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곧장 용의 선상에 오르지만, 정작 관객들에게 오랫동안 남는 것은 다름 아닌 ‘마침내’라는 단어다. 서래가 한국말이 서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지, 사건의 종결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인지 알쏭달쏭하기 때문이다. 달성의 느낌이 강한 부사 ‘마침내’는 영화 내내 우리를 따라다닌다. 어찌 보면 만나는 일과 헤어지는 일 모두 ‘마침내’의 자장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