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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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하늘만 보고 다니는 사람, 개천에 빠진다 요즘 검찰개혁 문제로 서초로가 수백만으로 북적댑니다. 검찰 왕국 하루 이틀 보는 거 아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니 국민 정서를 건드린 거죠. 세종로도 왁자했습니다. 모 종교단체가 신도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을 열심히 실어 날랐다는데, 도대체 누구를 섬기려고 그리 애면글면 애쓰는지 알 듯 모를 듯도 합니다. 누구 총알이 더 많고 누구 의지가 먼저 꺾일지는 몇 년 전 겨울 촛불을 보면 곧 알겠죠. 아직 가을인데요. 성경에서는 권력과 재물을 탐하지 말라 합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항상 그 둘을 멀리하라 가르칩니다. 관직을 가진 자도 이를 경계하라는 유명한 시조가 전해집니다. “굼벵이 매미 되어 날개 돋쳐 날아올라/ 높디높은 나무서 소리가 좋거니와/ 그 위에 거미줄 있으니 그를 조심하여라.” 하지만 알면서도 걸려드는 게 사람입니다. ‘하늘만 보고 다니는 사람은 개천에 빠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 저 예쁜 달! 별은 내 가슴에!’ 가지고 싶어 입 벌리고 우러러 걷습니다. 그러다 좁은 다리서 헛디뎌 더러운 개천 물에 풍덩! 이 속담이 뜻하는 바는, 높은 권력과 거기서 뚝 떨어질 떡고물만 바라다가는 개천, 거지들 모여 사는 그곳, 그 시궁창 만신창 신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검찰’이란 단어에는 살필 찰(察)이 들어있습니다. 무엇을 어디를 살핀다는 걸까요? 하늘의 안색과 떡집 분위기를 살피라는 뜻일까요? 종교인이 마땅히 섬기고 사랑해야 할 것은 자신이 믿는 신과 그 신이 사랑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자기 신과 우상 사이에 양다리 걸치며 ‘신의 자식’만 더욱 사랑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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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갈모형제 <카인과 아벨>은 신에게 편애 받는다 여겨 형이 동생을 죽인 이야기입니다. 한 핏줄이라도 형제자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쟁심리가 있습니다. 자식이 칭찬 들으면 부모는 흐뭇해서 웃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생이 잘나갈수록 심사 꼬이는 형도 있습니다. 부모 사랑 독차지하다 동생 태어나서 찬밥처럼 느끼게 되는 일도 많습니다. 고개 못 가누는 어린 동생을 ‘때찌’하거나 동생 잘못을 고자질하기도 하죠. 그러다 생각이 크면서 자연스레 손아랫사람을 감싸고 우산이 되어주는 품 넉넉한 손윗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이 공평치 않고 어느 한쪽으로 더 기운다 느끼면, 관심과 사랑을 나눠 받는다기보다 빼앗긴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감정 그대로 큰다면 우애를 가장하면서도 동생을 부모와 이웃, 세상 모두에게서 경쟁상대로 보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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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우리가 흔히 쓰는 속담으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가 있습니다. 이 말은 원래 ‘제비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였을 겁니다. 한강 남쪽도 강남역도 아니니까요. 여기서의 강남은 중국 양쯔강 아래 강남(江南)입니다. 음력 3월3일 삼짇날 무렵 찾아온 제비는 9월9일 중양절 무렵 3만㎞ 떨어진 강남으로 다시 날아갑니다. 시속 90㎞로 빠르게 나는 제비라도 보름거리가 넘지요. 보통의 철새들은 다 함께 출발합니다. 그런 철새들과 달리 제비는 떠나는 시간과 날짜가 제각기 다릅니다. 저 집 제비들은 어제 떠났는데 이 집 제비는 아직이더니 옆집 제비들이랑 비비대다 같이 떠납니다. 그런 식으로 제비는 몇 마리씩 따로 출발합니다. 그러곤 어느 ‘만남의 광장’에 도착해 소규모로 뭉치고, 다시 남쪽 바닷가에서 다시 대규모로 떼를 지어 드디어 바다를 건넙니다. 그걸 알 리 없던 옛사람들은 다른 집 제비가 떠나니 허전해서 따라가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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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폭군 연산군을 몰아내려 사람들이 박원종의 집에 모여 불도 켜지 않은 어둠 속에서 수군댑니다. 다들 설왕설래하는데 구석에 앉은 한 사람만 말없이 이쪽을 지켜봅니다. 사람 숫자를 세어보니 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아무래도 염탐꾼이 들어온 것 같소.” 귀띔하니 박원종이 잠시 바라보곤 껄껄 웃습니다. “염탐꾼이 아니라 내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요. 누가 거기에 도포와 갓을 얹었구려!” 이 일화에서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묵묵히 따로 있다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이 나왔다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박원종은 당시 정2품 중추부지사였고, 지금의 도지사, 군단장, 참모총장까지 지낸 사람입니다. 그런 고위직을 두루 거친 양반이 아무렴 먹을 게 없어 쌀도 아닌 보리를 꾸어다 놨겠습니까? 늘 강조하지만, 유래담 대부분은 있는 속담에 맞춰 지어낸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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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 분수와 주제를 모르고 덩달아 남 따라 하면 끌끌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더니” 한소리 듣습니다. 숭어와 망둥이는 둘 다 기수(汽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어귀 바닷물)에서 삽니다. 숭어는 물 위로 멋지게 솟구쳐 뛰어오르지만 망둥이는 개펄 위를 찰박찰박 경망스레 뛰어다니기에 이 둘을 비교해 줏대 없는 따라쟁이에게 혀를 찼습니다.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가 있듯이 그런 망둥이 보고 꼴뚜기도 가만 못 있었죠. 이 속담에도 숨은 맥락이 있습니다. 부어( 魚), 이어(鯉魚)가 붕어, 잉어로 바뀌듯 숭어도 수어(秀魚)에서 바뀐 것입니다. 원래 이름이 수어(秀魚)인 만큼 맛 좋은 생선이죠. 그런데다 숭어는 흔하게 잡혀 값도 꽤 저렴했습니다. 이 싸고 맛 좋은 물고기가 느닷없이 어느 때인가 값이 뜁니다. 연일 날씨 사나워 못 잡거나 이상기온으로 자취를 감춰서일 수도 있겠지요. 숭어가 비싸지니 어물전 왔다 헛걸음하기 싫어 망둥이를 사 갑니다. 망둥이 찾는 사람이 많아지니 망둥이 가격도 덩달아 뜁니다(망둥이 가격이 뛰면 꼴뚜기 값도 물 뿜고 따라 뛰겠지요). 뛰는 생선인 숭어와 망둥이로 ‘위로 뛰다’ ‘물가에서 뛰다’와 ‘가격이 뛰다’ ‘물가가 뛰다’를 연결한 셈입니다. 지금은 애초의 의도가 희미해져 분수 모르고 덩달아 남 따라하는 사람을 뭐랄 때만 쓰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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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꼬리 먼저 친 개 밥 나중 먹는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먼저 온 사람 먼저 타라고 서로 눈치껏 멈칫멈칫 해줍니다. 하지만 저기서 버스가 오니 자기 앉아 가겠다고 손 흔들며 냅다 뛰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정된 정차 위치가 있으니 버스는 열심히 뛰어오는 사람을 그대로 지나쳐 원래 설 자리에 섭니다. 저 앞까지 쫓아간 사람은 헐레벌떡 다시 쫓아올 수밖에요. 그러곤 결국 맨 나중에 타죠(영리한 사람은 지갑 꺼내 들고 멀리서부터 버스 기사와 아이 컨택을 합니다. 그럼 거짓말처럼 버스가 바로 앞에 섭니다. 그런 상황이 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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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바람 가는 데 구름 간다 누군가 헛바람 들어 주식이나 다단계, 사업을 하겠다고 설칠 때 옛사람이라면 어떻게 에둘러 일렀을까요. “바람 가는 데 구름 가는 법이야.” 깜냥 모르는 바람(望)이 헛바람이듯, 잡으려는 그 구름도 뜬구름이라는 뜻이지요. “뭐야, 당연하잖아” 하며 말에 든 뼈를 못 알아채는 어리석은 타인이라면 굳이 내 시간 써가며 만류할 것도 없겠지요. ‘바람 가는 데 구름 간다’는 속담은 ‘바늘 가는 데 실 간다’처럼 서로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원래는 ‘헛바람 가는 곳에 뜬구름도 간다’였을 것입니다. 상처받지 않게 넌지시, 지나가는 말처럼 일러주려 생략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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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머리를 삶으면 귀까지 익는다 학과 체육대회를 할 때면 늘 고사를 먼저 지냈습니다. 고사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역시 돼지머리입니다. 입이 귀에 걸린 놈으로 사 와 콧구멍 귓구멍에 지폐 꽂고 고사 잘 지냈습니다(요즘은 혐오감 줄이고 뒤처리도 곤란치 않게 돼지저금통, 가짜 돼지머리 등으로 대신하는 추세입니다). 대회 치르는 동안 뒤풀이 조는 솥에 돼지머리 넣고 한 번 더 삶습니다. 끓는 물 밖으로 귀가 비죽 솟아서 숟가락 나눠 쥐고 뜨거운 김 참으며 꾹 누르고 있자니 시골 출신 선배가 그럽니다. “야야, 놔둬. 귀는 저절로 익어.” 아! 그렇게 하나 배웠습니다. 뱀에게 물려도 끄떡없는 두꺼운 비곗살이라도 귀는 얇으니 덜 잠겼다고 덜 익진 않을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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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열흘 붉은 꽃 없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구 얼굴이 가장 예쁘니?” “왕비님, 그건 백설공주입니다.” 거울은 늘 그렇게 답했고 새 왕비는 시기심에 눈멀어 예쁨 일인자를 없애려는 안달뱅이가 됐습니다. 왕의 사랑이 예쁜 친딸에게 가는 만큼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웠겠지요. 저쪽은 막 피고 이쪽은 막 지는 미모였으니까요. 속담에 ‘열흘 붉은 꽃 없다’가 있습니다. 성쇠(盛衰)는 돌고 도는 것이라 끝까지 온전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원예기술이 발전해 오래 가는 꽃이 많다지만 여러 날 못 가 갈변하고 쇠락하는 건 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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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뜬쇠도 달면 어렵다 전자석을 만들자면 못을 새빨갛게 달군 뒤 식을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磁氣)를 쉽게 띠는 철, 무른 철, 연철(軟鐵)이 되기 때문이죠. 연철은 철사만큼은 아니지만 간단한 연장으로도 쉽게 휘어지지요. 이 연철의 순우리말이 ‘뜬쇠’입니다. 이 뜬쇠가 나오는 속담이 ‘뜬쇠도 달면 어렵다’입니다. 온순하고 잘 참는 사람이 한번 화나면 더 무섭게 화를 낸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인두나 다리미가 잘 달궈지지 않는 것도 ‘뜨다’라고 하는데, 철은 빨리 달궈지지 않지만 달아오르면 무섭게 이글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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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오른쪽 궁둥이나 왼쪽 볼기나 터울 많이 지는 사촌동생이 학교에 들어가 배운 노래를 했습니다. “어린 송아지가 큰 솥 위에 앉아 울고 있어요. 엄마~ 엄마~ 엉덩이가 뜨거워. 히프짝이 뜨거워.” ‘응? 히프짝?’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쳐줬더랍니다. 영어사전 뒤져보니 ‘엉덩이’ ‘궁둥이’ ‘둔부’ 여러 가지로 뒤섞여 나오더군요. 그러곤 잊고 살았습니다. 우리말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다시 그 ‘히프(hip)짝’이 떠올라 사전을 깊이 뒤져봤습니다. 우리가 앉을 때 바닥에 닿는 부분이 ‘궁둥이’, 궁둥이 위쪽 살 많은 부분이 ‘엉덩이’, 엉덩이에서 가장 뒤끝에 있는 부분이 ‘꽁무니’, 이 셋을 모두 다 합친, 흔히 ‘둔부’라고 하는 부분이 ‘볼기’더군요. 그러니 네발짐승 ‘어린 송아지’가 주저앉은 ‘butt’을 궁둥이가 아닌 엉덩이로 번역한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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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씨도둑은 못한다 뉘 집 자식이 훌륭하다 소문 자자할 때 사람들이 그럽니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뉘 집 자식이 망나니짓을 했을 때도 사람들은 그럽니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같은 말을 다르게 쓸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 부모의 행실과 집안의 내력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씨도둑은 못한다’지요. 농부는 수확할 때 잘 여물고 실한 씨앗들만 골라 다음 파종 때 쓰려고 따로 갈무리합니다. 열심히 잘 키운 작물은 씨앗도 다르고 그 씨앗 심어 난 떡잎 역시 남다릅니다. 부실하게 키운 작물은 응당 그 씨앗이 하잘것없고 싹수 또한 노랗지요. 좋은 종자는 누가 훔쳐갈세라 종자 자루를 베고 잘 만큼 애지중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