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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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산이 높아야 골이 깊다 중요하다의 다른 말 ‘대수롭다’의 어원은 ‘대사(大事)롭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큰일 아니면 ‘대수롭지 않다’고 하지요. ‘대수롭지 않다’와 비슷한 말이 ‘소소하다’입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유행한 지도 오랩니다. 그만큼 오래도록 소소한 것 말고는 추구할 행복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할 겁니다. 장래가 막막하니 확실한 당장만 즐길 수밖에요. 욜로(You Only Live Once)도 연일 유행입니다 ‘인생은 한 번뿐’을 ‘인생 뭐 있어’로, 소중을 대충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많은 “욜로!”란 어쩌면 “큰 건 포기!”라는 감탄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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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귀 장사 말고 눈 장사 하라 인간은 정보의 80%를 눈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세상 정보의 80%를 귀로 받아들이는지도 모릅니다. 친구 말만 믿고 섣불리 주식에 투자하고, 좋은 땅이 나왔다는 기획부동산 광고전화에 덜컥 땅을 사버립니다. 써보니 아침이 달라지더라는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고가 옥장판에 카드 긁습니다. 그러나 세상살이 이골이 난 사람은 속고만 살았냐! 근거 서류와 사진까지 보여줘도 내가 본 게 아니니 안 믿습니다. 직접 보고도 못 미더워 여러 경로를 통해 일일이 또 확인해봅니다. 속담에 ‘귀 장사 말고 눈 장사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처럼, 남들이 해준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스스로 확인한 것만 못하다는 뜻이지요.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발품’보다는 ‘귀품’만 팔아 섣부른 결정을 내립니다. 여럿이 작정하고 설계(조작)해서 속이지 않더라도 스스로 귀가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세상은 낚시터입니다. 눈먼 돈 낚자고 꾼들이 떡밥 풀고 미끼 흔듭니다. 다단계든 투기든 크든 작든, 멀쩡한 눈 가리고 엉터리 덥석 물게 하는 건 인간의 욕심입니다. 돈 받고 써준 리뷰는 잘 걸러내면서 “너니까 알려주는 거야” 은근하게 속삭이는 정보에는 “정말?” 귀를 솔깃합니다. 듣다 보니 놓치면 땅을 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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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양반은 못 된다 평소 고까운 직장상사를 한창 욕하고 있는데 “누구 얘기들 해?” 그 상사가 불쑥 얼굴 들이밀면 전부 ‘으악!’ 식겁합니다. 호랑이를 마주친대도 이보다 간 떨어지진 않을 겁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속담이 성립되는 상황입니다. 만약 재수 없는 사람 이야기였다면 ‘까마귀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눈빛으로 쉬쉬했겠지요. 같은 자리에서 비슷하게 쓰이는 속담으로 ‘양반은 못 된다’ 또는 ‘양반 되기는 텄다’가 있습니다. ‘호랑이’가 윗사람이라면, ‘양반’은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한 이가 뒷말의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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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독장수구구는 독만 깨트린다 어느 독장수가 지게에 독을 산더미처럼 짊어지고 팔러 나섭니다. 그러다 어느 곳에서 무거운 지게 내려놓고 지겟다리로 받친 뒤 잠깐 쉰다는 게 깜박 잠이 듭니다. 꿈에서 그는 지고 나간 독마다 모두 팔아 빈 지게와 두둑한 주머니로 돌아옵니다. 그 돈으로 가축을 사서 기르고 또 내다 팔아 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그렇게 집도 마련하고 꿈에 그리던 장가도 갑니다. 떨리는 첫날밤 새신부의 옷고름을 푸는 장면에서 독장수는 너무 좋아서 잠결에 활개를 칩니다. 그러다 지겟다리를 탁 쳤고 지게가 엎어지면서 장사 밑천이 와장창 깨집니다. 이것이 인터넷과 어린이 속담책에 나오는 ‘독장수구구는 독만 깨트린다’의 엉터리 유래입니다. 근거 없이 지어낸 이야기라서 ‘구구’는 설명치 못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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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부모 속엔 부처가, 자식 속엔 앙칼이 들었다 부모와 자식 고슴도치가 살았습니다. 자식 고슴도치는 제 가시 잠재울 줄 몰라 감정 불편하면 가시부터 세웠습니다. 그러면 부모 고슴도치가 다가와 자식의 가시를 핥고 쓰다듬어 잠재우려 했습니다. 자식 고슴도치는 그게 싫어 다가온 부모를 더 가시 세워 바짝 찔렀지요. 찔려도, 그래도, 부모 고슴도치는 더 다가갔답니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어머니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쓰시던 폰이 보여 그 속을 들여다봤습니다. 저와 어머니 사이에 오간 대화들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추억과 슬픔으로 하나씩 읽어 가는데 흐름에 이가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폰 꺼내서 대조했더니 세상에! 어머니는 제가 성내고 골내며 짜증으로 보낸 말들은 다 지워버리고 좋아서 착하게 보낸 말들만 남겨두신 것입니다. 명치 안쪽부터 울컥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못되고 모질게 굴었어도 착하고 다정했던, 그 몇 마디 안 되는 말들만 남겨서 읽어보고 또 읽어보셨던 것입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뒤늦은 후회와 이제는 안 계신다는 그리움에 꺽꺽 눈물만 터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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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울타리까지 예쁘다 한 가지가 좋게 보이면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다 좋아 보인다는 속담이 ‘아내가 귀여우면 처갓집 말뚝에 절을 한다’입니다. 비슷하게는 ‘아내가 귀여우면 처갓집 문설주를 쓰다듬는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울타리까지 예쁘다’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귀엽고 예쁜 것과 처갓집 말뚝과 문설주, 울타리는 무슨 관계가 있기에 사위가 좋아할까요? 단순히 아내가 살았던 집과 쓰던 기물이라서 그런 걸까요? 그리고 이 속담을 만든 건 사위였을까요, 처갓집 식구들이었을까요. 아마 둘 다 아닐 겁니다. 이 속담을 만든 사람은 처가 동네의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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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가을비는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한다 오래 내리지 않는 가을비를 가지고, 잔걱정은 가을비처럼 금방 지나간다며 ‘가을비는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한다’는 속담을 말합니다. 가을비란 워낙 성기게 내리니 성긴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앞날이 비 쏟아질 듯 어둡고 눈에서 비가 내리지만 몇날며칠 뒤 어찌어찌 해결하고 보면 별일 아닌 것도 꽤 됩니다. 그러니 해묵도록 근심할 일 아니면 그리 너무 속 태우지 말라며 노심초사하는 이에게 이 속담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비를 긋는 데가 왜 하필 장인어른에, 수염도 아닌 구레나룻 밑이었을까요? 장인어른과 사위가 나란히 선 상태에서 사위가 장인 구레나룻 밑에 비를 피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네, 맞습니다. 장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야 상투부터 윗머리까지 장인의 턱과 구레나룻으로 비를 가릴 수 있습니다. 즉 사위가 처가에 잠시 기댄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이 속담은 잠깐의 어려움은 처가 도움을 받더라도 흉이 되지 않는다는 뜻도 가집니다. 처가에만큼은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가장으로서 죽을힘 다해 홀로 난관을 뚫습니다. 그러자니 옆에서 말소리가 들립니다. “혼자 그리 애쓰다 몸 상하네.” 돌아다보니 장인어른이 서 계십니다. 얼떨해 있는 사위 손을 부여잡고 엽전꾸러미 묵직하게 얹어줍니다. “가을비는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하는 법이네. 사위도 자식일세. 잠깐 좀 기댄다고 뭔 흉이 되겠는가. 잘 털고 일어나면 그때 갚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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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말이 씨가 된다 숲 우거진 깊은 산길을 무리 지어 넘어가는데 왠지 으스스합니다. 개중에 한 사람이 그럽니다. “으~ 이러다 뭐 나오는 거 아냐?” 다른 일행이 면박을 줍니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가뜩이나 무서워 죽겠는데.” 말 꺼내기 무섭게 저 수풀에서 호랑이 눈이 으르릉 노려보고 있습니다. 오금이 얼어붙었다 이내 봇짐이고 뭐고 팽개치고 걸음아 날 살려라, 정신 놓고 사방으로 죽도록 뜁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한 대로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함부로 말을 꺼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말이 씨가 되는 경우는 참 많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재수 없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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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동아 속 썩는 것은 밭 임자도 모른다 박과에 딸린 동아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겨울에 먹는 참외라 하여 다른 표준어로 동과(冬瓜)라고도 하죠. 서리 내리고 이맘때가 한창 수확할 때네요. 동아는 수박을 옆으로 곱절 남짓 늘린 듯 크고 길쭉하니 1m까지도 자랍니다. 무게는 50㎏까지 나가고요. 심심한 맛이라 나박나박 자르거나 채를 쳐서 양념 버무려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장거리 항해 때 식수 보조용으로 잔뜩 실었다고 할 만큼 전체의 90%가 물입니다. 이뇨효과도 있어서 요즘 다이어트 식품으로 떠오른다지요. 그래서 못 먹던 옛날에는 살 내린다며 외려 피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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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는 나무꾼이 도끼질하다 아차 물에 빠트린 도끼로 시작됩니다. 나무꾼은 어쩌다 도끼를 놓쳐버렸을까요. 도끼질 안 해본 사람은 장작에 닿을 때까지 도낏자루 꽉 잡고 힘껏 내려칩니다. 그러면 장작은 안 빠개지고 날만 박혀 빼느라고 번거롭게 힘만 듭니다. 장작은 도끼를 이마 위까지 치켜들어 떡메 치듯 팔 힘 빼고 온몸 실어 내려쳐야 뻑 빠개집니다. 그런데 사실, 도끼질에서 가장 귀찮은 건 도끼질이 아니라 도끼받침 모탕에 팰 거리 올리거나 팬 것들을 허리 굽혀 간추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실력 좋은 사람이 장작을 패고 조수는 그 앞을 지켜 섰다가 새 장작 올리고 팬 장작을 치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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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항우도 댕댕이덩굴에 걸려 넘어진다 항우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힘은 산을 뽑을 듯하고 기개는 세상을 뒤덮을 만하다)로 유명합니다. 천하장사의 대명사입니다. 하지만 항우는 제 힘만 믿고 고집부리다 망합니다. 스스로 똑똑하고 강하다 자부하는 이들이 대개 남의 말을 안 듣지요. 학문도 검술도 병법도 지루하다고 시시해합니다. 제 힘과 빠른 두뇌회전을 과신합니다. 결국 항우는 덜 세고 덜 똑똑하지만 더 노력하고 더 머리 맞댄 이들에게 모든 걸 잃고 스스로 강물에 몸 던져 목숨을 끊습니다. 속담에 ‘항우도 댕댕이덩굴에 걸려 넘어진다’가 있습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와 같은 속담입니다. 댕댕이덩굴은 햇볕 잘 드는 산자락에 많습니다. 나무 감아 올라가기도 하고 바위 타 넘기도 하며 땅바닥 질러 자라기도 합니다. 이 댕댕이덩굴은 등나무처럼 덩굴나무입니다. 그래서 덩굴이 참 질깁니다. 2년쯤 자란 댕댕이덩굴은 속 빈 가는 덩굴이지만 웬만한 장사 아니면 못 끊습니다. 그래서 튼튼한 댕댕이바구니도 짤 수 있지요. 산에 나무하러 갈 땐 몇 명씩 무리 짓습니다. 맹수가 나타날 수도 있고 누군가 다치면 부축해 내려와야 하니까요. 땔거리 자르고 모아 감당할 만큼 지게에 쌓습니다. 이때 힘세다고 으쓱하는 사람 꼭 있습니다. 남들 곱으로 잔뜩 올려선 끙차 짊어집니다. “아, 이 사람아. 그러다 허리 나가.” “뭐, 이까짓 거 갖고!” 씩씩 척척 산길 내려갑니다. “바닥 잘 보고 가.” “걱정은. 내가 한두 번 왔어? 눈 감고도….” 바로 그때, 덤불길 가로지른 댕댕이덩굴에 발목 탁! 산더미 지게째 와르르 엎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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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인과응보, 사필귀정에, 요즘 속담으로 ‘제 팔자 제가 꼰다’에 해당하는 유명한 속담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입니다. 이 속담은 누구나 알 듯, 제 할 바대로 걸맞은 결과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 할 만큼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가득 들었고 콩기름도 짤 수 있으며 장 담그기도 좋습니다. 팥은 단백질이 콩의 절반밖에 안 들었습니다(대신 탄수화물이 많습니다). 팥으로 담근 장, 팥장이 있지만 콩이 반나절(6시간)만 불리면 될 걸 팥은 딱딱해 하루를 불려야 합니다. 게다가 팥장은 밀가루를 섞어야 끈기가 생기고 발효가 잘됩니다. 콩은 좋은 것, 팥은 좀 떨어진 것, 그렇게 <콩쥐팥쥐> 이름이 붙었겠지요. 그런데 왜 오랜 세월 굳이 콩과 팥이었을까요? 오이와 가지도 있는데. 단순히 좋다와 나쁘다의 선호 대비 때문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