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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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가는 밥 먹고 ‘가는 똥’ 눠라 제 지갑에는 신분증과 도서관회원증을 빼면 딱 두 장의 카드가 있습니다. 신용카드 한 장, 체크카드 한 장. 적립카드는 한 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갑이 참 얇습니다. 체크카드에 매달 일정 금액을 충전하고 체크카드만 씁니다. 충전 금액이 일찍 떨어지거나 늦게 바닥나는 걸로 더 쓰고 덜 쓴 정도도 체크할 수 있어 좋고, 잔액을 늘 생각하니 아껴 쓰게도 됩니다(신용카드는 교통카드로 쓰다 체크카드 잔액 부족 시 쓰는 비상용입니다). 그래서 저는 카드 결제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교통비뿐이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긁어대다 결제일마다 꺼이꺼이 울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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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누군가와 대거리 붙어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자면 옆에서 다독이며 말립니다. “네가 참아.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댔잖아. 무시해.” 씩씩 참으며 에이! 돌아서는데 귓등에 들립니다. “원, 별 거지 같은 게.” “거지? 너 말 다했냐!” “야야, 그만, 그만해! 그쪽도 그만하고 가세요.” “으휴, 내가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 “뭐, 똥? 지금 나더러 똥이랬냐?” 결국 멱살잡이 드잡이하다 경찰차 타고 지구대 망신살만 뻗칩니다. 그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지 계속됐으면 주먹다짐으로 피도 봤을지 모르지요. 참는 건 안팎의 압력, 두 가지로 나뉩니다. 웃음을 참고 방귀를 참고 욕구를 참고 화도 참는 것을 참을 인(忍)이라 하고, 손 시린 걸 참고 더위를 참고 고통을 참고 모욕도 참는 것을 견딜 내(耐)라 합니다. 둘이 합쳐 인내지요. 견디는 건 내성(耐性)이 생겨 그럭저럭 버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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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옛 해전 장면을 보면 갑판 아래서 북소리에 맞춰 노꾼들이 팔이 빠져라 노를 젓습니다. 둥당둥당 빠르기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고, 둥둥둥 당당당 소리에 맞춰 어느 한쪽 더 저어서 배를 돌립니다. 격군(格軍) 여럿이라도 고수(敲手)는 하나여야 전선(戰船)을 민활하게 움직이지요. 너나없이 고수이고 엇박자면 배는 산으로 갑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누구나 아는 속담입니다. “에이, 설마 배가 산으로 가겠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웃어넘기지만, 배에서 내리기 힘든 곳이면 거기가 바로 산입니다. 사공(沙工)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모래톱같이 경사가 거의 없는 곳이어야 뱃머리나 뱃전을 대고 정박과 승하선하기 쉽습니다. 뱃전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둔치면 배가 출렁거려 타고 내리기 어렵지요. 그런데 어린이용 속담 책을 보면 죄다 여럿이 우왕좌왕 노 젓느라 배가 산으로 오르는 모습으로 그려놨더군요. 그건 사공이 아니라 노꾼입니다. 사공은 삿대로 강바닥을 밀거나, 노를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처럼 지국총지국총 저어야 하니 고물(선미)에 서야 옳습니다. 물의 저항을 적게 받으려 배 폭까지 좁으니 사공은 많아야 둘이서 노를 맞잡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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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돼지 잠에 개꿈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개봉했을 때 다들 ‘돼지가 우물에 왜 빠져’ 하며 의아해했지요. 돼지의 후각은 마약탐지돈(豚)을 시켜도 좋을 만큼 아주 뛰어나지만 시력은 0.07 이하로 정말 형편없습니다. 제대로 보이는 게 없어 후각과 청각으로 목표에 저돌적(猪突的)으로 내닫다 보니 애꿎은 나무나 바위를 들이받고 마빡 깨지기도 합니다. 목마른 돼지가 물 냄새를 맡고 우물을 찾았다면 필경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들었을지 모릅니다. 눈은 뿌옇고 갈증은 급하고 ‘에라, 어찌 됐든 되겠지’. 논리정연한 말과 글에는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왜라는 육하원칙이 들어 있습니다. 깊고 넓은 계획도 구체적인 육하원칙으로 세워집니다. 한 직원이 “열심히 노력해서 매출을 올리겠습니다!” 장담하면 임원이 묻습니다. “어떻게? 어디서? 언제?” 그러면 호기로웠던 입이 바로 어물쩍거립니다. 자기계발이란 목표 역시 마찬가지죠. 무엇을 하겠다! 뜻은 참 가상합니다. 하지만 그 계획에 당장 ‘어떻게? 어디서? 언제?’를 들이대면 스스로 우물댈 수밖에 없습니다. 면밀하고 촘촘한 기업의 연간계획조차 뜻대로 안 되는데,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주겠거니’ 하고 어렴풋한 바람과 어설픈 삽질로 꿈이 이루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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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개도 얻어맞은 골목엔 가지 않는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는 개들의 문제행동 원인은 거개가 나빴거나 괴로웠던 기억 때문인 것으로 드러납니다. 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장소나 사람, 사물을 그때 경험한 느낌과 함께 기억한다지요. 그래서 아무리 잡아끌어도 어떤 곳에는 안 가려고 질질 버티고, 학대를 당한 기억 때문에 막대기 비슷한 것만 들어도 줄행랑을 놓습니다. 개의 이런 행동특성으로 만들어진 속담이 ‘개도 얻어맞은 골목엔 가지 않는다’입니다.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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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동지에 팥죽 쉬겠다 이달 22일은 동짓날입니다. 24절기 중 스물두번 째 절기지요(동지는 양력 21일 아니면 22일입니다). 그리고 음력으로 살던 옛날에도 24절기는 태양력으로 만들었습니다. 농사는 해를 따라가야 하니까요. 따라서 29일이거나 30일인 음력달 안에 동짓날은 매년 이르거나 늦게 옵니다. 음력 11월 동짓달 상순에 동짓날이 오면 애동지, 중순에 오면 중(中)동지, 하순에 오면 노(老)동지라고 불렀습니다. 동지를 이렇게 나누게 된 연유는 어쩌면 팥죽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동짓날에는 대문에 말 피나 붉은 팥죽을 문간에 뿌려 사귀(邪鬼)를 쫓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붉은색은 혈색이고 생명을 상징하니까요. 동지(冬至)는 말 그대로 겨울이 갈 데까지 갔다는 말이며, 이날을 기준으로 밤이 줄고 낮이 길어집니다. 즉 밝음이 어둠을 이겨 죽음에서 삶으로 바뀐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고대에는 동짓날이 설날이었습니다. 그랬다가 음력 1월1일이 설날이 된 뒤로도 동짓날을 따로 기념하기 위해 ‘같이 설’이라고 불렀고, 무슨 뜻인지 희미해지자 비슷한 발음인 ‘까치설’이라 부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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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춥기는 삼청 냉돌이라 보일러 연통에는 고드름이, 창밖에는 칼바람이 덜컹덜컹 달리며 며칠째 한파입니다. 이렇게 되우 추운 날 보일러까지 말썽이면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옛날에야 장작을 땠으니 보일러 고장 따위 있을 리 없겠지만, 대신에 불 땔 장작이 부족했겠지요. 그러다 보면 남은 장작 가늠해보곤 얼어 죽지 않을 만큼만 아껴 때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 방에 들어서면 발바닥 타고 냉기가 찌르르 올라옵니다. 그럼 출타했던 사람이나 손님이 저도 모르게 한소리 했겠죠. “‘춥기는 삼청 냉돌인가’ 바닥이 왜 이렇게 차!” 고려·조선시대 근위부대인 금군(禁軍)은 내금위(內禁衛·내전 호위), 겸사복(兼司僕·기병 위주 외곽 호위), 우림위(羽林衛·서얼 출신 보충대)로 이뤄졌는데, 이 세 부대의 관청을 삼청(三廳)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청사엔 불을 때지 않아 구들돌이 완전 냉돌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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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들은 말은 들은 데서 버려라 송년회의 달 12월, 한해 한두 번 보는 옛 동기, 살짝 서먹한 한 순배 돌고 나면 뭐 하고 사는지 요즘 사는 게 어때 같은 말들이 오갈 테지요. 그럭저럭 산다거나 죽 쑤고 있다, 뻔한 걸 뭘 묻냐며 쭈뼛거리다가 술 두어 순배 돌면 슬슬 헤실헤실해집니다. 어디 가서도 말 못할 부부 잠자리 문제나 배우자의 외도, 이혼 절차 중이라거나 자녀 뒷문으로 넣은 무용담에 뒤로 애인 둔 얘기까지 털어놓기도 하지요. 술은 동고동락의 옛날로 돌아가게도 하니까요. 말하면서 아차 싶지만 ‘에이 뭐, 우리 사인데’ 하며 허심탄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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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굽은 지팡이 그림자도 굽어 보인다 우리말에 ‘본데’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고 배운 예의범절이나 솜씨, 지식 등을 뜻합니다. 젊거나 어린 사람이 경우 바르거나 눈썰미 좋고 재바르면 ‘본데있다’ 하고, 망종되거나 허수로우면 ‘본데없다’ 하여 그 사람의 보임새로 집안의 윗길 아랫길을 알아봅니다. 얼마 전 모 종편방송사 대표이사의 어린 딸이 자기네 운전기사에게 퍼부은 폭언과 욕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고작 열 살짜리 초등학생이 어른 뺨치는 그악스러운 언행을 해댔기에 자식 둔 사람이건 아니건 말세라는 탄식으로 도리질할 수밖에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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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한양서 매 맞고 송도서 주먹질한다 출판사 다닐 때였습니다. 편집인쇄 맡긴 학회 간사가 전화해서 대뜸, 일을 왜 이따위로 해서 윗선에 욕먹게 만드냐고 노발대발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쪽에서 보낸 메일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하니, 그렇더라도 알아서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되레 역정을 실컷 내더니 수화기 꽝 끊더군요. 이거 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긴다더니, 자기 잘못으로 윗사람한테 혼나고 왜 죄 없는 이쪽에 화풀이인 건지요. 속담에 ‘한양에서 매 맞고 송도에서 주먹질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송도(松都)는 개성(開城)의 옛 이름입니다. 부근 사람들은 여전히 개성을 송도라 불렀다지요. 아무튼 고려의 수도에서 일개 대도시로 전락했지만 대신에 개성상인으로 유명할 만큼 상업도시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조달청 직원에 해당할 어느 관리가 발주를 잘못해서 상사로부터 ‘송도로 뛰어가 똑바로 다시 해와!’라는 불호령과 함께 물볼기를 맞았다 칩시다. 관리는 노기탱천을 애먼 상인을 만나 두드려 패서 풀었겠지요. 납품권 잃지 않으려면 어쩝니까. 그저 제가 잘못했습니다, 분 풀리실 때까지 맞아 드려야죠.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긴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 종로의 현 광화문광장 양옆은 육조(六曹)거리라 하여 여러 관청들로 즐비했습니다. 거기서 윗사람한테 하급관원이 혼쭐납니다. 한강 물길로 조달된 관용물품 수량산출에 착오를 내서였겠지요. 서당도 못 나왔냐, 손가락셈도 못하는 바보냐며 온갖 모욕을 당합니다. 그 분기와 짜증, 어디다 풀겠습니까? 운송인과 창고지기한테 애꿎게 트집 잡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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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은행나무도 마주 서야 연다 이전엔 ‘군대 가면 고무신 거꾸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었다면 요즘은 ‘오빠가 아빠 되고 친구가 식구 된다’고 합니다. 몸이 멀어지면 정도 멀어지고 가까이 있어야 사랑도 도타워진다는 것이죠. ‘오빠오빠’ 하다가 아이 아빠로 부르게 되고 친구처럼 지내다보니 어느새 가정 이뤄 한 식구입니다. 가까이 있어도 자주 접해야 정도 깊어진다며 ‘은행나무도 마주 서야 연다’고 속담은 말합니다. 식물에는 벌, 나비 등으로 꽃가루받이를 하는 충매화(蟲媒花)와 새를 통하는 조매화가 있는가 하면, 물이나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를 운반하는 수매화와 풍매화도 있습니다. 은행나무는 풍매화입니다. 게다가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암수딴그루입니다. 최대 2~4㎞까지 꽃가루가 날려간다지만, 당연히 수나무와 암나무가 가까이 섰을수록 수분(受粉)이 잘됩니다. 은행나무 꽃가루는 입자가 무거워 아주 멀리까지 가는 건 많지 않으니 아무래도 가까이 있어야 꽃가루 세례를 더욱 듬뿍 받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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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말ㅆ·미 바람이 불다 불다 그친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놔도 돌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겹고 힘들고 까마득한 군생활이지만 견디다 보면 끝날 때가 오긴 꼭 온다는 위로이자 다짐이죠. 옛날 괘종시계는 추가 진자운동 해야 태엽 풀리며 작동된다지만, 아무리 시계 거꾸로 매단들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지납니다. 또한 소속 집단이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자신에 대한 터무니없는 소문과 비난들이 나오는 일도 있습니다. 아니라고 핏대 세워봤자 되레 반동(反動)으로 트집거리만 되니 마주서지 말고 비껴서야 할 때도 있겠지요. 살다보면 너나없이 한두 번은 참기 힘든 시기를 겪습니다. 그때 간혹 어떤 이들은 도저히 못 견뎌 귀 막고 틀어박히거나, 살아 뭐하나 싶은 자포자기에 목숨까지 버리려 듭니다. 하지만 힘들고 사나운 시절도 시간 지나면 수그러들고, 무성한 입방아도 그러라 놔두면 제풀에 사그라집니다. 속담에서는 이를 스쳐가는 바람에 빗대 ‘바람이 불다 불다 그친다’고 하지요.