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희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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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그 고양이가 궁금했다 고고학자 영실(옥자연)의 마음속엔 이제 막 새로운 설렘이 씨앗을 틔운 참이다. 발굴 현장에서 벌목을 하는 우도(강태영)에게 마음이 끌린 것이다. 고백을 할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집 앞 복도에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은 영실은 중얼거린다. “나에게도 행운이 오려는 건가.” 그날 밤, 영실은 물과 사료를 준비해 계단에 꺼내놓는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한 사랑을 보듬듯 마주친 적도 없는 고양이를 위해 다정하게 먹거리를 준비한 영실은 물그릇 옆에 다리를 모으고 앉아 생각한다. “우도도 나를 자유로운 영혼이라며 싫어할까? 인식처럼?” 그리고 장면은 8년 전, 영실이 인식(기윤)을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점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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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열대 우림 속 선인장’의 최후 최근 스크린 세이버가 돌아가는 컴퓨터처럼 살고 있다. 전원이 완전히 꺼지지 않고 풀타임으로 가동 중인 뇌는 잠을 잘 때에도 충분히 쉬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는 침대에 가지고 들어가는 스마트폰이다. “잠깐만 놀자”며 스마트폰을 깨우면 한두 시간은 ‘순삭’이다. 각종 SNS, 쇼핑 앱,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전전하다 지쳐 눈을 감을 땐 뇌는 이미 활성화된 상태다. 여기서부턴 난잡한 꿈의 문이 열린다. 대낮에 맑은 정신으로 그 시간을 돌이켜 보면 꽤 낯설고 아득하다. 명멸하는 액정, 익숙하게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 취할 만한 정보를 찾아 빠르게 움직이는 눈, 톡하고 손끝으로 화면을 찍으면 바로 펼쳐지는 자극의 세계. 내 의지로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버튼만 누르면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반자동 기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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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뻔뻔한 도둑질 한 정치인이 개인 SNS에 자신의 정치 행보를 알리면서 “얼룩말 세로처럼 훨훨 활보하겠다”는 말과 함께 세로의 탈주를 패러디한 이미지를 올렸다. 그 이미지 안에서 세로는 인간처럼 두 발로 서서 어깨를 당당히 편 채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이걸 본 순간,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물론 인간이 동물에 빗대어 스스로를 설명하는 역사는 유구하다. 특히 의인화된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는 인간의 자기 이해와 지혜가 고여 숙성되는 향기로운 술통과도 같은 장르다. 실제로 동물은 인간과 다양한 속성을 공유하므로, 그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우화는 인간이 설정해 온 동물들 간의 위계를 뛰어넘는 동류의식을 품고 있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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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먹방과 ‘육두구의 저주’ 얼마 전, 급체에 걸려 고생을 좀 했다. 문제의 음식은 라면이었다. 전날 밤 늦은 시간에 유튜브 먹방 알고리듬에 걸려들어 침샘이 폭발하는 시련의 밤을 보내고 나서, 오전 일정을 마치고 허기진 김에 분식집에 들어가 라면을 주문했다. 한꺼번에 열라면 여덟 봉을 끓여먹던 그가 참 맛있게도 먹었던 덕분이었다. 먹는 내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밤에 본 것이 비단 먹방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알고리듬을 타고 보게 된 영상들의 키워드는 바디프로필, 헬스 브이로그,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 레시피, “한 시간씩 줄 서는 호떡집”, 프로아나(극단적으로 마른 몸을 지향하는 사람), 항정신성 식욕억제제와 그 부작용, 그리고 “곱창이 땡겨 먹다보니 10㎏”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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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마스크와 헬라세포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됐다. 지난 3년간 마스크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마스크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신뢰할 만한 방역 도구였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때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기도 했으니까. 마스크 대란 때는 인간의 생명에는 무관심한 비정한 시장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었다가, 공적 마스크가 등장했을 땐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획일적인 인구관리의 현장이 되었고, ‘마기꾼(마스크+사기꾼)’ 같은 유행어를 통해서는 외모평가를 쉽게 하는 문화가 펼쳐지는 스크린으로 다가왔다. 한국인의 시민성과 공동체 의식이 드러나는 광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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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세이브 아워 시네마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친다. 학기 초가 되면 새로 만난 학생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영화란 무엇인가?” 답은 다양하다. 세계를 볼 수 있는 창, 협업, 종합예술, 상품 등등. 누군가는 “영화는 물”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컵을 감독이라고 한다면, 어떤 컵에 담기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이 된다는 의미다. 각자의 답이 이처럼 달라지는 건, 영화는 물론이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날아간 스카프다.” 학생 N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토드 헤인즈의 <파 프롬 헤븐>(2002)의 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주인공 케이시의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 2층집 지붕을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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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내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내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문화연구자 앤 마리 발사모는 정보 테크놀로지와 여성이 맺어온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는 글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의 어머니는 ‘전자 회로를 이용한 고속 자동 계산기’인 기계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에, 계산을 담당했던 인간 컴퓨터(computer, 계산원)였다. 여성 컴퓨터의 모습은 영화 <히든 피겨스>(2017)에서 볼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이기도 한 도로시 본은 1960년대 초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에서 근무하던 여성 보조 계산원들을 이끄는 팀장이었다. 이후 나사에 IBM 컴퓨터가 들어오자, 이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워 이 신문물을 구동하는 일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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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은유에 반대한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뜬금없이 시를 읊은 것은, 그렇다, 은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이야말로 은유의 대표적 예문 아닌가. 은유는 “시만큼 오래된 정신작용이며, 과학적 지식과 표현력을 포함해 각종 이해 방식을 낳는 기초”(수전 손태그)이다. 은유가 없었다면 인간의 상상력은 물론이고 이해력도 그만큼 제한되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은유는 익숙한 것을 통해 낯선 것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편견을 재생산하거나 오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일’인 코로나19와 함께 난무하는 은유가 염려되는 이유다. 낯선 것을 이해할 새로운 관점을 찾지 못한다면, 잘못된 답 속에서 헤매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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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사랑과 자유를 위한 투표 “언젠가 내게 말했지. 진실한 사랑은 정해진 룰에서 벗어나지 않는 거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 (…) 들어봐, 나의 사랑은 함께 숨 쉬는 자유. 애써 지켜야 하는 거라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지.” 21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를 위해 길고도 긴 줄에 서서 윤상의 ‘사랑이란’을 흥얼거렸다. 예전에 즐겨 듣던 곡인데, 특히 ‘룰’과 ‘자유’의 대비를 좋아했다. 사랑에서 룰이라고 하는 건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상성의 규범들을 의미할 터다. 예컨대,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는 말처럼. 반면에 자유는 우리를 옥죄는 고정관념을 깼을 때 만나게 되는 새로운 세계를 그려보게 한다. 규범에 저항하고 나답게 사랑함으로써 오롯이 존엄할 수 있는 상태. 문득,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가족들과의 갈등을 기꺼이 감수했던 배윤민정 작가의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가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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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킹덤’ 낡은 세계의 끝 상상하기 역병이 퍼졌다. 병에 걸린 자는 이성을 잃고 사람의 피와 인육을 탐하게 된다. 전염성이 높고, 잠복기는 매우 짧으며, 결과는 치명적이다. 그렇게 조선의 왕자 이창(주지훈)에게 미션이 주어진다. 그는 지지자들을 모아 ‘어린 중전’과 부패한 외척을 물리치고, 역병으로부터 백성을 구해야 한다. 드라마 <킹덤>(2019~2020)의 줄거리다. 영화 <창궐>(2018)에 이어 <킹덤>까지 보고나니 궁금하다. 지극히 서구적인 괴물인 좀비는 어떻게 조선 땅에 떨어지게 되었을까. 좀비는 가장 현대적인 괴물로 평가받는다. 뱀파이어 등과 달리 20세기 인간의 창작물인 데다, 21세기에 들어 그에 대한 소구력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좀비는 세뇌당한 노예일 수도 있고(<화이트 좀비>), 소비자본주의에 포획된 소비자일 수도 있으며(<시체들의 새벽>), 생존주의로 내몰린 신자유주의적 주체일 수도 있다(<워킹데드>). 무엇이 되었건, 그것은 당대 대중에 대한 은유로서 그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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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 아니다” 올해 초 <다크룸>이라는 책을 번역, 출간했다. 1980년대 미국에서 펼쳐진 페미니즘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격을 다룬 <백래시>로 유명한 수전 팔루디의 2016년 작품이다. 이 책은 팔루디가 30년 가까이 연락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로부터 “변화들”이라는 제목의 e메일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아버지는 자신의 달라진 모습이 담긴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최근 태국으로 건너가 성별재지정 수술을 받고 “여자가 되었음”을 알린다. 아버지 스테파니의 커밍아웃을 납득할 수 없었던 팔루디는 그를 만나기 위해 부다페스트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팔루디가 대면하게 되는 스테파니의 모습은 2020년 대한민국 온라인을 떠돌아다니는 온갖 트랜스젠더 혐오적인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란제리를 입고 앞섶을 여미지 않은 채 집 안을 돌아다니고,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가족에게 “여자라는 걸 인정해 달라”고 고집을 부리며, 자신에게만 집중해 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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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A하사와 함께 질문하자 “성전환 수술 후에도 군복무를 이어가고 싶다.” 2020년 1월16일. 중요한 뉴스가 전해졌다. 남성으로 임관한 A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육군이 그녀의 전역 여부를 심사할 예정이라는 소식이었다. A하사는 성별 정정을 신청해 놓았으며, 정정 후에는 여군으로 계속 복무하고 싶다는 의사를 군에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하사의 전역심사위원회가 열리는 이유에 대해 육군은 “음경 훼손과 고환 적출이 각각 5급 장애이고, 5급 장애가 두 개면 심신 장애 3등급으로 분류된다. 이는 전역 심사 대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