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희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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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추석 특집, 영화 추천 추석이 다가왔다. 밥상 위로 오고 갈 답 없는 설전을 어째야 할지, 벌써부터 골치 아픈 분들도 계시겠다. 내 코도 석 자인 마당에 가족 간의 정견 차를 피해갈 묘안을 제안하기는 어렵고, 오늘은 독자들께 추석 연휴 기간 중 즐기실 만한 영화 몇 편을 소개해드릴까 한다. 우선 화제작인 <우리집>(윤가은)과 <벌새>(김보라)부터 챙겨 보시면 좋겠다. 두 작품 모두 4만명 정도의 관객을 극장가로 유혹했다. 쌍 천만 시대에 4만명이라니. 별일이 아닌 듯하지만, 실제로 한 작품이 2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점유하기도 하는 독과점의 시대에 단 몇 십개의 스크린으로 짧은 기간에 이 정도 관객을 모으는 건 쉽지 않다. 그야말로 입소문이 대단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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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품격에 대하여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20년을 한 단체에서 일하면서 여성 등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싸워 온 사람. 2019년 8월8일. 그는 최선을 다했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났다. 동료들은 그가 “위대한 활동가”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음날, 조용하게 추모의 마음이 흐르던 온라인 공간에 고인의 생전 활동을 폄하하는 문장이 하나 올라왔다. 방송인이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렬씨가 자신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 쓴 글이었다. “사유가 본인 상인 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윤정주 위원이 방통위원직에서 빠진 건 참 다행이다.” 이렇게 쓴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윤 위원은) 이재명 지지자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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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나이키 페미니즘을 타고 넘기 눈부시게 쏟아지는 조명과 광활한 축구장을 가득 채운 함성. 뜨거운 공기 속을 유영하는 카메라는 출전을 앞두고 있는 선수들을 비추고, 그들 사이로 잔뜩 긴장한 플레이어 에스코트의 얼굴이 보인다. 경기장까지 선수를 배웅한 에스코트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몸을 돌려 빠져나오려 한다. 그때, 그의 손을 끌어당기며 11번 선수가 말한다. “아직 안 끝났어.” 이때부터 한 소녀의 FIFA 월드컵 모험이 시작된다. 지난 7월8일 폐막한 2019년 프랑스 여자 월드컵을 기념해 나이키가 내놓은 광고 ‘그 이상을 꿈꿔라(Dream Further)’의 내용이다. 여기에 등장한 10대 축구선수 마케나 쿡은 구릿빛 피부를 빛내며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는 에스코트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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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고개 숙인 남자’라는 판타지 젠더 갈등이 문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시대의 젠더 갈등을 초래한 한국사회의 ‘성별화된 사회 인식’이 더 문제인 것 같다. 성별화된 사회 인식이란 성별 고정관념에 기대어 사회적 상황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식론적 틀을 말한다. 예컨대 1997년 외환위기를 “남성=아버지의 위기”로 해석하는 경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포스트 외환위기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유행어가 무엇이었나? “아빠 힘내세요”였다. 더불어서 “부-자되세요!!” “신(新)현모양처”가 있었다. 이 세 유행어는 한국 사회가 외환위기에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를 ‘아버지들의 위기’로 이야기하고, 그들이 “노오력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런 수사 안에서 외환위기는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가 되고, 그 개인의 얼굴은 ‘남성’으로 상상된다. 이때 여성의 자리는 “남편 기 살려주고 자식 건사도 잘하면서 동시에 맞벌이를 하는” 신현모양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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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우먼 온 톱 열 살이 채 되기 전에 TV에서 본 개그 프로그램의 콩트가 아직도 기억난다. 아니, “기억난다”기보다는 “잊혀지지 않는다”에 가까울 것 같다. 내용은 이랬다. 옛날옛날 한 옛날에, 한 마을의 돈 많기로 유명한 부잣집의 딸내미가 덩치가 크고 못나기가 그지없는데, 그게 또 외동인지라 오냐오냐 자라 버릇도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니 혼기가 차도록 데려가겠다는 남자 하나가 나서지를 않아 부모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만석꾼은 누구든 딸을 데려가기만 하면 큰돈을 물려주겠다고 공언한다. 이에 가난하지만 영민한 총각이 찾아와 그 천방지축을 기꺼이 아내로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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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혁명-이후 “왜 영화에서는 ‘혁명-이후’를 다루지 않을까?” 나는 종종 생각한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처럼 노골적인 혁명 서사를 보고 난 후에는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힌다. <설국열차>는 기상 이변으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은 건 무한동력엔진을 장착한 윌포드 트레인에 올라탄 사람과 생명체들뿐이다. 영화에서 멈추지 않는 기차는 폭주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은유로 해석되었다. 기차에서의 삶이 철저하게 구획된 계급사회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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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보이는 것’이 들려드릴 이야기 “안녕하세요, 손희정입니다. EBS <까칠남녀> 종방 후 1년 만입니다. 공중파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것, 여전히 할 수 없는 것, 하지만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유튜브로 돌아왔습니다. 퀴어와 퀴어 앨라이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본격 퀴어 토크쇼 <손희정의 TMI>.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2019년 1월 초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기획, 제작하는 퀴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에서 론칭한 <손희정의 TMI> 첫 녹화 날이었다. 전문 방송인도 아닌데 토크쇼 진행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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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어떤 정치인은 더 해롭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전당대회를 전후해서 주목을 끌기 위해 연출하는 어떤 장면들은 끔찍하다. 5·18 유공자를 “괴물”이라고 칭하는 것이나 “저딴 게 대통령”에 이은 청년최고위원 후보의 아무 말 대잔치를 보고 있자면, 혐오 선동과 막말 외에는 정치적 자원을 갖지 못한 정치인의 해악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선동 이후, 5·18 유공자에 대한 가짜뉴스 유포와 모독 행위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사회 구성원의 일부를 ‘우리-국민’에서 배제하여 그들을 향해 증오의 말을 쏟아내고, 심지어는 정책 결정에까지 기어이 영향을 미치고야 마는 정치인들은 그저 사회적으로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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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위력에 의한 간음죄, 최협의설을 넘어서야 “지옥이 꽉 차는 날, 죽은 자들이 땅 위를 걷게 될 것이다.” 좀비 영화 고전인 <시체들의 새벽>(1978)의 홍보 문구다. 줄줄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법조계 #미투 가해자 안태근, 연극계 #미투 가해자 이윤택, 그리고 충남도 전 지사 안희정 등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말이다. 강간범들이 이미 지옥을 꽉 채우고 있어서, 저들이 지옥에도 못 가고 여기서 떠도는 건가 싶었다. 2018년은 서지현 검사의 #미투와 함께 시작했다. 이는 2019년 체육계 #미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한국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성폭력을 방조하는 구조는 사뭇 강고하고, 가해자들은 여전히 반성을 모르며, 그들을 처벌할 법적이고 문화적인 토대는 아직 미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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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돼지를 그대 품 안에 기해년이 밝았다. 노란돼지(己亥)의 해라니, 제일 좋아하는 돼지 이야기를 하나 풀어놓을까 한다. 에코 페미니스트인 마리아 미즈가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라는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어머니와 암퇘지”라는 일화다. 1945년 초,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농부의 딸이었던 미즈는 독일 아이펠의 서쪽 마을에 살고 있었다. 당시 마을은 먹을 것과 온정을 구걸하는 독일 패잔병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저녁 수프를 끓이고 감자를 삶아 그들을 거둬 먹였다. 미즈의 다섯 오빠는 모두 집을 떠나 참전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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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한 끗 차이’를 만드는 페미니즘 여성혐오를 예술로 포장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는 것 같다. 안티페미니스트 레토릭을 읊조리다 공연이 중단되고 말았다는 래퍼 산이의 ‘웃기고도 슬픈 에피소드’는 이를 잘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이제는 창작의 원천으로 페미니즘 인식론을 참고할 때다. 강의 중에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페미니즘적인 캐릭터를 만들 수 있나요?” 나는 100점짜리 페미니스트 캐릭터의 전형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캐릭터와 이야기, 영상언어 등을 진부하지 않게 구성하고 조합해내는 페미니스트 상상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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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두려워 말라, 그들은 그저 세상을 바꾸고 있을 뿐 지난 11월3일. 학생의날을 맞이하여 교사들의 교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해결 및 예방책 마련을 촉구하는 ‘스쿨미투’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서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은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고 외쳤다. 2015년 이후 대중 페미니즘 운동은 대체로 익명의 청년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 운동의 형태였다. 얼굴과 이름을 내놓고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현했을 때 여성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와 2차 가해, 무고죄 고발, 그리고 조리돌림이었으므로 이는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미투에 이르러 여성들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내걸고 싸우기 시작했다. #스쿨미투도 마찬가지다. 교사의 권력형 성폭력을 고발한 이후에 학생들은 진학과 취업 등을 빌미로 2차 가해를 당해왔다. 그들의 싸움은 이런 현실적 위협을 감수하고 있다.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