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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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말무덤에서 태어나는 말 글 쓰기 위해서 말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 생활이 그렇다. 글만 써서는 먹고살 수 없어 부단히 전국에 있는 학교, 기관, 도서관, 독립서점, 기업 등을 찾기 때문이다. 강연, 북토크, 작가와의 만남, 북콘서트 등 다양한 이름이 붙지만 결국 말을 해야 하는 자리다. 글을 쓰기 위해서 글 쓰는 일에 관해 말할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글로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빛에 힘입고 돌아오는 쪽은 늘 나다. 글 쓸 용기가 생겼다는 말, 오늘부터 꾸준하게 기록하기 시작해야겠다는 말 덕분에 다시 쓰고 말할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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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나를 따라다니는 것 “왜 자꾸 따라와?” 물음이었지만 실은 느낌표였는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뒤를 다른 한 사람이 따라가고 있었다. 뒤쫓는 느낌은 아니었다. 걸음걸음이 애걸복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애절하게 한 걸음, 복받쳐서 또 한 걸음. 뭔가 단단히 잘못한 사람이 짓는 표정이 애처로웠다. 따라가는 사람의 소원은 무엇일까. 아마도 따라잡힌 사람과의 대화일 것이다. 대화의 끝에 용서가 있기를 바라기도 할 것이다. 호기심이 더 커지기 전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따라가는 시선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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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나누기가 더하기가 되는 마법 한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마친 뒤, 남은 아이들과 담소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아이들이 저와 대화하고 싶을까요?”라고 말하면서도 기차 시간에 여유가 있어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어떤 고민을 품고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꽤 늦은 시각이었는데도 내 앞에 일곱 명의 학생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앞다투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귀엽고 엉뚱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즐겨 듣던 음악, 그때 자주 먹었던 음식에서 시작된 대화는 어쩌다 시를 쓰게 되었는지, 어떤 데서 글쓰기 영감을 받는지까지 이어졌다. 눈을 마주치며 성실하게 답하는 중에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한 아이의 얼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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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틈바구니에서 시작하기 최근에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2016)을 다시 읽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요건 중 하나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는 것이다. 그때마다 책도, 그 책을 읽는 나도 다시 태어난다고 느낀다. 끊임없는 노동, 기계에 대체되는 노동력,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마는 반짝이는 한때들, 속도와 효율 앞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영혼.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김없이 기진맥진해진다. ‘고독이 시끄러울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고독만큼 시끄러운 것은 없다’라는 문장에 가닿는 여정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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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나와의 약속 대상포진으로 고생하고 있다. 고생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써도 되나 싶지만, 몸을 마음대로 가눌 수 없는 상황은 분명 어렵고 고된 것이다. 불쑥 찾아온 불청객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필 바쁜 때 걸릴 게 뭐람!” 하고 푸념을 늘어놓을 수도 없다. 대상포진은 항상 바쁠 때 찾아오곤 했으니까. 되도록 일하지 않고, 푹 쉬고, 밥과 약 잘 챙겨 먹고, 수면을 충분히 취하고……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해진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아예 취소할 수 없는 것도 있고 변경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을 귀찮게 해야 하는 것도 있다. 개중에는 내가 앞장서 잡은 약속도 있다. 이 몸으로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안다. 취사선택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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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잘 사는 삶의 기준 지난 2월24일, 대구에 있는 ‘책방아이’에서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날은 대구에 대설주의보가 발표된 날이었다. 대설주의보는 통상 24시간 동안 눈이 5㎝ 이상 내릴 것이 예상될 때 발표된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곧잘 접하던 소식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동대구역에 도착했을 때도 놀라지는 않았다. 단지 맑은 서울 날씨와 대비되어 약간 신기했을 뿐이었다. 오히려 대구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눈은 처음이라는 듯 눈을 홉뜨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 혹시라도 넘어질까 살금살금 발을 떼는 사람, 벤치 위에 쌓인 눈을 신기한 듯 가만히 쥐어보는 사람, 장화를 신고 눈길 위를 신나게 미끄러지는 사람이 보였다. 대구에 오랜만에 큰 눈이 내렸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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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쓰는 일과 애쓰는 일 매일 6~7㎞ 정도 걸은 지 7년이 넘었다. 만 보가 채 못 되는 거리라 운동이라 하긴 뭐하지만, 꾸준히 하고 있어 적잖이 뿌듯하다.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지속하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저께 밤에는 한 차례 뛰기도 했다. 천변을 걷는데 난데없이 맵싸한 강풍이 불어왔다. 머리끝에 고드름이 달리는 것 같았다. 고드름이 달리지 않게 하려면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 정도 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호흡을 가다듬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돌이켜보니 이렇게까지 뛰어본 게 언제인지 아뜩했다. 건널목에서 전력 질주를 한 적은 있었으나 도착이라는 목적 없이 달린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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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어른값 강연 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어른은 언제 되는 걸까요?” 학생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주민등록증 나오면!” 호기롭게 대꾸하는 이도 있었다. 학생의 눈빛을 바라보니 그렇게 간단히 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질문이 나를 향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일까? 당당하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게 도리질을 쳤다. “저는 결정을 내린 후, 그 결정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황급히 교문을 나서는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결정을 내리는 데 애를 먹는 것은 물론, 그 결정에 책임을 제대로 졌는지 묻는다면 그렇다고 결연하게 답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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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12월의 다른 이름 12월이 오면 몸과 마음이 바빠진다. 몸과 마음의 속도가 같은 것은 아니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몸은 이미 다른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다. 이 일만 마치면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덩달아 바쁜데 향하는 곳이 제각각이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달이니 조금 느긋하면 좋으련만 못다 한 일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앞다투어 발목을 붙잡는다. 한숨과 가쁜 숨을 번갈아 내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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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제일과 두루 “뭐가 제일 좋았어?” 로스앤젤레스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 여정을 함께해준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의 낯빛이 복잡해 보였다. 좋은 게 너무 많아서 그런가 싶었다. “다 좋았지.” 역시나 그랬구나 하고 안도하는 찰나, 질문이 날아들었다. “나는 ‘제일’이 어렵더라. 제일 좋은 거, 제일 마음에 드는 거. 왜 꼭 하나만 뽑아야 하는 거야?” 친구는 10년 넘게 대기업에서 일하다 몇년 전에 사직서를 제출했었다.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경쟁이 치열했을 것이다. 제일 좋은 것뿐 아니라 제일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늘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친구에게 나는 또다시 ‘제일’ 카드를 들이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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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길치의 기쁨 길눈이 몹시 어둡다. 낯선 곳에 가면 신경이 곤두선다.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지만 그럴 때일수록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모르면 물으면 된다. 알 것 같아도 확인차 다시 물으면 된다. 모임 자리에 가면 공간을 죽 둘러본다. 머릿속으로 나름의 지도를 만드는 셈이다. 매장 밖에 화장실이 위치한 경우라면, 볼일을 보고 나온 다음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머리가 바빠진다. “나와서 오른쪽, 쭉 가서 왼쪽으로 돌기.” 나직하게 혼잣말하며 화장실에 들어선다. 앞뒤에 큰 문이 나 있는 대형 상가에서 길을 잃은 뒤 생긴 버릇이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얘기지만 당사자로서는 진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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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나를 궁금해하기 이런저런 자리에서 말할 기회가 생겼다. 처음 무대 위에 올랐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마이크를 손에 쥘 때면 적잖은 긴장감이 샘솟는다. 기분 좋은 팽팽함이다. 이 팽팽함이 현장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대부분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말하는 중간중간 온기 가득한 눈빛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유독 불편한 자리는 사람을 얼어붙게 하고 편하기만 한 자리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말실수가 발생한다. 적당한 거리감이 오히려 마음을 늦추지 않게 한다. 이야기하는 도중 엉뚱한 길에 빠진 나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게 해주는 것도 바로 긴장감이다. 정신을 바짝 차린 뒤 다시 궤도에 오를 때면 매번 같은 질문이 싹튼다. 이분들은 왜 여기 오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