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용
최신기사
-
속담말ㅆ·미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어느덧 삼복(三伏)에 들었으니 여름이 한창입니다. 우리나라는 계절마다 불어오는 바람 방향이 다릅니다. 봄에는 동쪽에서 샛바람, 여름에는 남쪽에서 마파람, 가을에는 서쪽에서 하늬바람, 겨울에는 북쪽에서 된바람이 불어옵니다. 여름 바람 남풍, 마파람은 앞에서 마주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동네마다 앞산을 남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남향집에서 바라보면 앞이 남쪽이고, 경복궁에서도 경주 시내에서도 남산이 보입니다. 그래서 남풍은 앞에서 부는 바람, 마주 부는 바람, 맞바람, 마파람이 됩니다.
-
속담말ㅆ·미 조바심을 친다 걱정과 시간 싸움으로 마음 졸이며 초조해할 때 ‘조바심을 한다’고 합니다. ‘조바심을 친다’고도 하죠. 흔히 알려져 있는 조바심의 어원은 ‘조는 힘들여 비벼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초조하고 급해지기 일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뭔가 많이 궁색한 설명 같습니다. 생각대로 얼른 되지 않아 초조하게 만들 일은 세상천지에 넘쳐나는데 말이죠. 딱딱하게 말라붙은 밥풀은 불릴 시간도 없는 급한 설거지를 짜증나게 하고 찢어져라 힘줘도 안 나오는 똥은 식은땀으로 궁둥이에 깔판 자국 만드는데, 굳이 ‘조’를 넣어 만든 이 말만 오래도록 쓰이는 이유란 뭘까요?
-
속담말ㅆ·미 먹지도 못할 풀이 오월에 겨우 난다 “호미 들고 괭이 메고 뻗어가는 메를 캐어 엄마 아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햇볕은 쨍쨍’ 2절입니다. ‘메’라는 식물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보릿고개 막바지에는 쫄면 굵기로 길게 뻗어나가는 메 뿌리를 캐서 모자란 밥 대신 날로 먹고 찧거나 가루 내서 쪄내고 국 끓여 먹었지요. 메는 약용식물로도 쓰이니 잡초치고는 꽤 고마운 풀이었습니다. 하지만 농사꾼들에게 대부분의 잡초란 고맙기는커녕 이런 원수가 따로 없습니다. 여름지이(농사) 가운데 가장 힘든 게 바로 잡초제거, 즉 김매기니까요. 김 한 번 매봤다면 다들 땡볕에 허리가 골백번은 끊어져 봤을 겁니다.
-
속담말ㅆ·미 약방에 감초 어느 자리건 꼭 나타나 끼어들거나 여기저기서 은근한 쓸모를 보이는 사람, 사물에 ‘약방에 감초’라는 속담을 씁니다. 예전에 한 개그우먼이 후배 개그우먼들에게 “약방의 감초가 되지 말고 약방이 돼라!”며 남자 개그맨들의 ‘깍두기’를 넘어서라고 조언했다 합니다.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에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그 약방이 그 약방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흔히 이 속담의 약방을 약방(藥房), 즉 한약방으로 알고 한약방은 감초를 늘 갖추고 있으므로 ‘한약방마다 감초’로 알고 있습니다. 감초 없는 한약방 없으니 맞는 말 같지만 아닙니다. 이 약방은 한자 한 글자 살짝 다른 약방(藥方), 즉 처방전이라는 뜻이니까요. 한약 조제할 때마다 처방전에 감초가 꼭 끼어 적힌다는 말입니다.
-
속담말ㅆ·미 걱정이 반찬이면 상발이 무너진다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 없습니다. 먹고살 걱정에 자식 걱정, 학비 걱정, 진로 걱정, 할 일 산더미라 걱정, 다들 한두 가지씩 매일 걱정과 함께 살아갑니다. 하지만 때로는 엄청난 걱정이라 잠도 안 오고 밥맛 잃고 일이 손에 안 잡힐 때도 있습니다. 퀭한 눈에 푸석한 얼굴, 초조한 태도로 그저 노심초사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와하하 개그맨이 웃겨도 멍하니 딴생각이고, 산해진미 앞에 두고 젓가락 쥔 손이 식탁 아래로 맥없이 떨어집니다. 지나친 걱정은 해롭기만 하다는 속담 ‘걱정이 반찬이면 상발이 무너진다’가 있습니다.
-
속담말ㅆ·미 도토리 키재기 ‘도토리 키 재기’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일본에도 ‘도토리 키 견주기’라는 속담이 있는데, 어느 쪽에서 흘러든 것인지 아직 모릅니다). 정도가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서로 잘났다고 다툰다는 말이죠. 도토리는 참나무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참나무는 몇 종류가 있는데 수종마다 열리는 도토리가 길이도 모양도 제각각입니다. 상수리나무나 굴참나무 도토리는 동글동글하고, 떡갈나무와 졸참나무와 갈참나무 도토리는 다소 기름합니다. 그리고 신갈나무 도토리는 동글납작하죠. 제일 짜리몽땅합니다. 또한 한 나무 한 나무초리에 서넛씩 뭉쳐 달린 도토리 사이에도 크고 작음이 있습니다.
-
속담말ㅆ·미 고기는 씹어야 맛, 말은 해야 맛 광고에서 깨작거리는 사람에게 “고기는 씹어야 맛이지~” 하며 잇몸 약을 추천합니다. 그 약 먹고 나서 고기 씹으며 외칩니다. “씹으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흔히 쓰는 말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가 있습니다. 이 말은 속담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다’가 줄어든 것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던 시절에 고기 먹을 귀한 수가 생긴다면 행여 뺏길세라 허겁지겁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켰겠지요. 그렇게 먹으면 육즙도 그 귀한 고기 맛도 모르는데. “저기…” “응? 뭐.” “어…” “뭔데?” “그게…” “뭔데 그래.” “아니야.” “어휴, 속 터져! 말할 거면 하고 아님 말든가!” “미안, 나중에.” 이쯤 되면 애써 귀 열어준 사람은 속으로 가슴 쾅쾅, 미치고 팔짝 뜁니다. 입술 옴질거리지 말고 고기 씹듯 팍팍 입 운동 좀 해줬으면 속이 다 시원하겠네요. 할 말이든 못할 말이든, 일단 한마디라도 툭 내뱉어주면 미적지근한 시작이라도 말길은 터줄 텐데 말이죠. 심각한 표정으로 운 띄워놓고 “아냐 됐어” 해버리면 이건 갑갑해서 죽을 맛 아닌가요? 그럴 거면 말부리나 떼지 말 것이지 귓구멍 감질나게 해놓고 목구멍 닫아버리면 어쩌란 건가요. 고민이면 고민, 비밀이면 비밀, 서운하면 서운하다, 싫으면 싫다, 운 하나에 기본 한 소절씩은 읊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
속담말ㅆ·미 ‘못난 색시 달밤에 삿갓 쓰고 나선다’ 얼굴을 가리는 갓은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 흔히 아는 꼭지가 뾰족하고 네모진 삿갓은 얼굴까지만 가립니다. 장거리를 갈 때 해와 비를 가리려고 썼지요. 또 하나는 방갓으로 꼭지가 둥글고 목 아래까지 가립니다. 어깨에 걸리지 않으며 발밑도 보도록 사방이 움푹 들어가 있습니다. 하늘 보기, 남 보기 부끄러운 불효자란 뜻으로 탈상(脫喪) 전까지 어쩔 수 없는 출타 때나 썼습니다. 그리고 상반신 전체를 가리는 부녀삿갓이 있었지요. 뾰족한 감을 세워놓고 밑동을 잘라낸 듯한 모양입니다. 비싼 쓰개치마나 장옷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여성들이 외출용으로 썼습니다(허리 아래서 양손으로 들었지요). 크기가 큰 만큼 대오리(가늘게 쪼갠 대나무)나 갈대, 부들 줄기같이 가벼운 재료로 엮었습니다.
-
속담말ㅆ·미 좁쌀만큼 아끼다 담 돌만큼 해 본다 없이 산 것도 아닌데 별나게 손이 작고 제 욕심부터 차리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왕 쓰는 선심일 텐데 자기 다 쓰고 유행 지난 거 주며 생색내거나, 밥 먹으러 가면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만 골라 먹고 젓가락질하며 슬금슬금 반찬 그릇 끌어가며, 한턱낸다더니 예닐곱 명에 치킨 두 마리 시키곤 쿠폰은 또 얼마나 눈독 들여 챙기던지…. 한번은 자기 부모 임종이 코앞이자 안 오던 경조사에 얼굴도장 찍으러 왔더이다. 그리고 그 자리서 어떤 일로 푸념합디다. “인복이 없어도 이렇게 없나 몰라, 난.” 그런가 하면 점쟁이가 ‘주위에 귀인이 많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힘겹거나 괴로울 때면 신기하게도 누군가 손을 척 내밉니다. “여기 사람 구한다네. 너 생각나더라.” “괜찮은 사람 있는데 만나봐. 너 놓치면 손해라고 아주 쐐기를 박아놨어.” 그는 늘 순위 앞쪽에 있습니다. “뮤지컬 표 생겼어. 나랑 가자. 같이 가자!” 주위에 귀인이 많다는 건 아마 자신도 언젠가 그 귀인들에게 모종의 귀인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
속담말ㅆ·미 말이 고마우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출근하다 말고 남편이 지긋한 눈길로 그럽니다. “요즘 당신이 고생 많아.” 이 양반이 아침에 뭘 잘못 먹었나, 눈 흘기며 출근이나 하라고 등 떠밀어 내보냅니다. 여느 날처럼 정신없이 쓸고 닦고 치우고 빨아 널고 나니 날이 뉘엿해집니다. ‘오늘 저녁은 또 뭘 해서 차리나’ 가볍게 한숨 쉬고 ‘있는 반찬에 고등어나 해서 올려야겠다’ 장바구니 들고 마트로 갑니다. 고등어가 왜 이렇게 비싸! 손 머뭇거리다 문득 ‘당신이 고생 많아’가 생각납니다. 피식, 그러곤 다시 빙긋 웃습니다. ‘다른 데서 아끼지, 뭐.’ 아내는 장어를 사 들고 콧노래로 돌아옵니다.
-
속담말ㅆ·미 꼬마와 ‘꼬꼬마’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영국 BBC방송국의 <Teletubbies>를 수입 방영한 <꼬꼬마 텔레토비> 주제가입니다. 이 노래만 나오면 아이들이 울음 뚝하고 텔레비전 화면에 ‘햇님아기’ 얼굴로 붙었지요. 뽀로로나 타요 인기 저리가라였습니다. 그 뒤로 ‘꼬꼬마’는 아동용품 매장이나 어린이집 이름으로 널리 쓰입니다. 나아가 ‘꼬꼬마 녀석이 어딜 감히’ 하며 나이 어린 사람을 누를 때도 쓰였지요. 그런데 사실 ‘꼬꼬마’는 ‘꼬마’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군과 적군이 뒤엉켜 싸울 때 지휘소에서 한눈에 구분하고 계급도 나타내기 위해 투구나 벙거지(군모) 위에 단 술, 그리고 천이나 종잇조각을 실에 매달아 바람에 날리며 뛰놀던 장난감이 꼬꼬마입니다(‘낚싯대’라는 고양이 장난감과 비슷합니다). 텔레토비들은 배마다 화면이, 머리 위엔 각기 다른 모양의 안테나가 달려 있습니다. 이 안테나들을 보고 번역자가 꼬꼬마라는 단어를 십분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꼬마라는 느낌도 나게요. 그런데 그 훌륭한 번역이 외려 단어 오해를 낳았지요. 아직도 온라인 지도에서 ‘꼬꼬마’를 검색하면 아동 관련한 엄청난 ‘꼬꼬마’들이 뜹니다. 꼬꼬마가 꼬마를 귀엽게 부르는 말인 줄만 알고요.
-
속담말ㅆ·미 ‘평생 지팡이’ 전통혼례에는 참 많은 상징이 있습니다. 우선 목(木)기러기가 있지요. 기러기는 짝을 잃어도 다시 구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랑은 혼례 전 기럭아범에게 목기러기 한 쌍을 들려 보내 마지막 청혼이자 맹세를 합니다. 맞절하기 앞서선 손도 씻습니다. 마음에 누굴 담았고 어떻게 살았든 이제는 저 사람과 새 출발이니 다 잊고 손 씻으라는 것이지요. 또한 초례상 위에는 소나무 가지를 꽂아 둡니다. 오래도록 푸르게 살며 두 가닥 맞붙어 돋는 솔잎이 말라 떨어질 때도 같이 붙어 떨어지듯 해로동혈(偕老同穴·같이 늙고 같이 묻힘)을 하라는 말입니다. 폐백 때는 신부의 치마폭에 대추와 밤이 던져집니다. 대추마다 씨앗이 하나이듯 바람피우지 말고 한 군데만 씨 뿌리고, 밤송이 하나에 밤알이 셋씩 들었듯 둘이 만나 셋은 낳아 자손 번창하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